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572] 스페인 포데모스 수장의 정계 은퇴가 말하는 것

스페인 포데모스 수장의 정계 은퇴가 말하는 것

포퓰리즘은 민주적일 수 있는가?

 

한상원 충북대학교 교수

 

2014년 1월 16일 창당 이후 단기간 급성장하여 2020년에는 사회노동당과 함께 좌파연합 정부를 구성한 스페인 포데모스의 공동 창립자 중 한 사람이었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가 마드리드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5월 4일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정계 은퇴는 세계 정치를 뒤흔든 포퓰리즘 정치운동에 대한 한 시기가 마감되었음을 뜻하는 사건임이 분명해 보인다.

 

포데모스의 창립자들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와 (지금은 포데모스를 떠난) 이니고 에레혼은 대표적인 좌파 포퓰리스트들이었다. 이들은 라클라우와 무페의 포스트 맑스주의를 자신의 정치적 사상과 결합하였다. 에레혼과 무페가 나눈 대화는 2015년 책으로 출간되어 포데모스 필독서가 되었으며, 이글레시아스는 포데모스 창당 첫 해 라클라우와 무페의 포퓰리즘론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좌파 포퓰리즘에 기반을 둔 또 다른 유럽의 급진좌파 정당은 그리스의 시리자(Syriza)다. 시리자는 긴축재정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배경으로 2015년 1월 집권했다. 그러나 소위 트로이카, 즉 즉 유럽 위원회(EC), 국제 통화 기금(IMF), 유럽 중앙은행(ECB)의 경제각료들은 신생 그리스 좌파 정부가 긴축을 받아들여 항복하기를 강요했다. 이때 시리자 정부는 트로이카의 구제금융안을 수용할지 여부를 국민총투표에 부쳤다. 이 과감한 ‘포퓰리스트’ 전략은 즉각적인 움직임을 형성했다. 그리스뿐 아니라 전 유럽에 걸쳐 시위가 일어나, 그리스 국민들이 ‘아니오(oxi)’에 투표할 것을 호소하였다. 2015년 7월 5일 실시된 그리스의 국민투표에서는 투표자의 62퍼센트가 ‘아니오(oxi)’를 선택, 국제금융자본의 경제적 지배에 맞선 그리스의 ‘인민주권’을 선언하였다. 물론 시리자 정부는 현실의 압력 속에 유럽연합의 구제금융안을 수용해버리고 말았지만, 이 국민투표에서 그리스인들은 아래로부터의 인민적 의지가 주권의 원천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선언하였다.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이듬해인 2016년 6월 23일 영국에서 유사한 국민투표가 발생한다. 이번에도 주요 타겟은 유럽연합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와는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제기되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우파 포퓰리스트 세력이 주도했으며, 따라서 찬성표에 담긴 정서 속에는 긴축정책 등에 대한 불만이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혐오선동과 뒤섞여, 영국의 배타적 주권에 대한 강화 요구로 이어졌다. 인민주권에 대한 요구는 국가주권으로, 국경통제로 전화되었고, 이 때문에 투표 이후 무슬림을 비롯한 외국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급증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등장한 그리스와 영국의 국민투표 사례는 포퓰리즘 정치의 요구가 갖는 정반대의 성격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포퓰리즘 또는 ‘인민’이라는 기표가 갖는 일종의 이중성에 직면한다.

 

이와 유사한 사례를 독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1989년 11월 라이프치히의 ‘월요시위’에서 출발해 시민의 힘으로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달성된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동독 시민들이 사용한 구호는 ‘우리가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라는 것이었다. 이는 ‘인민’이라는 구호가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주체화에 사용된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훨씬 더 복잡한 사태에 직면한다. 오늘날 ‘우리가 인민이다!’라는 이 구호는 독일에서 우익 포퓰리즘 정치세력의 전유물이 되었다. 2014년 라이프치히 시위 25주년을 맞아 드레스덴에서 다시금 ‘월요시위’를 시작한 우익단체 페기다(PEGIDA)가 이 구호를 사용하고, 우익 포퓰리즘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역시 이 구호를 자신들의 선거구호로 채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인민’ 또는 ‘국민’이라는 기표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주체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보수적 민족주의와 타자 혐오에 젖어 있는 수동적인 군중을 지칭하기도 한다는 역설이 나타나는 셈이다.

 

이점에서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인민(국민)주권 원리를 가장 강력한 정서적 모멘텀으로 삼았던 2016년 촛불시위 이후, 한국에서는 ‘국민이 우선이다!’ ‘국민이 주권자다!’와 같은 형태의 유사-포퓰리즘적 구호들이 일상적인 공간에 깊숙이 자리잡게 되었다. 촛불시위에서 그러한 구호는 민주적 주권의 원리에 대한 천명으로서 시민의 저항정치 형성에 동원되었지만, 이후 동일한 이 구호는 이번에는 외국인 혐오에 동원되기도 했다. 2018년 500여 명의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로 입국해 난민신청을 하자 난민 반대 시위가 열리고, 2020년 코로나19(COVID-19) 바이러스 유행 직후 중국인 입국금지 청원에 70만 명이 동참했을 때 결정적으로 동원된 구호가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까지 열거한 현상들은 포퓰리즘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제기한다. 포퓰리즘은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인민주권’의 원리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강화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많은 이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형태라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 거꾸로,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와 동일시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 포퓰리즘 정치에 대한 강한 긍정 역시 존재한다. 인민 내지 데모스의 역량을 강조하는 정치이념이라는 점에서,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양자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때로 양자의 희미한 경계선 사이에서 포퓰리즘의 ‘민주주의적’ 요구는 그것이 ‘반민주주의’로 전화될 위험을 낳기도 한다. 트럼프 지지세력의 연방의회 습격, 유럽에서 네오 파시스트 세력의 성장이 이를 보여준다. 위기의 시대에, 좌파 포퓰리즘은 이러한 포퓰리즘의 ‘반민주화’를 이겨내고 더욱 민주적인 사회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포데모스 수장의 정계 은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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