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하는 청년을 위한 삶의 안전망
정준영 l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정책공백의 확대와 청년보장의 필요성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은 장기실업이냐 묻지 마 취업이냐의 딜레마 속에 여러 가지 삶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노동시장의 현실에 실망하여 아예 구직을 단념하는 인원도 늘어나고 있다.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소위 사회 밖 청년(disconnected youth)들은 소득상실, 취업능력 잠식, 생애소득 감소, 사회적 배제의 위험에 처해 있으나 이들은 위한 제도적 지원과 사회보장 제도는 크게 부족한 상태다.
고용보험 등 기존의 제도는 이들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하고 있으며,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으로 대표되는 공공고용서비스도 묻지 마 취업 알선의 함정에 빠진 채 여전히 취약한 형편이다. 한마디로 정책공백의 틈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른바 청년보장(Youth Guarantee)이 새로운 청년정책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는 사회와 국가가 청년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정책 이념을 담은 말이다. 이 글은 청년보장의 관점에서 출발하여, 청년의 생애단계 특성에 기초한 정책적 수요에 맞게,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특히 교육과 직업세계 사이를 이행하는 청년들을 구체적인 정책대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청년정책 패러디임의 전환 : 투자에서 보장으로
지금까지의 청년정책은 양적단기적 성과 중심의 정책이었다. 정책의 목표는 시장 경제와 마찬가지로 효율성을 추구하며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산출을 얻어내는 것으로 수렴해왔다. 여기서 정부는 투자자이고, 청년은 잠재적인 경제적 가치를 가진 투자처이며, 정책은 투자 행위와 다를 바 없었다. 이 과정에서 투자의 결과인 계량적 수치 외에는 모든 것이 사라져 실제 청년의 구체적인 삶은 정책의 관심사에서 끊임없이 배제되는 역설이 발생해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청년 일자리 정책의 큰 비중을 차지했던 중소기업 청년인턴 사업은 구인구직 불일치의 해소와 고용 보조금을 통한 노동 수요 측의 유인 증가라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국가재정을 투입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단기 일자리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기업의 입장에선 부족한 고용 여력을 보조하여 청년을 값싸게 사용할 수 있는 단기적인 인건비 지원이었고, 청년의 입장에선 안정적인 취업 혹은 경력 형성, 직업 능력의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일자리를 구하는 청년을 위한 대표 사업인 취업성공패키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해당 사업의 취업 성공률은 70%에 달했지만 1년 이상 고용 유지율은 40% 수준에 불과하고, 전체 취업자 중 61%가 150만 원도 되지 않는 저임금 일자리로 진입했다. 그간 정부가 펼쳐 온 일자리 대책이 묻지 마 취업을 종용해 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제 결과 중심의 투자에서 권리의 보장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투입 대비 산출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투자의 원리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청년이 가지는 기본적인 권리를 국가가 책임지는 보장의 원리로 나아가야 한다. 청년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 지원, 즉 각종 공공 정책은 청년 당사자가 끊임없이 스스로 불행함을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더 고통스럽고 불쌍한 집단에 대한 시혜로 갇혀선 안 된다.
정책대상으로서의 청년 : 이행성과 불안정성
청년을 연령 기준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언제나 불충분하다. 청년은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유동하는 상태다. 누구나 청년 시기를 겪는다. 따라서 청년이라는 상태가 가지는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 생애단계로서 청년이 가지는 의미란 시장(Market)을 최초로 마주한다는 것이다. 사회로 진입한다는 것 또한 좁은 의미로는 일자리(소득생활)를 중심으로 경제세계의 구성원, 즉 경제활동의 주체가 됨을 뜻한다. 개인은 청년이 되면서 노동시장에 신규로 진입해 생애 첫 일자리, 생애 주된 직장을 구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이행(transition)성이야말로 우리가 청년의 보편성으로부터 추출해야 할 가장 고유한 특성이다. 다음과 같은 명제가 성립한다. 청년은 이행한다. 따라서 이행의 위기가 곧 청년의 위기다. 청년에게 주어지는 이행의 경로는 보통 아래와 같다.
그런데 다음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은 개인에게 많은 비용을 지불하도록 한다. 이행의 종착지에 성공적으로 도착하기 위해서는 시간, 노력, 돈이 필요하다. 그것은 개인에게 다양한 위험을 발생시킨다. 날이 갈수록 길어지는 구직(실업) 상태는 소득 및 역량 상실, 사회적 단절과 배제의 위기를 낳는다. 이 시기의 위험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면 생애 전반의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 결국 청년의 특성인 이행성은 아주 쉽게 불안정성으로 이어진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에 따라 괜찮은 출구가 줄어들면서 정규교육과정과 직업세계(school to work) 사이의 틈새(gap)는 계속 넓어지고 청년들은 장기실업, 구직포기 등의 위기에 처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러한 영역이 제도와 정책의 공백지대로 방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국가의 책임과 역할이 사라지고, 개인이 순전히 감당해야 할 몫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 비용은 부채를 낳기도 하고, 신용의 위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취업활동을 시작하는 단계에 이르러, 경제적 조건의 격차에 의한 위계구조가 더욱 강화된다. 헬조선의 신분제, 물고 태어난 수저의 색깔에 따라 청년들은 완전히 다른 출발선에 서게 된다. 열정페이가 문제라지만, 무급인턴의 열악한 조건을 버틸 수 있는 것 또한 하나의 자격인 셈이다.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느냐의 여부가 관건적이다. 누군가는 별다른 취업활동 없이 묻지 마 취업을 통해 주변부 노동시장에 곧바로 진입하기도 한다.
사회로 첫 발을 내딛는 이 불안정한 기간을 개인이 전부 책임져야 할 비정상적 상태 혹은 잠깐 거쳐 가는 단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공공이 책무를 가지고 개입하여 제도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 틈새를 이어줄 튼튼한 교량(bridge)을 놓아야 한다. 청년들이 마음껏 딛고 나설 수 있는 디딤돌, 버팀목,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디딤돌을 놓을지는 청년의 다양한 상태와 요구에 맞춤형이어야 한다.
청년을 위한 사회안전망 : 구직안전망의 목적
노동시장 이행의 특성에 기초해 청년에게 필요한 디딤돌 하나는 바로 사회안전망이다. 청년들이 기본적인 삶을 보장받으며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지원에 목적에 맞게 더 세밀하게 표현하자면 구직안전망이라 할 수 있다.
구직안전망의 개념은 생애 첫 일자리를 구하는 길목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행 과정의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로서 활성화 노동시장정책과 실업부조가 결합된 고용복지 제도라 할 수 있다. 상담부터 전략수립, 직업훈련, 경과형 일자리 제공, 일자리 알선에 이르기까지 맞춤형의 단계별 공공고용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구직활동을 하는 동안 실질적으로 소득을 보전하고 생활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현금 수당을 지급하는 것을 기본 내용으로 한다.
그것의 목적은 현재 제도적 개입 없이 방치된 시장상태에서 개인에게 과도하게 전가된 이행의 비용을 공공이 적극적으로 분담함으로써 이행의 위험을 관리하고 결국 청년이 더 좋은 이행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에 있다. 교육과 노동 사이의 절벽에 제도적 교량을 튼튼히 놓는 것이다.
구직포기 상태로 전락하며 사회와의 연결성이 취약해지고 있는 청년이 다시 구직 의욕을 가지고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하며, 이행 과정의 위기가 생애 전반의 위기로 확대되는 것을 조기에 개입하여 예방해야 한다. 노동시장으로의 이행이 비자발적으로 장기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취업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안정적 취업으로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 또한 중요한 목표다. 또한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생활안정을 보장함으로써 사회로 나가는 단계에서 심각히 벌어지는 세대 내 격차를 완화하여 공정한 기회의 제공이라는 우리 사회의 기본 원칙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
해외 사례와 국내 현황 : 유럽 청년보장, 성남 청년배당, 서울 청년활동지원
유럽연합(EU)은 통합적인 고용정책 브랜드로 청년보장(Youth Guarantee)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2013년 2월, 유럽연합 이사회는 600억 유로의 예산을 투입하여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청년고용프로그램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 중에서도 청년보장 제도는 25세 이하의 모든 청년들에게 정규교육을 마치거나 실업 상태가 된 이후 4개월 이내에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계속 교육을 받게 하거나 도제교육 또는 실무 수습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문희 2015)
유럽연합의 국가들 중에서도 프랑스의 경우에는 18~26세 청년들이 구직과 직업교육 과정을 1년 동안 밟겠다고 약속하면 한화 57만원 수준의 현금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청년과 국가가 약속을 맺는 것이다. 이는 참여자에게 구직활동, 일경험 활동, 사회생활경험 활동의 의무를 강하게 부과하는 활성화(Activation) 정책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채창균 2015)
국내에서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정책실험이 활발히 시작되고 있다. 2015년 10월, 경기도 성남시는 기본소득 개념에 기초하여 특정연령의 청년 모두에게 연 100만원 상당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청년배당(Youth dividend) 정책을 발표했다. 2016년에 만 24세인 1만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시작하여 점차 확대해간다는 구상이다. 이는 청년복지 제도로서 해외의 학생수당 등을 사례로 참조하고 있다. 성남시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를 활용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를 함께 도모하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시 청년 기본조례」에 근거하여 청년의 능동적인 사회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자립기반 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사회참여, 일자리, 주거, 부채,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2020 서울시 청년정책 「서울형 청년보장(Seoul Youth Guarantee)」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2015년 11월에 발표됐다. 서울형 청년보장은 크게 네 가지 분야로 구성된 종합적인 청년정책 패키지로서 △설자리(청년활동지원), △일자리(청년뉴딜일자리), △살자리(청년1인가구 주거지원, 희망두배통장), △놀자리(청년활력공간)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그중에서도 신규 사업인 청년활동지원은 이른바 청년수당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만 19~29세 20대 청년 중 교육에서 직업으로 이행하고 있는 미취업 청년을 대상으로 자기주도적인 진로설계, 직업탐색, 역량강화 활동을 실행하는 것을 조건으로 최장 6개월 동안 월 50만원의 현금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2016년에는 3천 명에게 시범사업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활동비를 지급함으로써 실질적인 생활안정을 보장하는 새로운 안전망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정책과제 : 일자리 안전망 강화 = 고용보험 개선 + 실업부조 도입
일자리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고용보험의 보장성을 높이고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적인 과제다. 그러나 2015년 9월 새누리당이 ‘노동개혁 5대 법안’의 하나로 당론 발의한 「고용보험법」은 청년을 비롯한 불안정 노동자에게는 ‘개악’에 해당하는 내용이 담기고 말았다.
법안은 효율화를 빙자하여 실업급여를 받기가 더 어렵도록 되어있다. 180일 이상 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되었던 것이 270일 이상으로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실제 일하는 날을 기준으로 하니 주5일 근무로 따져 1년 정도 재직상태를 유지하며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야 수급 자격이 생긴다. 그 이하의 단기계약 일자리이거나, 조기 퇴사, 해고로 실업상태에 빠지는 경우 급여 자체를 받지 못한다. 문턱이 높아지면서 더 불안정하고 열악한 노동자들이 놓이게 될 사각지대가 넓어지게 된다.
새누리당 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청년들에겐 치명적이다. 1년 미만의 단기 계약직으로 첫 일자리를 구하게 되는 청년들이 계속 늘고 있다. 계약만료로 인한 실업상태에서 안정적으로 재취업 활동을 하려면 고용보험을 통한 소득보장이 필수적이다. 오히려 현행 180일에서 120~150일 수준으로 기여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한편 고용보험이 제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생애 첫 일자리 취업자(청년구직자)와 장기실업자를 위한 일자리 안전망으로 실업부조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고용보험 미가입자를 대상으로 구직활동 기간의 소득을 보전하는 구직촉진수당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다. 이미 관련 법안도 많이 발의되어 있다.
고용보험에 실업부조를 더함으로써 더 낮게, 더 넓게, 더 촘촘하게 일자리 안전망의 그물을 펼쳐야 한다. 구직 혹은 실업상태의 청년이 겪는 사회적 위험을 공공이 함께 분담하고, 그들이 지금의 불안한 삶을 극복할 수 있는 삶의 안전망, 사회적 버팀목을 세워야 한다.
맺음말 : 청년수당 논란은 정책전환의 계기
서울시와 성남시의 새로운 청년정책이 연달아 발표되며 2015년 말부터 청년수당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 고위 관료들과 여당 정치인들은 이를 두고 포퓰리즘, 아편, 바이러스, 용돈, 퍼주기, 범죄 등의 막말을 서슴지 않고 쏟아내고 있다. 토론은 언제나 열려있어야 하지만 청년에게 안전망을 펼치고자 하는 새로운 노력들이 반(反)복지적인 포퓰리즘 정치공세에 가로막혀서는 안 된다.
국가정책의 틈새에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시작하고 있는 보완적 시도들은 ‘사회로 첫 발을 내딛는 청년을 위한 정책이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주제의 논의로 의미 있게 확장되어야 한다. 이는 곧 국가적인 수준에서 청년정책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계기로 이어져야 한다. 한국형 청년보장(Youth Guarantee)의 구체적인 내용을 마련해나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지금의 논란을 중요한 기점으로 삼자. 청년유니온은 청년수당 논란 속에 뛰어들어 기존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삶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는 청년을 위한 새로운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고자 한다. 그간 청년유니온은 참여연대를 비롯한 노동, 청년,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청년구직촉진수당 등 실업부조 성격의 구직안전망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이제야말로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터운 삶의 안전망을 펼쳐야 할 때다. 이제 한국사회는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참고문헌
김문희(2015), OECD의 유럽 청년보장(Youth Guarantee)제도 사례 연구, the HRD review 2015년 1월호 98-115p,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채창균(2015), 청년 니트, 실태와 정책대안, 국회 입법조사처 청년고용정책 입법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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