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특별사면,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사면에 전직 정보기관 공직자 대거 포함… 정파적 이익 위한 사면권 남용

장동엽 (참여연대 권력감시국 선임간사)

The devil is in the detail(악마는 세부적인 것에 있다).
독일의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남긴 ‘God is in the detail’, 즉 ‘세부사항이 더 중요하다’는 뜻의 격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거꾸로 보면, 진짜 문제들은 오히려 세부적인 것에 숨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결국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이명박을 비롯해 원세훈,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최경환… 국기문란과 국정농단을 서슴지 않았기에 재판 받았던 인사들이 대거 사면 복권됐다.

참여연대가 27일 즉각 낸 성명서에서 이번 사면의 성격을 규정했듯, “국민이 대통령에 위임한 사면권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악용한 것으로, 민주질서를 훼손한 범죄자를 사면함으로서 법치주의를 파괴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범국민적 통합”, “국력” 등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7일 직접 발표한 보도자료를 찬찬히 톺아 보면, 이번 특별사면이 그저 “폭넓은 국민통합”만을 의도한 것은 아닌 듯하다. 이번 사면의 진짜 문제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특별사면 주요 대상 공직자 명단에는 4명의 국정원장들을 비롯해 전 국정원과 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 사이버작전사령부 등 정보나 안보 관련 기관의 인사들이 다수 포함됐다.

국정원에 파견된 검사인 국정원 감찰실장을 맡아 국정원 댓글 공작 수사를 방해해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던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과 국정원 법률보좌관실 연구관으로 재직하면서 같은 범행을 저질러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던 이제영 전 대전고검 검사까지 포함하면, 사면대상 주요 공직자 66명 중 명단이 공개된 정보ㆍ안보 관련 인사들만 17명에 이른다.

▣ 2023년 신년 특별사면 대상 주요 공직자 중 국정원 · 기무사령부 등 정보 및 안보 관련 인사들

구분이름 (범행 당시 직책)
잔형 진행면제 및 복권이병효(전 국정원장), 이헌수(전 국정원 기조실장),
민병환(전 국정원 2차장), 배득식(전 기무사령관)
잔형 감형원세훈(전 국정원장)
형선고 실효 및 복권서천호(전 국정원 2차장), 최윤수(전 국정원 2차장)
형선고 복권김태효(전 대통령비서실 대외전력기획관, 현 국가안보실 1차장)
복권남재준(전 국정원장), 이병기(전 국정원장), 이종명(전 국정원 3차장),
민병주(전 국정원 단장), 유성옥(전 국정원 단장),
연제욱(전 사이버사령관), 옥도경(전 사이버사령관),
장호중(전 국정원 감찰실장), 이제영(국정원 법률보자관실 연구관)
원세훈, 남재준, 이병기, 이병효 등 전직 국정원장들을 비롯해 지난 10월 유죄가 확정된 김태효 현 국가안보실 1차장과 지난 12월 13일에 형이 확정된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까지도 특별사면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참여연대>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의 과거 수사 사건에 대한 자기 부정

윤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에게 사면안을 보고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명박을 비롯한 사면대상 주요 공직자들의 범죄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검찰 재직 때 직접 수사했거나 수사를 지휘하며 기소에 관여했던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특별사면은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이 이들을 수사해 기소한 검사로서 스스로 다룬 사건 자체를 부정하며 되돌리는 것이다.

국정원 댓글 공작 수사를 방해했던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과 이제영 전 대전고검 검사까지 사면대상에 포함시킨 것도 검찰 출신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의 ‘제 식구 봐주기’ 수준을 넘어서는 만행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 성격의 사면에 단골로 따라붙는 명분인 ‘국민 대통합’만 내세우려 했다면 이명박 등 몇몇 상징적 인사만 대상으로 했어도 충분했을 텐데, 이렇듯 전직 정보기관 공직자들을 대거 사면대상에 포함시킨 배경이 무엇인지 더욱 의문이 든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서 민주적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정을 농단한 핵심축에는 국정원 등 정보기관들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 때 국정원 조직을 동원해 대선 여론조작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징역 14년2개월형을 받았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 박근혜 정부 때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챙겨 징역 5년형이 확정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박근혜에게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전 국정원장 남재준(징역 5년), 이병기(징역 3년), 이병호(징역 3년6개월), 국정원을 통해 공직자들을 불법 사찰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징역 1년), 보수단체만 골라 지원하라고 지시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징역 1년)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징역 10개월ㆍ집행유예 2년) 모두 혐의 자체가 국정원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은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성향으로 분류된 문화예술인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해 지난 12월 16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의 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불과 11일 만에 사면 복권됐다.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3월부터 2013년 초까지 기무사령부 안에 공작조직인 ‘스파르타’를 운영하면서 온라인에 정치 관련 글 2만여 건을 게시토록 지시한 혐의로 지난 12월 13일에야 징역 3년형이 확정됐다. 그런데 형이 확정된지 2주 만에 사면 복권됐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2012년 이명박 정부 대외전략기획관에서 물러나면서 군사기밀을 담고 있는 국정원과 기무사령부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 10월에 벌금 300만 원형이 확정됐는데, 불과 두 달 만에 사면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국기문란과 국정농단 범죄세력의 복원…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파괴

국정원, 방첩사령부, 사이버사령부 등 정보기관 전직 공직자들에 대한 대거 사면은 국정원 등 정보기관들의 국기문란과 국정농단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쥐어주는 것으로만 볼 수 없다. 조직적 범죄세력의 복원이나 다름없다. 이는 정보기관들에 재직 중인 공직자들을 향해 ‘국가가 아닌 특정 정권에 충성하면 끝까지 책임져 준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지는 것으로도 읽힌다.

사면 복권된 인사들이 정보기관들로 복귀하거나 안팎에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윤석열 정권의 정보 및 안보라인으로 가동될 여지도 충분하다. 일례로 세월호 가족들에 대한 사찰을 지시한 행위로 지난 2021년 10월에 유죄가 확정됐던 김병철 전 기무사령부 3처장은 올해 6월에 방첩사령부의 전신인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안에 만들어진 ‘부대 혁신 TF’에서 몰래 자문을 해온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된 바 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정보기관 개혁은 이미 퇴행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때 외교 안보 요직을 두루 거치며 논란을 빚었던 김규현 전 외교안보수석을 국정원장에 앉혔다. 문재인 정부에서 기무사령부에서 간판을 바꿔 단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국군방첩사령부’로 다시 바꿨다. 동시에 국정원 등 정보기관들은 보안업무규정, 방첩업무규정 등 관련 법령들을 속속 개정하면서 직무 범위를 넓히고 권한을 강화하고 있다. 그래서 윤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정파적 이익을 위해 사면권을 남용해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민주적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국민이 대통령에 위임한 사면권은 ‘국민통합’과 ‘경제 활성화’는커녕 내 편인 인사들과 재벌들의 면죄부로 전락하고 말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과 신년을 맞아 단행한 두 차례 특별사면을 통해 법치주의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제왕적 권력 행사의 상징이 된 대통령 사면권, 이제는 반드시 제한해야 한다. 사면법의 개정이 절실하다. 국회가 응답할 때다.

참고 : 참여연대의 [입법과제] 대통령 사면권 남용 방지 위한 「사면법」 개정

참여연대 12/27 발표 성명 이명박 사면은 법치주의 파괴다

오마이뉴스에도 게재한 칼럼으로 일부 고쳐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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