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모호한 우리사회의 복지비젼

김대중 대통령은 8 15 경축사를 통하여 구체제의 개혁이라는 해체의 비젼과 "생산적" 복지국가의 실현이라는 창조의 비젼을 함께 제시하였다. 정치개혁, 재벌개혁, 세정개혁, 부패척결을 통한 구체제의 해체를 도모하는 동시에, 국민소득증대, 완전고용, 전국민의 중산층화, 생산적 복지를 통한 선진한국의 창조라고 하는 환상적인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2002년에는 국민소득 1만 2천 달러와 사실상의 완전고용을 이룰 것이며, 절대다수의 국민이 중산층이 되고, 서민층이 기본생활을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간개발중심의 생산적 복지정책"이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을 주요 정책도구로 제시하였다.

IMF이후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사회 안전망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한 현시점에서 복지정책을 통한 사회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복지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경험해 본 전문가라면 누구라도 적어도 두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인간개발 중심의 생산적" 사회복지 정책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왜 지금 생산적 복지의 청사진인가. 답을 먼저 말한다면, 생산적 복지는 아직 명료한 실체라기보다는 막연한 가능성에 불과하며, 또 하나의 총선용 복지청사진으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YS 정부도 총선을 1년 앞둔 1995년 4월, 느닷없이 삶의 질의 세계화를 선언했었다. 생산적 복지라는 용어는 그 때 등장하였다. YS 정부의 신경제론은 집권 2년 여 만에 성장과 복지의 양수레론으로 잠시 바뀌는 듯하였다. 그러나, 남은 집권기간 동안 YS 정부는 세계화의 신자유주의 노선과 사회복지의 확충간의 갈등사이에서 생산적 복지의 그림은 그려보지도 못했다. 복지다원주의의 선호를 분명히 하는 정도에 그쳤고, 용어 자체도 중도 폐기되었다.

그리고 4 년 후, 총선을 앞둔 비슷한 시점에서, 다시 생산적 복지가 살아났다. "인간개발중심의" 라는 수식어가 더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복지는 생산도 아니고, 인간능력개발도 아니다. 대개가 사회복지는 소비 내지 비용이라고 이해한다. 복지와 생산, 복지와 투자는 평등과 효율처럼 상호 배타적인, 영합의 개념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인간개발중심의 생산적 사회복지라는 조어자체가 아직은 상호 배치되는 개념들의 조합어로 이해될 뿐이다. 시장과 복지를 이렇게 대립개념으로 보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복지모형의 정서이다.

사회복지의 확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생산적이라는 수식어로 막연한 위로를 받는다. 생산적인 사회복지란 실재할 수 없는 허위개념이므로. 반대로, 사회복지의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생산적이라는 수식어를 복지행정의 효율화 정도로 가볍게 해석하거나 아니면 사회통합과 장기적인 생산성을 위한 사회민주주의적 복지모델로 이해 할 수 있다.

이러한 비젼의 모호성을 통하여 정부는 즉각적인 반대의 여론을 흡수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은 "비젼의 모호성"이 주는 단기적이고 공허한 정치적인 편익에 불과하다. 생산적 복지정책이 구체적으로 실체를 들어내는 단계에서는 제도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지지가 물거품이 되어버릴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의 정부가 지난 1년여 동안 추진해 온 다수의 사회복지관련 개혁작업들이 법 통과 이후에 실질적인 시행상의 난관에 부딪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경축사의 약속을 보면, 생산적 복지는 앞뒤가 맞지 않는 허위개념은 아닌 것 같다. 대통령은 누구든 정부가 정하는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게되며, 생계, 교육, 의료 등 기본생활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사회보험제도를 내실화하여 빈곤을 예방하며, 그리고 모든 국민에게 직업훈련, 평생교육, 직업소개까지 정부가 보장해 주는 생산적 복지정책을 강조했다.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관련부처들이 발표하고 있는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시행을 앞당길 것이며, 경노연금 확대, 노인의료서비스 확대, 영세사업장 근로자의 연금보험 국고보조, 산재보험 적용확대, 사실상 의무교육의 확대, 사회보장의 사각지대 해소, 평생교육, 직업훈련 기회의 확대 등 재정부담이 만만치 않은 조치들을 내놓고 있다. 그대로라면, 생산적 복지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말하는 생산주의적 복지에 가깝다. 그것은 바로 생산적 복지정책의 주창자들이 "소비적이고 낭비적"이라고 비판하는 스웨덴식 고부담 사회복지의 틀이기도 한 것이다.

형평과세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시행 시기가 불확실하고, 과세특례제도의 폐지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담세율로 볼 때, 우리가 아주 낮은 수준이라고도 할 수 없다. 게다가 현안의 시급한 과제로 남아있는 자영자 연금확대, 의료보험 통합문제도 해결방안이 막막한 형편이다. 나아가 그동안 국민의 정부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작은 정부론도 궤도수정이 필요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생산적 복지와 다른 세 개의 국가목표간의 우선 순위 설정이다. 완전고용, 전국민 중산층화, 1만 2천 달러 국민소득, 그 하나 하나의 실현 가능성에도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한 목표들간의 상충관계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완전고용은 임금의 상승과 인프레를 수반한다. 중산층의 확대를 위해서는 인프레가 억제되어야한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국민소득을 높이려면 국제경쟁력 강화가 중요하다. 복지비용의 확대는 생산비용을 높이고, 생산비용의 증대는 다른 조건이 같을 때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복지정책의 강화가 국가경쟁력을 높인다는 논리는 아직은 소수의견에 불과하다.

생산적 복지가 사회복지 반대론자를 안심시키려는 것인지, 사회복지 확대론자를 안심시키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모든 국가정책이 그렇지만, 사회복지는 특히 국민적 합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생산적 복지의 개념을 명료화하고, 논리적인 헛점을 보완하여 국민적 합의와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실천 방안과 예산확보가 따라야 할 것이다. 비젼과 현실간의 괴리가 적절하면 용기와 노력의 견인차가 되지만, 너무 크면 좌절과 냉소를 낳을 뿐이다. 비젼과 현실의 괴리를 좁혀주는 일이 바로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생산적 복지가 또 하나의 총선용 복지 마스터 플랜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이혜경 /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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