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기타(pd) 2010-04-12   1375

[기고]한국 시민사회의 평화만들기(2010평화백서 서평)

  

<다음은 프레시안 ‘화제의 책’ 에 실린 2010년 평화백서” 서평입니다.>







구 갑 우 (북한대학원대학교)



< 2010 평화백서> (이하, <평화백서>)가 출간되었다. ‘국가’의 백서-<외교백서>, <국방백서>, <통일백서>-와 어깨를 같이 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백서발간이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2008 평화백서>가 ‘평화국가 만들기’라는 적극적 담론을 생산했다면, <2010 평화백서>는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전반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비판은 물론 시민사회가 만들어 가고 있는 평화와 함께 배치되어 있다. 즉 <2010 평화백서>는, 국제적 수준에서 국가의 역할에만 주목하는 주류의 사고와 달리, 국제적, 국내적, 개인적 수준에서 “시민의 눈으로 평화를 바라보”려 한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본다.

<2010 평화백서>가 제시하는 한반도 평화의 길이다. “기로에 선 남북관계”의 일부다.


핵심은 한반도의 냉전 구조를 해체해야만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을 둘러싼 적대 관계가 청산되지 않고, 한반도 평화 체제가 형성되지 않으면,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에 의한 억지 필요성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백서>는 이명박정부가 이 길을 가려 하지 않고 있다고 진단한다. “외교백서 톺아보기 1”이 지적하는 것처럼, <외교백서>에는 “한반도 혹은 동북아 평화 체제에 대한 명시적 언급은 없다.” 북한을 적으로 설정하지 않는 제도화인 한반도 평화체제가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암묵적으로 북한을 적으로 상정하고 결성된 냉전시대의 유산인 한미동맹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한미동맹”의 주장이다.


한국 내 보수 및 친미 세력들의 국내 정치적 필요와 이미 관성이 되어 버린 한미동맹의 종속성은 과거로의 회를 한미 관계의 복원과 동일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동맹 형성의 존재 이유였던 권력 균형이나 위협이 동맹의 존재 이유를 건드릴만큼 크게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의 일부가 된 한미동맹의 수호라는 대명제는 한국 내 보수 및 친미 세력들의 권력 유지에 여전히 매우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기에, 이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동맹이 수단이 아니라 목표가 되는 ‘신화만들기’ 작업은, 한미 FTA를 “합목적적인 정책 수단이 아니라 마치 그 자체로 목표이자 경쟁력의 원천인 것처럼 주객이 전도”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판 중국위협론’은, 이 신화만들기를 정당화하는 담론일 것이다. 한미동맹이라는 정치적 자산은 경제적 이익과 연관되어 있다. “국방백서 톺아보기”에서는 이명박정부의 국방개혁에 반영된 이익의 실체를 지적한다.


국방개혁기본계획의 백미는 역시 재래식 지상전 능력을 대폭 강화한다는 것이다. …… 합참의 한 장군은 이번 계획에서 “국내 방위산업체 물량 유지”도 중요한 고려 항목이었다고 필자에게 말한 바 있다. 그 결과 삼성(자주포), 한화(다련장 포탄), 두산, 삼성, 로템(장갑차), 현대로템(전차) 등 굴지의 재벌 방산 기업에 굵직한 것만 따져 보아도 약50조 원이 넘게 토입된다. 반면 기술력 위주의 중소 방위산업 중견 기업들은 현 정부 들어와서 ‘위기’라고 말한다. ‘친재벌’ 성향의 이명박 정부와 잘 어울리는 국방개혁안이다.


이 정책기조 하에서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남북관계에서 만들었던 과거가 언급되지 않는 것이 놀랍지는 않다. “통일백서 톺아보기”는, 2009년 3월 2일 통일부 창설 40주년 기념식에서 벌어진 사건을 기술하고 있다.


통일부 기획조정실장이 보고한 ‘연혁 보고’가 이상했다. 2000년 6월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 2007년 10월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2007년 말까지 21차례나 지속되며 남북관계의 총괄 조정 창구 노릇을 해 온 남북장관급회담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더구나 장관급회담의 남쪽 수석대표는 한 차례의 예외도 없이 모두 통일부 장관이 맡았다. 통일 부 창설 40주년 기념식 연혁 보고에서 현재의 남북관계를 주조하는 데 핵심적으로 기여한 고위 회의체였던 남북장관급회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통일부의 자기 부정에 다름 아니다.


반면 노태우정부에서 국무총리가 수석대표로 참석한 남북고위급회담은 상세하게 다루어졌다고 한다. 통일부의 이 작업은 현재를 정당화하고 나름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과거를 선택적으로 불러오는 역사 다시쓰기다.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이 한국 시민사회의 남북교류사업을 제약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사회 문화 교류 가운데,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과 ‘통일쌀보내기운동’이 그나마 ‘생존’한 사업이다. “남북 민간 교류 운동”에는 이 새로운 국면에서 느끼는 고민이 담겨 있다.


대북 제재 국면을 유지하려는 이명박 정부는 민간 교류를 통제하면서 시민운동 전반에 대한 보수적 재편성을 시도하고 있고, 남북 대립 국면 속에서 북한은 남한 민간 통일 운동을 자신들의 대전략 추진을 위한 전술 단위 정도로 보는 기존의 전통주의적 태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민간 통일 운동은 내외에서 어려움에 마주치고 있는 셈이다.


남북교류사업을 지지하는 한국 시민사회운동은, 이명박정부는 물론 시민사회가 없는 북한정부와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북한정부와 한국 시민사회의 갈등은, 2008년 6.15 남북공동행사에서 표출된 바 있다. 금강산에서 열린 이 행사에서 남측 대표단의 일부가 퇴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것은 남측의 내정 문제라 할 수 있는 ‘촛불 시위’와 관련된 북측의 연대 의사 표명 논란 때문이었다. 여기에 북측은 김정일 위원장 관련 문제와 선군 정치 문제까지 자신들의 연설에 포함시킴으로써 더욱 복잡한 논란이 전개되었는데, 이 문제는 남과 북이 각기 자기 체제와 간련된 사항을 어느 정도까지 표현할 수 있는지, 그리고 상대의 내정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문제를 둘러싼 남북 사이의 대표적인 논란의 하나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의 지각변동을 예상하면서 한국 시민사회의 “성찰과 전망 세우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으로 “남북 민간 교류 운동”은 끝을 맺고 있지만, <2010 평화백서>에 한국 진보적 시민사회의 대안과 그 대안의 실현을 위한 방법이 독립적 글로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를 달성하는 것이 대원칙이지만, 한국에서 이 원칙과 이 원칙에 입각한 남북교류사업을 부정하는 정부가 들어서자 시민사회운동은 무력해진 상황에 대한 반성을 들을 수는 없다. 정권교체 탓으로만 돌린다면, 시민사회운동은 정권의 부분집합일 뿐이다. 보수정부인 이명박정부가 김대중․노무현정부와 달리 국방비를 상대적으로 덜 증액하고 재래식 군사력의 축소를 북한에 제안할 때, 한국 시민사회는 혼선을 노정했다. 한국정치가 한반도 평화의 길을 둘러싼 쟁투에서 영향력 있는 변수로 등장한 시대에,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존재이유를 묻는 성찰과 전망 세우기가 절실하다.

그럼에도 평화가 곧 길이라 생각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행동들은 그 대안 자체일 수 있다. 설계도가 제시하는 방향이 아니라 비평화와 맞서 가는 길이 곧 설계도다. 그것이 운동이다. 평화의 섬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만들려는 정부의 정책에 맞섰지만 임박한 실패 앞에서, “믿을 수 없이 예민한, 평화”는 묻는다.


‘힘이 없는 평화가 무엇을 지킬 수 있나?’ 하는 군사기지 건설의 논리가 우리의 서투른 평화의 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 ‘평화는 평화가 지킨다’고 하는 우리의 주장이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평화는 애초 현실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좌절해야 하는 결과 앞에서 깨진 사람들과 함께하는 평화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 안에 어떤 희망을 담을 수 있을까? 그 방식이란 무엇일까? 7년여 끌어온 제주 해군기지 문제가 비로소 당면하고 있는 문제이다.


평화운동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꾸는 일이라는 자각이다. 갈등이 부재한 상태를 만들려는 운동이 아니라 갈등을 창조적으로 전환하는 운동이 평화운동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주민들의 ‘이익’갈등이 가족의 구성원들이 서로 욕을 할 정도로 악화되는 모습 속에서, 제주 해군기지가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전략임을 알아채고 그 전략이 가져올 비평화를 막고자 하는 노력과 더불어 이해당사자들의 갈등을 전환시킬 수 있어야 하는 평화운동의 과제를 생각하게 한다. “안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고방식과 싸”우면서 동시에 평화 감수성을 만들어 가야 한다.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의 활동은 이 지점에 있다.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의 활동은 우리 사회가 전쟁과 폭력, 차별과 배제에서 평화와 상호 이해, 사회적 정의와 인권 보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평화운동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한 가치를 실현하는 데에는 지식, 정보, 기술도 중요하지만, ‘몸’으로서 평화를 훈련하는 것이 보다 근원적이지 않을까. 머리만 변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몸이 변하기 위해서는 ‘감수성’에 가닿는 충격이 필요하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하는 그 순간이 평화다. 평화 감수성이 소통을 위한 작업이 있다. 


1931년 평양의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간 고무 공장 여성 노동자 강주룡, 굴뚝과 크레인에 올랐던 노동자들과 용산의 망루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속에 귀머거리 땅에 절망해 고독 속에 하늘을 향해 오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작품에 담았다. 그들을 제외한 우리 모두가 각자의 집에서 잠을 청하던 시간, 종이로 접은 크레인과 굴뚝의 ‘연약한 높이’ 위에서 홀로 하늘의 달을 바라보았을 그들이 심정을 드러내고(강동형, <우리 승리하리라>), 불타 버린 용산의 망루가 검은 괴물처럼 숙연했던(노순택, <그날의 남일당>) 작품들은 사건으로서의 망루가 정서적 유대로서의 망루로 옮아 가는 순간을 잡아냈다.


이 감수성의 정치의식이 빚은 결론은, “평화는 결국 ‘지금 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이겠다”, 이다. “평화 감수성을 연습하”는 평화운동가는, “평화가 현실이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평화를 가르쳐라”라고 말한다. “평화는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는 사고에 뿌리내리고 키워지지 않는 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0 평화백서>에서 타자와의 공감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에서 공동의 기억을 찾으려는 노력, “새해에는 한 명만 덜 죽게 해 주시고, 한 집만 덜 폭격 맞게 해 주시고, 한 줌만 덜 피 흘리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평화백서>는 한국의 평화운동이 지속되는 한 ‘계속’ 출간될 것이다. 서평을 쓰면서 다음의 <평화백서>에 담겨야 할 내용을 생각했다.

첫째, 시민사회와 국가의 관계다. 국가에  맞서면서 때론 국가에 동의하면서, 국가와 시민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지속가능한 자율적 사회운동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를 물어야 한다. 평화국가․시민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깊은 고민이다. 자족적 사회운동을 넘어서서,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 참여국이 “전 세계 군사비”의 “70퍼센트”를 소비하고 있는 상황을 바꾸어낼 수 있는, “북핵 폐기는 물론 한국의 핵우산 정책도 함께 폐기”되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비핵지대화’를 실현할 수 있는, 경로를 현실 속에서 발견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둘째, 사회운동은 시민의 삶에서 비롯한다. 제주 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이 소개되고 있기는 하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시민의 삶을 위협하는 정치경제적 억압과 불평등의 해소를 평화라고 생각하는 ‘적극적 평화’의 개념을 평화운동과 <평화백서> 안으로 들여와야 한다. 국제적 수준의 평화가 국내적, 개인적 수준의 평화와 연관되어 있고, 그 평화들이 함께 가지 않는다면 한 수준의 평화가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은, 시민사회 평화운동 고유의 몫이다.

 셋째, 평화운동가의 삶이 평화의 삶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평화운동에 소통과 쉼을”이 토로하는 것처럼, “전쟁과 폭력, 사회적 불평등과 부당함, 소외와 차별에 끊임없이 예민하게 문제 제기하던 활동가들이지만, 정작 그들은 평소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보살피는 것에는 너무나 인색해 스스로는 전혀 평화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척박한 업무 환경과 일 더미 속에서 평화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만들어 가”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다. 평화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 속에서 답이 찾아져야 한다. 다음의 <평화백서>에서 평화의 삶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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