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경축사와 노동부의 노동정책에 관하여

들어가며

김대중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밝힌 국민의 정부 2기 정책 기조를 뒷받침하기 위해 노동부가 밝힌 후속조치들을 보면, 일자리 창출을 근간으로 한 실업대책 추진에서 2,000년 실업자 수를 100만명 이하로 줄이고, 2,002년까지 20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여 사실상의 완전고용 실현,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의 내실화, 지식기반 산업의 인력개발 및 신지식인 육성, 그리고 저소득 근로자층에 대한 지원 강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등이 그 골자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정부 스스로 구 시대 성장위주의 사회발전전략이 문제가 있으며 새로운 사회발전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정부 스스로 인식한 것으로 일견 보이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간 노동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해 온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은 향후 시행령 및 예산문제 등의 처리과정을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의미있는 일로 주목할만 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내세운 노동정책들은 그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구시대의 사회발전전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 이미 추진 중인 사항들을 다시 모아 말만 바꾸어 발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우기 신임 노동부장관이 노동부 후속조치와는 별도로 과거 정권 하에서 이미 여러 번 있었던 낡은 ‘신노사문화 창달’ 정책을 1천 3백억 이상의 예산을 배정하여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한 계획은 21세기 비젼 창출과는 관계없는 구 시대의 개발전략 발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의 정책들은 “노동”을 배제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후유증을 수습하기 위한 일시적 수습책이며,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실업정책에서 부산에 360억 예산을 들어 “인력개발 타운’을 건설한다는 발표는 다분히 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전시 정책들이라 여겨진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노동부의 8월 19일 발표내용에 대한 약평

노동부가 8월 19일 발표한 주요 내용들을 살펴보기 전에 강하게 드는 생각은 정부가 노동현실 – 실업의 현실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노동정책 방향은 정부가 작금의 노동문제의 본질과 노동상황을 매우 그릇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는 우려를 들게 하기 때문이다.

■일자리 창출을 근간으로 한 실업대책 추진 — 2,000년 실업자 수를 100만명 이하로 줄이고, 2,002년까지 20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여 사실상의 완전고용 실현

실업정책을 보면, 대량실업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도 없고, 일자리 창출에 대한 현실적이며 실효성 있는 정책적 대안이 없는 채, 구호 수준의 추상적인 정책방향에 불과하다. 현실은 어떤가 ? 최근의 그나마 지표상의 실업률 감소도 성장-고용증대의 순순환 효과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계절적 요인과 정부 재정 지출의 임시적 효과에 의한 것이다. 재정경제부와 노동부 등이 추진한 실업대책으로 지난 6월의 실업률이 6.2%까지 감소했으나, 장기실업자 비율은 지난해 6월 8.5%에서 오히려 17.8%로 두배 이상 급증, 고용사정은 구조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이는 실업감소의 상당 부분이 매월 40만명씩 투입하는 공공근로사업등 재정지출을 통한 응급처방이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실업대책 재정이 점차 고갈되면서 공공근로 등이 축소되기 시작한 서울 지역 등에서는 실업률이 다시 증가하고 있음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노동통계 지표들을 자세히 검토해보면 성장률과 고용증가율의 격차가 매우 커져 있음이 두드러지며, 서구에서 나타났던 “고용 증대 없는 성장”이라는 모습이 엿보인다. 그나마 늘어난 일자리가 저임금, 임시직의 불안정고용 부문에 집중되고 있으며 비정규직의 비율이 53%를 이미 넘어섰다는 점도 널리 알려지고 지적되었던 바이다. 게다가 대우그룹, 공공부문 등을 위시로 구조조정, 매각, 민영화을 앞두고 있는 많은 사업장들에서 앞으로도 계속 실업자들이 발생될 수밖에 없음을 감안하면 지금은 “완전고용”이라든지 “일자리 200만개 창출” 등의 구호를 내세우는 등 구체성 없는 구태의연한 노동시장 정책을 반복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 점은 정부의 정책평가위원회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정책평가위원회는 8월 28일 정부업무 상반기 평가 보고회에서 특히 실업대책과 중산층 생활안정 대책은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개선 대책이라기보다 단기적인 선심성 정책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부실금융기관 정상화를 위해 총 51조10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정부는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 추궁은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책임 소재 규명 작업은 52개 대상 금융기관 중 25개 기관에 대해서만 검사가 이뤄진 데다, 그것도 주로 퇴출된 금융기관 위주였다. 정보통신부가 추진한 소프트웨어산업 중심지 육성을 위한 [소프트타운] 계획은 현실성이 결여된 대표적인 전시성 사업으로 지적됐다. 매년 300개 이상 기업설립을 유도하고, 소프트웨어업체 밀집지역에 금융기관을 유치하고 각종 부담금을 경감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정책수단은 없이 목표만 제시했다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 등 실업문제에 관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수단이 없다.

부연하면 실업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논하기 앞서, 정부 실업정책은 IMF와 정부의 일방적인 대량정리해고위주의 고용조정, 노동시장의 수량적 유연화에만 초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정책의 기조가 근본적 문제임에도, 8.15 경축사와 노동부 후속조치에는 이에 관한 반성은 커녕 언급조차 전혀 없는 것이 1차적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방적인 정리해고 위주의 고용조정 성격을 띈 구조조정, 노동시장의 수량적 유연화 정책이 지속되는 한 대량실업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국민경제의 종속과 임시 일용직 등 비정규직의 급증 등 고용구조의 질 악화, 소득분배구조의 악화, 나아가 국내시장의 축소로 인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경기회복은 이루어 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정책내용에 있어서도 첫째로, 일자리 유지 및 창출의 유력한 정책수단으로 세계 각국에서 실시하고 있고, 김영삼 정부 시절의 노사관계개혁위원회, 현정부의 1기 노사정위원회 이래 지속적으로 노동계가 요구해 오고 주요하게 검토되어 온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으며, 둘째로, 기업차원에서 자행되고 있는 “탈법적 정리해고에 대한 규제” 정책의지를 찾아볼 수 없고, 셋째로, 일자리 창출정책에 있어서도 중소 벤처기업 및 지식기반 산업육성 등 추상적인 차원에서 관성적인 정책대안 제시만 있을 뿐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대안이 없다. 예컨대,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과 함깨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확대 등 구체적 지원방안, 노동자 기업인수를 통한 고용유지, 공공근로사업의 내실화와 제3섹터로의 발전적 집중, 교육 육아 사회복지 등 사회보장부문에 대규모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 등 그간 노동계가 요구해 온 정책수단은 찿아볼 수 없다.

■고용보험제도의 내실화 : 고용보험제도의 확대(“99. 정기국회 법개정 추진), 실업급여 수준 및 급여법위 확대

이는 여전히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분적으로 긍정적인 조치들도 실효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고용보험제도 확대의 관건적 사안은 “일용근로자 고용보험 적용”이라는 점은 그간 누누히 지적되어 온 바다. 노동부에서는 중기적으로 검토될 문제라 하였으나 이는 “99년 중 법개정으로 실시되어야 할 사안이며 관련 제도의 마련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아울러 차제에 일용근로자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과 함께 “실업부조 제도 도입”으로 실업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의 토대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는 노동부 후속조치에서 발표한 실업급여 수준 및 급여범위 확대 등의 부분적인 조치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고용보험제도의 내실화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사안은 고용보험 관리 운영의 민주화이다. 스웨덴의 경우는 노동조합에서 직접 고용보험을 관리운영하고 독일의 경우에는 노·사·정 동수 이사회에 의해 연방고용청과 지방고용사무소가 운영되고 있음에 비해 돈 한 푼 내지 않는 노동부가 관리운영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원리적으로 맞지 않다. 따라서 고용보험의 1/3은 정부 재정으로 부담하고 아울러 고용보험의 관리 운영은 노동조합에 맡기거나 최소한 노·사·정 동수로 구성되어, 형식적 심의가 아닌 실질적 심의, 의결권과 분기별 1회 정기회의, 위원의 자료제출 요구권 위원회 소집권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참고로 고용관련 각종위원회는 고용정책심의회, 고용정책전문위, 고용보험전문위, 직업능력개발전문위, 고용보험심사위, 지방고용심의회 등이 있다.

■산재보험제도의 전면 확대에 대하여

산재보험을 영세사업주를 포함하여 1인이상 전사업장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하여야 한다는 것은 그간 누누히 지적되어온 사항으로 환영할 만하다. 다만 이러한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행하는 사업 등 현재 시행령으로 제한되어 있는 적용제외 대상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 더불어 산재보험의 적용확대 뿐만 아니라 급여확대도 시급하다. 요양급여 제한, 통근재해 불인정, 직업재활, 사회재활 등 재활사업 미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여야 한다. 이번 정기국회에 정부가 제출한 산재보상법 개정안은 보험급여의 최고·최저 보상기준을 합리적으로 설정하여 사회적 형평성을 도모하자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한마디로 개악적 요소이다. 이것은 현재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는 휴업급여·상병보상연금을 노동부 장관이 고시하는 최저보상기준을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 고령노동자에 대한 휴업급여 제한제도 도입 또한 개악이다. 또한 산재보험제도의 내실화에서 산업재해보상위원회의 경우 실질적이고 민주적인 위원회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노동부 개정안외에 위원회 기능에 산재보험급여 전반에 대한 의결기능를 부여하고, 회의는 분기별 1회 이상 개최하며, 회의는 위원의 1/2이상의 직접 참석으로 개최하도록 개정되어야 한다.

■지식기반 산업의 인력개발 및 신지식인 육성

전체적으로 추상적인 방향만 설정되어 있을 뿐 구체적이고 실효성있는 정책대안이 없다는 생각이다. 또한 노동계의 지속된 요구에도 부합하는 구체적인 정책대안이 없다. 한마디로 문제의식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간 노동계의 일관된 요구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부실한 공공직업안정망(직업훈련 및 취업알선)의 확대, 즉 전문상담원의 최소 5,000명 이상으로의 확대와 읍 면 동 사무소 기능개편과 연계된 전국적 네트워크 구축, 관리 운영의 민주화 등과 함께 취업과 연계되지 않은 직업훈련의 개선, 노조 또는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교육훈련기관 지원 확대 등이었다.

■장애인, 여성 부문

장애인 고용 의무화는 국가·지방단체만이 아닌 기업에도 의무화하도록 하고 이에 대한 지원제도를 확대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장애인 고용촉진을 위한 관련 법령 정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여야 한다. 에바다 사회복지재단 등과 같이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발생하고 있는 강제 노역과 구타에 대한 진상조사와 관련자 처벌 및 관련 법령 정비도 필요하다. 여성의 경우 고용조정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정리해고되거나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신분이동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부당노동행위 엄벌대책이 세워져야 함에도 이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대책도 없다.

마치며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한국 노사관계의 현실과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 지금 노사관계의 가장 큰 문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창하며 사회적 합의틀이라는 노사정위원회를 꾸린 정부 스스로가 노동을 정치 행정의 “동반자(partner)”로 대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전히 노동을 통치의 “대상”으로 여기는 데서 오는 노정, 노사정간의 “신뢰의 상실”이다. 국민의 정부라는 현 정부 들어서서 IMF로 인한 실업문제와 노동자들의 생활상의 어려움, 부익부 빈익빈 문제를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노동사건 관련 구속자는 YS 정권보다 증가했으며 노동현장의 부당노동행위는 큰 폭으로 자행되고 있고, 노동행정의 지도 감독도 여전히 개선되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검찰과 노동부는 근로기준법상 주요 근로조건인 정리해고 반대를 요구하는 파업까지 불법파업으로 간주하고 공권력을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연히 노동현장은 극심한 생활상의 어려움 이외에도 정부와 자본에 대한 강한 배신감과 불신감을 갖게 된다. 노정간, 노사정간의 “신뢰”의 회복은 어디에서 비롯될 수 있을까 ? 8 15 경축사와 8 19 노동부 후속발표로 이를 이룰 수 는 없다. 이 문제는 정부차원의 새로우면서도 기발한 정책이 없어서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합의된 약속조차 이행되지 않았고 기왕의 잘못된 정책과 관행들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정부내에 기존의 개발전략에 익숙한 채 관성적으로 일하는 구시대의 관료들에서 비롯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개혁은 저항을 예견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현실화 될 수 있는 것이며 그 과정에는 인적, 제도적 개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며 개혁세력의 참여와 수구세력의 청산이 동반되어야 한다. 노사문제를 공안적 시각에서 통제하려는 일체의 관행에서 탈피하고 부당노동행위를 척결하는 것, 주요 경제정책과 노동시장 정책의 수립과 실행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 이를 통해 “노동”을 동반자로 대우하고 “노동의 마음”을 얻어내어 경제정책의 종속변수가 아닌 노동철학과 노동정책의 정립과 그에 입각한 집행만이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는 첩경이다. 그러나 구시대의 개발전략 패러다임에 익숙해져 있고 과거 정권에서 전혀 실효성이 없었던 신노사문화 창달정책을 구태의연하게 되풀이하여 주창하는 현 정부의 비젼 없음에, 세계 최하위인 사회복지 수준과 문화인 우리 현실에서 “복지” 앞에 “생산적”이라는 형용사를 어색하게 조합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신자유주의 논리” “시장논리”에 고개숙인 정부가 과연 그럴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게다가 최근의 경기회복은 그 회복의 내실과 지속성을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더욱더 이러한 분위기를 훼손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노동 시민사회단체 등 우리사회 진보적 개혁세력의 힘과 지혜가 더욱 더 요청되는 상황이다.

이병우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고용안정센터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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