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1 2001-11-15   476

국회의 거는 희망

한 청년이 있습니다. 지방에서 가난한 봉제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 청년은 생계를 위해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열 두 살의 어린 나이에 날품팔이를 시작했습니다. 그 뒤 서울로 올라와 평화시장에서 미싱사 보조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도 같은 처지였지만 그 청년은 어린 여공들이 너무 불쌍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뼈가 부서지도록 일해서 번 돈은 하루 세 끼 밥을 먹기에도 부족했습니다. 물론 그 청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 모두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굶는 날이 많았습니다. 쫄쫄 굶으면서 하루 종일 재봉틀 앞에 앉아 있는 노동자들을 보면서 그 청년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

그 청년이 일하던 손바닥만한 공장은 사람이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로 빽빽하게 재봉틀이 놓여 있었습니다. 공장 주인은 작업 공간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그나마 좁은 한 층의 공간을 쪼개어 반으로 나누어 이층 작업장을 만들었습니다. 키가 작은 어린 사람들도 몸을 낮추고 다녀야 했습니다. 창문 하나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어두운 공장 안은 늘 옷감 먼지가 가득 차 있어서 기침 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여공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 하루 열 네 시간씩이나 일을 했고 바쁠 때에는 더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했습니다.

노동자들이 노동을 착취당하는 현실을 참다 못해 그 청년은 회사와 관계당국에게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에서 그 청년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불살랐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이렇게 외치면서.

그의 장례식은 그가 온몸으로 일그러진 현실에 부딪친 지 20일이 지나서야 치러졌습니다. 노조를 만들도록 허용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정기 건강진단을 실시하고, 일요일 휴무를 보장하는 등 그 청년이 생전에 요구했던 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그의 어머니의 주장을 당국이 받아들인 뒤였습니다. 그리고 70년대 한국노동운동의 푯대가 된 청계피복노조가 그 해 11월 27일 출범하였습니다. 그 아름다운 청년의 이름은 바로 전태일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나라의 노동현실을 바라보면 우울하기까지 합니다. IMF를 거치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에서 밀려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회복지체계가 제도적으로는 구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제도의 내용을 채워나가는 과제가 남아 있기는 합니다.

복지는 '삶의 질'을 높이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복지에 대한 투자가 매우 낮습니다. 우리 나라의 예산 가운데 사회보장관련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99년 현재 12%로 멕시코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미국과 스웨덴의 48%, 영국의 44%, 일본의 38%에 비하면 형편없이 낮습니다. 우리보다 생활수준이 낮거나 비슷한 아르헨티나가 48% 이집트가 38% 브라질도 35%나 된다고 합니다.

저소득계층이나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사회 통합과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복지 정책입니다. 꾸준한 경제발전으로 우리 사회에서 절대빈곤층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계층이 존재하고 이들은 옛날보다 더 심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우리 나라도 노령화사회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노인복지 수요가 늘어나고 있으며 자동차 사고 등으로 장애인의 발생도 늘고 있어서 취약계층의 복지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생활지원이 필요한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게 아동 수당, 장애인 수당, 노인 수당 등을 지급하고 있지만 우리는 노인과 장애인에 대해서만 매우 적은 액수를 지급하고 있을 뿐 취약 계층 복지 지원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국회에서 심의중인 2001년도 예산에 사회복지 비용이 확충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2001년 11월

손혁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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