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5년 09-10월 1995-09-01   1124

“냄비”가 아닌 “무쇠솥”의 철학

“냄비”가 아닌 “무쇠솥”의 철학


얼마 전 삼풍백화점 참사 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적용문제가 큰 논란이 됐다. 이어 요즘에는 우리 사회에 “공소시효”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법률상의 용어는 언제나 일반 국민들에게는 외우기 어렵고 골치아픈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공소시효”라는 용어는 “미필적 고의”와 함께 이제 그 예외가 돼버렸다. 법률용어가 이처럼 국민들 앞에 어지러이 난무하는 것은 그만큼 “법적 난세”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왕 내친김에 “공소시효”제도를 좀더 알아보자.

“공소시효”란 ‘검사가 일정한 기간 동안 공소를 제기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에 국가의 소추권을 소멸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따라서 공소시효 기간이 경과되면 검사가 기소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게 된다. 이러한 제도가 인정되는 이유로서 ‘시간의 경과에 의한 가벌성의 감소, 증거의 산일 이외에 장기간의 도망생활로 인하여 처벌받은 것과 같은 상태가 되며, 국가의 태만으로 인한 책임을 범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복합적 요소’를 열거할 수 있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현재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경우 15년의 경과로 공소시효가 완성된다고 규정한 것을 비롯하여 범죄의 경중에 따라 공소시효의 기간을 정하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중한 범죄라고 하더라도 15년만 숨어 지내면 처벌을 완전히 면할 수 있게 된다.

“5·18 광주 학살사건”에 대하여 검찰이 “공소권 없음” 결정을 한 뒤로 그 결정의 위법성 여부가 헌법재판소에서 심사중이다. 단순히 집단적인 학살사건이었다면 1980년 5월 18일부터 15년이 지난 1995년 5월 17일이면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그러나 국헌을 문란하게 함으로써 국가권력을 장악한 내란의 죄로 고발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들이기 때문에 내란죄가 국보위 설치 시기에 성립되는가 아니면 5공화국 취임시에 성립되는가에 따라 공소시효 완성 시기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그 어느 쪽이든 간에 현 정부가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한 이 나라 검찰이든 헌법재판소든 “광주학살”의 책임자들을 기소 또 기소 촉구를 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현 정부는 이 “쿠데타적 사건”들을 역사의 평가에 맡기는 것으로 오래 전에 “교통정리”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현행법 하에서 이들의 처벌은 “물 건너 간”것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결과는 원래의 공소시효 제도의 취지 그 자체에도 반하는 것이다. 비록 15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가벌성이 감소됐다거나, 증거가 산일됐다거나, 장기간의 도망생활로 처벌받은 것과 같은 상태가 됐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살자들은 “도망자”신분으로서가 아니라 “권력자”의 신분으로 떵떵거리며 살았다. 반대로 그 희생자들과 유족들은 지난 세월 동안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이 부당한 현실은 가벌성을 경감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가중시켜왔다. 검찰권은 그들의 손아귀 안에 있었으며 어느 검사도 이들을 기소할 “배짱”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월이 아무리 흐른다 한들 이들의 처벌이 부당하다고 할 사람은 별로 없다. 대다수 국민이 검찰의 불기소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검사들을 비롯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소시효 제도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절대 오해다. 공소시효는 인권의 보호와 법치주의에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많은 나라에서 살인을 비롯한 중죄의 경우에는 공소시효 없이 언제든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잔혹한 범죄를 일삼았던 나치 전범들에 대하여 영원히 안식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법률가들의 요구가 1960년대에 전 세계에 메아리쳤다.

1964년 6월 바르샤바에서 열린 국제법률가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의문이 채택됐다. ‘이번 회의에서 우리는 나치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는 통상적 범죄와는 그 법률적 성격을 완전히 달리하는 반인도적 범죄임을 지적하는 바다. 국제법의 원리는 그와 같은 범죄를 재판소에 언제라도 기소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인류가 영원히 나치의 독재와 잔혹함이 재발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국제법에 의하여 인정된 이 같은 인류의 합법적인 소망에 따라 그 범죄의 기소와 처벌은 특정국가의 국내법의 관할에 포괄적으로 속한다고 볼 것이 아니라 국제법에 근거하여 국가들에게 부과된 국제적이고도 보편적인 의무로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압력에 따라 유엔에서는 1968년 전범과 비인도적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시효를 없애는 조약을 만들었고, 전 세계의 수십 개 국가가 이를 비준했다. 자신의 영내로 숨어들어온 나치 전범들을 법정에 세우기 위하여 캐나다는 1989년, 오스트레일리아는 1990년, 영국은 1991년 각각 전범 처벌법을 새로이 제정했다. 바로 어제의 일이다. 프랑스에는 전범과 비인도적 범죄에 대하여 시효를 제거함으로써 독일 점령 하에서 나치에 부역한 “뚜비에르”를 지금도 재판하고 있다.

비엔나에서 “시몬 비센탈 다큐멘테이션 센터”라는 곳이 있다. 이 거대한 문서보관소에는 나치 장교 수만 명에 대한 파일이 관리되고 있다. 이들의 범죄행위와 전후 행적이 빠짐없이 기록되고 추적된다. 아이히만은 바로 이러한 추적 노력과 유태인 사설 체포대에 의해 체포, 송환되어 예루살렘에서 재판받고 처형된 경우다. 이 사람들은 거의 아흔 고개를 넘었다. 센터의 관리자들은 금세기의 종막과 더불어 파일을 닫을 것이라고 말했다. 센터를 창립한 시몬 비센탈은 어떤 책에서 ‘끝없는 추적이 좀 가혹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썼다. ‘복수가 아닌 단지 정의일 뿐’이라고.

이와 같이, 문제는 검찰이나 이 나라 정부가 아니다. 문제는 이들의 손목을 비틀어 공소장에 서명하게 하는 국민의 여론이며 행동이다. 전국에서 3,000명이 넘는 교수들이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 항의하며 특별검사제, 공소시효 연장을 요구하는 서명과 행동에 돌입했다. 대한변협도 검찰의 불기소 결정은 법률적으로 부당한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프랑스의 『렉스프레시옹』이라는 잡지는 1964년 한 해에 2,000여 건, 그로부터 6년간에 걸쳐 5,000여 건의 나치 부역자들을 고발하는 기사를 실었다. 주간지였던 이 잡지로서는 완전히 이들의 기사로 “도배질”을 한 셈이다. 이러한 집중 캠페인으로 말미암아 조국을 배신한 비열한 부역자들을 형사처벌에 직면하게 했을 뿐만이 아니라 프랑스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언론, 우리의 국민은 한 이슈에서 다른 이슈로 사흘이 멀다하고 쫓아다닌다. 그러다보니 꼭같은 사건이 또 터지고 만다.

이제 우리 사회에도 “냄비”가 아닌 “무쇠솥”에서 충분히 끓이고 달여 사회적 쟁점을 완전히 해소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는가?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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