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센터(종료) 미분류 1999-06-15   490

[07호] 기획번역(2) 과학논쟁*

-미국에서 대중적 논쟁의 역동적 성격-

1976년 뉴욕 시에 위치한 미국 자연사 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앞에서는 동물 권리 운동가(animal rights activist)들이 동물들에게 불필요한 잔혹함과 고통을 부과한다고 생각되는 실험들을 중단시키기 위해 피케팅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 이제 동물 실험에 항의하는 사람들은 실험실을 부수고 동물들을 훔쳐내 풀어주면서 도덕적 원칙들에 근거해 모든 동물 연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였다. 동물 연구에 관한 이러한 논쟁은 과학적 발전과 기술적 응용들에 대해 지난 20여 년 동안 급격히 증가해 온 수많은 논쟁들 중 단지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동물 권리 운동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의 제기자(protester)들은 자신들의 전술의 수위를 점차 높여 가면서 요구를 증가시켜 왔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1981년부터 1994년까지의 기간 동안 인간의 태아를 이용하는 연구에 연방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 성공했다. 동성애 인권 운동가들은 AIDS 바이러스 테스트의 활용을 둘러싼 절차 및 지침들에 도전해 왔다. 도덕적 우려를 지닌 이의 제기자들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농부들과 힘을 합쳐 생명공학의 응용을 가로막아 왔다. 종교 집단들은 공립 학교에서 진화생물학을 가르치는 것에 반대해 왔다. 그리고 환경운동가들은 지구의 자원을 위협하는 거대기업들의 정책에 맞서 싸움을 벌여 왔고, 거대기업들 역시 규제를 강제하려 하는 과학위원회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다.1

이러한 논쟁들을 포함해 과학기술에 관한 여타의 다양한 논쟁들은 의미와 도덕성을 둘러싼 투쟁이자 자원의 분배에 관한 투쟁이며 권력과 통제가 어디에 위치하는가를 두고 싸우는 투쟁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과학은 점차적으로 미국 사회에서 심대하게 논쟁되어 온 가치들을 놓고 싸움을 벌이는 영역이 되어 왔다. 우리는 효율성을 높이 평가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참여를 소중히 여긴다. 우리는 개인의 자율성을 주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 질서를 기대한다. 우리는 과학지식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믿음에 대해 과학적 사고방식이 영향을 끼치는 것은 두려워한다. 과학기술에 관한 논쟁들은 개인의 자율성과 공동체의 필요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드러내 보여준다. 논쟁들은 과학과 다른 사회제도들―예컨대 언론이나 규제체계, 법원 등―이 서로 맺고 있는 양면적인 관계를 반영한다. 또한 논쟁들은 정부의 적절한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 기술전문가들의 역할이 증가하는 것에 대해 나타나는 우려, 그리고 과학적 노력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도구주의적 가치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불편함 등을 부각시킨다 (Ezrahi, 1990).

논쟁들은 과학의 정치학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고 대중의 태도를 탐구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준다. 논쟁들이 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이들을 기술하고 분석하는 연구들도 그동안 증가해 왔다. 이 논문에서 나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이 분야의 연구문헌들에 근거해, 과학 논쟁들이 특정한 과학적 실행의 가치에 대한 정치적 긴장뿐만 아니라 도덕적 우려를 표현하게 될 때 지니는 역동성을 분석할 것이다.

대중적 양면성의 원천

과학기술에 관한 논쟁들은 종종 과학의 발전과 응용에 대한 정치적 통제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과학에 대한 이의 제기들은 점차로 도덕적인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많은 최근의 논쟁들은 도덕적 절대성(moral absolutes)이라는 관점에서 표출되고 있다. 예컨대 태아 연구는 "그릇된" 것이므로 임상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무관하게 포기되어야 한다. 동물 실험 역시 마찬가지로 부도덕한 것으로, 그것이 의학지식에 기여하는 바에 상관없이 금지되어야 한다. 많은 과학 비판자들―창조론자들, 낙태 반대론자들, 생태주의자들, 동물 권리주의자들―은 자연, 인간 태아, 여성, 혹은 동물들을 [목적 달성을 위한] 자원이나 수단으로 바꿔 버리는 도구주의적 행위들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그들이 지닌 도덕적 우려는 1970년대에 정치적 도전으로 시작했던 많은 반대 운동들을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바꾸어 왔다.

2차 대전 이후의 고도 경제성장 시기 동안에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해 대체로 별다른 의문이 제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위험에 대한 인식이 점차로 생겨나면서 진보에 대한 신념은 약화되었다. 기술적 발전들은 이제 이웃들을 위협하고 환경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었으며, 육우(肉牛)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약물은 암을 일으키고 있었고, 산업적으로 효율적인 생산 과정은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기술을 통제하고자 하는 노력마저도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듯이 보였는데, 이는 새로이 제정된 표준들과 규제조치들이 [삶의 질 향상이라는 가치를 절대적인 지향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과 경제발전에 대한 기대 사이에서 저울질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2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중이 기술 발전을 지지하는 정도가 지난 20년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았음을 여론 조사 결과가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Miller, 1990). 설문에 응한 사람들 대부분은 과학기술이 중요한 [사회적] 목표를 성취하는 데 있어 필요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으며, 기술이 가져오는 혜택이 그것이 낳을 수 있는 위험을 능가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특정한 계획들의 진행을 저지하고 기술정책 결정에서 대중의 참여를 증가시키려는 정치적 노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후에는 심지어 과학 연구들조차도 정치적 조사로부터 면제될 수 없게 되었다. 예컨대 낙태 반대론자들은 태아 연구에 대한 연방 정부의 자금 지원을 봉쇄했고, 빠른 속도로 성장한 동물 권리 운동은 생의학 연구(biomedical research)의 관행에 규제와 제약을 가져왔다. 그리고 내부고발자(whistle-blower)들로부터의 도전은 연구자 공동체에 대한 의회의 조사와 감독을 불러왔는데, 이는 정치적 규제나 대중적 통제에 의해 간섭받지 않는다는, 연구자 공동체가 오랫동안 누려 오던 자율성을 위협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경향이 지니는 중대성을 지적해 왔다. 1978년 3월, "과학연구의 한계(The Limits of Scientific Inquiry)"라고 이름붙여진 {다이달로스 Daedalus} 특별호에서는 '어떤 종류의 연구는 아예 행해져서는 안된다'라는 주장에 대해 고찰하였다. 같은 해에 열린 "과학에 대한 사회적 평가(Social Assessment of Science)"라는 의제를 내건 회의는 과학 연구에 대해 규제를 부과하려는 국제적인 노력에 대해 고찰하였다.3 과학 연구가 좌·우 세력 모두로부터의 공격에 직면하게 됨에 따라, 1980년대 내내 줄곧 과학의 "위기"에 관한 얘기들은 끊이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이의 제기 집단의 행위를 19세기에 나타났던 러다이트주의(Luddism)4―즉, 과학기술 변화에 대한 완전한 거부―의 일종으로 간주하였다. 예컨대 즈비그뉴 브르진스키(Zbigniew Brzezinski) 같은 이는 그러한 반대를 두고 "역사적 퇴물이 죽어가면서 내지르는 소리"라고 했다 (Brzezinski, 1970). 그러나 반면 테오도어 로잭(Theodore Roszak) 같은 이는 그러한 이의 제기가 "도덕적으로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 책임, 이상을 창조해 내야 할 책임, 공공 조직과 정부 기관들을 통제해야 할 책임, 파괴자들에 대항해 사회를 지켜야 할 책임, 이 모두를 방기해 버린" 사회 속에서 긍정적이고도 필요한 힘이 된다고 믿었다 (Roszak, 1968, p. 22).

오늘날의 논쟁들은 미국 사회에서 대중이 과학에 대해 갖고 있는 양면적 태도의 오랜 역사를 그 속에 반영하고 있다 (Mazur, 1981). 과학적 판단의 권위에 대한 수용은 오랜 기간 동안 불신 및 두려움과 함께 존재했는데, 이러한 사실은 예방접종과 같은 의료상의 혁신이나 생체 해부와 같은 연구방법에 대해 초창기에 반대가 나타났다는 점에서 엿볼 수 있다. 과학자들을 "현대의 마술사", "놀라운 일들을 해낼 수 있는 기적의 사람" 등으로 여겼던 낭만주의적 관점은 대중문화 속에 널리 퍼져 있던 프랑켄슈타인 박사(Dr. Frankenstein)나 스트레인지러브 박사(Dr. Strangelove)와 같은 미친 과학자들의 부정적 이미지들과 공존해 왔다 (Roszak, 1974, p. 31).

부분적으로, 대중들이 지니는 양면적 태도는 시민의 힘을 위협하는 듯 보이는 과학의 난해함과 복잡성에 대응해 나타난 것이었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전문지식(expertise)이 점점 더 크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됨에 따라 민주적 과정에는 제한이 가해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Goggin, 1986).5 이에 대해 활동가들은 과학기술에 관한 정책결정에 더 많은 참여를 요구하면서 심사위원회(review board)나 정책결정 집단 등에 참여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성인들 중 과학 정책의 쟁점들에 관심을 가지면서 동시에 논쟁들의 기저에 깔린 논거들을 이해하고 평가할 정도의 충분한 과학적 소양(literacy)을 지니고 있는 이들은 단지 5% 정도에 불과하다 (Miller, 1990). 따라서 논쟁들은 종종 특정한 기술적 세부사항들보다는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끌어내는 정치적 쟁점들에 더 많이 연관된다. 즉, 그 논쟁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회진보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이끌려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로 사회가 점점 양극화되고 있는 상황을 나타내 보여준다 (Richards, 1988). 그 논쟁들은 또한, 특정한 목표의 실행을 추구하는 프로그램화된 의제를 갖고 있는 이들과 책임(accountability), 책무(responsibility), 권리에 관해 우려하는 도덕적 시각을 갖고 있는 이들로 양극화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몇몇 논쟁들(예컨대 초전도 초충돌자[superconducting supercollider]6에 관한 논쟁)은 주로 전문가들, 윤리학자들, 정책엘리트들에 의해 쟁점 토론이 이루어지는 정책 수준에서 진행된다. 반면 다른 논쟁들(예컨대 과학 연구에서의 동물 사용에 관한 논쟁)은 사회운동과 시민집단들이 관여하는 대중적 차원의 이의 제기이다. 때로는 논쟁의 관심사가 과학기술이 직접 야기하는 결과보다는 과학기술과 연관되어 있는 권력관계에 맞추어지기도 한다. 이의 제기들은 특정한 기술관련 의사결정에 반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형성할 수 있는 시민들의 능력이 점차 감소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일 수 있다. 또한 과학 그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혹은 도덕적 선택을 감추기 위해 과학적 수사(修辭)를 동원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일 수도 있다 (Fischer, 1990).

권력, 책무, 그리고 책임의 문제들은 과학 논쟁들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오고 있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논쟁들이 지닌 성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까지, 논쟁들은 당시의 정치 생활 속에 널리 퍼져 있었던 소위 '권위의 위기(crisis of authority)'를 나타내고 있었다 (Salomon, 1977). 그리고 그 논쟁들은 특정한 이해관계에 영향을 주는 결정들에 대항해 지역 집단들이 기꺼이 운동의 흐름을 만들어낼 용의가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이 되면서 이의 제기자들은 점점 더 과학에 대한 자신들의 공격을 권리에 관한 도덕적 언어를 써서 표현하고 있다.

1990년에 야론 에즈라히(Yaron Ezrahi)는 {이카루스의 추락 The Descent of Icarus}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과학에 대한 공격은 사회에서의 과학의 역할을 파악함에 있어 주요한 개념상의 변화를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20세기를 매듭짓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과학의 지적·기술적 진보는 과학이 자유민주주의 정치의 수사 속에서 하나의 세력으로서 눈에 띄게 쇠퇴한 것과 동시에 일어났다." (Ezrahi, 1990, p. 13).

논쟁의 유형 분류

논쟁들을 다룬 여러 연구들은 논쟁의 시발을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도덕적 우려들에서 찾고 있다 (Engelhardt & Caplan, 1987; Graham, 1979;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Institute of Medicine, 1991). 논쟁의 첫번째 유형으로 들 수 있는 것은 가장 격렬한 양상을 띠며 또 해결하기 힘든 유형으로, 과학 이론이나 연구 관행의 사회적, 도덕적, 종교적 함의와 관련된 것들이다. 공립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둘러싼 논쟁은 미 연방 대법원의 결정이 이 문제에 종지부를 찍은 듯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지역 학구(學區) 수준에서는 끊이지 않고 지속되어 왔다 (Nelkin, 1984). 동물 실험의 관행은 동물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도덕적으로 반대하는, 전투적인 동물 권리 운동을 낳았다 (Jasper & Nelkin, 1992). 1970년대부터 이미 존재했던 태아 연구 반대 움직임은 1980년대 들어 태아 조직의 새로운 의학적 이용법이 개발되면서 더욱 확산되었다 (Maynard-Moody, 1992). 그리고 생명공학 기술을 통한 형질전환 동물(transgenic animal)의 창조는 "자연적인" 생명 형태에 간섭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신념을 지닌 집단들의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Krimsky, 1991). 이러한 논쟁들을 비롯한 여러 논쟁들은 미국 사회에서 도덕성이 대단히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심지어 생의학적 연구가 의학적 치료에 있어 극적인 향상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비판자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신념을 위협하는 특정 영역의 과학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중단시키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생식 과정에 개입하거나 태아 조직을 이식이나 연구에 사용하는 등 새로운 의료의 가능성이 등장함에 따라 이들 역시 도덕적 논쟁의 초점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치료상의 혜택을 들어 이런 방법들을 옹호한 반면, 다른 이들은 거기서 단지 잠재된 오용의 가능성만을 보았다. 비판자들에게 있어 여성을 대리모로 이용하거나 동물이나 태아를 연구에 이용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위로, 개성(personhood)의 관념을 위협하고 근본적인 신념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들 비판자들은 단지 특정한 연구 관행들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연구의 근저에 깔려 있는 기본적인 가치들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유형의 논쟁은 환경을 중시하는 가치들과 정치적 혹은 경제적 우선사항(priority)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 보여 준다. 상당수의 논쟁들은 발전소나 유독 폐기물 처리장과 같은 유해 시설들을 인근 지역에 위치시키려는 결정에 의해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위협받을 때 일어난다 (Brown & Mikkelski, 1990).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런 갈등은 여러 지역공동체들로 하여금 장기간에 걸친 정치적 행동을 취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 열풍이라고 이름붙여져 왔다 (Freudenburg, 1984). 그들은 위험의 분배에 있어서의 형평성, 기술관련 의사결정에서의 시민의 역할, 전문지식에 대한 지역공동체들의 접근가능성 여부 등에 관해 문제를 제기했다. 환경을 중시하는 가치를 둘러싼 유사한 긴장은 기술적 결정들이 전지구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 우려가 증가하고 있는 데서도 표출되고 있다. 오존층 파괴의 위협(Brown & Lyon, 1992)이나 초대형 유조선 사고로 인한 원유 유출(Clarke, 1992) 등은 지역 정치의 맥락에서는 사실상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을 제기한다. 그러나 지역 단위의 정치 기구들과 경제적 이해조직들은 종종 단기적인 경제적 혹은 정치적 긴요성을 반영하여 논쟁의 소지가 있는 정책 선택을 지지하곤 한다. 그러한 쟁점들은 기술 변화에 의해 야기된 전지구적 차원의 환경 문제로 논쟁의 초점을 다시 맞추어 온 "새로운 환경주의(new environmentalism)"를 생성시켜 왔다 (McGrew, 1990).

세번째 유형의 논쟁은 산업적·상업적 관행과 연관되어 사람들의 건강에 가해지는 위해, 그리고 그 결과로 위험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과 경제적 이해조직들 사이에 나타나는 대립에 초점을 맞춘다 (Rosner & Markowitz, 1991). 우리는 각종의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요소들(PCBs, 프레온, 방사선, 식품첨가물에 든 발암물질 등―이 리스트는 이미 길고 점점 늘어나고 있다)에 대한 경고들에 의해 포위되어 있다. 그리고 위험이 어떤 성질의 것이며 어느 정도로 존재하는가에 내재한 불확실성은 대중의 두려움을 더욱 부채질해 왔다. 기술적 정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이는 필연적으로 서로 갈등하는 해석들이 나타날 수 있는 상당한 여지를 열어 주게 된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잠재적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역량이 그동안 향상되어 오긴 했지만, 그럼에도 대중은 과학자들 사이의 논쟁에 의해 혼란에 빠져 있다. 우리는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가? 작업장은 얼마만큼 위험한가? 위험의 가능성은 잠재적 이익과 견주어 보았을 때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위험과 관련된 논쟁들은 규제나 안전 표준의 확립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상호경쟁하는 우선사항들을 균형있게 고려하는 것에 초점을 맞춤과 동시에, 대중과 위험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Nelkin, 1985).

기술적 응용에 관한 네번째 유형의 논쟁은 개인의 기대와 사회 혹은 공동체의 목표 사이에 나타나는 긴장을 반영한다. 전형적으로 그러한 논쟁들은 정부 규제에 대해 흔히 벌어지는 논쟁의 경우에서와 같이 [개인의] "권리(rights)"의 문제를 중심으로 형성되며, 새로운 과학기술의 도입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수돗물 공급이 불소화된다면, 보편적인 예방접종이 의무화된다면, 혹은 특정 교과목의 공부가 공립 학교의 교과과정에서 의무적인 것이 된다면, 모든 이들이 그 결정에 따라 그것의 결과를 공유해야만 한다. 만약 AZT와 같은 약품의 사용이 제한된다면 그것의 사용을 원하는 사람은 이를 거부당할 것이다. 대안적인 암 치료법을 정부가 금지하는 것은 환자가 스스로의 의료방식을 선택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Markle & Peterson, 1980). 총기류 통제의 입법화는 개인의 선택의 권리를 위협한다. 정부는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의 행위에 제약을 두지만,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약은 전문직업계의 관할영역 보호나 불필요한 정부 간섭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과학의 발전은 종종 개인의 권리를 위협하는 것으로 인지되었다. 예컨대 신경과학(neuroscience)의 진보는 개인의 행위에 사회적 통제를 가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 (Nelkin & Tancredi, 1994; Valenstein, 1980). 인간의 행위를 생물학적 근거에서 설명하는 이론들은 유전자결정론이 재생산의 권리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Hubbard & Wald, 1993).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의 교육이 자녀들의 종교적 신앙을 유지시킬 자신들의 권리에 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한다. AIDS 환자들은 자신들에게 AIDS 바이러스 테스트를 요구하고, 또한 양성 반응시에 배우자를 밝힐 것을 요구하는 것이 자신들의 프라이버시권을 위협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연구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통제가 자신들이 지닌 자유로운 탐구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많은 논쟁들은 정부와 규제의 적절한 역할은 어떤 것인가, 또 공동체의 가치나 공공보건의 요구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정도는 어디까지인가의 문제에 답함에 있어 미국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긴장관계에 근거하고 있다.

논쟁에는 이 외에도 다른 유형들이 있다. 초전도 초충돌자, 휴먼 게놈 프로젝트, 그리고 우주 계획와 같은 거대과학 프로젝트들은 과학 내에서 자원 배분의 형평성의 문제를 놓고 갈등을 일으켜 왔다 (Dickson, 1984). 생명공학 영역에서 상업적 이해관계가 점차 영향력을 키워 가면서 산업-대학간의 협력이 확대되고 있는 현상은 특허와 재산권을 둘러싼 논쟁의 원천이 되어 왔다. 경쟁시장 속에서 기술혁신을 추진해 나가는 이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들의 보다 열린 소통을 통해 공공의 이익이 보다 잘 충족될 것이라고 믿는 이들과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Krimsky, 1991). 그리고 속임수(fraud)에서 연구자금의 유용에 이르는 과학적 비행(非行)의 사례들은 과학의 책임과 과학자들의 자기규제 능력에 관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논쟁들은 부분적으로 대중적 신뢰의 상실, 그리고 대의제 기구들이 공공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신뢰의 쇠퇴를 나타내고 있다. 비판자들은 연구에서의 우선사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즉, 과학은 공공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단지 과학자들의 출세를 위한 것인가? 기술 발전은 사회에 혜택을 주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협소한 경제적 목표만을 충족시키고 있는가? 논쟁들이 지니는 중요성은 부분적으로 그것이 정치적 관심사를 표명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논쟁들은 또한 과학의 역할에 관한 도덕적 입장표명이기도 하다. 논쟁들의 이러한 두 가지 측면들―정치적 차원과 도덕적 차원―은 추가적인 분석을 필요로 한다.

정치적 도전으로서의 논쟁

과학 논쟁에 의해 제기되는 정치적 도전은 문제가 되는 쟁점의 성격과 영향을 받는 공동체의 범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지닌 즉각적이고 실용적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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