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6 2016-08-01   749

[복지칼럼] 신자유주의로부터의 전환, 혹은 기득권 유지의 전략? 

신자유주의로부터의 전환, 혹은 기득권 유지의 전략?

주은선ㅣ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자유주의로부터의 전환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정치공간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진보와 중도는 물론 보수 진영에서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이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자본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주요 보수언론이 대안으로 자본주의 4.0을 들고 나왔을 때에도 이것은 코미디인가도 했지만, ‘노동조합 때문에 국민소득 3만불 문턱을 못 넘었다’는 악의적인 발언을 했던 집권당 전대표가 격차 해소를 주장하며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고 하니,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로부터의 이탈과 ‘다른 자본주의’는 시대정신이 되었나 싶기도 하다.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는지를 느끼는 데 약간의 시점 차이가 있었을 뿐, 바람의 방향 자체에 대한 판단은 크게 다르지 않은가보다.

그 이유를 2008년 세계 경제위기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채,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고, 새로운 위기 요인들이 계속 돌출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꽤 밋밋한 설명인 것 같다. 어느 정치진영이든 입을 모아 신자유주의와 불평등 심화를 비판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기시감을 준다. 2011~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기에도 한국의 우파 정치세력들은 정책 전환을 시도한 것처럼 보였고, 공정한 사회, 국민행복, 복지국가를 이야기했다. 복지국가라는 말 앞에 ‘한국형’이란 수식어가 붙어있는 것이 마치 ‘한국형 민주주의’의 변형인 듯싶어 불안하기는 했지만, 모두가 복지국가를 말하는 것은 우리사회의 미래 방향에 대한 그만큼의 합의와 확신으로 보이기까지 하였다. 어찌되었든 국민들은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내세운 정치세력을 선택하였다. 그 이후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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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치 일정을 앞두었든 우리 사회 전반을 뒤덮고 있는, 불평등과 기회의 박탈, 생존을 위한 내몰림 등이 이슈로 부각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 이름이 포용적 자본주의(inclusive capitalism)이든 무엇이든 큰 틀의 변화를 언급하는 정당들과 정치인들이 많아지는 것은 문제 해결에 나쁜 신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찜찜함이 있다. 하나는 ‘무엇이 전환인가’에 관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화를 외치되, 같은 언어로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다는 우려이다. 누군가는 기존의 사회경제 질서에 균열을 가져오지 않는, 기득권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에서의 변화를 혹시 전환이라 부르는 것은 아닐지… 가령 신자유주의의 핵심으로 일컬어지는 노동에 대한 정치적 억압, 끊임없는 노동분할 및 유연화, 복지 시장화, 민영화 등에 대한 정책 전환 없이 부분적인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 또한 복지시장화 폐해가 극심한 가운데 공적책임을 여전히 최소화한 채, 여러 대안론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비영리민간조직을 통해 시장의 문제를 완화하고자 하는 시도는 전환치고는 미약하다.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소위 ‘착한 공급자’들이 내부에서 시장을 변화시켜 시장실패를 극복하라는 주문으로서, 시장 안에서 탈자본주의적인 가치를 계속 추구함으로써 시장을 보완하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기에 더욱 멀어진 공동체, 협력, 나눔의 가치를  추구하는 민간조직들이 복지시장을 보완하는, 국가의 하위파트너가 될 때, 과연 그것은 누구를 위한 ‘착함’이 될 것인지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의구심은 탈신자유주의 정치에 관한 논의가 부재하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전체 사회의 변화 방향에 대한 토론과 의사결정은 대중들의 몫이 아니며, 대중 역할의 최대치는 선거에서의 ‘선택’이며, 그저 변화의 수혜자라는 식의 태도가, 대안을 말하는 자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태도가 아닌지 경계할 일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체제가 경제, 노동, 복지정책의 조합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국가, 문화 등 이데올로기 장치를 통해 경쟁, 시장, 금융, 복지 등 여러 측면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특정한 태도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것이라면 이에 대한 대안은 기존 질서와 소위 상식에 대한 전면적인 저항과 새로운 민주주의 모색을 포함한다. 이는 소위 정치 엘리트들의 손으로는 불가능하다. 자본주의의 근본적 전환은 소위 더 많은 ‘소비의 평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중권력 확보와 기성 신자유주의 질서와의 긴장이 ‘저항’의 형식으로 계속 표출될 때 비로소 조금씩 이루어질 수 있다.

2016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합의한(?), 더 정확히는 노동측 위원들의 퇴장 이후 표결로 정한 최저임금은 6,470원이라고 한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그동안의 공론화, 저항은 정작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무게를 갖지 못했다. ‘다른 자본주의’를 언급하는 자들은 하나같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주장하고, 간접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고민은 깊다. 느리지만 신자유주의로부터의 전환이 무엇을 통해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질지 주목할 일이다. 한국에서 탈신자유주의마저 ‘한국형’이란 이름으로 기득권 유지의 전략이 되지 않을지도 함께 지켜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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