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4 2014-12-11   1272

[동향2]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앞으로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라 불러도 되는지에 대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앞으로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라 불러도 되는지에 대해

박영아 ㅣ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지난 2014년 12월 9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공포 6개월 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개정안의 핵심내용은 다음과 같다.

 

⦁급여별 선정기준 다층화 및 중위소득을 반영한 상대적 빈곤 개념 도입

– 기존의 All or Nothing의 문제점 해소를 위해 선정기준을 다층화하여 탈수급 요인을 제고하고, 급여별로 특성을 반영하고 상대적 빈곤관점을 고려하여 보장수준이 현실화될 것으로 기대

⦁부양의무자기준 완화

– ‘부양능력 있음’ 선정기준 완화(4인 가구 기준 290만원 > 464만원)

– ‘부양비 부과 기준선’ 완화(4인 가구 기준 212만원 > 404만원)

– 교육급여의 경우 예외적으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법 개정으로 부양의무자기준이 완화되었고, 탈수급 요인이 제고되고, 보장수준이 현실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 보도자료가 언급하고 있지 않는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부양능력 있음’ 선정기준 완화, ‘부양비 부과 기준선’ 완화는 이번에 개정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앞으로 시행령이 개정되면 반영될 예정이다. 현행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5조제3항에 따르면 부양의무자기준은 대통령령에 위임되어 있다. 따라서 부양의무자기준 완화는 처음부터 법률을 개정할 사항이 아니었다.

 

둘째, 이번 개정으로 교육급여 선정기준이 상향되고, 부양의무자기준에 대한 특례규정이 도입되어,「국민기초생활 보장법」만 놓고 보면 교육비 수급자 대상이 확대된 것은 맞다. 하지만, 각 시ㆍ도교육청은「초ㆍ중등 교육법」에 따라 현재도 저소득층 가정(시ㆍ도교육청에 따라 다르지만 최저생계비 130%~150%이내 가정을 말함)에 대해 고교학비, 급식비, 방과후 학교 자유수강권, 교육정보화 등 교육비 지원을 하고 있으며, 이 때 부양의무자기준을 적용하고 있지 않다. 현행 최저생계비가 중위소득의 100분의 40 수준임을 고려할 때, 최저생계비 130%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개정안에 따라 상향된 교육급여 선정기준(기준 중위소득의 100분의 50)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따라서 이번 개정으로 교육비지원을 받는 학생들의 수가 실제로 대거 늘어나거나 보장수준이 크게 향상될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개정으로 정말로 바뀌게 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번 개정의 핵심은 헌법으로 보장되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구체화한 “최저생계비” 개념의 폐기 내지 무력화에 있다.

 

지금까지「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개념은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뜻하는 ‘최저생계비’였다.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에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여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것이「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을 관통하는 기본논리였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의 시행으로 국가는 적어도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만큼 급여를 실시할 구체적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 12월 9일 통과된 개정안은 선정과 보장수준의 법적 기준으로서의 최저생계비 개념을 폐기하고, 대신 각 부 장관이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 별로 선정기준과 보장수준을 별도로 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의 기본골격에 해당하는 위 내용을 해체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기존의 급여방식을 “All or Nothing”이라 명명하며 문제점 해소를 위해 선정기준을 다층화하여 탈수급요인을 제고하였다고 설명한다. “All or Nothing”이라는 표현은 마치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모든 것을 가진다는 인상을 심어주지만,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보장되어 왔던 것은 “Minimum”에 불과하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하면 Nothing을 받게 된다는 점 또한 현행법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현행「국민기초생활 보장법」제2조제11호와 제7조제3항에 따르면 수급자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계층으로서 소득인정액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 이하인 계층(“차상위계층”)에 대해 가구별 생활여건을 고려하여 예산의 범위에서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 장제급여와 자활급여의 전부 또는 일부를 실시할 수 있다. 현행 시행령은 차상위계층을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0% 이하인 사람으로 정하고, 차상위계층에 대해 시행하는 급여를 자활급여로 한정하고 있다. 그동안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의료급여, 주거급여 등을 실시하지 않았던 것일 뿐, 법률적 한계 때문에 실시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개정을 추진한 정부여당은 법적 기준으로서의 최저생계비 개념을 폐기하고 급여별로 해체하면 장래 급여별로 보호의 범위가 확대되고 수준이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제도개편을 통해 빈곤층에게 보다 적정한 급여를 보장하고 선정기준을 다층화하려면 최저생계비 개념의 폐기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으로 보호의 범위가 크게 확대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예산증가액의 가장 큰 부분(약 1조1,100억원)을 차지하는 부양의무자기준 완화는 개정된 내용과 관련이 없다.

 

각종 급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의 선정기준이나 보장수준은 개편 후에도 현재와 차이가 없다. 근로능력 있는 수급자가 탈수급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의료급여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급여의 수급요건이 완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탈수급 요인을 제고하겠다는 정부의 설명을 무색하게 만든다. 주거급여는 국토부장관이「주거급여법」에 따라 정하는 선정기준과 보장수준에 따라 실시될 예정이다. 국토부의 계획에 따르면 소득기준 완화로 수급자가 약 24만 가구가 늘어날 예정이지만, 부양의무자기준은 그대로 적용된다. 가구당 월평균 지급액 또한 월 9.5만원에서 11만원으로 늘어나는 것에 불과하다. 즉, 그동안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아무런 급여를 받지 못한 빈곤층은 여전히 아무런 급여를 받지 못하며, 소득이 최저생계비를 조금 웃도는 빈곤층 중 일부는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금액은 실제 임대료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가구별 평균 11만원에 불과하고 그것마저도 본인은 물론, 부양의무자도 모든 금융거래가 낱낱이 드러나는 금융정보제공동의서를 제출해야 받을 수 있다. 교육급여 또한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현재 「초ㆍ중등 교육법」에 따른 저소득층 교육비지원의 범위를 크게 벗어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제정되고 ‘최저생계비’가 법정화되기 전인 1994년 어떤 노부부는 1인당 생계보호급여를 월 65,000원으로 정한 생계보호기준이 월 최저생계비(1994년 기준 1인당 대도시 월 190,000원, 중소도시 178,000원, 농어촌 154,000원 정도)에도 미치지 못하여 헌법이 보장한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생계보호의 수준이 일반 최저생계비에 못미친다 하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곧 그것이 헌법에 위반된다거나 청구인들의 행복추구권이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하며, 헌법소원을 기각하였다(헌법재판소 1997. 5. 29.자 94헌마33 결정).

 

위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었던 해에 IMF 금융위기가 터졌고, 1999년 국민청원을 거쳐「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제정되면서 최저생계비가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최저수준을 보장하는 법적 마지노선이 되었다. 지난 12월 9일 “앞으로는 좋아질 것이다”라는 막연한 약속을 받는 대신, 우리가 잃은 것은 국가에 적어도 최저(Minimum)의 생계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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