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3 2023-03-01   3563

[복지칼럼]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무엇이 문제인가? 

이찬진 변호사

‘실손형 민간의료보험금 청구 간소화’ 이슈는 10여 년이 된 사회적 쟁점 사안이다. 국민의 정부 중반 의약 분업 이후 의료계의 집단 폐·파업과 의료계를 달래는 차원에서의 급격한 수가 인상에 따른 건강보험재정의 악화를 배경으로 하여 2001년 당시 국민의 정부는 실손형 의료보험을 도입하였다. 역대 정부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위하여 나름대로의 노력을 해왔으나, 한편으로 이에 대응한 의료계의 신기술 도입과 보험급여수가를 피하기 위한 다양한 비급여 확대가 숨바꼭질하듯 반복되어왔다. 지난 20여 년간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이 다소 완화되더라도 보험급여가 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 부담의 증가로 인하여 가계가 부담하는 의료비가 가파르게 증가하였고, 민간의료보험은 이러한 환경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하여 왔다. 그 결과 2022년 3월 현재 4000만 명이 본인부담금과 비급여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후 상환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상품(이하 ‘실손보험’)에 가입하였고, 2022년 기준으로 13조여 원의 실손보험금이 지급되고 있다. 그런데, 실손보험은 의료를 이용한 가입자(피보험자 포함, 이하 ‘가입자’ 또는 ‘피보험자’로 칭함)가 건강보험에서 지불하는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급여비용을 전부 부담한 후 해당 의료기관에서 진료내역 증빙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청구하여 보험금을 지급받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제3자 지불방식으로 운영되는 국민건강보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입자에게 불편하기 때문에 가입자들은 지난 10여 년간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가입자를 대신하여 보험금 지급에 필요한 청구 절차를 진행하여 보험금 지급이 간소화되도록 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오고 있다. 실손보험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하든 간에 실손보험 가입자가 전 국민의 80%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의 문제는 ‘가입자의 권익증진’이라는 차원에서 또 다른 중요한 가치인 ‘개인의 민감정보인 건강 정보 보호’라는 관점을 유지하면서 그 현실화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먼저, ‘개인의 건강정보 보호’의 문제를 살펴보자. 과거 문재인 정부는 개인정보보호법의 전면 개정을 통하여 민감정보인 국민건강보험의 진료 정보들이 ‘비식별 처리’라는 형식적 과정을 거쳐서 정보 주체의 동의도 없이 다양한 산업정보화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행정·공공정보’의 영역에서도 전자 정부법의 개정을 통하여 그 토대가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행정기관 및 그 밖에 공공기관에서 전자적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는 개인의 민감한 정보들이 개인의 요청만 있으면 정기적, 전자적으로 다른 행정기관 및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은행과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한 개인, 법인 또는 단체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 정부 들어서서 2023년 2월 27일 급기야 개인정보보호법 제35조의2 개인정보의 전송요구권 조항 신설과 정보처리자의 전송의무부과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의료법상 의료기관이 환자를 진료하면서 생성되는 정보는 대체로 진료기록 정보 및 이와 관련한 진단서, 처방전과 같은 의료기관이 직접 제공 및 생산하고 의료기관이 정보 주체가 되는 정보와 보험급여비용을 청구하면서 환자의 진료와 관련한 급여비용 심사·지급·대상 여부 확인·사후관리 및 요양급여의 적정성 평가·가감 지급 등에 필요한 정보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환자가 정보 주체가 되는 부분은 환자를 식별할 수 있는 성명, 주소, 주민등록번호와 진료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에 관한 정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이 의료기관이 생성하고 처리하는 정보에는 환자의 개인정보가 포함되어있는 복합적인 정보의 성격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개인식별 정보를 제외하고 의료법상 환자가 의료기관에게 열람 및 교부를 요구할 수 있는 자료인 진료기록과 진단서, 처방전 등은 그 자체로 정보 주체가 의료기관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전자정부법상의 제3자 전송요구권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실손보험금청구를 위한 본인부담금 및 비급여 등 진료비에 관한 증빙서류는 환자의 열람교부청구권이 의료법상 보장되는 것과 별개로, 그 자체로 개인정보이기때문에 제3자 전송요구권의 대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급여청구를 하여 급여심사를 한 결과 급여지급대상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에게 통보하여 급여를 지급하면서 공단이 정보처리 및 관리를 하는 피보험자에 대한 급여정보는 피보험자로부터 독립하여 요양급여비용 지급을 위하여 법률의 규정에 따라 의료기관에게서 제공받은 정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체로 피보험자의 개인정보로 행정기관 등이 법령에 따라 정보 처리한 전자정부법상의 ‘행정정보’이므로, 피보험자가 제3자 전송 요구를 하면 법령에 따라 자격을 갖춘 제3자에게 이를 제공할 의무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 다만, 동 자료에는 의료기관이 청구하는 보험급여 항목만 포함되므로, 실손보험금 청구의 대상인 비급여 내역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갖고 있는 건강보험 피보험자에 대한 급여정보에 관하여 제3자 전송요구권이 성립한다고 하여도 동 자료들은 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을 의료기관에 지급한 결과에 관한 정보이고, 동 정보는 직접적으로 실손보험금청구 대상인 비급여 정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간접적으로 총 급여비용과 공단이 지급한 급여의 차액을 본인부담금으로 분석할 수 있는 2차 자료에 불과하다. 만일, 실손보험사들이 표준약관을 통하여 가입자 및 피보험자들로 하여금 공단과 심평원이 갖고 있는 급여정보를 포괄적으로 보험사에게 전송하도록 약정하여 제3자 전송요구권을 행사한다면 이는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보험회사라는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가입자의 민감정보를 목적 외로 집적하는 것이 된다. 공단 및 심평원의 급여정보가 영리보험사인 실손보험사들에게 디지털 정보로 표준화, 전산화되어 집적된다면 실손보험금청구간소화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실손보험 피보험자들에 대한 건강정보를 통하여 개인별 심사가 가능하게 되고, 그 결과 미국의 민영의료보험에서 볼 수 있듯이, 보험계약의 갱신 거절, 보험료 차등 인상, 본인 부담 차등화, 특정 연령대에 대한 질병 보험배제 등의 결과가 초래될 수 있고, 건강 약자들은 결국 실손보험에서도 배제되는 심각한 불평등과 부당한 차별에 직면할 위험이 크다. 민감한 개인정보의 제3자 집적이 가능하도록 한 현행 전자정부법과 개인정보보호법 관계 규정은 정보기본권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여 위헌의 소지가 크다. 따라서, 공단 및 심평원의 급여정보에 대한 실손보험가입자들이나 건강보험 피보험자들의 급여정보 제3자 전송요구권은 국민건강보험법의 개정을 통하여서도 엄격하게 금지할 필요가 있다. 

실손보험금청구 간소화 관련 입법인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하여 살펴보면,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현재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와 관련하여 총 6개의 개정법률안이 계류 중이다. 다소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대체로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공공기관인 ‘심평원’에게 실손보험급여 청구에 필요한 (전자)서류 전송을 위한 전산시스템의구축·운영을 보험사에게 수탁받도록 하여 의료기관의 급여정보를 수탁받아 보험사에게 중계하는 역할과 제공받은 정보의 급여심사 등 심평원에게 부여된 국민건강보험법상의 업무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규정을 둬서 의료기관의 불만의 소지를 축소하는 방향을 제안하는 정도가 대체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접근은 4000만 명의 실손보험 피보험자에게 아무런 득이 없이, 실손보험금 지급 편의성만을 내세운 실손보험사의 이익을 위하여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인 심평원을 개인건강정보의 집적과 표준화를 위한 무료 창구로 이용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며, 궁극적으로 건강 약자들의 실손보험료 폭등, 급여 제한, 부담금 인상 등 차별적 취급만 조장하며, 결과적으로 실손보험 가입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만 초래하는 악법이 될 것이다. 따라서, 실손보험청구 간소화를 위해서 심평원을 이용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적어도 심평원이 국민건강보험법 제63조 제1항 및 제64조에 따른 요양급여비용의 심사와 비급여실태 조사 및 적정성 평가 업무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적정 보험료율과 최저 보험급여 기준을 산정할 수 있도록 하여 4000만 명의 실손보험가입자들의 권익을 공적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보장하여야 한다. 또한, 심평원이 의료기관으로부터 제공받는 급여비용청구상의 디지털 전산 정보에 의료기관이 실시한 임의비급여 항목도 포괄적으로 제공하도록 의무화하되, 보험사에게는 보험금 지급에 필요한 본인부담금 영수증과 진료비 계산서·영수증, 진료비 세부 산정 내역 중 비급여 항목 정보만 제공하여 민감한 건강정보인 가입자들의 건강보험급여 정보 일체가 표준화된 상태로 보험사에게 전자적으로 일괄 전송·집적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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