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2년 12월 2022-11-30   4281

[인터뷰] “저는 그냥 하루치씩만 해요” –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 저자 ©최인기

우리는 왜 걸을까? 걷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상의 고민과 복잡함을 덜고, 사유를 하고, 걷다가 조우하는 우연의 풍경에 즐거움을 느낀다. 숨어있는 도시의 역사를 되짚고 내 두 발로 도시를 기억하며,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이동한다는 의미도 덧댄다.

그리고 어떤 기록자들은 도시를 걸으며 그 도시에 살았던 사람들을 길어올리기도 한다. 반빈곤 활동가 김윤영은 지난 10월 출간한 《가난한 도시 생활자의 서울 산책》에서 서울의 ‘개발행위’에 밀려 쫓겨난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록했다.

“처음엔 전 세계 방탄소년단(BTS) 팬클럽 아미(ARMY)들에게 서울 다크투어 가이드북을 보급하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쓰다보니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똑같이 서울시민이지만, 밀려나고 쫓겨난 사람들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어요.”

지난 11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만난 김윤영이 그렇게 ‘서울 사람’을 산책한 이야기를 꺼냈다.

김윤영은 노점상, 장애인, 쪽방 주민, 철거민, 홈리스 등 도시 빈민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함께 싸우고 정책을 제안하며, 같은 지향을 가진 단체들을 잇고 모으는 ‘빈곤사회연대’ 13년 차 활동가다. 그날도 그는 국회 앞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 저지를 위한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지난여름 홍수로 반지하 거주민들이 목숨을 잃는 등 주거 약자의 피해가 가시화되었음에도 2023년도 예산안에서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5조 6,445억 원(25%) 삭감한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예산을 복구하기 위한 농성이다.

10월 17일 시작한 이 농성은 인터뷰 하루 전인 11월 16일 관문 하나를 넘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예산소위원회는 정부가 삭감한 공공임대주택 예산 전액을 복구하기로 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모두 퇴장한 뒤였다.)

“아직 예결특위, 본회의 등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너무 기쁘죠. 이게 동자동공공주택추진모임, 민달팽이 유니온 등 48개 주거권 운동단체가 공공임대주택 관련해서 처음으로 공동의 실천을 한 것이거든요.”

김윤영은 성과에도 주목하지만, 그 과정과 거기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에 더 의미를 뒀다. “주거 관련해서는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중심이었는데, 이번에는 쪽방 주민들, 노점 상인들, 홈리스 등 공공임대주택이 필요한 당사자가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커요.”

아현동엔 박준경이 살았다

김윤영은 이들이 사는 서울을 걷는다. 당연히 그의 시선을 따라 걸으면 쫓겨난 사람들이 있다. 경의선 숲길에는 2008년 용산구 신계동에서 철거민이 된 강정희가 있고, 아현동을 지날 때면 2018년 강제집행 이후 죽음을 선택한 아현2구역 철거민 박준경이 있다.

지금은 마포더클래시 아파트(1,419세대 거주)가 자리한 옛 아현2구역을 지날 때면 박준경이 느꼈을 고립감이 느껴져 아프다. 박준경은 1981년생이다. 김윤영과 또래다. 2018년, 아현동 골목 끝 단층집에서 어머니와 10년째 살고 있었다. 아현 뉴타운 8개 구역 가운데 아현2구역은 유일하게 재개발이 아닌 재건축 지역이었다. 재건축 지역은 세입자 보상 대책이 의무가 아니어서 이사비도 받지 못한다. 갈 곳 없는 박준경 모자는 버텼고, 2018년 9월 강제 철거 뒤 ‘빈집살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11월 30일, 박준경 모자는 빈집에서도 쫓겨났다. 박준경은 사흘간 추운 겨울밤을 길에서 보내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죽음을 선택한다는 유서를 남겼다. “어머니에게 임대아파트를 마련해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1

아픈 기억이지만 김윤영은 직시한다. ‘여기 아파트가 선 곳에 원래는 골목이 있었지, 이 골목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그 사람이 살던 집이 있었지’라고 생각한다. 다세대 공동주택(대단지 아파트) 건축이 지워버린 지름길과, 없애버린 목욕탕과, 밀어내버린 동네 포장마차의 근사함을 생각한다. 사라진 마을버스를 아쉬워한다. 그리고 지금은 ‘마포더클래시’라는 아파트 이름으로만 불리는 동네에 ‘박준경이 살았다’고 기록한다.

아파트가 내쫓은 삶들을 기억해달라

대단지 아파트에만 서울 시민이 사는 것이 아니다. 서울 대로를 한 골목만 벗어나도 “밀집한 쪽방과 고시원에, ‘빈방/월방’이라는 알쏭달쏭한 전단이 붙은 여인숙에도, 하염없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 빈 의자와 5,000원짜리 백반집을 찾는 노인들 사이에도 일렁이는 삶이 있다.”2

그러나 2000년대의 서울은 ‘대단지 아파트 주민’의 목소리가 과잉 대표되고 있다. 이들은 동네로부터 자신들의 주거 공간을 분리한다. 아파트 담장과 거리 사이를 걸어 잠근다. 비밀번호를 눌러서 문을 열어야 아파트 담장을 넘어갈 수 있다. 아파트를 가로질러 ‘외부’ 보행자가 지나다니면 주민센터에 민원이 접수되기 일쑤다. 행정기관은 대단지 아파트를 지을 때 초등학교도 함께 지어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를 적극적으로 조성하며 ‘그들만의 리그’에 복무한다.

서울 전체가 아파트 숲이기는 하다. 2021년 3월 기준으로 6.3㎞에 이르는 경의선 숲길 공원 주변 200m 반경에 1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만 32개가 들어섰다. 2008년 경의선 숲길 인근 서울 용산구 신계동 재개발 사업으로 밀려난 강정희 씨 집 자리에도 어김없이 아파트가 들어섰다. 2008년 조합원에게 3억 후반에 공급된 59㎡ 아파트는 2011년 입주 당시 6억 원에 거래됐고, 2018년엔 10억을 넘겼고, 2021년에는 14억 7,000만 원에 거래가 이뤄졌다. 2012년 고창으로 귀농한 강정희 씨는 “삶에 회의가 드네”라며 웃었다.3

김윤영은 “경의선 숲길을 걸을 때면 주변에 아파트가 지어지며 내쫓긴 삶들을 기억해달라”고 당부한다. 그는 “공공자금으로 개발된 공공의 공간이 창출한 가치와 이득을 오롯이 건물주가 독점하는 현실이 온당한지 생각해달라”고 말한다.

©최인기

“어쩌면 우리의 문제는 가난이 아니라 풍요가 아닐까.
오토바이 소음과 땀 냄새, 작고 구불구불한 골목과 영세한 공장들이 사라지고
큰 건물들로 채워진 공간을 ‘깔끔해졌다’고 여길 수 있는 순진함,
‘전세 두 번만 돌리면 원금을 상환할 수 있다’는 계산.
우리 모두가 공유한 풍요에 대한 욕망이 여기 깃들어 있다.”
–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 여덟 번째 산책 청계천 ‘가난을 걷어낸 자리’ 중

그냥 가난할 뿐인 ‘서울 시민들’

같은 서울 시민이지만, 가난한 자에게는 ‘너는 시민이 아니야’, ‘무리한 요구를 하는 떼쟁이야’라는 ‘비시민 딱지’가 붙는다. 홈리스에게는 ‘게으른 자’, 노점상에게는 ‘반칙하는 자’ 같은 편견이 포개진다.

김윤영이 반빈곤 활동을 하며 만난 그들은 열심히 살았지만, 그 결과도 그저 가난인 구조의 피해자였다. 김윤영이 홈리스 상담 활동을 처음 시작하면서 만난 1958년생 김동선 아저씨가 그랬고, 한때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수출역군’ 섬유 노동자였지만 지금은 서울역 인근 텐트에서 사는 1957년생 정기영 아저씨가 그렇다. 동선 아저씨는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쪽방과 거리를 오갔다. 10대 때부터 건설 일을 했고, 늘 두 명 몫의 일을 혼자 해내는 ‘일잘’(일 잘하는 사람)이었다. 종각역에 제대로 된 박스 집 짓는 법을 전파한 것도 그였다. 부모의 폭력 등으로 제대로 돌봄 받지 못한 어린 시절을 지나, 밥 먹듯 임금을 체불 당하는 건설노동자의 삶을 살다가, 마지막까지 고물상 일을 멈추지 않은 그에게 주어진 집이란 거리와 월 20만 원 하는 쪽방뿐이었다. 섬유산업 쇠퇴와 함께 삶도 내리막길을 걸은 정기영 아저씨가 지금 괴로운 것은 굳이 텐트에 찾아와서 돌팔매질하는 청년들이다.

김윤영은 ‘빈곤이 개인의 게으름이나 나태함 때문’이라는 만들어진 신화를 적극적으로 반박한다. 매일 밀려드는 활동가의 일정 사이사이 짬을 내서 책을 끝끝내 써낸 이유이기도 하다. “빈곤사회연대 활동을 하면서 만난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들의 가난이 개인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을 전달하고 설득하고 싶었어요.”

부족해도 함께 일군 승리와 변화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있었던 빈곤사회연대 사무실도 최근 두 번의 밀려남을 겪었다. 10년간 머물렀던 원효로에서는 ‘용산역세권 개발 열기’에 ‘계약만료’ 통보를 받았고, 가계약금을 입금한 서울 용산구 후암로에서는 건물주의 ‘편견’에 밀려났다. 가계약금을 입금하자 단체명을 확인한 건물주가 돈을 반환했다. ‘홈리스 이런 사람들이 내 건물에 얼씬대면 건물 이미지 나빠지고 싫다’는 게 이유였다. 후암로 일대에 소문이 퍼졌는지 더는 사무실 자리를 내주는 사람이 없었다. 빈곤사회연대는 어렵게 지금의 서울 용산구 청파로에 사무실을 구했다.

‘자본의 논리’가 ‘당위’로 받아들여지는 현재에 그는 어떻게 13년 동안 반빈곤 활동가의 삶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이유를 묻자 담담하게 답한다. “저는 그냥 하루치씩만 해요.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못하겠으면 못 하는 거다’라고 생각해요.”

대신 함께 싸워온 사람들이 일궈 온 작은 승리와 그 승리가 만들어낸 변화와 진보의 가치를 새기고 확장하려 노력한다. 박준경의 죽음으로 너무나 부족하지만 ‘재건축 지역에서 세입자 보상 대책을 수립하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권고안’이 마련됐다. 여기에서 또 다음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경희궁 롯데캐슬’이 되어버린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무악동 일대 ‘옥바라지 골목’은 부족한 대로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 집’이라는 간판을 단 마을박물관을 남겼고, 당시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성에 비추어 무악2구역 재개발 사업을 반대하던 이들이 모인 ‘옥바라지선교센터’라는 연대체가 남았음에 희망을 품는다.

서울 용산참사 현장에 남은 것이라곤 잘 보이지도 않는 ‘도시기억전시관’ 한 켠의 연작 그림과 사진 몇 점이라며 투덜대는 인터뷰어에게 “무척 안타깝고, 그게 현재의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오는데도 진짜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고 의미를 짚는다.

2023년 예산안 심의를 앞둔 10월 17일 국회 앞, 참여연대와 세입자·청년·주거·빈곤 시민사회단체들이 농성장을 차렸다. 윤석열 정부가 대폭 삭감한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되돌리고, 주거복지 예산을 확충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길

그는 참여사회 독자들에게도 당부했다. “빈곤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비법은 없지만, 체념하면 해결 방법을 찾기는 더 어렵잖아요. 지금 싸우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연대하고 귀 기울여 주세요.”

12월 2일에는 모란공원에서 박준경 추모제가 열린다. 밤이 가장 긴 올해 동짓날(12월 22일)에는 무연고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홈리스추모제’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열린다. 용산 정비창 민간개발에 반대하며 용산역 광장에서 시작해 홈리스 텐트촌이 보이는 용산역 구름다리를 지나 용산참사 현장까지 3.3㎞를 걷는 용산 다크투어도 계속된다.

문헌학자 김시덕은 그의 책 《갈등도시》에서 ‘산책’의 의미를 말했다. “산책은 자신이 사는 도시의 맨 밑바닥을 바라보게 하고, 그로써 인간을 정치적으로 만듭니다.” 활동가 김윤영 역시 그런 ‘산책’을 한다.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에는 도시 맨 밑바닥에 사는 ‘가난한 자’들의 삶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님을, 그 싸움으로 주거복지가 한 뼘씩 확장되고 있음을 전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 비록 ‘아미’에게 배포할 가이드북 쓰기에는 실패했지만, 그보다 수천 배 더 값진 ‘산책 가이드북’이 아닐까.

1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 아현 ‘아현포차와 박준경의 기억’ 발췌 요약 p.94-96
2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 종로 ‘쪽방촌 주민의 기억’ p.225
3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 경의선 숲길 ‘철거민 강정희의 기억’ p.26


박수진 참여사회 편집위원 
사진 최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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