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6 2016-12-01   2868

[기획주제1] 복지국가 정치와 시민사회

복지국가 정치와 시민사회

 

박원석 l 전 참여연대 협동처장/19대 국회의원

 

복지국가 실현은 가능한가?

 

현재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격차, 그로인한 차별과 빈곤, 배제는 사회구성원들로 하여금 이 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냉소와 회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헬조선’, ‘흙수저-금수저라는 표현에서 확인되듯, 젊은 층에서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는 냉소와 회의는 비단 현재의 삶을 넘어 미래의 삶에 대한 불신에까지 이르고 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격차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 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이 상황에서 복지국가의 길을 개척해야 하는 것은 단지 이상이 아닌, 매우 긴요한 현실의 문제이다. 

 

오늘날 정치적 언술 상으로 복지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인 것처럼 보인다. 지난 수년간 정부와 정당, 시민사회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복지를 얘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은 한국에는 복지에 관한 거의 모든 의미 있는 제도적 전통이 부재하다는 점 또한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거의 모든 사회경제적 지표들에 나타난 국민의 삶은 크게 개선된 것이 없다. 한국은 산업화된 국가들 중에서 민주주의가 복지를 위한 제도화를 담보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국 시민사회의 의식과 관행은 시장만능주의, 성장지상주의 담론에 사로잡혀 있다. 국가 복지의 수준, 노동시장 제도, 기업지배구조 그리고 시민사회의 의식과 담론 상황은 서로 긴밀하게 맞물리면서 한국 사회를 반복지의 덫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복지국가 실현이 과연 가능하며, 그 전략은 무엇인가? 한국 복지의 궁극적 발전 방향은 민주화가 정치적 수준에서 사회경제적 수준으로 확대되는 것이어야 한다. 나아가 그 과정에서 국가 복지의 확대뿐 아니라 시장의 민주화 곧 노동시장 제도와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우리가 개인-국가 관계, 개인-기업관계를 재조정함으로써 자본주의 세계를 그나마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통합적 복지모델로서의 복지국가를 구상해야 할 시점에 와 있음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는 현 시점에서 한국의 복지국가 발전을 위한 전략으로서 복지국가 정치와 시민사회의 역할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의 복지국가 담론의 형성과 발전

 

한국에서 복지국가가 보편적 국가발전, 사회발전의 전망으로 부상하고 그를 둘러싼 담론, 정책 논의가 활성화된 것은 하루아침의 결과가 아니며, 이 또한 역사적 산물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긴 사회발전의 과정에서 다양한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 중에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로 이어진 민주정부의 집권기간은 한국의 복지 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국가복지를 확대하고 제도적 복지의 기반을 마련한 점에서 중요한 전기를 형성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주정부의 사회개혁조치는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시대정신과 대안 패러다임을 반영하는 일관된 전략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로인해 과거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국가운영 원리를 총체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신자유주의를 깊숙이 받아들여 국정운영의 기조로 채택하는 모순을 자초했다. 역사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지만, 민주정부의 개혁이 정치적 민주화와 자유권의 보장을 넘어 사회적 시민권을 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지금 우리가 대면하는 현실은 사뭇 다를 것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이래 국가복지를 크게 늘리면서부터 한국 사회에서 ‘복지’는 줄곧 정치와 사회운동의 관심과 토론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과거의 ‘복지’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주로는 복지정책의 수혜대상을 늘리거나 물질적 급부를 일부 늘리는 ‘복지정책의 확대’에 그쳤다면, 현재 복지에 대한 관심은 공동체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원리와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의 문제를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또한 누구에 의한, 어떤 프로그램인가에 따라 복지의 성격과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과 유형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복지에 대한 관심과 논의로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근래 한국에서 복지에 대한 관심은 복지프로그램의 양적 확대에 치중했던 과거와 달리 거시적 사회체제, 국가체제로서의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로 발전해왔다고 볼 수 있다.

 

복지국가가 이론적, 학문적 논의의 대상을 넘어 본격적인 정치와 사회운동의 화두로 부상하게 된 계기는 2010년 지방선거를 전후로 한 친환경무상급식 정책을 둘러싼 논란과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유력 정당과 후보들의 복지비전 표방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돼 현재까지 진행 중인 복지재원을 둘러싼 증세논쟁 등을 들 수 있다. 아울러 이 같은 현상의 구조적 배경에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전 세계적 실패로 인해 삶의 불안과 위기가 커지고,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격차가 통상의 정책수단으로는 시정이 불가능할 만큼 구조화되고 있는 현실이 자리한다. 이에 따라 시장의 실패로부터의 보호막을 필요로 하는 경제사회적 심리가 사회저변에 폭넓게 형성되고, 시장 원리에 따른 자원배분이 평등과 사회정의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과 교훈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진 기득권과 특권층 중심의 정책 그리고 그 본질에 자리한 부패와 권력의 사유화를 연이어 목격하며, ‘도대체 이게 나라냐?’라고 절규하는 대중적 분노의 기저에는 ‘국가란 무엇이며,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이 내재되어 있다. 요컨대 지난 수년간 ‘복지’에 대한 관심의 증대는 경제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른 대중의 욕구와 심리, 인식의 변화에 따른 것이며,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의 전횡과 범람에 짓눌려왔던 한국 사회 가치지형의 근본적 변화의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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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발전의 구조적 제약 요인과 한계들

 

복지에 대한 관심의 확대와 질적 전환의 긍정성을 인정하면서도 한국의 토양에서 복지국가 발전의 몇 가지 구조적 제약 요인과 한계들 또한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매우 근원적 문제로 정치에 대한 매우 취약한 신뢰의 한계를 짚지 않을 수 없다. 복지국가는 시장의 실패를 정치가 예방하고 수습해야 한다는 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보다 소박하게 말하자면 복지국가는 정치를 통해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희망에 근거해 있으며, 정치에 대한 일정한 신뢰를 전제로 한다. 자본주의와 시장 체제의 한계가 커질수록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치의 역할은 절실해 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에서 정치는 대중은 물론, 좌우 이데올로기적 급진파 모두로부터 불신과 부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 반해 현재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적나라하게 확인시켜주듯이 한국에서 시장은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주주의의 외양을 일거에 웃음거리로 만들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와 시장체제의 한계가 커짐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치의 역할 부재가 시장에 대한 잘못된 신화를 방치했고, 이것이 시민사회의 의식과 관행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침으로 복지국가로의 발전에 구조적 제약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는 앞선 문제와도 연동된 것으로 민주주의의 정체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점이다. 정치에 대한 신뢰를 고양하는 최소한의 여건 혹은 장치로 발전시킨 체제 내지 원리를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시장에서는 돈이 말을 하지만,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숫자가 말을 한다. 물론 다수가 늘 옳은 것은 아니며, 분별없는 다수의 정치는 중우정치로 귀결될 위험도 있다. 그러나 숫자라는 것은 돈에 비해 도덕적인 시비에 덜 노출되며, 다수가 소수보다 틀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고, 틀렸다고 판명되었을 때에도 변명이 가능하다. 인간의 운명이 돈의 힘에 의해서 좌우되는 구조보다 다수의 인격체들에 의해서 간섭되는 구조가 낫다는 점은 명백하다. 민주주의가 대중의 집합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보다 다수의 경제적 약자를 정치적으로 편들어 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반대로 민주주의가 이 같은 기대와 달리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정치가 비판받고 불신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로도 한국사회에서의 민주주의는 이 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급격한 민주주의의 퇴행은 복지국가 개혁을 시급히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그 개혁의 중심이 되어야 할 국가의 윤리적 정당성에 대한 심각한 회의와 불신을 가져오는 역설적인 상황을 낳고 있다.   

 

복지국가의 목표가 왜소화 되거나 파편화 되는 경향이 나타나는 점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복지국가는 그간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못했던 복지정책들의 산술적 집합 즉 ‘복지프로그램의 확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해되거나 표현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무상복지 시리즈의 경우 진보적인 가치와 정책적인 함의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를 경제사회체제 운영원리의 전환의 의미가 아닌, 복지프로그램을 늘리는 정책의 문제로 치환할 염려가 있다. 복지국가 비전이 정책의 집합으로 이해될 경우, 단속적인 정책추진과 그를 둘러싼 논란의 확대에 그칠 가능성이 크며, 정책선정과 자원배분의 우선순위 경쟁을 일으키며 사회연대를 증진시키기 보다는 사회연대를 소모시킬 위험성도 있다. 특히 최근 지방정부 차원에서 추진되는 일련의 정책들의 경우, 그런 정책들이 나오게 된 배경이나, 각각의 정책이 갖는 가치와 의미에 충분히 공감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복지 퍼주기’라는 소모적이고 왜곡된 논란에 휘말려 자칫 복지국가라는 큰 사회체제 변동에 관한 부정적 인상을 심어줄 위험성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복지국가 정치와 시민사회의 역할

 

복지국가 전략의 의미

복지국가 전략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합의된 바 없으나, 그 대강을 정리하자면, ‘복지국가’라는 사회체제, 국가체제에 관한 비전과 담론, 정책 구상과 프로그램, 이를 일관되게 실천할 주체의 형성 등을 하나로 묶는 구상이자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복지국가전략’은 국가운영과 사회체제의 대안으로서 복지국가라는 가치와 원리를 확립하는 한편, 누구를 주체로 할 것인가, 누구와 손을 잡을 것인가라는 주체형성 전략이자 동맹전략이다. 아울러 복지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무엇으로 할 것이며,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를 엮어 낼 것인가를 설계하는 정책구상이자 정치전략 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복지국가 전략’은 어떤 정태적인 상(象)을 전제로 한 것일 수 없으며, 그간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적 경로를 수정하면서 미래를 구상하는 정치적 상상력, 제도적 상상력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인 점은 우리가 선행한 복지국가들의 역사적 경험과 그로부터 공유되는 이론적, 정치적, 정책적인 자산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후발자본주의 국가로서 경제성장 뿐 아니라 복지국가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후발 주자의 이점을 활용하는 것은 시행착오의 고통을 줄이는 길이다. 물론 자본주의의 형성과 발전과정이 다르고 그 가운데 형성된 계급계층 구조와 의식의 차이가 있겠지만, 복지국가라는 원리가 자본주의의 한계를 수정하고 보완하기 위한 기획이라는 점에서 이는 보편성내에서 창조적으로 보완할 특수성의 문제이지, 선행한 복지국가와는 완전히 다른 한국적 복지국가의 길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복지국가 전략 수립의 관점에서 선행한 유럽 복지국가 발전의 경험을 통해 유의미하게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을 꼽자면 첫째, 산업자본주의 시기의 위기는 산업노동자의 조직화와 복지국가의 초기적 도입으로 이어졌다는 점, 둘째, 국가-정당 영역에서 국가의 조직, 재정능력과 강력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복지국가의 발전에 매우 중요했다는 점. 셋째, 시민사회 영역에서 강력하고 포괄적인 노동조합 조직력의 국가적, 국민적 지향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 세 측면에서 한국의 과제를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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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정치동맹과 시민사회

유럽복지국가의 경험에 비할 때,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산업자본주의 발전과 위기를 극복의 과정이 복지국가라는 전망과 주체의 형성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는 가장 급진적인 산업화의 시기를 군부독재 하에 보냈기 때문에, 수십 년 간 한국에서 복지는 경제정책과 산업화의 부산물로 생활수준의 향상을 도모하는 수단 정도의 의미였을 뿐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 복지국가를 둘러싼 논의와 노력은 길게 보더라도 김대중 정권 등장 이후 20년여의 역사를 갖고 있을 뿐이며, 국민들은 복지국가의 삶의 방식과 거시적 합리성을 거의 경험한 바 없다. 이는 복지정치의 사회적 기반이 대단히 취약함을 뜻한다. 그런 조건 위에서 복지국가를 경험하게 하는 정치적 실험을 해야 하며, 또 바로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 복지동맹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 복지국가 추진전략상의 핵심 난제다.   한편 국가복지의 수준의 측면에서 한국은 경제발전 수준과는 매우 모순된 구조를 갖고 있다. 대부분의 복지국가들이 경제발전에 상응하는 국가복지수준을 갖추어 온데 비해서 한국은 경제력 규모와 국민총생산 규모로 볼 때 선진자본주의의 바로 뒤를 잇는 경제수준을 갖고 있으면서도 국가복지 재정규모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또한 이는 낮은 조세부담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재정구조 개혁이 복지국가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개혁과제로 대두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국가에 대한 신뢰라는 측면에서는 한국사회는 매우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약 10년 간 국가에 대한 불신, 시장과 경쟁원리의 효율성에 대한 맹신이 지배했으나, 지난 몇 년 간 국가의 공적 역할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요구가 강화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시기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보듯, 정-경-관 유착에 의한 권력의 사유화와 거대한 부패의 카르텔이라는 전근대적인 요소가 온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구 복지국가 발전 과정과는 전혀 다른 개혁의 과제가 가로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복지국가 권력자원의 측면에서 한국의 정당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에 준하는 개혁적 지향을 가져본 적이 없다. 정치지형의 특성상 민주당과 같은 야당이 ‘좌클릭’, ‘진보화’ 등을 표방하고 있으나, 그 주된 관심은 유권자의 이목을 끌만한 복지정책을 골라내는 데 있었지, 한국사회의 곪아터진 상처들을 치유하는 진정성 있는 국가개혁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있지 않았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민주의 정치노선에 가까운 정의당과 같은 진보정당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경험이 없으며, 지금도 복지동맹의 여러 세력을 규합하여 복지국가 전략을 주도할 만한 조직력과 정치적 지도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 그간 ‘복지국가 정치동맹’이 연합정치의 중요한 내용으로 대두되어 왔다. 이는 선행 복지국가들의 경험과 비교할 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20세기 세계 각국에서 국가 복지규모의 증대와 감소에 특별한 영향을 미친 요인이 무엇이었나를 분석한 연구들에 따르면 좌파정당을 포함하는 연합정부가 구성된 시기동안 복지국가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경향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에서 복지국가 플랜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실은 연합정치가 매번의 선거를 매개로 한 형식적인 선거연합에 그치고 있으며, 그 조차도 정의당과 같은 사민주의 정당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시민사회로부터의 적극적이고 폭넓은, 정치적, 조직적 압력이 나오지 않으면 정당정치에 복지국가의 비전을 압박할 수 없으며, 현재의 정당체제에서 설사 연합정부가 만들어진다 해도 복지국가로의 체제 개혁 과정에서 시민사회가 목소리를 낼만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시민사회 관점에서 복지국가 정치를 추동하기 위해서는 힘 있고 폭넓은 대중운동을 통해 정당정치의 세력변동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통해 정치, 정책, 제도 변동의 방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다양한 시민단체들과 노동단체들이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갖고 정당정치 영역의 ‘복지국가 정치동맹’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이다. 

 

시민사회의 복지동맹

지난 과정을 돌이켜보면, 복지국가 의제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와 같은 전문가들의 사회복지 영역의 애드보커시(advocacy) 운동에서 시작돼 복지의제 부문별 당사자운동, 대중운동으로 확대되었고, 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같은 싱크탱크(think tank)의 창립 등을 거치며 담론화 되었다. 그 이후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의제, 2012년 대통령 선거, 국회에서의 증세와 복지재정 논쟁을 거치면서 복지 의제와 논쟁의 주도권은 정당정치 영역으로 넘어왔다. 향후 이 같은 추세는 더욱 강화될 개연성이 크다. 복지국가는 그 태생부터 정치의 방법으로 자본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역사적 기획이었고 정치의 우선성에 기초한 발전과정을 거쳐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행한 복지국가의 발전과정에서도 여전히 시민사회의 역할은 간과할 수 없다. 바로 시민사회의 강력한 복지동맹이 정당정치를 견인하거나 혹은 뒷받침 해왔기 때문이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노동조합이 복지국가의 형성과 발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시민사회 세력이었다. 노동조합이 늘 조합적 이익을 넘어 보다 넓은 민중적, 나아가 보편주의적 정치노선을 지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서구에서 복지국가 정치는 정당과 노동조합에서 출발하여, 노동조합에 조직적 근간을 두고 그 영역을 확장해왔다고 볼 수 있다. 

 

서구의 경험과는 달리 한국에선 노동조합의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이 매우 취약하며, 노동조합의 조직형태 또한 여전히 기업별 노조 중심이라는 점에서 대외적인 정치력과 사회적 영향력에서도 한계가 큰 것이 현실이다. 결국 이는 한국에서 시민사회 복지동맹은 서구 복지국가와는 다른 조직경로와 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고, 교섭구조가 집중화 돼 있으며, 단체협약의 효력이 전산업에 적용되는 유럽 국가들과 달리,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이 조합적 이익에 머무르면 사회적 고립에 처할 위험이 매우 크다. 한국의 노동조합 운동이 반복적으로 사회적 고립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문제에 기인한다. 이는 노동조합이 정당에게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만한 권력자원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귀결되며, 과거 민주정부의 시절의 경험처럼, 상대적으로 친노동적인 성향의 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복지국가에 대한 재벌의 강력한 견제와 저항을 돌파하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결국 노동정치는 복지국가 전략을 공유하는 시민정치 흐름과의 능동적 결합을 통해 보다 넓은 연대의 흐름을 주도할 때 비로소 그 권력자원을 넓혀 갈 수 있다.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의 권력자원이 약한 대신에 시민정치 세력이 시민사회 복지동맹의 한축을 형성할 수 있다. 시민정치의 흐름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 나타나는데, 90년대 중반 과거 민주화운동 민중운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오랜 연대활동의 경험을 갖고 있는 시민단체들과 더불어 2천년대 들어 급속히 활성화 되는 풀뿌리 시민정치의 흐름 그리고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자발적인 시민참여의 흐름까지를 복지국가 실현이라는 목표로 포괄하는 폭넓은 연대와 동맹을 종횡으로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경계할 점은 노동정치의 독자적 권력자원의 한계가 큰 것처럼, 시민정치 역시 뚜렷한 한계와 위험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노동조합과는 달리 조직화되지 않은 시민정치는 정치적 폭발성이 있지만, 그만큼 휘발성도 크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민정치가 조직된 노동의 힘과 만나지 않는다면 시민사회 복지동맹의 불안정성은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노동정치-시민정치가 각각의 특성과 이해관계를 존중하는 가운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사회 복지동맹이 이렇게 형성될 때 특정 계급, 직업, 연령층의 이익과 관점을 배타적으로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국가 운동에 국가적, 국민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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