월간참여사회 2022년 11월 2022-10-31   574

[여는글] 300호 발간에 부쳐 – 말이 길이 되려면

근자에 어떤 사례를 보며 든 생각이다. 말이 힘을 얻지 못하면 내심의 뜻을 전달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말은 힘을 얻어야 설득이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해야 ‘힘이 있는 말’이 될 수 있을까?

올봄부터 매월 한 번씩 열리고 있는 실상사와 서진암, 백장암 걷기 순례에 어느 초등학교 선생이 인연을 맺었다. 3암자 순례로 불리는 템플스테이는 걸으며 생각하고, 차를 나누며 삶과 지혜를 나누고, 농장에서 일하며 생명의 질서와 사랑을 체험한다. 선생은 시절인연이 맞았던지 매월 동참했다. 그리고 연휴에는 3일간 농장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옆에서 가만 보니 일하는 형세가 제법이다. 농사 경험이 있느냐고 물으니 어머니가 하는 것만 봤다고 한다. 난생처음 호미 들고 잡초 뽑고, 모종을 심고, 비닐을 제거하고, 배추를 거둔다. 일하는 태세도 진지하다. 농장 사람들과 함께 하루 8시간 이상 꼬박 일했다. 진지하고 성실하다. 농장지기는 한몫 단단히 하는 일꾼이라며 칭찬했다.


그의 농장 경험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빈 그릇 운동으로 이어졌다. 몇 번에 걸쳐 농장에서 일한 장면과 수확한 채소들을 사진으로 찍어 아이들과 공유했다. “선생님이 진짜 이렇게 온종일 일하셨어요?” “채소들이 이렇게 자라서 우리가 맛있게 먹는 거군요.” 아이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왜 아이들은 선생님 ‘말’에 ‘말’을 걸었을까? 말은 곧 생활로 이어졌다. 점심시간 음식이 많이 버려지는 것을 안타까워한 선생님은, 식판에 음식을 남기지 않기로 아이들과 얘기 나누고 함께 공부했다. “애들아, 선생님은 ‘음식 쓰레기’라는 말이 너무 이상하단다.” “맞아요, 선생님. 생각해 보니 소중한 음식에게 쓰레기라는 말은 아닌 거 같아요.” 그래서 ‘음식 쓰레기’ 대신 ‘남는 음식’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마침내 음식의 명예가 회복된 것이다. 음식이 자존감을 찾은 것이다.

내친김에 학생들과 선생님은 식사 감사 기도문을 만들었다. “해, 구름, 바람, 비, 흙… 진짜 진짜 고마워. 정성 들여 길러주신 농부님들, 어부님들 고맙습니다. 음식을 만들어주신 급식실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부모님 고맙습니다. 꼭꼭 씹어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며칠 후 선생님은 말끔히 비운 아이들 식판을 인증샷으로 찍어 실상사로 보내주었다. 나는 그 사진을 보면서 매우 흐뭇했다. 그리고 내내 생각했다. 말이 힘을 얻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를.

말이 넘치는 세상이다. 이웃에게 상처 주는 말이 넘친다. 사실을 왜곡하는 거짓의 말이 넘친다. 얼추 그럴듯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말들이 넘친다. 역사를 퇴행시키는 말이 뻔뻔하게 넘친다.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사회부터 정치권까지, 듣기에 민망한 말들이 넘친다.

조선시대 문신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1682은 입으로 짓는 허물을 열여섯 가지로 분류했다. 몇 개를 들춰본다. 행언희학行言戱謔-실없이 시시덕거리는 우스갯말, 화리貨利-재물의 이익에 관한 말, 교격矯激-남의 말을 안 듣고 과격한 말, 첨녕諂佞-체모 없이 아첨하는 말, 택비擇非-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아닌 척 꾸미는 말, 양인지건揚人之愆-남의 사소한 잘못까지 드러내 떠벌리는 말…. 허목은 16가지를 나열한 후 “삼가지 않은 사람은 작게는 욕을 먹고, 크게는 재앙이 그 몸에 미친다. 마땅히 경계할진저.” 라고 글을 맺는다.1 허목이 지적하는 말의 허물들은 오늘날에 비춰 봐도 낯설지 않다. 아니 외려 교묘하고 노골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삶은, 말은 득점도 중요하지만 실점하지 않는 일도 중요하다.

말의 득점에 대한 옛사람의 글을 살펴보자. 중국 명나라 학자 설응기薛應旂, 1500-1575는 10가지로 말(글)의 바람직한 자세를 말했다. 몇 개를 인용해 본다. -참된 진실을 담는다, -사실을 정확하게 적는다, -겉만 꾸미고 속은 추한 것이 아니라 우아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아홉 번째 항목을 유념한다. 작불경인도어作不經人道語-제 말을 해야지 남의 말을 주워 모아서 해선 안 된다. 이는 자신과 사회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탐구하여 얻은 말을 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말은 곧 길이다. 그렇기에 말이 사특邪慝하면 사람들은 사특한 길로 간다. 공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시경 삼백편의 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무사思無邪다.’ 생각에 사특함이 없어야 말이 사특하지 않다. 말이 길이려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발언을 해야 한다. 「월간참여사회」가 지령 300호를 맞았다. 시대를 염려하고 사랑하는 말의 탑이 300층이다. 이제 우리 참여연대는 다시 고민의 고삐를 단단히 쥐어야 할 때다. 참여연대는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우리의 말이 힘을 얻을 것인가? 절실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1 정민, 『점검』, 김영사, 2021. 137쪽


법인 스님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에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흥사 수련원장으로 ‘새벽숲길’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현재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수행 중이며 지은 책으로 인문에세이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중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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