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2 2002-09-10   633

지방자치의 현실과 도시 지역의 복지정책

아침 8시가 넘으면 노란 승합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치 뱀처럼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닌다. 놀이방과 어린이집에서 운행하는 아이들 “출근” 차량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렇게 한바탕 출근전쟁이 일어나고, 노인들이 마지막으로 힘없이 문을 나서면 아파트 단지에는 정적이 감돈다.

어디를 가나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 풍경은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동네 안에서 이웃들과 어울리며 일상을 나누고 누릴 수 있는 시설이나 문화가 턱없이 부족한 게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의 척박한 현실이다.

아이들은 사설 학원이 아니면 친구와 사귀거나 사회 교육의 기회를 가질 수 없다. 취미활동과 특기교육은 사교육비를 털어야만 가능하다. 노인들은 또 덥고 좁아터진 노인정이 유일한 안식처이자 해방구이다. 주부들은 쇼핑센터에서 운영하는 몇 가지 스포츠 오락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치열한 순번전쟁을 벌여야 한다.

획일화된 복지서비스, 재량권 없는 지방정부

도시 지역(특히 아파트 밀집지역)의 복지정책은 허약한 공동체 기반과 다양한 계층의 요구가 맞물려 상하좌우를 아우르는 “멀티 플레이”가 필요하다. 다각적인 복지서비스 모델을 개발하고 실험적인 정책 실천이 절실하다는 얘기이다.

지금처럼 거의 모든 지역의 복지 프로그램이 표준화되고 획일화된 형식주의가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적극적이고 특색 있는 복지프로그램 개발이 멀게만 느껴진다. 여기서도 결국은 적절한 사업배분과 지방정부의 재량권 확대, 그리고 재정확보가 관건이라는 너무도 “통속”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저소득층 생활지원사업이나 사회복지비용으로 분류되는 각종 사업의 불용액 비율이 높은 편이다. 상급기관에서 지정했거나 법조문이 지정하는 용도 이외에 탄력 있는 지출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찾아가는 서비스가 아니라 찾아오는 사람에게 우선권과 혜택을 주는 소극적인 서비스도 큰 원인이다.

“지방재원의 확보와 임기 중 치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노리는 자치단체의 개발심리도 복지서비스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아기자기한 주민 복지시설이나 프로그램개발보다는, 거대한 프로젝트와 영리를 위한 개발사업에만 눈독을 들인다.

주거환경 개선, 문화예술 지원, 고용과 교육훈련 등의 휴먼서비스 부문에 대한 인색한 지출은 지역의 전반적인 문화와 복지수준을 제자리에 머물게 하고 있다. 더불어 민간에게 위탁한 복지시설의 운영도 별반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재정난에 허덕이며 빈약한 프로그램을 반복하며 힘겨운 하루살이 신세로 전락해 가고 있다.

우리도 “시빌 미니멈(civil minimum)”을 만들자

사실 성장과 개발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성장을 추구하는 개발의 과정은 반복적인 눈속임에 불과하다. 따라서 개발이 빈곤의 탈출구가 되고 복지를 확대하며 부의 평등한 분배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부유한 나라에서도 빈곤과 결핍은 끈질기게 존재하듯 개발에 개발을 거듭하고 소비의 수준이 아무리 높아져도 빈곤과 복지에 대한 욕구는 그에 비례하여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것이다. 문제는 지탱 가능한 삶의 양식과 사회복지에 대한 철학적 선택이다.

그것은 결국 몇 가지의 실천적인 대안으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사회복지예산을 늘리려는 의식적인 노력과 함께 지역의 정체성이 담긴 특색 있는 복지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 아파트 밀집지역의 경우 여성고용확대와 사회참여를 위한 공공보육시스템을 갖추고, 주민자치센터 등을 활용한 교육 및 사회봉사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노인들을 위한 건강 강좌를 늘리고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각종 봉사 프로그램도 풍부하게 만들어야 한다. 미취학아이들을 위한 생태적인 놀이공간과 지역특색을 살린 사회교육프로그램도 중요하다. 과감하고 다각적인 “복지자치”의 실천이 필요한 시기이다.

마쓰시타 게이이치는 이미 1965년에 “시빌 미니멈(civil minimum)”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도시지역에서 주민들이 도시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도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최소한도의 물적 시설·설비, 정책적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의 몇몇 지자체에서는 이 주장을 받아들여 “주민복지 및 생활환경지표(기준)”을 만들었다. 도로의 보행자 안전기준, 노인 및 아동복지시설 규모, 녹지 및 쾌적한 환경을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등등 우리나라도 각각의 내용에 대해서는 법적 기준이 설정되어 있지만, 주민복지를 위한 종합적인 내용적 틀을 만들자.

김달수/고양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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