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2 2002-06-07   2268

진폐병원이 있어야 할 이유, 없어지는 이유

최근에 전국에서 대학병원으로는 유일하게 진폐환자 전문병동을 가지고 있었던 여의도 성모병원이 의료진 부족 등을 이유로 오는 8월 이후 병동을 폐쇄할 것으로 알려져 진폐 요양 관리체계에 논란이 일고 있다. 진폐재해자를 대표하는 모 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국내 최초로 40여 년간 진폐증 등 직업병 환자에 대한 요양관리를 해 온 하나밖에 남지 않은 진폐전문 대학병원을 존속시켜 줄 것'을 요구하면서, '여의도 성모병원은 진폐에 따른 합병증 등을 체계적으로 진료해 왔으며, 이 요양기관이 없어진다는 것은 진폐 요양관리에 커다란 허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한 정부에 대하여 '대학 병원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진료수가를 현실화 해주고 공중보건의를 배정해 의료인 수급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대책을 요구하였다.

폐에 찬 고통의 가루

진폐증이란 먼지 가루가 폐에 쌓여서 생기는 병을 말한다. 석탄이나 규산, 석면과 같은 광물질 먼지가 호흡을 통해 폐에 들러붙어 쌓이게 되면, 폐에 섬유화가 일어나서 폐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탄력성이 없어지고 뻣뻣해 진다. 섬유화 정도에 따라서는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심각한 건강장해를 가져오는 진폐증은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흔한 직업병으로서, 석탄산업이 활발하던 시절 우리나라의 경제를 일으키는데 앞장섰던 광부들에게서 많이 발생하였다.

사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채 진행된 우리나라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석탄은 유일한 자체생산 에너지원으로서 경제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였고, 국가는 산업전사나 나라의 기둥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많은 탄광 노동자의 노동력을 이용해왔다. 사실 그로 인해 많은 탄광 노동자들이 각종 사고로 생명을 잃거나, 장애를 얻어 지금까지도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들 많은 탄광 장애인들도 석탄 분진으로 인한 진폐증을 갖고 있어서 단순하게 숨쉬는 것조차 힘겨워 하기도 한다.

합병증 없으면 전문적 치료받기 어려워

최근에 인천지역 주물공장을 중심으로 그동안 탄광 노동자들에게 한정되어 진단되어왔던 진폐증이 광범위하게 발견되고 있어, 광산업이 아닌 일반 제조업 노동자들에게도 진폐증이 발생할 수 있음이 알려지고 있으며, 이는 외국의 예와 비교해볼 때 오히려 늦은 감을 주고 있기도 하다. 특히 채석을 하는 광업, 건설업, 주물업, 요업, 섬유업 종사자와 용접공들은 진폐증의 고 위험군으로서 그 안에 상당수의 진폐환자가 잠재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진폐환자는 '진폐의 예방과 진폐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관리되고 있으나, 그 중에서도 진폐증으로 진단받은 소견이 있는 환자가 '활동성 폐결핵, 흉막염, 기관지염, 기관지 확장증, 기흉, 폐기종, 폐성심, 원발성 폐암 등 8개의 합병증'에 이환될 경우에만 진폐전문 요양병원에 입원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규정상으로는 합병증이 없더라도 현저한 심폐기능 저하 등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이면 입원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기는 하나, 실제로 합병증이 수반되지 않은 단순한 진폐증 중증환자들이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산재의료관리원 산하에 10개의 공공적 성격을 가진 의료기관(인천중앙병원, 태백중앙병원, 대전중앙병원, 안산중앙병원, 창원병원, 순천병원, 동해병원, 정선병원, 경기요양병원, 재활공학연구소)이 있으며, 그 중에서 정선병원, 동해병원, 태백중앙병원, 순천병원, 안산중앙병원 등을 중심으로 외곽에 일부 민간이 포함된 형태로, 총 23개 의료기관(총 3,135병상)에서 진폐환자에 대하여 진단과 치료가 수행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진폐환자가 61,000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데 반하여, 전체 진폐환자의 5%만이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는 심각한 의료수급의 불균형에 있다고 하겠다. 분명 진폐환자를 위한 공공적 성격의 전문요양시설은 확충되어야 하며, 그 양과 질에 있어서의 기대수준은 가히 개혁적 수준으로까지 확대되어야 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입원 환자와 재가 환자 사이의 장벽

그러나, 필자의 이러한 주장이 자칫 현재의 진폐환자 관리체제를 온존시키는 방향으로 오해되는 것에는 절대로 반대한다. 3년 전 겨울, 여러 지역에 산재해 있는 진폐전문 요양기관들과 지역사회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재가 진폐환자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현장에서 본 진폐전문 요양기관들의 현실은 참담 그 자체였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진폐증은 그야말로 만성적 질환으로서 어느 순간에 극적으로 좋아지거나 근본적으로 완치되어서 병원을 퇴원하는 일들은 거의 없다. 다만 일부 합병증 중에서 치료가 가능한 질환(예, 결핵) 정도가 치료되어 퇴원할 상황이 되는 사람이 간혹 있을지는 몰라도, 그렇다 하더라도 실제로 병원에 한번 입원한 진폐증 환자는 절대로 퇴원하지 않는다. 이유는 병원에서 사망해야만 이후 사후의 유족에 대한 보상체계로의 진입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폐전문 병동들은 한 병실에 많게는 10명의 환자까지 수용한 채 '여관업(식사와 잠자리 제공)'을 하고 있었고, 집에서 숨쉬기조차 힘드나 합병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입원이 허락되지 않는 또 다른 많은 진폐환자들은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전문기관의 '전문적 의료서비스'는 내용적으로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그나마도 재가 진폐환자들에게는 그 진입장벽조차 도저히 넘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벽이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진폐, 미봉보다는 대승적 해결을

대중매체에 보도되는 소식을 보면, 아마도 그동안의 진폐환자들의 시위와 진폐전문기관의 언론플레이는 원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 같다. 노동부와 복지부가 일부의 여론에 밀려 공중보건의 배치와 같은 진폐병동의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았고, 아마도 그 동안 시장논리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던 '진폐병동의 퇴출' 위기는 당분간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수준의 '미봉'은 대학병원 내 진폐병동이 존재하든 안하든 실제로 진폐환자들의 건강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씁쓸한 나름의 판단을 부정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진폐전문기관들은 현재의 퇴출을 우격다짐으로 막는 수준이 아니라, 보다 겸허하게 지금까지 범해왔던 오류들을 스스로 반성하고, 실제로 진폐환자들의 전문적인 진료를 위해 호흡기 질환에 대한 보다 더 전문적인 인력(예를 들어, 호흡기 내과 전문의)을 보강할 방안을 마련하며 재원조달방안에 대한 다각도의 연구를 모색해야 하고, 또한 정부는 공공의료의 확대를 통해 현장에서 훌륭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제대로 된 진폐전문기관들의 절대적인 수를 늘려야 할 것이다. 또한, 진폐법의 허점들에 대하여 보다 근본적인 개선을 꾀함으로써, 진폐환자들의 요양체계로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개인의 일상생활 능력이나 삶의 질까지도 돌봐줄 수 있는 근본적인 개선책을 내 놓아야 할 것이다. 솔직히 오히려 현재의 체계와 같은 수준으로 진폐전문기관들을 존속시키는 것은,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심각한 내부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만간 지방선거가 이루어질 것이고, 연말이면 대통령 선거가 치뤄질 것이다. 사실, 최근의 중앙 및 지방정부들의 행태를 보면, 문제점은 다 알고 있으면서도 조금만 참으면 자신들에게 '좋은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매는 피하고 보자'는 식의 임기응변적 '대응'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 제시는 거의 보이질 않는다. 민간(전문가와 당사자)과 정부가 보다 대승적 견지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풀어가는 노력과 자세가 너무도 아쉽다.

주영수(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 한림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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