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2 2002-07-11   567

건강보험 재정대책, 현황과 과제는?

지난해 5월 정부는 파탄위기에 빠진 건강보험재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건강보험재정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건강보험공단이사장이 재정파탄 사실을 공표한지 거의 3개월이 지난 뒤였다. 그동안 언론은 연일 재정파탄을 대서특필하였고, 정치권도 재정파탄을 둘러싸고 책임공방을 벌이는 등 건강보험 재정문제는 당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정부는 당초 4월말로 예정되었던 발표시한까지 늦추어가면서 대책마련에 부심하였지만 막상 발표된 내용은 국민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었다.

국민에 전가시킨 재정안정대책

정부가 발표한 재정종합 대책은 재정위기 탈출을 위한 중단기 대책이 거의 망라된 것이었지만 대책의 기본방향은 지출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수입은 늘리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국민의 부담은 늘리고 보험혜택은 축소한다는 것이다. 주요 단기대책으로는 진료비 심사강화, 급여제도 합리화, 약제비 절감, 외래본인부담금 조정, 보험료 수입 증대와 공단 운영효율화 등 5개의 과제와 16가지의 세부항목으로 구성되었다. 정부는 이들 대책을 통해 당해년도에는 약 1조 887억원의 재정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나머지 재정적자분은 은행차입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렇지만 내용적으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말인즉 각 참여주체들의 고통분담이라고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전적으로 국민에게 손을 벌이는 꼴이기 때문이다.

대책이 발표되자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반발하였고 재정안정대책의 즉각적인 철회를 요구하였다. 재정파탄의 원인과는 전혀 다른 처방이 나왔기 때문이다. 재정안정대책이 재정파탄을 막기 위한 단기대책이라면 처방도 재정파탄의 직접적 원인을 제거하는 쪽에서 찾아야 했다. 알다시피 재정파탄의 직접적 원인은 의약분업 시행과정에서 부당하고 과도하게 인상된 수가가 주범이었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전문가들조차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가부분은 전혀 건드리지 않고 엉뚱하게 국민 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대책의 방향을 설정하였다는 것은 결국 의약계 반발이 두려운 나머지 손쉬운 선택을 하였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정부 역시 자신이 없었던지 조만간 이를 보완한 추가대책이 있을 것이라는 설명으로 여론의 질타를 빠져나갔다.

재정파탄의 직접적 원인은 수가인상

대책발표에 앞서 3월 정부가 발표한 재정적자원인을 보면 어디서 재정안정대책을 찾아야 하는지 보다 분명해진다. 총 재정적자 규모 3조 9천억원 중 의약분업 영향 6,800억원, 수가현실화 1조 8,200억원, 본인부담금 조정 3,352억원, 자연증가분 9,000억원이었다. 이중 국민이 부담해야할 몫은 자연증가분 9,000억원 정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2차에 걸친 재정안정대책 중 보험료 인상, 본인부담금 조정, 징수율제고, 피부양자 인정기준강화, 과세자료 조기반영, 일반의약품 비급여 전환, 연간 급여일수 제한 등 대책의 대부분이 국민부담으로 채워져 있다. 가장 많은 고통을 분담하여야할 의약계 관련 부분은 효과도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일시적인 대책들이 대부분이다.

뒤늦게 발표한 추가 대책에서도 재정안정대책은 여전히 국민의 몫이었다. 남수진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연간 진료일수를 365일로 제한하고, 약품비 절감책으로 그동안 보험적용을 받아왔던 일반의약품을 대거 비급여대상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2차 대책의 핵심이었다. 이와 함께 5.31재정안정대책을 보완한다는 이유로 내과계열 만성질환관리료와 병원외래 원내처방 조제료를 신설하는 등 연간 170억원의 재정을 추가부담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리 재정안정을 위한 고육지책라 하지만 그렇치 않아도 높은 본인부담금에 시달리는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조치였다.

정부 대책, 수치상으로는 목표 달성

그러면 정부가 발표한 재정대책들이 얼마나 신빙성을 가지고 있으며 어느정도 실현가능할 것일까?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재정안정대책은 일단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당초 4조 2천억원으로 예상되었던 적자규모가 2조 4천억원으로 약 1조 8천억원의 개선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정부가 제시한 재정절감 예상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3/4분기 동안 진료비청구액이 약 6%정도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기관당 진료비와 건당 진료비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청구액 감소가 지속적으로 유지될지 아직 확신하기에는 이르다. 현재까지 나타난 수치상으로 볼 때 금년도 역시 재정절감 예상목표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별법 제정에 따른 국고 40%지원과 담배부담금 10%가 법제화되었고, 보험료 역시 3월부터 6.7%인상되었다. 진료비심사 삭감율도 지난해 1.36%에서 5월 현재 1.51%로 높아졌다. 여기에 지난 4월에 내 놓은 3차 재정안정대책을 통해 4,090억 정도 재정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어 일시적이나마 재정파탄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표1> 참조). 그러나 최근 들어 의료기관으로부터의 진료비 청구액이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등 불안 조짐이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여기에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책들이 내년 이후에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년 평균 급여비 증가율도 12.7%도 그간의 급여비 증가추이로 볼 때 무리한 예측이 아닌가 싶다.

[표1] 2002년도 정부의 재정안정대책 효과

(단위 : 억원)

구분
주요내용
2002년 효과
지역
직장
24,258
12,081
12,177
1차

재정안정대책

(2001.5)

소계
18,250
8,742
9,508

진료비지출억제

-허위부당청구 근절

-진찰료, 처방료 통합

-야간가산 적용시간대 조정

-보험약가 조정 등

13,661
6,544
7,117
정액본인부담금 조정
4,589
2,198
2,391
2차

재정안정대책

(2001.10)

소계
1,918
919
999
수가 및 급여제도 보완

-보험급여일수 365일 제한 등

794
380
414
약품비 절감

-일반의약품 비급여대상 확대 등

1,181
566
615
급여사후관리 강화

-사회복지법인 부설의원의 진료왜곡행태 근절 등

127
61
66
5.31재정안정대책 보완

-병원외래 원내조제 조제료 신설 등

△184

△88

△96
제3차

재정안정대책

(2002.4)

소계
4,090
2,420
1,670
약품비 절감

-약가 재평가, 특별관리품목 약가조정, 참조가격제

2,007
961
1,046
적정성 평가

-상병별, 진료행위별 평가, 기관단위 평가

440
211
229
의료장비 관리강화
72
34
38
보험료 수입기반 확충

-지역보험료 징수율 제고 등

1,209
1,209
공단경영 합리화

-공단운영경비,건강검진제도 개선

362
223
139

근본적 해결책 아닌 일시적 미봉책

문제는 정부의 재정안정대책이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이라기 보다는 재정위기 해소에 주안점을 둔 단기적 대책이라는 점에서 향후 재정건전화라는 정책목표달성에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즉, 보험재정의 안정적인 기반마련을 위해서는 현재의 대책이 아닌 별도의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3차에 걸친 재정대책이 근본적 해결책이 아닌 일시적 미봉책이라는 점은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1차의 16가지의 세부대책 중에 장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대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실제 진료비심사 강화나 급여제도 합리화, 약제비 인하 등은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단기적 처방이지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 일정시간이 지나면 의료공급자는 합법적인 범위안에서 진료량을 늘리거나 진료의 강도를 강화시키는 등 다른 방법을 통해 재정절감대책을 무력화시킬 것이다.

현재의 건강보험 재정위기는 의약분업 등 일련의 정책변화에서 비롯됐다기 보다는 보다 근본적인데 그 원인이 있다. 의약분업은 단지 재정위기를 1∼2년 앞당기는 역할을 하였을 뿐이다.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가장 첫 번째로 꼽히는 것이 바로 민간주도형 의료공급구조이다. 우리의 경우처럼 의료공급의 주체가 민간영역에 치중하게 되면 보건의료서비스는 상품으로서 성격을 탈피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적소유의 의료기관들은 보다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더 많은 시설과 장비를 투입하여 환자를 유혹하게 될 것이고, 이는 필연적으로 의료비 증가를 불러올 것이다. 여기에 현재의 진료비 지불제도인 행위별수가제와 맞물리게 됨으로써 사실상 의료비는 통제불능의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행위별 수가체제하에서는 진료서비스 량을 늘릴수록 더 많은 수입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모든 의료기관들은 필요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보험재정안정을 요원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민간의료 구조를 바꿀 수도 없다. 수 많은 이해당사자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의료공급구조를 바꾸고 진료비 지불제도를 개편하는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의료공급구조와 진료비 지불제도 바꾸어야

다음으로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 수입대비 지출의 구조적인 역전현상이다. 최근들어 건강보험은 노인의료비 증가, 만성 퇴행성 질환 등 질병구조의 변화, 수진율 증가, 급여범위 확대 등 재정지출을 증대시키는 요인들이 산적해 있다. 반면 보험료 수입은 경기 침체 등 영향으로 급여비 지출 증가율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지난 5년간 지출증가율은 16.9%인데 비해 수입증가율은 12.9%에 그치고 있음이 단적인 예이다. 보험료 대비 급여비 증가율만을 놓고 볼때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급여비 증가율은 21.1%인데 비해 보험료 수입은 16.4%로 만성적인 적자구조를 보이고 있다. 지출 구조를 잡지 않고 재정안정 달성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으로는 예방사업이나 건강증진사업 강화, 환자 알 권리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 단기적 대책들로 건강보험 재정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설혹 일시적으로 재정위기가 해소되었다 할 지라도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재정위기는 재연될 것이 분명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나갈때 비로소 건강보험은 신뢰회복과 함께 국민건강권을 떠받치는 버팀목 역할을 다할 것이다

강창구 / 건강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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