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4-06-24   816

<안국동窓> 국민을 죽음으로 내몬 정부

김선일씨가 온몸으로 절규한다. 죽고 싶지 않다고, 살고 싶다고, 그러니 한국군은 여기, 여기, 여기에서 떠나라고. 그러나 김선일씨는 결국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 억울한 죽음 앞에서 우리의 가슴은 한없이 미어진다.

이라크의 테러집단은 24시간의 말미를 주었다. 정부는 김선일씨를 구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가 하고자 했던 모든 노력에 정작 김선일씨를 살리기 위한 노력은 빠져 있었다. 오히려 정부는 테러집단의 협박에 굴복할 수는 없다며 추가파병의 뜻을 더욱 강력하게 밝혔다. 결국 김선일씨는 살해되고 말았다.

김선일씨를 죽인 것은 이라크의 테러집단이다. 그러나 이라크의 테러집단으로 하여금 그를 죽이도록 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이다. 이 나라의 정부가 국민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이라크의 테러집단은 미군이 밥먹듯이 저지르는 살상행위에 맞서서 극단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협상을 거부한 정부가 김선일씨를 죽게 만든 것이다.

이라크의 테러집단은 이렇게 말했다. 24시간의 시한을 줬는데도 너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속임수와 사기는 통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이제 죽을 것이다, 너희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다. 분노한 이라크의 테러집단은 결국 김선일씨를 끔찍하게 살해했다. 20여일 간의 고통과 공포가 결국 잔인한 죽음으로 끝난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널리 퍼진 한 아랍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김선일씨를 죽인 이라크의 테러집단이 요구한 것은 추가파병의 철회가 아니라 그 유보나 재고의 뜻을 밝히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태도는 강경하기만 했다. 심지어 한 사람이 납치되었다고 해서 파병을 철회할 수는 없다는 식의 말이 공공연히 들려오기도 했다. 그가 곧 죽을 처지에 놓였으며, 그래서 그토록 애타게 살려달라고 절규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2004년 6월 24일에 방영된 한국방송공사의 ‘추적 60분’에서 외국어대 중동연구소의 한 교수는 정부가 과연 김선일씨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는가와 관련해서 중요한 증언을 했다. 그에 따르면 이라크로 날아간 정부 대표단은 시종 강경한 입장만을 보였다. 이라크의 신문들은 ‘한국은 인질단체의 요구를 거부했다’, ‘한국의 추가파병 결정은 변함없다’는 대표단의 주장을 큰 제목으로 뽑았다. 죽이려면 죽이라는 것이 정부의 태도였던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않는 정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이 정부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국민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그렇게 해서 자신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버렸다. 납치에서 죽음에 이르는 전과정이 온통 의혹으로 얼룩져있지만, 이 정부가 죽음의 문턱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국민을 저버렸다는 것은 너무도 명확하다. 이 정부는 비정한 것이 아니라 무도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는 행위는 반인륜적 행위’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고한 민간인을 죽음으로 내몬 행위’는 무엇일까? 그것도 역시 ‘반인륜적 행위’이다. 이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그런 반인륜적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이 정부의 수장인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그런 반인륜적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또 ‘파병은 복구와 재건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라크의 테러집단은 ‘너희 군대는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군을 위해서 이곳에 왔다’고 주장했다. 부시가 이라크의 석유를 빼앗기 위한 침략전쟁을 벌이지 않았다면 애시당초 ‘복구와 재건’은 필요없었다. 아무리 ‘복구와 재건’을 내걸어도 이라크 파병은 부시의 침략전쟁을 돕는 것이다. ‘복구와 재건’은 반인륜적 침략전쟁의 부산물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테러에 굳게 맞설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다짐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국민이 납치된다고 해도 정부의 파병정책은 바뀌지 않는다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눈먼 의지 때문에 이미 한 사람의 무고한 국민이 끔찍한 죽음으로 내몰렸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무고한 국민들이 죽어야 하는가?

비실세 정치인이었던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은 까닭은 개혁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탄핵반대의 촛불이 온나라를 뒤덮었던 까닭도 역시 개혁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이루어야 하는 역사적 책임을 안고 있다. 그러나 그는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거꾸로 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무도한 배신이 김선일씨의 끔찍한 죽음을 낳았다. 이제 다시금 개혁을 열망하는 촛불이 온나라를 뒤덮을 것이다.

다수의 국민이 ‘파병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김선일씨는 이라크에서 부시와 럼스펠드가 벌인 야만의 행위에 넌덜머리를 냈다. 이 때문에도 그는 이라크를 떠나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했다. 정부는 미친 짓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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