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에게 보내는 공개편지④] 최저생계비 현실화가 진정한 ‘친서민’


[최저생계비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에게 보내는 공개편지④]


곧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생계비를 결정합니다. 참여연대는 지난 2004년에 이어 두 번째로 올해 7월 한 달동안 성북구 장수마을에서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캠페인을 진행하였습니다. 정부에서 정한 최저생계비가 과연 적정한지 실제 체험을 통해서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에 체험결과를 바탕으로 체험에 참여한 체험단과 전문가들이 중앙생활보장위원들에게 최저생계비의 현실화와 계측방식의 변경을 요구하는 릴레이 공개편지를 보냅니다.



7월 한 달 동안 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 캠패인에 1인가구로 참가한 안성호입니다. 한달간의 체험은 최저생계비에 대한 스스로의 편견을 발견하고 오해를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글로만 보고 알았던 최저생계비와 현실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혹시 최저생계비를 결정하시는 위원님들도 저와 같은 오해를 하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체험 중에 방문을 요청드렸으나 만나뵐 수가 없었기에 편지로 대신합니다. 제가 몸으로 느낀 현실이 최저생계비 결정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설명 : 2010년 체험단의 생활모습)

최저생계비 산정기준 가구와 실 수급자의 괴리


최저생계비는 가상의 4인 가족을 기준으로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으로 정해집니다. 그런데 그 금액으로는 건강한 2,30대로 구성된 체험단도 한 달을 날 수가 없었습니다. 가상의 4인 가족의 삶이 현실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 봐도 구현이 안됩니다. 더 큰 문제는 실제 수급을 받으시는 분들은 가상의 4인가족과는 달리 몸이 편찮으신 어르신과 장애인 가정 등 근로능력이 없는 분들이 대다수라는 것입니다. 최저생계비 산정의 기준인 ‘일하는 건강한 아버지와 초등학생 두 자녀로 구성된 4인 가구’가 최저생계비 수급자 중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장애보조기구에 대한 추가 지출이 필수적인 장애인, 병원비 지출이 생존과 직결되는 어르신들의 현실과 최저생계비는 동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해진 품목대로 살 수 있는 수급자는 지구상에 아무도 없어

최저생계비는 11개의 비목을 설정하고 각 비목별 생활필수품을 선정하여 전체품목 금액의 합으로 결정을 합니다. 반팔셔츠 2벌, 속옷 2벌로 2년을 나야 한다는 따위의 것들이 그렇게 나온 것이지요. 지난 2007년에는 핸드폰을 포함시켜야 하느냐를 놓고 고민하셨다지요. 그런데 위원님,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고민하실 필요가 없으실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는 그 품목대로 살 수 있는 수급자가 없으니까요. 품목에서 제했다고 해서 필수품인 핸드폰을 쓰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외식도 두 번씩 하라고 반영되어 있고, 문화생활도 하라고 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굶지 않고 사는 것만도 감지덕지랍니다. 교통비, 피복비, 주거비의 비율을 정하고, 속옷이 몇 벌인지 몇 년을 입어야 하는지 정하는 것이 현실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더란 말입니다.

4인가족이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21만원짜리 방이 과연 있을까요?

최저생계비는 친절하게도 각 비목별 품목과 금액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1만원짜리 운동화를 2년을 신고, 1897원짜리 팬티 6장으로 3년을 지내야 하는 따위의 것들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정해진 품목 외에는 다른 것은 생각지도 말라는 의도로 비춰질까 걱정도 되고, 대한민국 정부의 가난한 사람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러운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위원님, 더 큰 문제는 백 번 양보하고 정해진 대로만 살아 보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4명식구가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21만원 짜리 방이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하루 6,300원의 식비로 어떻게 끼니를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만난 동자동 쪽방에 사시는 할아버지는 지난 7월 방세 20만원 내고, 병원비가 6만원이 나오는 바람에 10만원 남짓한 돈으로 한 달 끼니를 해결하셔야만 했습니다. 병원에서 추가 검사를 받아야 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안에 틀어박혀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이 전부인 그 분의 삶이 최저생계비의 현실입니다.


저는 1인가구 최저생계비 50만4천원으로 한 달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받을 수 있는 최대금액은 42만원 정도이지요. 1인가구 주거비로 책정되어 있는 87,000원짜리 월세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저는 87,000원을 주거비로 계산하여 차감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남은 금액으로 1달을 지낸 결과 몸무게가 3kg이 줄었고, 4만원의 적자가 났습니다.


현실에서는 절대 수급자가 될 수 없는 20대의 건강한 청년이 실제로는 불가능한 금액을 받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저렴한 주거비를 내고, 난방비가 들지 않는 여름 한 달을 지냈는데 적자가 났습니다. 몸이 아픈 고령의 독거노인이 실제 받는 40만원 중 월세 20만원을 제하고 추운 겨울을 나는 현실을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합니다.

현재의 최저생계비로는 먹는 문제 이외의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어

최저생계비의 결정은 적지 않은 국민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위원님, 한 달 체험은 그것이 더 이상 삶의 질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최저생계비로는 먹는 문제 이외의 삶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최저생계비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비용이어야 한다고 법에 정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 달간의 현실의 최저생계비는 건강은 고사하고 생존을 이어가기에 벅찬 수준이 되었습니다. 법에 따라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 법치이고, 빈곤에 허덕이는 수백만 국민들의 삶을 보살피는 것이 진정한 ‘친서민’일 것입니다. 부탁드립니다. 부디 법대로 최저생계비를 현실화 시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성호(2010년 1인가구 체험자)

공개편지는 오마이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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