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재편 합의 철회를 촉구하는 시민단체의 입장
한미동맹 재편, 이건 아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지난 3 년간 한미동맹은 중대한 변화를 보여 왔다. 2003년 5월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강화하기로 합의했고, 2004년에는 용산기지 이전 협정과 연합토지관리계획 개정안에 서명함에 따라, 용산기지와 2사단을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2005년 11월 한미정상회담에서는 한미동맹의 지역적 역할 강화를 골자로 하는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 공동선언’이 채택되었고, 2006년 1월 한미 간의 첫 전략대화에서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지난 3 년간의 변화가 과거 50 년의 변화를 능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시대적 흐름이나 국민적 요구에 배치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탈냉전과 남북한 화해협력에 걸맞게 성숙하고 평등한 한미동맹으로 나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한미동맹은 미국 패권주의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비용도 한국이 거의 전적으로 부담하고 있다. 한미동맹 재편은 한반도와 동북아에 심각한 안보우려를 야기하면서, 양극화 해소 등 국민들의 복지와 삶의 질 개선에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예산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더구나 대등하고 합리적인 한미동맹을 지향하겠다던 참여정부는 비밀주의와 부실로 얼룩진 대미 협상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정부는 한미동맹의 중대한 성격 전환에 대해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거나 충분히 설명한 바가 없다. 도리어 지난 3 년 동안 철저하게 비공개로 진행된 협상과정에서 협상 담당자들이 취했던 부적절한 정책판단과 협상자세 때문에, 엄청난 국익 손실이 일어났으며 동북아 협력안보의 기회도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기지 재배치, 그리고 환경 정화 책임 등 지난 3 년간 불거진 한미동맹 재편의 문제점 및 정부의 부실과 기만으로 점철된 협상 과정을 낱낱이 고발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우리는 한미 양국이 전략적 유연성과 기지 재배치를 전면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만일 한미 양국이 굴절된 한미동맹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민은 주한미군은 물론 한미동맹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점을 엄중 경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과 요구를 밝힌다.
1. 한미동맹 성격 변화 관련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북한의 남침 억제 및 한국 방어를 위해 존재했던 한미동맹은 오늘날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첫째, 북한의 남침 억제 및 억제 실패시 격퇴를 골자로 한 ‘방어형 동맹’이 북한에 대한 예방적ㆍ선제적 군사 개입을 포함한 ‘공격형 동맹’으로 바뀌고 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예방적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한 부시 행정부는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북한에 대해 군사 행동을 취하기 위해 자체적인 군사 변혁 및 한미ㆍ미일동맹 재편을 추진해왔다. 이는 2006년 2월 발표된 부시 행정부의 ‘4개년 국방정책재검토 보고서(QDR)’에서도 거듭 확인된 내용이다. 또한 한미동맹 재편은 한미간의 임무 분담도 포함하고 있는데, 대북 억제 및 방어에서 주도적 역할은 한국군이 맡고, 주한미군을 포함한 미군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및 확산 저지를 주된 임무로 삼고 있다. 우리는 한미동맹이 ‘대북 방어형 동맹’에서 ‘대북 공격형 동맹’으로 변질되고 있는 현실에 강한 우려를 표하며 ‘공격형 동맹’으로의 재편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둘째, ‘한국 방위 동맹’이 ‘지역동맹’으로 변질되고 있다. ‘한국 방위의 한국화’를 통해 대북 억제 및 방어의 주된 임무를 한국군에게 넘기고 있는 미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해, 중국이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로 부상하는 것을 예방ㆍ봉쇄하는 것을 비롯한 지역적 역할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중국이 미국과 대등해지려는 노력을 좌절시키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대중국 전략이 한미동맹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러한 지역동맹화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위배할 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군비경쟁과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동맹 재편의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한다.
셋째, 한미동맹에 ‘가치 동맹’ 개념을 부가해, 한미동맹의 지리적 범위를 전세계로 확대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한미동맹이 위협에의 대처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걸쳐 민주주의, 시장경제, 자유 및 인권이라는 공동의 가치를 증진하는 데에도 그 목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한미 양국은 테러리즘 및 WMD 확산 등을 이러한 가치를 위협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동맹국과의 공동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자유와 민주주의 확산을 위한 변형외교를 대외정책의 기조로 내세우면서 미국식 체제를 세계화하려는 2기 부시 행정부의 전략적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민주주의 확산론은 패권주의를 은폐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과 노무현 정부의 파병은 양국이 공유하고 있는 민주주의 확산론이 허위에 가득 찬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무릇 민주주의는 해당국 국민의 선택과 평화적인 국제환경을 통해 정착되고 확산되는 것이지, 군사적 수단을 통해 이뤄질 수 없다.
2.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관련
지난 1월 19일 한미 양국은 워싱턴에서 열린 첫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 그 동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할 경우,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와 세계 평화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해온 우리는 양국 정부의 이러한 합의를 다시 한번 규탄하며, 이를 조속히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이 군사 패권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추진해온 핵심적인 계획이다. 이는 이라크 침공이 보여주듯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외피를 쓰고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전쟁에 주한미군을 신속하게 차출ㆍ투입시키기 위한 것이다. 또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간주하여 중국을 군사적으로 봉쇄하고 유사시 주한미군의 개입을 가능케 하며, 북한에 대한 예방적ㆍ선제적 군사 행동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국가와 민족의 존망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한미동맹의 범위를 한반도 방어로 한정한 한미상호방위조약까지 무시한 조치이다.
이러한 우려가 제기되자, 노무현 대통령은 작년 3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며, “(이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원칙으로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과는 달리 노무현 정부는 느닷없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해주고 말았다. 국민들에게는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사안인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미국과 논의하겠다고 말해놓고는, 아무런 사전 설명이나 토론 없이 미국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다. ‘과연 우리가 민주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전략대화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구절을 포함시킨 것을 상당한 성과인양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과연 한국의 입장을 존중할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근본적으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한국의 불개입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의 영토ㆍ영공ㆍ영해를 군사 행동에 이용하는 순간, 한국은 어떠한 형태로든 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거듭 이번 합의를 전면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며, 현 세대는 물론 미래의 세대에게도 엄청난 부담과 위험을 강요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무효화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3. 주한미군 기지 이전과 오염된 반환기지 정화 책임 관련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필요에 따른 용산기지 이전을 “우리가 먼저 요구했다”며, 이전 비용을 전액 부담하기로 했다. 미국조차도 용산기지 이전이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GPR)의 일환이라고 설명하는데, 노무현 정부는 “우리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독소 조항을 개선해 비용 부담을 최소화했다며 자화자찬하기에 바빴다. 또한 2004년에는 이전 비용으로 30~40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가, 작년부터는 50~60억 달러라고 말을 바꿨다. 더구나 환경 치유 비용을 미국이 부담하기로 했다고 선전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확인되고 있다. ‘기타 비용’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평택 성토 비용 5~6억 달러를 비롯해 ‘기타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기지 이전 비용이 1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경고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개인이 이사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는 법인데, 하물며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 이후 최대 규모의 기지 이전을 추진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상식을 갖고 있는 정부라면, 미국이 주한미군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는 이유부터 따지고 이것이 한미동맹 및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처음부터 생각해봤어야 했다. 더구나 미국은 주한미군 재배치를 추진하면서, 그 목적이 ‘전략적 유연성’에 있다는 점을 협상 초기부터 밝혀왔다. 그런데 정부의 설명은 어떠했는가?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논의는 2005년 2월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인데, 2003년 초부터 기지 이전 협상을 하면서, 그 이유를 2 년이 지나서야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
최근 폭로된 청와대 문건에서도 확인된 것처럼, 한국이 무상으로 미군에게 기지를 제공하고 방위비를 분담하는 이유는 주한미군의 대북 억제 및 한국 방어 역할을 돕기 위한 것이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이 한국 밖으로 빠져나가 다른 임무를 수행하고 북한에 대한 선제적 군사 행동을 취할 목적으로 주한미군을 재편하고 있다면, 한국이 연간 20억 달러에 달하는 직간접적인 비용을 주한미군에 제공할 하등의 이유도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지는 주한미군 재배치의 비용을 거의 전액 부담하기로 했을 뿐만 아니라, 미군 재배치가 전략적 유연성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덮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여 왔다. 정부가 미군기지 이전 협상만 제대로 했어도, 양극화 비용은 상당 부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4. 비민주성과 폐쇄성으로 일관한 부실 협상 관련
우리는 또한 정부의 협상 과정 및 태도에 대해서도 강한 분노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주한미군 기지 이전이 미국의 신군사전략에 따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기지이전에 합의해줌으로써, 사실상 전략적 유연성의 토대를 닦아주고 말았다. 이전의 이유를 묻기 전에 이전부터 합의해주는 본말이 전도된 협상을 한 것이다.
또한 정부 스스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되고 국가 안보상의 중대한 사유가 된다는 것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반발을 의식해 상호방위조약의 변경이나 국회 동의를 거치지도 않았다.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가 법률이 아닌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상호방위조약의 변경이나 국회 동의가 불필요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미 외교장관의 전략대화 공동성명은 어떠한 구속력도 없다는 말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청와대는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부실 협상과 대통령에 대한 부실보고 및 기망 행위, 외교안보팀의 월권행위 등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고 말았다. 작년 4월 청와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철저한 검증을 하기보다 문제를 덮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고, 오히려 문제의 당사자들이 승진하게 되는 어이없는 결과를 내놓고 말았다.
주한미군 기지 재배치와 역할 변경 등 한미동맹 재편은 헌법 60조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국가안보상의 중대한 사유일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막대한 경제적, 안보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를 자처한 노무현 정부는 이 사안에 대해 어떠한 국민적 공론화나 합의를 시도하지 않은 채, 밀실협상으로 일관하고 말았다. 또한 협상 결과에 대해서도 그 정확한 내용을 알리지 않고, 마치 상당한 성과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미국을 상대로 국민적 요구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은 소홀히 한 채, 대국민 왜곡ㆍ과장 홍보에 열을 올린 것이다. 참여정부의 외교 상대는 미국이 아니라 국민이었다는 불만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더구나 청와대는 국민에 대한 기만과 대통령에 대한 기망 행위를 한 것으로 의혹 받고 있는 인사들은 대거 승진시킨 반면에, 부실한 한미동맹 협상을 비판하고 이를 바로잡고자 노력했던 인사는 보안규정 위반을 이유로 중징계를 내렸다. 이러한 잘못된 인사 결정은 부실한 협상을 은폐하기 위한 또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결국 부실 협상의 궁극적 책임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앞으로도 비민주성과 폐쇄성으로 일관한 부실 협상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을 것이며,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이종석 통일부 장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등 부실 협상의 주역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5. 우리의 요구
우리는 거듭 한미동맹이 미국 패권주의의 도구로 전락하고, 이러한 동맹 재편의 비용이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다. 아울러 이러한 방식으로 한미동맹이 계속 변질된다면 주한미군 주둔 및 한미동맹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밝혀두면서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 정부는 부실 협상 책임자들을 문책하고, 용산기지와 2사단 이전에 대한 합의 및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를 전면 재검토하며, 미국과의 합의에 앞서 국민적 합의부터 추진하라.
– 국회는 온갖 의혹과 부실로 가득한 한미동맹 관련 협상에 대해 국정조사나 청문회 개최를 통해 그 진실을 밝혀라.
– 정부는 국민적 공론화나 합의 없이 ‘미래 한미동맹 비전’을 채택하려는 움직임을 즉각 중단하라.
– 한미 양국 정부는 방위비 분담금 협정을 즉각 폐기하고, 토지의 무상 제공을 규정한 SOFA를 전면 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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