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2년 12월 2022-11-30   636

[여는글] 다시금 전복을 꿈꿉시다

영화 <기생충>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권력을 보여줍니다. 영화에서는 ‘보는 자’와 ‘보이는 자’,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자’가 대비됩니다. ‘보는 자’는 권력의 정점에서 모든 시선을 지배합니다. ‘보이는 자’는 ‘보는 자’가 원하는 대로 ‘보여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자’는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목숨을 빼앗깁니다.

하지만 영화는 전복顚覆을 말하지 않습니다. ‘보이는 자’ 역시 ‘보는 자’의 부재를 틈타 일탈의 파티를 벌이지만,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 결국 스스로 보이지 않은 곳으로 스며듭니다. 심지어 지하실로 숨어든 아버지를 구원하는 아들의 상상마저도 보는 자의 지위에서나 가능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기생충>의 그 집에는 여전히 ‘보는 자’와 ‘보이는 자’, ‘보이지 않는 자’가 살고 있을 터입니다. 이것이 세상인가 봅니다.

얼마 전 안타깝게도 158개의 우주가 사라졌습니다.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이태원에 모인 젊은이들 또한 ‘보이는 자’이거나 ‘보이지 않는 자’였었나 봅니다. 핼러윈 축제의 뿌리는 전복에 있습니다. 악령의 모습을 하고 지나가는 한 해의 악운을 넘어서려는 것이 그 기원이라고 합니다. 젊은이들은 이를 본받아 이교도 복장, 마계의 노래, 신성모독의 몸짓으로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강고한 질곡에 이리저리 흠집을 내고 균열을 만듭니다.

하지만 그들이 얻은 것은 새로운 한 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의 어둠뿐이었습니다. 자본의 욕망은 핼러윈의 이단성을 빼앗고, 정권의 교만은 젊은이들의 몸짓을 거부했습니다. 책임은 법의 뒤에 몸을 가렸고, 윤리는 자유의 남용 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이태원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는 바깥에서 세상을 희롱하고, 그나마 이태원 사람이고자 외치는 이들은 애도할 공간조차 찾지 못한 채 서서히 보이지 않는 자리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이것도 세상의 일인가 봅니다.

2022년을 마감하는 참여사회는 다시금 전복을 꿈꾸고자 합니다. 애도하여 떠나보내지 못한 영령들, 그래서 우울증만 더해가는 우리… 무엇을 해야 하나? 아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곧 한 해가 저뭅니다. 다시 한번 광장에 나가봅니다. 거기에는 친숙한 얼굴들이 있습니다. 보이기 위한 얼굴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얼굴들 말입니다. 혹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얼굴들도 문득문득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얼굴들에 너무도 많은 것을 의존해 왔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삶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이 지켜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얼굴에 담겨있는 목소리에 응답하여야 할 윤리적 책무를 느끼게 됩니다.

우리 헌법의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으로 시작합니다. 밋밋한 역사를 자랑하고자 함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긴 시간을 우리는 다른 우리들과 함께 살아왔음을, 그리고 그런 삶을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삶의 공동체를 만들었고 또 그 속에서 살아왔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 터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너’와 ‘우리’는 ‘나’에 우선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라는 자아의 존재 이전에 ‘너’를 향한 윤리가 존재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애절하고 고통에 찬 ‘너’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에 응답하여야 할 ‘나’의 윤리 말입니다.

2022년을 보내는 참여사회는 이런 윤리로 가득한 사회를 꿈꿉니다. 서로 어깨를 빌려주며 서로 말 걸기에 나서는 그런 사회 말입니다. 지난날 촛불 광장에서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살아있음을 확인했던 그 감동, 그 환희가 우리의 모든 일상에서 다시 한번 재현되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히틀러 체제의 야만에 저항하기를 외치던 ‘백장미 전단 제6호’의 제목이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의 정신만큼은 언제까지나 살아있기를!”

이태원에서 희생되신 분들을 깊이 애도합니다.
그들이 채 펼치지 못했던 전복의 꿈 또한 애도합니다.
새해에는 눈이 많이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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