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인권 후진국이다”

– 유엔이 평가한 사회권 보장의 실태

유엔의 사회권 위원회는 지난 5월 제네바 회의에서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종합적 심의를 가진 바 있다. 이를 통해 위원회는 한국정부에 ‘노동법’ 개정 등을 내용으로 한 강력한 권고문을 발표했다. 그 전문을 발췌해 싣는다.

지난 5월19일 모일간지 1면에는 한국정부에 대한 유엔의 권고 기사가 실려 주목을 끌었다.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이하 사회권위원회)는, 한국정부가 사회적 인권에 대한 몇가지를 즉각 실현해줄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이 권고는, 우리 인권단체들이 지난해 말부터 함께 우리나라 사회적 인권에 관해 꾸준히 벌여온 활동의 결과로 나온 것이어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유엔의 사회권위원회는 지난 5월1일부터 19일까지 제네바에서 회의를 갖고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심의를 가진 바 있다(이 회의에 참여연대에서는 문진영 사회복지위원과 장소영 국제부장이 정식으로 참석했다). 회의에는 한국정부와 인권단체들이 각각 별도로 사회적 인권에 관한 종합적인 보고서를 제출하였고, 또 회의중에는 각기 나름대로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발표시간도 가졌다.

제네바 회의는 한국이 유엔 가입 후 처음 갖게 된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심사라는 점에서, 더 나아가 가장 권위있는 국제전문가 기구의 비정치적이고도 객관적인 심사 및 평가라는 것에 큰 의의를 갖고 잇다. 그리고 사회적 인권에 대한 한국정부와 시민단체들의 시각차가 종합적으로 드러난 자리이기도 했다. 결국 3주의 회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 사회권위원회의 공식평가는 권고문으로 발표되었다. 그날 발표된 권고문의 주요 내용과 특징,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살펴보자.

권고문의 주요 내용

– 한국의 사회적 발전과 정치적 발전은 불균형적이다.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려는 노력과 그 성과가 항상 적절한 수준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보호로 이어지지는 않은 점이 뚜렷이 나타난다… 한국의 최근 뿌리 깊은 사회적 편견에 직면하여 시민사회의 수립이라는 중대한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의 정치적 분단에 야기된 문제들 때문에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에 이유를 둔 광범위하고도 고착된 적대의식이 계속 지속되고 있다… 가용할 수 있는 경제적 재원을 염두에 둘 때 한국사회 주변계층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한국정부의 조치는 불충분하다.

– 한국정부 대표들이 모든 국내법이 국제사회권 규약상의 규정과 일치한다고 주장했으나, 위원회는 규약의 규정과 한국 국내법 사이의 적합성을 입증할 만한 아무런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다… 위원회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분야에서 본 규약이 모든 국내법에 우선하도록 한국정부가 법제도적 보장을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상기하고자 한다.

– 위원회는 노동조합 결성권과 관련 된 제약들이 사회권 규약(제8조)에 배치된다고 본다… 특히 교직 종사자 등에게 노동조합 결성권을 금지하는 것은 뚜렷한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파업권과 관련된 규제는 지나치게 제약적이어서 노동자들 행위의 합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 마치 당국만이 절대적인 재량권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교사들이 높이 존경받는 한국의 문화적 전통을 이해하지만, 위원회는 한국사회 중요한 부문의 종사자들이 자신이 선택한 노동조합에 속할 기본적 권리와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이를 옹호하고자 문화적 전통을 내세우는 것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근거라고 판단하다.

– 위원회는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된 여러 해고 소식과 조합원들의 평화로운 활동에 대한 경찰력 투입에 대해서 대단히 놀랍게 생각한다… 본 규약 및 국제적인 기준과 일관성 있도록 한국정부가 노조결성의 자유와, 파업권과 관련된 법과 규정을 즉각 개정할 것을 권고 한다. 특히, 교사와 공무원 및 기타 집단의 노조 결성권과 파업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가 시행되어야 한다.

– 위원회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현재 차지하는 지위가 매우 불만족스럽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모든 생활분야에서 여성들은 오래된 문화적 편견 등 다양한 요인에 기인하는 차별적인 관행으로부터 피해를 당하고 있다. 가정에서의 여성의 종속 상황은 정부 보고서에도 나타난 가정 내 폭력의 심각성이 증명한다. 교육분야에서 나타나는 남녀학생 비율의 격차는 우려스럽다.

– 위원회는 고용상의 성차별 행위와 작업장에서의 차별적인 관행, 남녀간 임금격차에 대해서 각별한 유감을 표시한다. 위원회는 또한 한국정부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기존의 법률과 정책을 실시하지 않는 점에 대해서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 위원회는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빈도의 산업재해가 발생하였고 이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데 실패해 왔다는 사실에 매우 놀랍게 생각한다. 10인 이하 사업장에 작업안전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특별히 우려할 만한 점이다. 한국에서 외국인에 대한 처우와 작업조건은 우려를 야기하고 있다… 모든 근로조건의 개선은 한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에게 평등하게 미쳐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고용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기존의 차별행위는 근절되어야 한다.

– 위원회는 한국 교육제도의 많은 요소들에 대해 우려를 갖고있다. 한국의 경제력을 감안할 때 무상교육이 중등 및 고등교육으로까지 확대되는 것이 적절하다. 또한 위원회는, 극도로 경쟁적인 입시요건 때문에 고등교육 기회의 공급이 부족해지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주목한다. 이러한 입시상황으로 인해… 사립교육기관들이 쉽게 학비를 올릴 수 있고 저소득층이 교육제도로부터 배제된다.

– 위원회는 한국의 주거상황에 우려를 갖고 있으며 특히 부적합한 주거상황, 무주택자의 숫자와 강제철거에 관한 관심을 표한다… 72만 명이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사후대책에 대한 아무런 통보 없이 퇴거당했으며, 1992년 2월 이후로 1만6,000명이 퇴거당했고, 1994년에 4,000가구의 철거가 있었다는 데에 주목한다. 위원회는 주거문제에 관한 위원회의 질문에 정부로부터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주거권에 관련된 의견도 듣지 못했다… 위원회는 한국정부가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을 세울 것과 특히 대책없는 철거를 중단할 것을 권고한다.

–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인권규정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법집행기관들이 그 규정들을 준수함과 아울러 사법절차에 적용될 수 있도록 규약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이 확대되어야 한다… 위원회는 정규교육의 전과정에서 인권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한다.

– 위원회는 한국정부가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사회 주변계층의 욕구를 충족할 만큼 복지제도를 신속하게 확대할 것을 촉구한다… 특히 극빈자와 무주택자, 정신적 육체적 질병의 희생자들에 대해서도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권고문의 내용은 편의상 일부 문안을 일상용어를 바꿔 번역했음).

노동권과 철거 문제 강하게 비판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권고는 유례없이 강경한 표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게 특징이다. 지난 한국의 사회적 인권에 대한 심사결과를 요약하자면, 인권과 관련된 법과 현실의 불일치, 심각하게 제약된 노동조합 결성과 파업의 자유 및 산업재해 등 산업안전의 문제,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와 정부의 고답적인 입장, 외국인 노동자를 위시한 사회적 약자층의 제도적 소외, 강제철거의 부당성 및 빈민복지와 주거권 등 5가지 분야를 우선적으로 지적, 비판하고 그 조속한 해결을 촉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노동권 실태와 전교조 불허, 비인간적인 철거문제, 여성차별등에 대해서는 매우 강한 어조로 비판을 제기했다. 아울러 사회권위원회는 한국이 지난 30여 년 동안 고도의 경제성장을 통해 사회적 인권을 증진시킬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하지만 한국사회가 불균형적으로 발전하면서 심지어 최소한의 국제규범 준수 노력이나 인권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다시 말해 경제수준 걸맞는 인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인권에 대한 전향적인 혁신이 필요

흔한 말로 “먹고 살아야지”라는 말이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노동할 수 있는 권리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먹고 산다는 말에는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서서 사람답게 산다는 의미도 있다. 건강하게 노동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곧 사회권이다. 성차별은 여성문제이고, 노동권은 노동자에게만 해당되고, 철거는 빈민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번 사회권위원회의 심의는 인권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하고 있다. 냉전의 울타리 속에서 분단의 상황과 국가안보를 이유로, 또 ‘선 성장 후 분배’라는 눈가림 이념으로 제한되었던 사회적 인권이 이제 온전히 우리 생활 속에서 보편적인 권리로 또 권리의식으로 복원해야 할 때다.

이제 5년 뒤에는 다시 제2차 심사가 유엔의 같은 기구에서 있게 된다. 민간 부문에서는 사회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시행함과 아울러 정부가 권고내용을 어떻게 이행하는지를 감시할 과제를 안고 있다. 세계화되는 경제와 세계화를 거부하는 인권상황,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두 열차가 사고를 낼 위험은 높다. 국제인권규약의 준수, 인권교육의 대폭 확대, 인권의 사법적 보호 강화, 인권보장을 위한 재정 지출 확대 등 인권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혁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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