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3년 09월 2023-08-29   774

[미술관에 간 페미니즘] 바지를 입고 동물에 다가선 여성화가

말시장(The Horse Fair), 1852–55

개와 말은 그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이다. 이 동물들은 충성심을 은유하거나 권력자의 지배력을 보여주는 도구로 활용되곤 했다. 또한 인간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했다. 화목한 가족 초상화에 등장하는 개, 왕이나 귀족 남성의 사냥 장면에 등장하는 개, 그리고 유명한 나폴레옹의 초상화에서 비탈길을 올라가는 말 등이 그렇다.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는 ‘성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에서 말을 탄 인간을 영웅으로 미화하려고 의도적으로 말을 작게 그렸다. 인간을 강조하기 위해 말과 인간 사이의 실제 비례를 왜곡한 것이다.

흔히 인물화는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곤 했다. 그렇다면 동물의 얼굴을 그리는 것은 어떨까.

인간이 아니라 동물의 얼굴을 그린 여성

19세기에 동물 화가로 유명한 로자 보뇌르Rosa Bonheur, 1822~1899는 개인사와 작품 모든 면에서 주목할만한 화가다. 유명한 작품 ‘말시장’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인간을 돋보이게 만드는 조연이나 배경으로 동물을 처리하지 않았다. 동물 자체를 화면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로자 보뇌르는 흔치 않은 진보적인 가정에서 자라면서 활동적이며 자유롭게 동물들과 어울렸고, 독보적인 동물화가로 성장했다. 아버지 레몽 보뇌르Raymond Bonheur, 1796–1849도 화가였고 로자는 4남매의 첫째로 태어났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레몽은 로자에게 직접 그림을 가르쳤다. 비록 레몽 자신은 성공적인 화가가 아니었지만 자식들의 교육에 공을 들였고 4남매는 모두 예술가로 성장했다. 특히 레몽은 생시몽주의1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그로 인해 여성에게 교육 기회가 열리지 않던 시대에도 딸들의 교육에 힘을 쏟았다. 로자에게는 큰 행운이다.

로자는 젊은 나이에 제도권에서 화가로 인정받았다.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명성이 높아졌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다. 19세기에는 여전히 여성 화가는 정물이나 가족을 그리는 것이 적당하다는 편견이 팽배했고 그마저도 여성을 전문 화가라기보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아마추어’라는 틀에 가두려 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보뇌르의 야성적인 동물 그림은 상당히 예외적이었다.

남성 비평가들은 로자를 ‘여성처럼 그리지 않는 여성 화가’라고 칭찬했다. 오늘날에도 여성의 전문성은 ‘여성 일반과는 구별되는 예외적 여성’이라는 교묘한 칭찬 방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칭찬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사실은 여성 일반을 폄하하는 방식이다.

‘예외적 여성’으로 칭찬받던 로자지만, 꾸준히 동물에 집중하는 그의 작품 세계는 종종 비난받기도 했다. 인간보다 동물을 더 중요하게 묘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로자의 그림에서 인간의 얼굴은 소나 말보다 덜 중요하게 처리된다. 폭이 2m가 넘는 ‘니베르네에서의 밭갈이’에서 밭을 가는 소들의 표정은 잘 보이는데, 소를 모는 사람의 얼굴은 모자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로자는 그림 속 동물의 눈빛을 통해 인간이 동물과 시선을 맞추도록 했다.

니베르네에서의 밭갈이(Ploughing in the Nivernais), 1849

치마가 아니라 바지를 입은 여성

로자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었으며 공화정에 반대하고 군주제를 지지했다. 그러나 사생활은 진보적이었다. 그는 평생 여성 파트너와 살았고 공개적으로 바지를 입었다. 19세기에 여성의 바지 착용은 ‘음란한 전환’이었다. 심지어 불법이기까지 했다. 필요한 경우 경찰서의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로자는 복장 전환 허가를 받아 남성복을 착용하곤 했다.

서양 연극사를 보면 소년은 성인 여자와 소녀를 모두 연기할 수 있었지만 여자는 성인 남자가 아닌 소년만 연기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성숙한 남자’는 여성이 쉽게 모방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남성의 여성 복장 전환과 달리 여성의 남성 복장 전환은 ‘남성성 특권화에 대한 저항’의 성격이 따른다. 그렇기에 사회적으로 더욱 터부시되었다. 그럼에도 로자는 종종 남성의 복장을 입었다.

로자가 여성과 살았기 때문에 그의 남성 복장을 두고 ‘레즈비언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로자는 동물과 함께 작업하기에 편한 ‘합리적인 복장’이었다고 말했다. 넓고 긴 치마를 입고 야외에서 동물들과 어울리기는 번거롭기 때문이다.

그의 남성 복장은 활동적인 여성이 당시 문화적 틀을 거부하는 태도였다. 실제로 19세기 후반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펼쳐지던 여성 운동에서 복장 문제는 중요한 화두였다. 특히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하게 요구받던 중산층 여성을 중심으로 복장 개혁이 일어났다. 여성/동물에 대한 담론이 시작되던 19세기 중후반에 로자의 인기가 높았던 것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로자 보뇌르는 여성적인 주제에 갇히기를 거부하며 격렬하게 움직이는 말을 뛰어나게 그렸듯이, 자신의 몸도 보디스2나 코르셋 안에 가두기를 거부했다. 여성과 남성 사이의 규범에 저항하듯이 인간과 동물 사이의 지배 관계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보여줬다. 로자는 규범에 맞추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리낌 없이 표현했다. 머리를 자르고 바지를 입고 담배를 피우고 사냥을 하고 날뛰는 동물을 그리며 여성과 함께 살았다.

1 공상적 사회주의자의 한 사람인 생시몽의 이념을 이어받은 사회개혁 사상
2 몸통에 꼭 맞게 허리부터 가슴까지 끈을 조여 입은 옷


글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예술과 정치, 그리고 먹을 것을 고민하는 글쓰기와 창작 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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