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치적 지방행정체제 개편 논의를 우려한다


– 주민 생활공동체 무시한 하향식 행정체제 개편은 반드시 실패
– 중립적․독립적 기구에서의 논의는 필수, 주민 결정권 보장되어야

지난 25일 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 위원장인 한나라당 허태열 의원이 여야 의원 62명과 함께 ‘지방행정체제 개편 특별법’(이하 특별법)을 발의했으며, 오늘 라디오방송을 통해서 오는 9~10월까지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 초안을 만들어 정기국회 내에 특별법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주민들의 생활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고, 선거구제 개편 등과 맞물려 있는 매우 정치적인 의제다. 또한 한번 바꾸면 되돌리기 어려운 비가역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때문에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행정체제 개편 시 오랜 기간 동안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동안 시민사회단체와 학계에서는 기한을 정해 놓고 추진되는 전면적인 지방행정체제 개편 논의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반대의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나 최근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이해당사자의 한 축인 정치권 주도로 논의가 흘러가고, 특히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할 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내용과 절차를 규정하는 법안을 발의를 한 것은 매우 신중치 못한 행동이었다고 판단한다.


허태열 의원이 발의한 ‘특별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대통령 소속의 지방행정체제 개편위원회를 설치하고, 1년 이내에 광역화의 목표, 기준, 절차 등을 포함한 기본계획 마련.
둘째, 이렇게 마련된 통합방안에 대해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주민투표 부의권 부여.
셋째, 통합 지방자치단체 내에서 징수한 도세의 70% 이상을 해당 통합 지방자치단체에게 교부하고, 지방교부세 산정 시 특례를 적용하는 등 통합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다양한 행․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
넷째, 통합 지방자치단체의 교육자치와 경찰자치 강화, 특별지방행정기관의 사무이양 그리고 읍·면·동에 법인격의 자치회를 두는 등 자치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등의 내용이다.


‘특별법’은 통합 지방자치단체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자치기능을 강화하는 등 겉모습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 소속의 지방행정체제 개편위원회에서 개편안을 마련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이 직접 주민투표에 부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매우 반자치적인 절차를 제시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제주도 주민투표에서도 확인되듯이 통합 대상이 되는 지역주민들의 이해관계와 의견이 저마다 다른 상황에서, 아래로부터의 충분한 의견수렴 절차 없이 이루어지는 하향식 행정체제 개편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현재 국회에는 허태열 의원을 비롯하여, 권경석, 우윤근, 이명수, 박기춘 의원 등의 특별법이 제출되어 있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광역 시․도를 폐지하고 기초 시․군․구를 통합하여 계층을 축소하는 그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의 지방행정체제 개편 논의가 민주성은 무시한 채 효율성 중심으로 가는 것에 대해 우리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초자치단체 규모는 외국과 비교할 때, 지나치게 크다. 이를 통합하고, 광역 시․도를 폐지하는 것은 ‘자치역량 강화’와 ‘주민참여 활성화’ 등 올바른 지방자치와 참여민주주의 실현이라는 큰 방향에 역행하는 것이다.

또한 획일적인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통해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역사적․문화적․정신적 공동체성의 파괴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 지역감정 해소와 건전한 지역주의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를 태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 주도의 논의는 오해와 갈등을 낳아 국론 분열의 소지가 크므로 중단되어야 한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있어서 지역주민 스스로의 결정권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며, 각계 전문가의 참여도 보장되어야 한다.

지방행정체제 개편 논의에 국한하지 말고, 지방자치 차원에서의 민주주의 진전을 위한 자치역량 강화와 분권개혁 과제 등이 별도의 중립적․독립적 기구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정부와 국회의 역할은 시․군․구 통합의 기준과 행정 및 재정적 인센티브 등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는 것에 국한되어야 한다. 구체적인 내용과 절차는 별도의 중립적인 기구에서 마련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통합의 여부와 시기는 전적으로 주민들이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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