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3-03-17   731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론과 미국의 MD

미국 정보기관인 중앙정보국(CIA)과 국방정보국(DIA)이 북한이 이미 1-2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데 이어, 미국 본토 서해안까지 도달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갖고 있다고 주장해 미국 내에서 “북한위협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과장된” 것으로 미사일방어체제(MD) 조기 구축 및 국방비 증액을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미 정보기관의 주장은 미국 국민들로 하여금 북한이 마치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보유한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어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 내의 “북한위협론” 제기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지만, 핵문제가 첨예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대북강경책 및 국방비 증액의 강력한 근거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러한 미국 내 강경파의 근거없는 “북한위협론”이 한국의 일부 언론과 정치권을 통해 확대재생산되면서 정쟁화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언론과 정치인들의 주장은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판단보다는 정치적 판단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공연히 문제 해결에 필요한 소중한 힘과 지혜를 정쟁으로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 핵무기 이미 보유하고 있을까?

작년 10월 북한 핵파문이 불거진 이후, 북한이 이미 1-2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지만, 이는 “과학적 판단”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는지, 핵물질로 핵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기폭장치를 갖고 있는지, 기폭장치를 이용해 핵폭발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는지를 확인할 핵실험을 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한다.

핵물질과 관련해서는 북한이 94년 제네바 합의이전에 1-2개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왔고, 그 여부는 경수로 사업이 상당 부분 완료된 이후, 그러나 핵심부품이 인도되기 전에 핵사찰을 통해 규명하기로 되어 있다. 따라서 북한이 무기급 플루토늄을 보유했는지는 확실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여하튼 북한의 과거 핵활동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고, 안보적 관점에서 북한이 플루토늄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한 만큼, 북한이 무기급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플루토늄을 이용해 핵무기 제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폭장치와 핵실험이 필요하다. 기폭장치는 분리된 상태의 핵물질을 폭발가능상태(임계상태)로 압축 및 결합시키기 위한 폭약장치를 말하는데, 핵폭발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백만분의 1초이내에 핵물질이 폭발가능한 완벽한 구형으로 결합시킬 수 있도록 정밀하게 설계, 제조되어야 한다. 즉, 기술적으로 기폭장치를 개발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북한이 기폭장치를 자체적으로 개발했을 가능성을 극히 낮게 보고 있고, 미국 정부 역시 북한이 기폭장치 개발에 성공했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북한이 외부로부터 기폭장치를 밀수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만한 근거 역시 없는 상태이다. 참고로 북한과 파키스탄 사이의 핵기술 거래 의혹 분야는 우라늄 농축과 관련된 것으로써, 기폭장치와는 관계없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면 이는 외부에서 충분히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핵실험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고성능 컴퓨터와 충분한 기술만 뒷받침된다면 컴퓨터를 통한 가상 핵실험도 가능하다’며, 북한이 컴퓨터 핵실험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를 이용한 모의 핵실험은 기본적으로 실제 핵실험의 노하우가 축적되어야 하고, 미국의 경제제재로 486 컴퓨터도 수입할 수 없는 북한이 핵실험에 필요한 최첨단 고성능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따라서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은 전혀 검증되지 않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적용한 추측에 불과하다. 물론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이나 사용후 연료봉의 재처리를 통해 추출된 플루토늄을 이용해 핵무기를 제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은 “미래”의 문제이자 미국과 협상 “대상”이다. 미국이 마음을 고쳐먹고 협상에 나선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

“북한위협론”으로 북한의 핵보유 가능성과 함께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탄도미사일이다. 탄도미사일은 특히 핵무기,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운반체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에서 핵무기 못지 않게 주목하고 있는 비확산의 대상이기도 하다.

북한이 위협적인 수준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주장처럼 미국 본토에까지 다다를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ICBM을 만들기 위해서는 크게 3단계 로켓 기술, 탄두를 우주 궤도상에 올려놓을 수 있는 기술, 그리고 목표 지점에서 지구로 재진입시킬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인된 북한의 미사일 기술은 3단계 로켓 기술이다. 98년 8월 31일 시험발사된 대포동 1호는 북한이 3단계 로켓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시켰으나, 우주 궤도상에 소형 인공위성(미사일의 경우에는 탄두)을 올려놓는 데에 실패했다. 이는 북한이 ICBM 개발에 반드시 필요한 두 번째 기술조차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CIA는 클린턴 행정부 때까지는 북한이 2015년 정도에나 ICBM 보유에 성공할 것으로 전망했었다. 특히 핵탄두가 장착된 ICBM은 북한이 소형 핵탄두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력과 자원의 부족으로 상당 기간 힘들 것으로 평가한 바 있다. 그런데도 CIA가 최근 들어 납득할 만한 증거 제시도 없이 북한이 핵무기를 이미 보유했다고 주장한데 이어 ICBM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신빙성과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북한위협론, MD와 국방비 증액 명분 축적용일 가능성 커

현재 미국 의회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제출한 2004년도 예산안에 대한 심의가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군사비는 국방예산 3799억 달러, 에너지부의 핵무기 관련 예산 169억 달러 등 3991억 달러를 요청해 놓은 상태이다. 2003년보다 약 200억 달러가 늘어난 것으로, 여기에는 이라크 전쟁 비용 등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특히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조기 배치를 서두르고 있는 MD 예산안은 91억 달러로 2003년보다 16억 달러가 늘어났다. 참고로 미국의 MD 예산은 북한의 전체 군사비보다 3배 가량이 많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 강경파들이 “북한위협론”을 들고 나오는 시점이 행정부의 예산 책정과 의회의 예산 심의가 있는 연말연초에 집중되어왔다는 것이다. 이미 조지 테닛 CIA 국장은 1999년 말 ‘북한이 수년 안에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한 바 있고, 이에 힘입어 미국 강경파들은 미사일방어체제 관련 법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키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말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에 대응해 알래스카에 10기의 요격미사일을 2004년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최근 몇 차례의 실험에서도 입증되었듯이 기술적으로 거의 검증되지 않은 MD를 서둘러 배치하려 한다는 미국 내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과학자들 사이에서 정부가 실험평가를 조작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국방부가 실험결과를 비밀리에 부치기로 함으로써 민주주의 정신을 위협하고 있다는 강한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부시 행정부가 최우선적인 국가과제로 추진해온 MD는 향후 20-30년 간 적게는 2500억 달러가, 많게는 1조 달러가 소요되는 역사상 최대의 무기사업이다. 군수산업체 및 이와 결탁한 정치인, 연구자, 언론인, 주식 보유자 등으로서는 말 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이 점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오늘날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롯한 대외정책을 이해하는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부시 행정부는 전임 정부 때 협상 타결 일보직전까지 갔던 미사일 협상을 무시하고 북한과의 협상을 단절해버렸다. 핵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도 협상을 하자는 북한의 요구를 일축하고 국제적인 압박과 군사적인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 미사일 문제를 풀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가 이를 거부하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현상을 통해 핵, 미사일 문제가 풀릴 경우 MD 등 야심에 찬 군비증강 프로그램의 명분을 상실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즉,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핵, 미사일 그 자체보다는 “북한위협론”의 상실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 글은 지난 2월 14일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http://www.peacekorea.org) 내 평화자료실에 올라온 것으로,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정욱식 |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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