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담배판매정책을 포기하고 건강증진기금을 확충해야 한다

지난 8월 12일 국회본회의에서 담배에 부과하는 건강부담금을 담배 한 갑당 20원 범위 내에서 책정할 수 있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담배에 부과하는 건강증진기금을 2원에서 8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였으나 재경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최근 총회에서 '담배는 인류 공동의 적'으로 규정하고, 오는 2003년까지 법적 구속력을 갖는 규제조약을 정식으로 채택할 것이라면서 세계각국의 흡연으로 인한 각종 질병관련 사망자 수는 98년 현재 연간 4백만 명 수준에서 오는 2030년에는 연간 1,00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97년 WHO조사자료에 따르면 , 우리나라의 만 15세 이상 남성흡연율은 68.2%로 세계 1위이며 특히 건강에 가장 위해한 청소년 흡연률(고등학교 3학년)도 41.6%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흡연으로 인한 각종 질병 관련 사망자 수도 연간 3만 5천명이나 되고, 흡연 때문에 생긴 질병 치료비에만 3천3백억원이 소요되며, 질병으로 인한 생산성손실과 담배값 지출등 흡연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전체적으로 추산하면 연간 6조원이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연을 위한 노력은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중차대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흡연으로 인한 건강위해를 막기 위한 노력은 흡연자 개인의 자각만이 아니라 국가정책적 차원에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은 선진국의 성공한 금연정책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미국, 네덜란드, 호주 등에서는 담배세의 일정액을 기금으로 조성하여 금연교육과 흡연관련 질병예방에 쓰고 있으며, 미국과 일본 등은 거액의 예산을 확보하고 정부의 엄격한 담배규제정책을 통하여 2010년까지 흡연률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금연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세계은행도 담배값 인상을 통하여 흡연률을 떨어뜨릴 것을 권고하며, 담배세와 부과금을 최소한 80% 수준으로 올려 청소년의 담배소비를 줄이고 비흡연자를 보호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통계에 의하면 담배세가 10%인상되면 담배소비는 5%줄어든다고 분석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담배세는 65%로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며 1,100원 짜리 담배 한 갑당 소비세가 460원, 교육세가 184원, 담배꽁초 등을 처리하는 폐기물부담금은 4원임에 반해 흡연으로 인한 폐해를 최소화하고 국민건강증진에 사용되는 건강증진기금은 겨우 2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따라서 흡연으로 인한 청소년의 건강위해를 줄이고 국민건강증진을 위해서는 1995년 한·미 담배양해록 수정안의 상한선인 갑당 20원까지 건강증진기금을 인상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경부는 목적세와 준조세를 줄여나가는 것이 정부방침이며 건강증진기금을 지금시기에 올려야할 분명한 이유가 없고, 담배인삼공사의 민영화와 DR발행을 통한 해외자본유치에 걸림돌이 된다는 등의 논리를 내세워 반대하고 있다. 이는 흡연으로 인한 건강위해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지키려는 선진국이나 세계적인 흐름과는 역행하는 담배판매정책을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건강부담금 확충에 반대하는 재경부의 태도는 담배판매정책을 통한 조세확보와 산하단체인 담배인삼공사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으며, 근본적으로는 국민의 건강권보다는 경제논리를 우선시하는 개발독재시대부터 계속되어 왔던 경제성장논리에서 나온 것이다.

재경부와 기획예산처는 보건사업예산을 지속적으로 삭감하였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이제 보건사업에 쓰일 국민건강증진기금의 확충마저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김대중 정부의 보건복지부 예산은 2.28%로 전국민의료보험제도가 정착되지 않았던 박정희 개발독재정권의 2.48%보다 낮고, 보건의료부문 사업예산만을 본다면 현정부의 예산은 역대정권 중 가장 낮은 0.26%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러한 예산편성과 국민건강증진기금의 확충 반대 등 예산당국의 태도를 볼 때 보건의료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과연 개발독재시대와 다를 바가 없으며, 정부가 주장하는 '생산적 복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보건의료환경은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전염성질환 위주의 질병양상이었으나 현대에는 암, 고혈압, 당뇨병, 심장질환, 간질환, 충치 등의 만성퇴행성질환으로 변화되었다. 만성퇴행성질환은 근원적으로는 건강증진을 목표로 하는 국민의 생활행태와 조건의 변화를 통하여 줄일 수 있는 질환으로서 중장기적인 목표하에 충분한 재정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이처럼 변화된 환경을 무시하고 전혀 변화되지 않은 재정당국의 경제제일주의 정책은 철폐되어야 한다.

아울러 보건복지부의 건강증진기금활용과 건강증진사업 역시 보다 효율적이고 시민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민주적 기제를 갖고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건강증진기금의 활용에 있어서 국민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국민건강증진사업이 비효과적 사업으로 인식 될 수 밖에 없으며, 기금사업의 우선순위와 기금으로 해야 할 사업과 국가예산으로 해야 할 사업이 혼재되어 있다. 물론 보건사업예산이 삭감됨에따라 보건사업을 기금으로 수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복지부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건강증진사업계획을 갖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보건행정조직과 관련단체를 동원하여 가능했던 전염성질환 관리사업과는 달리 건강증진사업은 다수의 민간조직과 국민의 참여가 있어야만 사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 그러므로 국민과 민간조직이 참여 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방식을 개발해야 하며 기금의 주요한 부분은 여기에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국가차원이나 행정조직이 수행해야 하는 사업예산은 당연히 국가예산을 확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방만한 기금운영을 막고 효과적인 건강증진사업을 위해서는 기금운용심의회에 전문위원회를 두고 실행사업을 평가할 수 있는 실행사업평가단을 두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국민건강증진사업의 당사자인 시민, 소비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내년 1월부터는 건강증진법개정안 시행령이 시행되어야 하므로 12월까지는 시행령개정안이 정해져야 하기 때문에 건강부담금의 인상폭을 놓고 지속적인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판단된다.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재경부의 국민의 건강권을 담배인삼공사의 경제적 이익에 우선하는 정책적 마인드의 변화가 요구된다. 외국의 무역압력과 음주로부터 청소년 건강위해를 막는다는 이유로 소주세율은 35%에서 80%로 대폭 인상하면서 담배에 부과되는 건강부담금의 인상은 안된다는 재경부의 논리는 누가 보아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며 오히려 차제에 술에도 건강증진부담금을 확보하는 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국민건강권확보를 위한 범국민연대'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의 확충과 더불어 국민건강증진기금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국민건강증진기금 활용방안마련, 토론회조직, 대정부촉구작업 등의 노력을 계속 할 것이다.

신동근 / 건강연대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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