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오늘(8/30) 2023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제시된 내년도 예산안은 “확장재정에서 탈피하여 건전재정으로 전면 전환”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민간 시장주도의 경제도약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재정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역대 최대 규모의 지출을 재구조화하기 위해 민간역량을 활용, 공공부문 효율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세제개편안과 예산안을 합쳐보면 시장을 뒷받침하는 재정의 역할이란 대기업을 위한 전방위적인 감세와 R&D 지원을 의미하고 건전재정으로의 전환이란 감세에 맞추어 복지지출 증가를 억제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여연대는 더욱 악화하는 경제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 재정 운용을 통한 공공지출 확대가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회안전망 강화와 약자에 초점을 맞춘 예산 확대를 위해 적극적 재정 지출 기조로의 전환과 이를 위한 국회의 역할을 촉구한다.
정부는 그간 빠르게 늘어난 총지출 증가율을 하향 안정화하겠다며 총 639.0조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이는 올해 본예산(607.7조 원) 대비 5.2% 늘어난 규모지만 추경(679.5조 원) 대비로는 6.0% 삭감된 것이다. 이는 2018년~2022년 본예산 총지출 증가율 평균인 8.7%의 60%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다. 한편 보건·복지·고용 부문 예산은 그보다도 작은 4.1% 증가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다. 고령화로 인한 복지지출의 자연 증가분을 고려하면 그 외 복지지출은 규모가 정체하거나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반적인 지출 통제, 복지의 정체와 위축은 윤석열 정부의 대대적인 부자 감세와 건전재정(재정수지 -3% 이내 관리) 기조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선진국이 경제 위기 시에 긴축에 나설수록 되레 경제가 악화하여 국가채무가 더욱 상승하는 ‘부채의 역설’이 작동함을 경험하였다. 기계적으로 ‘긴축정책’을 채택하여 지출을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감염병 재난 이외에도 저출생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사회적 위험 문제, 최근 경제위기 등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재정의 적극적 운용이 바람직하다.
보건복지 예산부터 따져보면, 보건복지 분야 예산을 올해 본예산 대비 11.8% 증가한 109.0조 원을 편성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분야에서 기준중위소득 증가율이 5.47%, 주거급여가 46%에서 47%로 1% 인상, 긴급복지지원제도 확대 등에 따른 예산이 증가했다. 그러나 6월 이후 물가상승률이 6%대인 것을 고려하면 결코 자랑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은 경제위기에 가장 취약한 계층임에도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기준중위 소득 인상률을 결정한 것은 사실상 이들의 어려움을 외면한 것이나 다름없다. 돌봄 서비스는 또 어떤가. 민간에 맡겨진 탓에 돌봄의 질이 매우 낮고, 돌봄노동자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여있다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공공성이 담보된 인프라 확충 예산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대신 민간의 자본을 활용한 예산안을 제시하고 있어 매우 우려된다. 보건의료 분야도 마찬가지다. 감염병 확산 상황에서 공공의료 강화의 필요성이 누누이 강조되었지만 관련 예산은 편성하지 않았고, 역으로 지역거점병원공공성강화 예산을 올해 대비 11.6%(197억 원) 삭감했다. 재난적 의료비에 찔끔 예산만 편성했을 뿐, 전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예산과 국고지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아 매우 실망스럽다. 사회보장제도가 강화되어야 하는 시점인데도, 소극적인 예산 편성으로 당면한 감염병 재난과 불평등 양극화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편, 지난 8월 18일 서울행정법원은 코로나19 소상공인 손실보상이 법 통과 기준일인 작년 7월 7일 이후 피해에 한정하여 이뤄지는 것에 대해 평등권에 어긋날 수 있어 관련법 규정의 위헌 여부를 다퉈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공언했던 대로 법 개정 이전 피해에 대한 손실보상을 통해 ‘온전한 손실보상’이라는 공약을 ‘온전히 실천’해야 함을 의미한다. 손실보상 소급적용을 위한 예산 반영이 필요한 이유다. 이번 예산안에 소상공인 채무조정 프로그램 운영 예산이 반영되어 있지만, 중요한 점은 방역정책 및 지원부재로 인한 채무증가의 책임이 정부에 있기 때문에 정부 역할이 보다 강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국방예산은 2022년 본 예산 대비 4.6% 증가한 57조 1,268억 원으로 책정하였다. 병 봉급 인상은 긍정적이지만 상비 병력 감축, 부대구조 개편, 장교 수 감축 계획 등은 제시되지 않아 전력운영비 예산의 방만하고 비효율적 지출이 우려된다. 또한 무기체계 획득을 위한 방위력개선비는 17조 179억 원으로 국방예산 중 30%에 달한다.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과 보복 응징 등을 위한 한국형 3축 체계 사업 관련 예산을 대폭 확대하였다. 북한에는 핵·미사일 포기를 요구하면서 남한은 군비 증강을 추진하는 모순적인 정책은 남북 사이의 신뢰 구축을 무너뜨리고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의 진전을 가로막는 원인 중 하나가 되어왔다. 남한의 군사력은 이미 북한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에 있으며, 북한 총GDP의 1.5배에 달하는 금액을 군사비로 지출하고 있다. 한정된 예산과 자원은 군비 증강이 아니라 사회안전망 강화 등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감세와 건전재정을 내년도 예산안의 핵심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낮은 조세 부담률-낮은 국가채무 비율-높은 복지 수준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재정의 트릴레마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기조 하에서의 내년도 예산안은 복지 축소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의 예산은 이명박 정부의 감세와 작은 정부의 후속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여전히 OECD 국가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전형적인 저부담-저복지 국가라는 점, 이명박 정부의 조세재정정책은 세수결손, 양극화 심화로 귀결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 상황에서의 감세와 건전재정은 현시점에서의 한국사회에 적합한 조세재정 기조라고 볼 수 없다. 지금은 적극적인 재정 확대로 재난상황에서 무너진 시민들의 삶을 회복시키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해야 할 시점이고 세제정책은 그에 부합하게 부자 감세가 아닌 누진 증세를 지향해야 할 때이다. 부자 감세, 낙수효과, 재정건전성에 매몰된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시민들을 책임지는 정부와 국회로 거듭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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