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참여를 적극적을 이끌어 내길

대중의 참여를 적극적을 이끌어 내길

얼마전 학교 밖을 나서다가, 버스를 타려는 한 장애인 아주머니의 애타는 노력과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차를 잡아 세우고는 손목이 잘리워 없는 팔로 휠체어를 접노라면 버스는 야속하게도 휙 지나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수색에 있는 기도원에 가야 한다는 아주머니를 버스에 태우며, ‘이런 몸으로 이런 추운 날 무슨 고생을 하려고 이리 나오셨나’ 탓하는 마음이 생기다가도 그것밖에 낙이 없겠다 싶고, 그래서 매정한 버스 기사를 탓하다가도 이분과 같은 아주머니께서 사회로부터 당하는 소외와 고통을 과연 누가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작은 일들에 대해서 진정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애정과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학에 들어와서 해방, 인간 평등, 자유와 같은 커다란 이야기를 과연 어떻게 구체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고 나름대로 실천하며 내가 하는 것들이 운동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돌이켜보면 과연 내가 이 사회의 어떠한 것들을 실제로 변화시켰는지 자신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선배들이 저에게 늘 강조하던 그리고 저 역시 본을 받으려던 ‘치열함’은 진정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부터 나온다는 소박한 진리를 체화시키기란 매우 힘들었던 것입니다. 진보와 변혁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러한 소박한 진리의 몸가짐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연대’ 역시 이 땅의 진보와 변혁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에 운동의 시작과 끝을 이 소박한 ‘치열함’으로 채워 나가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한 여러 모습 중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 사이에서 방황하며 놓치는 구체적 치열함의 결여라고 생각됩니다. 대중운동의 고양기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던 큰 이야기들의 직접성은 다시 운동의 재편과 축적기에 있어서 보다 구체적인 치열함을 갖출 때 예전의 직접성을 제대로 계승할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현재 사회의 변화와 진보는 국소적인 것에서의 고지 점령과 같은 형태가 끊임없이 반복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글 앞에 썼던 바로 소박한 감정으로부터 나왔던 그 마음을 이제 어떻게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길 것인가가 우리와 ‘참여연대’가 같이 모색하고 실천해야만 하는 과제라고 봅니다.

운동의 대의를 놓고 과제란 언제나 있었습니다.

과제의 확인이 어느 정도 공감을 이룬다면 그 뒤의 일은 끊임없는 상호 연대와 비판에 입각한 상승의 작용일 것입니다. 그런 상승 작용이 민중의 새세상을 앞당기는 소중한 거름이 되기를 빌며 저는 이제 앞으로 참여연대에게 구체적인 맞잡음의 손길을 자신 있게 내밀고자 합니다.

언제나 곳곳의 모순 속에서 대중의 참여와 투쟁을 이끌어 내는 ‘참여연대’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태식/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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