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3년 09월 2023-08-29   2767

[인터뷰] 디지털 세상도 사람답게… 길드를 만드는 오지라퍼 –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  ©박상환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 ©박상환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사회가 변하고, 자연스럽게 사회문제도 함께 변하고 있다. 기후위기나 불평등한 노동 등 사회문제가 심화하는 양상도 보이면서 과연 기술이 그에 걸맞은 효용을 주는지는 의문이 제기된다. 오히려 디지털 세상이 새로운 범죄의 장으로 변질했고 이를 제재할 수단은 마땅치 않다는 우려도 크다.

프리랜서 개발자이자 십대여성인권센터 IT지원단 ‘Women do IT’ 활동가, 한국여성의전화 IT 전문위원, ‘슬러기쉬 해커스Sluggish Hackers’ 활동가 등으로도 여러 방면에서 바쁘게 활동하는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를 만났다.

조 활동가는 개발업계의 문제뿐 아니라 디지털 성폭력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일에 참여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관련 칼럼을 모아 단행본 《액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도 발간했다. 그와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했다.

– 국어국문학과 출신으로 IT업계에 갔다. 왜 개발 일을 선택했나?

그 무렵 SI기업1들이 IT 비전공자를 많이 뽑았다. 당시에는 예를 들어 언론사에서 IT 기술자들을 뽑아 기사 작성·편집 절차를 가르쳐서 시스템을 만들기보다는 언론인에게 기술 지식을 가르치는 게 낫다고 본 거다. 저도 그런 분위기에서 업계에 들어갔다. 원래 중고등학교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는데, 게임 하면 또 길드2 아닌가(웃음)? 그때부터 독학으로 배워서 길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원래는 소설가가 꿈이었는데 막상 국문학과에 가보니 재능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학교에서 활동할 때 캠페인 사이트를 만들곤 했으니까 ‘이쪽으로 나가보자’고 생각했다.

– 최근 IT 회사에도 하나둘씩 노조가 생겼다. 또 크런치 모드3 등 노동 관행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도 있었다. 달라졌다고 보나?

좋아졌다기보다는 양상이 달라졌다. 과거엔 정말 물리적으로 시간 압박이 심해 야근이 많았다. 최근에는 유연근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야근하게 만든다. 오히려 노동자는 ‘충분히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데도 일을 많이 하는 건 내 역량 탓’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기술 발전이 더 빨라져서 그만큼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압박감도 크다.

사람들은 개발자들이 대부분 억대 연봉인 줄 아는데 그러한 스타 개발자는 소수이고 빈부격차가 크다. 게다가 서비스는 개발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서비스를 유지·보수를 하는 개발자도 있는데 이런 노동은 제대로 조명받지 않는다. 또 노조가 많이 생기긴 했지만, 아직도 SI 업계에는 노조가 없다.

– 최근 네이버·카카오가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게시물 운영정책을 바꾸고 있다. 아직 개선되지 않은 부분은 뭐가 있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프사)을 캡처할 수 있는데, 이게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성범죄 등에 활용된다. 십대여성인권센터 IT지원단 활동을 할 때부터 이 기능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는데 아직도 반영되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카카오 웹툰 같은 서비스는 화면을 캡처할 수 없다. 그건 저작권 문제가 있으니까. 혐오표현 규제한다고 권리장전 만드는데 그런 것보다 그냥 기능을 개선해주면 안 되나.

– 인공지능과 관련해서는 워낙 이야기가 다양하게 나왔는데, 어떤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나?

쟁점이 너무 많아서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예전에 ‘이루다(인공지능 챗봇)’ 논란 때만 해도 인공지능 윤리는 개발사가 지켜야 하는 원칙으로만 논의됐다. 그런데 최근 흐름을 보면 사용자 윤리가 요구된다. 인공지능으로 여성의 누드사진을 만들어 웹하드에 올리는 유저들이 꽤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직업군별로 누드사진을 만들어내는 거다. 또한 인공지능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노동자를 해고하는 회사들도 있다. 이것도 이렇게 보면 사용자 윤리는 노동문제와도 연결되는 문제다.

또 무엇보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기후위기가 가속화된다는 게 업계 정설이다. 디지털 세상에는 실물이 없고 데이터만 있어서 마치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것처럼 느끼는데 환각 효과일 뿐이다. 서버를 돌리면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냉각수를 쓴다. 챗GPT에 질문을 하나 넣으면 생수 500㎖가 필요하다는 연구도 있고, 구글 데이터센터가 미국 오리건주 댈러스시에서 해당 지역 물 사용량의 4분의 1 이상을 쓴다는 보도도 있다. 범용 인공지능4이 나오기 전에 물을 다 써서 우리가 먼저 말라죽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럴 정도로 우리에게 인공지능이 유용한가? 다시 생각해야 한다.

– 또 다른 시급한 문제는 뭐가 있나?

‘데이터 라벨링’ 노동문제를 꼽고 싶다. 인공지능에 식별 가능한 데이터를 제공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 사람 사진을 입력하면 어디가 눈이고 입인지 확인해주는 식의 미세노동microlabor이다. ‘디지털 인형 눈알 붙이기’라고도 불리는데 그나마 인형 눈알 붙이는 게 낫다. 몇 개를 붙이면 얼마 받을지 예측이 되니까. 데이터 라벨링은 노동자가 받을 금액이 적합도 판정에 따라 나중에 산정된다. 게다가 실제 일하는 시간은 15분이라도 일감이 올 때까지 1시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요즘 국내에선 여성인력개발센터(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서 경력보유여성 등에게 이러한 노동을 교육한다. 이게 이후 경력에 무슨 도움을 주나. 공공영역에서 이러한 지원을 하는 건 문제다.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  ©박상환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 ©박상환

– 시민사회와 협업을 많이 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학교 다닐 때 총여학생회 활동을 했고, 함께 활동하던 친구들이 여성단체에 많이 갔다. 그래서 처음엔 친구들의 개인적 요청으로 단체 일을 했다. 그러다가 친구는 일을 그만뒀지만 단체에서 계속 저에게 연락을 주고. 또 제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보니 후원하는 단체가 많아졌는데, 단체 애로사항을 알게 되면 도와드리고…. 결국 이게 다 오지랖이다(웃음).

비영리단체가 대부분 열악하기 때문에 후원회원을 관리하는 등의 내부 시스템에는 공을 들일 수 없다. 그래서 저희가 후원회원 관리, 기부금 영수증 발급 등 시스템 관리를 도와 실질적인 업무를 단축하고 있다. 슬러기쉬 해커스의 소개 문구 중 하나는 ‘엑셀과 싸우는 시간을 줄여서 세상과 싸우자’이다.

그리고 과거 시민사회에서 IT는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였다. 그런데 N번방 사건(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등을 기점으로 ‘디지털이 문제의 현장’이라고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각종 성폭력·성착취가 디지털 공간에서 벌어지니 여성단체들이 기술자, 특히 여성 개발자들과 많이 협업하게 됐다. 그러면서 저도 단체들과 함께 많이 활동하게 됐다.

– 협업하면서 시민단체로부터 새로 알게 된 점도 많을 것 같고, 반대로 아쉽거나 고민스러운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디지털 성착취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모니터링을 해보니 어떤 인터넷 개인 방송에서 한 여성의 증명사진을 띄워놓고, 이 여성이 얼마나 성관계를 잘하는지 이야기하면서 신상정보를 팔고 있었다. SNS 계정은 얼마, 전화번호는 얼마, 집 주소는 얼마…. 정말 충격적이었는데 활동가들은 이런 게 늘 방송되고 있다고 하더라. 인류애도 많이 사라지고(웃음), 그때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다. ‘내가 개발한 서비스에서 성착취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라고.

반대로 고민스러운 점도 있는데, 제가 무료로 혹은 소정의 사례금만 받고 단체 개발 일을 해주면 장기적으로 생태계를 망가뜨린다고 주변에서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해당 단체는 그 정도의 비용밖에 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여전히 고민이다. 비영리단체와 개발자가 서로의 노동을 어떻게 존중하면서 연결될 수 있을지 단체들도 같이 고민해줬으면 좋겠다.

– 단체 일을 지원하는 것만 아니라 다른 개발자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활동하기도 한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길드나 동아리를 했으니까 커뮤니티 활동이 기본값인 것 같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 좋은 것은 한 사람에게 권한과 책임이 집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함께 의사결정하고 함께 책임지니까 위험 부담은 줄어들고 상상력은 더 넓어지는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소통하는 데 어려움도 있지만 우리가 더 단단해질 수 있다면 그런 비용은 지출하자는 마음이 있었다.

– 책에 보니 “예전에는 회사에 들킬까 두려웠는데 이제 사회와 법을 바꾸려 드는 캠페이너가 됐고 이름을 걸고 쓰고 싶은 글을 쓴다”는 구절이 있더라. 이렇게 마음이 달라진 계기는 무엇인가?

예전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갔다가 해고를 당했다. 인력감축 계획이 있었는데 육아휴직자를 골라 해고한 거다. 그래서 제가 이 사실을 알리고 다녔다. 국회의원실에 투서를 넣었는데 관심을 보였고, 저는 복직을 택하지 않았지만 다른 직원들은 복직이 됐다. 그렇게 퇴사하고 보니 회사가 생각보다 크게 위해를 가하지 못한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실명으로 활동하기로 했다. 재미있는 건 제가 글을 쓰든 책을 쓰든 사람들이 잘 모른다. 그 ‘조경숙’이 저라고 생각을 안 하더라. 이 업계 사람들이 생각보다 책을 잘 안 읽나 보다(웃음). 그래서 더 마음대로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 개발자이자 활동가인데 또 만화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개발자로 일하면서 삶이 팍팍하다고 여겼다. 이 안에서의 부당한 경험이 쌓이니까 어떻게든 풀어내고 싶었다. 그러다가 출산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집에 6개월 정도 있었는데 ‘내가 세상과 이렇게 단절될 수 있다니’ 싶어서 놀랐다. 자아를 잃어간다는 공포감이 커서 아이 잘 때 잠을 줄여가면서 열심히 글을 썼다. 공포와 불안 때문이니까 긍정적인 전환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해보니 글 쓰는 것 자체가 너무 좋더라. 만화평론, 기술평론 등 무슨 글이든 꾸준히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 작년에 스스로에게 하는 덕담이 ‘지나치게 공부하지 말자’였는데 잘 지켜졌나.

작년까지는 절정기였다. 밤새워 공부하고 프로젝트하고. 그런데 올해 초에 갑상선 암을 진단받고 4월에 수술을 받았다. 그 일을 계기로 필요 없는 것을 걷어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신기술 스터디에 대한 강박을 덜어낼 수 있었다.

–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나?

대학원 가서 디지털 성착취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에 관해 공부하고 싶다. 최근 네팔에서 한국의 범죄를 모방해 N번방과 비슷한 범죄가 발생했는데 거기선 소녀들에 대한 인신매매로 이어졌다. 책임감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성착취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기여하고 싶다.

1 System Intergration(시스템 통합)의 준말로 분산된 정보를 한눈에 보도록 통합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기업이다.
삼성SDS, LG CNS, SK C&C 등이 SI업계의 ‘빅3’로 불린다.
2 온라인 게임에서 여러 이용자가 형성하는 일종의 집단
3 소프트웨어 개발업계에서 마감 기한 등을 앞두고 수면, 영양 섭취, 기타 사회활동 등을 희생하면서 근무를 지속하는 것
4 특정 문제뿐 아니라 주어진 모든 상황에서 생각과 학습을 하고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을 컴퓨터로 구현하는 기술 또는 이에 대한 연구.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로도 불린다.


글 장슬기 미디어오늘 기자
사진 박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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