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2 2002-04-02   2134

일본의 부양의무자 기준

1. 일본의 부양의무와 생활보호

가족은 개인의 생활 및 생존의 보장과 노동력의 세대적 재생산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사회적 단위이다. 이와 같은 가족의 역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단으로서의 가족의 자조노력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원칙이므로, 이것을 가족의 자조원칙이라 할 수 있다. 이 원칙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애정에 기초한 자발적인 영역에서 규범화되지만, 국가의 법 체제 속에서도 각국의 민법이 규정하는 일정범위의 가족원 상호간의 무상의 부양·생활보장 의무로서 제도화되고 있다(原田純孝,1995:21). 이와 같이 제도화된 가족의 자조원칙이 사적부양의 근거가 되며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경우에도 생활보호에 우선하여 보호신청자에게 민법상의 부양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부양의무자가 있을 때에는 부양의무를 보호에 우선 적용한다. 따라서 부양의무자로부터의 부양원조가 있을 경우 그 금액을 수입으로 인정하여 보호비에서 제외하게 된다.

민법상의 부양의무는 법률상의 당연한 의무는 아니며 당사자간의 합의를 통해 부양을 원활하게 이행하도록 하는 지침(厚生省社會·援護局 保護課,1996:120)으로 되고 있으며, 또한 보호신청이 있을 경우에는 부양의무자가 상대적 부양의무자 또는 절대적 부양의무자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확인하도록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생활보호에서 부양의무를 우선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원칙의 하나인 자조원칙으로서의 사적부양에 대하여 생활보호제도가 보충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논리 때문이다. 그러나 부양의무의 이행을 법적으로 강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부양의 우선 순위를 정하여 부양을 엄격히 강제할 경우 사적부양도 이행되지 않고 생활보호도 수급할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

부양의무와 관련하여 종래에는 주로 부양의무자가 부양의무의 이행에 응하지 않는 경우 생활보호의 신청을 각하(却下)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쟁점으로 되고 있었다(松鴨道夫,1990:342). 일본 생활보호법(제4조)에서는 보호 신청자의 능력과 자산의 활용 등의 보호요건(동조 제1항)과 민법상의 부양을 보호순서(동조 제2항)로서 규정하고 있지만, 단지 사적부양이 보호의 순서가 우선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어서 생활보호제도에 의한 보호와 민법상의 부양관계가 특히 논란거리가 된다(關ふ佐子,1994.8: 37-43). 부양의무를 이행하는 데에 있어서는 우선 민법상의 부양의무자가 부양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부양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생활보호를 받을 자격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즉 부양의무와 생활보호의 관계는 순위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며, 부양의무 우선은 민법상의 사적부양이 생활보호에 우선해서 행해져야 한다는 단순한 전제를 규정한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關ふ佐子,1994.8:39).

일본의 구생활보호는「부양의무자가 부양을 할 수 없는 자에게는 긴급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률에 의한 보호는 행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어, 부양의무를 공공부조 수급의 자격요건(결격요건)으로 해석하는「수급 요건설」을 내세우고 있다(小山進次郞,1975:120). 이에 대하여 현행 생활보호는 선진국의 제도가 수급 요건설에서「단순 순위설」로 발전하고 있는 것과 흐름을 같이 한 순위설이 확립되어 있다. 즉 현행 제도는 패전 이후 소위 일본의 봉건적 가족제도가 부정되고 사회보장의 수급 단위가 개인 중심으로 변함에 따라, 민법상의 부양은 생활보호에 우선하여 행해져야 한다는 형식적 전제로만 그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양의무를 생활보호의 수급 요건설에 따르게 한다면, 만일 부양이행이 가능한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생활보호가 지급되지 않았을 때, 부양의무자가 부양이행을 현실적으로 거부할 경우, 수급대상자는 부양의무자와 국가로부터 모두 원조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2. 부양의무자 기준과 생존권 보장

생활보호의 우선 순위로서 규정하고 있는 부양의무는 사실상 일본 민법에서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즉 일본 민법에서는 부부간의 부양에 관한 규정(민법 752조)과 직계혈족·형제자매·기타 삼촌이내의 친족에 관한 부양의무규정(민법 877조)만 존재한다. 더욱이 부양의무 발생요건이나 우선 순위, 방법 등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협의에 따르고, 협의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가정재판소의 심판에 의해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일정한 가족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협의나 심판이 있기까지는 부양의무의 내용 및 유무가 법률상 확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는 국가가 국민에 대하여 생존권을 보장함에 따라 근친자의 부양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양의무는 국가가 애초부터 국민에 대하여 지게 되는 헌법상의 의무를 부양이 필요한 자의 근친자에게 대신 전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부양이 필요한 자는 애초부터 생활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지는 것이며, 민법상의 부양을 부양의무자에게 청구할 것 인지의 여부는 부양이 필요한 자의 자유에 맡겨지게 된다(上野雅和,1984:336). 그리고 부양의무가 확정된다고 해도 구체적인 내용은 부양의무자가 부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한정되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결국 무한하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사적부양 우선에 대해 생존권 보장의 논리가 일정한 한계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부양의무에 대하여 논의할 때에는 일본 민법에서 정하는 부양의무인 절대적 부양의무와 상대적 부양의무, 그리고 생활보장(生活保持) 의무관계와 생활부조(生活扶助) 의무관계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표 1>은 이와 같은 부양의무의 유형을 도식화 한 것이다. 먼저 절대적 부양의무자는 당연히 부양의무를 지게 되며, 상대적 부양의무자는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에, 가정재판소에 의해 의무가 부과되어야 비로소 부양의무자가 된다. 그리고 양자 모두 부양능력이 없다면 구체적인 부양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 생활보장 의무라는 것은 부부간의 부양과 미성숙한 자녀에 대한 부모의 부양이며, 부부 및 부모 자식간의 본질로서 부양권리자인 상대방을 자신과 같은 정도의 생활 수준까지 부양할 의무를 말한다. 반면에 생활부조 의무는 상대방이 생활곤란에 빠진 경우에 자신에게 여력이 있다면 원조해야 할 의무를 말한다.

[표 1] 일본 민법상의 부양의무자 기준

  부부(제752조) 절대적 부양의무자 (제877조 1항) 상대적 부양의무자 (제877조 2항)
생활보장의무관계 부부 부모의 미성숙한 자녀에 대한 관계*  
생활부조의무관계   직계혈족(*는 제외) 및 형제자매 삼촌 이내의 친족으로 가정재판소에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하는 자
부양의무 없음     삼촌 이내의 친족으로 가정재판소가 특별한 사정이 없다고 인정하는 자

資料: 尾藤廣喜·木下秀雄·中川健太朗,『誰も書かなかった生活保護法』, 京都: 法律文化社, 1992, p.144.

생활보장의무나 생활부조의무 등의 사고방식은 패전 전 일본 민법에서의「이에(家)」제도의 구속 속에 배우자나 미성숙한 자녀보다도 부모의 부양의무를 우선하였던 데 대하여, 부양을 일정하게 제한하여 현실적으로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소가족 중심의 부부와 자녀의 부양을 보장하기 위한 개념으로 확립된 것이다(尾藤廣喜·木下秀雄·中川健太朗,1992:144). 따라서「이에(家)」제도가 붕괴하여 부양의식이나 실태가 변화한 현재까지도 이러한 개념을 적용하여, 별거 등에 의해 공동생활의 근거가 없어진 경우에도 형식적인 부양관계의 적용을 국가가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부양이란 인간관계에 의해 크게 변화하는 권리이며, 게다가 본인이 청구하고 싶지 않다고 여겨질 때에는 청구하지 않아도 좋은 사적 처분이 허용되는 권리이다. 그것을 보호에 우선하여 강제하는 것은 현대사회의 빈곤에 대한 국가의 궁극적 책임과도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것이다.

3. 부양의무자 기준의 보호억제 메카니즘

일반적으로 생활보호제도는 생활보장에 대한 최후의 안전망이라 평가된다. 그런데 최후의 안전망이란 사회보험 등 다른 사회보장제도와 대비한 최후의 생존권 보장장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활보호제도 속에서조차 보호의 순서로서 개인의 모든 여력을 다 소진하고 나서 어쩔 수 없을 경우 수급이 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본의 생활보호제도는 빈곤하다는 것이 인정만 되면 보호받을 수 있는 최후의 안전망이라기 보다는 민법상의 부양의무를 강조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운용된다. 즉 보호의 순서에 있어서 사적부양 우선이 엄격히 적용되어 보호억제의 메카니즘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는 일본 생활보호제도의 부양의무 기준과 관련하여 전국적으로 생존권의 옹호가 문제로 된 시기였다. 즉 「9년전에 헤어진 전남편에게 부양이 불가능하다는 증명을 받아올 것을 보호신청 요건」으로 하거나,「40년간이나 연락을 끊고 있는 여동생에게 생활비를 강요하고 보호를 중단시킨」사례와 같이 수급자를 줄이기 위하여 엄격한 보호행정이 실시되어 신청자들을 자살로 몰고 가는 등 심각한 문제 상황을 낳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상황의 바탕에는 1981년 7월의 제2회 임시행정조사회의 제1차 답신(答申)에서 제기된 바와 같이 사회복지를 가족의 부양에 일차적으로 맡겨버리는 일본형 복지사회 구상에 의한 복지행정의 전개가 놓여져 있다. 그와 같은 복지행정의 방향에 따라 전국의 복지사무소에서는 부양의무자에게 부양을 강요하여, 신청을 접수조차 하지 않고 보호의 철회나 폐지를 유도하는 정책이 전개되었다. 특히 생활보호 수급 사실을 부모형제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보호대상자의 희망은 무시되었고, 기계적인 부양조사를 행하게 되었다. 또한 부양의무자와의 교류가 빈번하다는 이유만으로 구체적인 사실확인을 거치지도 않고 수 만엔씩 수입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여 보호수준을 결정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水島宏明,1988.10:5-13). 이와 같이 생활보호 현장에서는 부양의무를 생활보호에 우선적으로 적용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회적 빈곤을 사적부양 우선으로 해결하게 하고 생활보호는 최후에 선택하는 제도로서 운용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생활보호제도는 노령자의 부양을 친족이라는 소집단이 아니라 보다 큰 사회집단에 맡겨 혈연집단의 부양책임을 경감하는 데에 그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적부양이 우선적으로 기능하게 되고 보호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된다면 이 제도는 다른 사회보장제도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띠게 된다. 즉 사적부양이 결여된 경우나 부족한 경우에만 생활보호가 가능하다면, 그 대상은 가족관계에서 소외된 특수한 사람으로 한정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자녀에 의한 노부모의 부양규범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규범이 뿌리깊게 존재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가족규범이 제도에 반영되어 변화하고 있는 부양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보호의 우선 요건으로만 된다는 점이다. 또한 보호수급자의 친족들의 경우에도 조세부담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생활비 송금 등의 부양을 하게 되므로, 보호비 절감에 기여하고 있으면서도 조세를 통한 또 다른 이중부담을 하고 있다는 불공평성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4. 생활보호에서의 부양문제 해결을 위한 방향

부양의무는 친족의 상부상조가 바람직하다는 도덕적 가치관을 기초로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광의의 친족간의 부양의무를 도의적인 것에서 법적인 통제로 강화해 간 것은 위정자가 자신의 지나친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서 그 부담의 일부를 일정한 범위의 근친자에게 맡겨 근친자는 우선적으로 생활능력이 없는 자의 부양을 인수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이를 회피하려는 자에 대해서는 국가의 공권력으로 부양을 명령하는 길을 연 것이다(明山和夫,1973:108). 따라서 공공부조를 법제화하여 친족간의 부양의무를 최대한 이행시키면서 동시에 도의적 의무까지 강조하여 그것을 공공부조에 우선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즉 민법상의 부양의무자가 현실적으로 부양을 하는 경우에는 공공부조의 사회적 부양역할은 감소되고 부양 한도내에서 수급자는 공공부조를 받지 않고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김만두,1992:234).

일본 생활보호에서 부양의무를 우선시 하는 것은 경제적 수준이나 개인의 생활곤란의 정도로서 판단해야 할 보호가 현실에서는 부양의무라는 사적 차원에서 판단되어 사회적 부양의 논리를 후순위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이것은 부양의무자 범위의 축소와는 무관하게 사실상의 보호억제 기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이명현,1999:118). 일본의 부양의무 규정은 서구와는 달리 부부 가족 이외의 친족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지만 오늘날에는 부부가족 내부의 생활유지에 대한 의무도 자조원리 자체의 허구성으로 인하여 그 의무이행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김만두,1992:236).

그러므로, 일본의 경우 부양의무 기준을 더욱 완화하여 신청자의 연령과 단신자(單身者), 한부모, 부부, 부양아동 등 부부가족 중심으로 개선해 가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입장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동일세대 거주자에 대하여 세대를 분리하여 보호할 수 있는 조건을 완화하고 수입공제를 넓히는 방향(이명현,1999:119)으로 제도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사적부양에 대한 한계를 인식하고 사회적 부양을 확립해 나가는 길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김만두,1992.’친족부양법과 사회복지’《사회복지와 고유문화》부성래박사 회갑기념논문집,pp.215-238.

이명현,1999.’일본 생활보호제도의 보족성 원리 적용분석을 통한 한국 생활보호제도의 개혁방향,’부산대학교박사학위논문.

關ふ佐子, ‘生活保護と私的扶養義務’, 勞動旬報社, 《賃金と社會保障》 No.1136, 1994.8.

尾藤廣喜·木下秀雄·中川健太朗,1992《誰も書かなかった生活保護法》京都: 法律文化社.

上野雅和,1984.《扶養義務 民法講座》東京 : 有斐閣.

小山進次郞,1975.《生活保護法の解釋と運用》中央社會福祉協議會.

松鴨道夫,1990. ‘私的扶養と公的扶助’, 有地亨 編, 《現代家族法の諸問題》 東京 : 弘文堂, 1990.

水島宏明, ”ジャナリストが見た生活保護問題’,『賃金と社會保障』, No.995. 1988 10月 上旬號

厚生省社會·援護局 保護課, 社會·援護國監査指導課,《生活保護手帖》 全國社會福祉協議會, 1996,

이명현(양산대학 사회복지보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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