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13-05-13   2581

[기고] 인간 본래적 존재로부터 나오는 남북 상생론

극한 대립, 분단의 시대에 남과 북이 정전체제를 넘어

서로 마주하여 대화할 수 있는평화체제구축운동을 펼쳐가기 위한 철학적 기초

 

인간 본래적 존재(본성)로부터 나오는 남북 상생(相生)론

김영근 신부 (예수회,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한반도 분단 60년, 세계적인 냉전시대는 끝났지만 여전히 냉전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기 한반도에 어느 누구도 특별한 허락이 없으면 넘나들 수 없는 분단선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변함없는 적대정책을 한국은 재고 없이 받아들여 북한의 붕괴만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기본방향이라고 여기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은 더욱더 극단적인 대결국면으로 가고 있다. 극한 대립, 분단의 시대에 남과 북이 정전체제를 넘어 서로 마주하여 대화할 수 있는 평화체제구축운동(남북 공생을 넘어 상생으로)을 펼쳐가기 위해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의 근거는 무엇인가?

한 사회를 변혁시키는 것은 위에서의 명령이나 제도· 법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변혁을 이루어낼 때 근원적으로 가능한 것이다. 남과 북의 문제가 바로 그러하다. 남북문제에 있어서 자기변혁이라는 것은 우선적으로 남과 북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 자신이 과연 어떠한 존재인가, 도대체 내가, 이 사람이 본래 어떤 존재인지를 자각하는 것인데 이를 통하여 남과 북의 평화체제구축이라는 사회변혁의 단초가 열릴 것이다.

 

1. 동서고금의 전통이 이야기하고 모든 종교가 인정하듯이 사람은 누구에게나‘얼’이 깃들어 있다. 이‘얼’은 신(神)의 손길이 깃든 우리의 참 자신(眞我)이다. 이 무형의 참 자신(眞我)은 본래 온 우주를 품어 안을 만큼 크고 넓으며 만물을 하나의 큰 몸으로 여긴다. 사랑과 자비, 생명과 평화 등의 속성을 갖고 있어서 동양 문화권에서는 이를‘사람다울 인(仁)’으로 보았다. 이런 속성의‘얼’은 마치 태양의 그것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태양은 그 자신으로 존재하면서 빛으로 모든 것을 덥혀주어 생기를 준다. 지상의 특정한 존재들에게만 빛을 주거나 거둬들이지 않는다. 나(我)와 너(他)를 가르지 않고 언제 어느 방향으로든 빛을 보내 딱 그만큼의 생명을 키운다. 이러한 것이 사람의‘얼’이며‘얼’의 활동이자 행위이다.

2. 하여 사람은 다른 사물에서처럼 이야기될 수 없다. 즉 사람은‘우주만물과의 관계’를 통해서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핵, 그 본래적 자신의 위치와 존재가치를 발견한다. 마르틴 부버는 근원어를 <나-당신>과 <나-그것>으로서 제시함으로써‘인간의 본래적 존재상황’을 언제나 상대방을 전제하고 있는‘관계’로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나’없이는, ‘내’가 전제 되지 않고는 <당신>이나 <그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말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나-당신>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화자 자신이 참사람(眞我)으로서 <당신>을 마주하는 것이 되고, <나-그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화자가 본래 참사람이지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사악한 자기존재로서 <그것>을 마주하는 것이다. 결국 그에게 있어서 참사람(眞我)은 오직 상대를 <당신>으로 마주하며 부르는, 서로 ‘인연 맺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본래 참사람(眞我)이지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사악한 자기존재로 타자와 관계하는가? 그것은 불교에서 가르치고 있듯이 4상(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사로운 욕망에 휘둘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김성동이 자신의 글 「부버의 인격론」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상대가 <당신>으로 보이지 않고 <그것>, 대상으로 보이기 때문에 상대를 분석적으로 이해한다. 즉 상대를 어떤 성질의 더미로 인식하고 자기의 기준에 따라 그 더미 중에서 어떤 성질을 끄집어내어 그 성질에 대한 판단을 그 전체에 대한 판단으로 삼는 것이다(예로써, 가난한 이들을 돕는다든지 대변하거나 혹은 정치적으로 억눌려 있는 이를 두둔하는 사람은 좌편향-빨갱이라는 등 편 가르기를 한다). 이들의 관계 맺는 방식은 오직‘자기중심적’이며‘이해득실관계’뿐이다. 상대는 내가 살기위해 철저히 이용할 <그것>이거나, 없어져야할 <그것>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자기존재’들이 모여 사회를 이룬 대표적인 것이 그 악명 높은 과거의“나치주의사회”인 것이다.

참사람(眞我)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 모든 사사로운 욕망, ‘자기’가 끊어진 자리, 지금여기에 온전한(wholeness) 사람으로 현존(現存)하는 것이다. 그때 사람은 마주한 어떤 상대를, 심지어 나를 거슬러 있는 ‘원수’요‘악귀’적 모습일지라도, 그 존재자체 안에 사랑, 자비, 신성을 가득히 담고 있어서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존재’로 인식하며, 그 상대와 관련된 ‘다른 모든 것들도 그의 빛 가운에 살고 있는 어떤 존재’로 알아차린다. 그리하여 그 모두를 책임지고 살피고 존중하고 사랑하며 보듬고 품으며, 그에게 나누어 내어준다. 그럼으로써 내안의 신성, 존재의 빛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발하는 것이며 또한‘당신’의 신성, 존재의 빛을 충분히 만나는‘위대한 일(신적인 일)’을 한다. ‘살아있음’은 어떤 개체들의 공존(共存)이 아니고 서로에게 유기적으로 풍부한 생명을 주는 협동적‘살아있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래 삼라만상의 온 존재가 생생히 살아있도록, 생명을 더욱 얻어 풍부해지도록 깊은 관계 속에서 협력하는 존재이다.

 

20130415_GDAMS기자회견 (14)

▲ 세계군축행동의 날(GDAMS)에 남북 군인 복장을 한 활동가들이 서로간에 겨눈 총을 내리고 얼싸안고 있다.

 

3. 우리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존재들이 있다. 계절이 다르고 산천초목이 다르며 계절별로 피는 꽃이 다르고 각각의 색이 다르다. 성별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며 언어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수많은 다름과 차이가 있다. 국가가 다르고 남쪽과 북쪽(북남)이 다르게 있고 정치성향이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와 다름은 선과 악의 대결구도가 아니다. 분열 구도나 경쟁구도가 아니다. 지배와 피지배의 종속적 구도도 아니다. 더더욱 사생결단을 내야하는 아(我)와 적(敵)의 대립구도가 아니다. 너는 왜 내가 아니냐며 타박할 일도 아니다.

그것은, 온 우주 만물이 매우 다양한 존재들이지만 궁극으로 한 근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래 하나이고 전체이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 사람이 따로 있지 않으며 너와 내가 따로 있지 않고 내 속에 네가 있고 너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주보고 웃을 수 있는‘또 다른 나’이며 ‘당신’이고 ‘가족’인 것이다. 서로가 책임지고 살펴야할‘어여쁜 자식’이요, 존중하고 사랑하며 보듬어 품어야할, 말을 섞고 의논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서로 살려내야 할‘부모 형제자매’인 것이다. 중국 한나라의 왕충이 지은 사상서『논형 論衡』험부(驗符)제59에, 버섯은 땅에서 나서 땅의 기운을 조화롭게 하고, 땅 위의 온갖 초목을 살려낸다(芝生於土 土氣和 故芝生草)는 구절이 있다. 자연의 작은 생물도 그러한 상생(相生)의 도를 알아 자신의 온 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결코 작다할 수 없다. 온갖 초목이 풍부한 생명으로 잘 살아야 땅의 기운이 조화롭게 되어 버섯 그 자신도 더욱더 번성하게 되는 것이다.

네가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네가 없다. 너로 말미암아 내가 있으며 나로 말미암아 네가 있는 것이다. 너를 통해 나의 극단을 보완하며 나를 통해 너의 극단을 보완한다. 상호보완적인 것이다. 본래가 독립·자족하는 ‘나’란 없다. 우주만물 일체 속에 있는 사람은 본래 이렇게 순환적이고 전체적이며 상호 호혜적이고 공동체적이다.

4. 이렇게 하여 ‘나’라는 사람, 우리가 ‘본래 어떤 존재인가’가 좀 더 분명해졌다. 우리 모두는 ‘얼’이 깃들어져 있는 사람으로서 온 우주를 품을 만큼 넉넉한 존재라서 그 안에 어떠한 구별이 없이 모두를 품어낼 수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깊은 유기적 관계 속에서 그 모두가 더욱 풍부한 생명을 얻도록 협력하는 존재인 것이다. 모두가 내 가족이요,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온전한(wholeness) 사람은 우리자신을 지키며 서로를 살리는, 공동선을 위해 서로를 용인하고 조화시켜 더불어 사는, 상생(相生)의 존재인 것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사사로운 욕망, 집착에 가려 우리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 깊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을 너무도 왜소하게 바라보고 세상을 아주 좁게 살아간다. 그러나 <지금여기 현존>하는‘참 자신(眞我)’를 알아차림으로써 자기변혁을 이루고 나아가 대동(大同)의 세상, 남북의 평화체제구축운동(공존을 넘어 상생)으로 가는 변혁의 시대가 마침내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참고문헌           

1) 문현병 박준건 이찬훈 권서용 역, 상생의 철학. 도서출판(서울, 2001)
2)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엮음, 지구촌 시대 상생의 윤리와 철학. 백산서당출판(2004)
3) 신정근,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글항아리출판(경기파주, 2011)
4) 윤노빈, 신생철학. 학민사(서울, 2010)
5) 진교훈 외, 인격. 서울대 출판((서울, 2007)
6) 토마스 그룸지음, 김열도 옮김, 생명을 위한 교육 한국장로교출판(서울,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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