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2 2002-11-10   1734

복지공급 다원화와 조합의 기능

사회복지 공급에 있어서 민간의 역할은 어떻게 규정되어야 하는가? 민간부문은 사회복지 공급에 있어서 국가중심 복지공급체계의 소극적 ‘참여자’ 정도로 인식되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분명한 목적과 기능을 갖고 적극적으로 행위하는 대안적 (alternative) 주체로서 인식되어야 할 것인가? 복지공급에 있어서 국가책임의 한계, 혹는 국가와 민간 사이의 역할분담에 관한 논의는 복지공급의 다원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사회의 사회복지 영역에는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복지와 시장의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복지, 그리고 비영리부문과 비공식부문에서 교환되는 사적인 복지가 명백하게 존재한다. 이들 복지공급원들 사이에는 대상과 급여에 있어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고, 이러한 차이는 다원적 복지공급주체의 존재와 활동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자칫 복지공급의 다원화, 혹은 다원주의적 복지공급에 대한 논의가 민간부문의 복지기능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사회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약화할 것을 정당화하거나, 모호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하게 대답해야 한다. 또한 민간부문이 주도하는 사회복지가 선별적이고, 연고중심적이며, 심지어 자원배분에 있어 역진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면밀한 반성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나라 민간부문의 복지제공은 크게 나누어 시장부문과 비영리부문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시장부문의 복지는 기업이 제공하는 기업복지를 대표격으로 하며, 민간비영리부문의 복지는 다양한 시설 및 단체, 그리고 공동체를 중심으로 제공된다. 한편, 가족이나 친척 등을 중심으로 교환되는 비공식 부문의 복지제공도 있으나, 다른 차원에서의 복지제공에 비해 조직화정도가 매우 떨어진다. 민간부문에도 이렇게 다양한 복지제공의 주체가 있으며, 각기 다른 대상들에게 서로 다른 형태와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국가주도의 복지제도가 여전히 미흡한 상태에서 민간부문의 복지는 어찌보면 우리사회의 복지수요를 상당부분 감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복지공급의 다원화는 하나의 공급주체가 여타의 공급주체를 대신하는 것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각각의 복지공급주체가 서로 다른 수준과 차원에서 복지를 공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민간부문의 복지제공자로서 기업복지는 사업장에서의 고용관계를 기반으로 하고, 그 기업의 공간적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기업복지는 규모와 업종에 따라 급여수준의 차이가 상당히 나기 때문에 오히려 역진적으로 자원을 분배함으로써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민간 비영리부문의 복지는 여전히 시설중심적인 특징을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내용과 구조에 있어서 국가부문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민간부문으로서의 자율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가부문의 비효율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민간부문에서 이루어지는 복지공급의 불완전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복지의 기본적인 이념과 가치를 유지하면서 국가복지의 관료성을 극복하고 기업복지의 경쟁과 구조화된 불평등을 배제하며, 민간부문의 자발적 참여와 효율성을 최대화하는 대안적 복지제공자로서 조합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왜 조합인가?

국제협동조합연맹 (ICA: 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s)에 따르면 조합 (cooperative)은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동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소비자들은 스스로의 조직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수호하고, 생활의 안정 및 향상, 그리고 문화와 교육의 기회에 충실하게 접근하고자 한다. 이러한 노력이 구체적으로 조직화된 것이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조합은 목적에 따라 소비자협동조합, 생산자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등으로 크게 분류될 수 있는데, 이 모든 형태의 조합은 공통적인 특징을 갖는다. 이는 바로 자발적 참여와 민주적 관리, 그리고 조합원 간의 연대를 통하여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이는 조합이 자본구성체가 아니라 인적구성체이기 때문에 자발적 참여와 민주적 운영에 더욱 큰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과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이러한 조합의 원칙들은 사회복지적 이념과 가치에 잘 부합한다고 하겠다. 실제로 19세기 영국의 공상적 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웬 (Robert Owen)의 영향을 받아 결성된 최초의 조합인 로치데일조합(Rochdale Society of Equitable Pioneers) 이후 전세계에서 활동 중인 각종 협동조합은 이러한 원칙에 의해 결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WTO체제와 함께 세계화는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공공부문의 역할은 축소되고 사적 기업과 자본의 역할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즉, 시장의 역할이 증가할 수록 이에 상응하는 균형자·완충자로서 조합의 역할은 더욱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장종익, 2000). 국제협동조합현맹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 90개 이상의 나라에서 67만개 이상의 협동조합에 7억5천만명이 가입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7천여개의 조합에 1천3백만여명이 가입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역사회중심의 복지제공자로서 조합

조합은 국가에 비하여 비교적 좁은 지역적 한계를 갖는다. 게다가 조합은 조합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운영을 전제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참여자들은 자신들의 복지욕구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고, 따라서, 이를 충족하기 위한 자조적인 노력이 매우 용이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인적구성체로서의 조합은 인간 간의 의사소통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들은 조합으로 하여금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지역주민들을 경제적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연대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따라서 조합원들은 자신들을 하나의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식하게 하며, 이러한 인식은 정치적 연대의 가능성을 매우 높인다고 할 수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조합들은 조합원들의 경제적인 욕구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욕구를 함께 해결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다양한 형태의 시민사회단체와도 연대하여 수행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농경사회로부터 유지되어 오던 계, 향약, 품앗이 등은 조합의 이러한 특성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회문제와 욕구에 대해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공공부문의 제도적 개입 이전에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자발적이고 자조적인 노력이 먼저 조직화되어 있었고, 이러한 전통은 현재에도 유효하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어떠한 구조와 제도로서 이러한 전통을 계승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하겠다.

다양한 형태의 조합들

·소비자 생활협동조합 – 경제적 약자로서 소비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개인이 경험하고 있는 문제들을 지역사회 내의 인간관계와 네트웍을 통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자발적 결사체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생활협동조합은 주로 친환경-유기 농산물 직거래와 안전한 음식문화 및 환경보호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생활협동조합은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이를 통해 착취적 경제체제로부터 지속가능한 경제체제를 지향한다. 생활협동조합의 일부는 특정한 재화나 상품의 소비자로서 자신들을 특정화하고, 이를 소비하는 과정을 조직화하는 경우도 있는데, 의료생활협동조합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생산자협동조합 –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이나 모순이 없는 기업을 지향하고, 노동자에 의해 소유되고 운영되는 기업을 조합의 형태로 운영하는 예이다. 우리나라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실시된 이후 빈곤층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자활지원센터는 이러한 생산자 조합의 이념을 제도적으로 구현하고자 한 예라고도 볼 수 있다.

·신용협동조합 – 지역사회를 하나의 경제적 공동체로 인식하고, 지역주민들을 경제적 궁핍과 빈곤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합원 중심의 금융조직이다. 특히 경제적 약자들 간에 자금을 상호융통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과 자활을 꾀하는 목적을 갖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신용협동조합은 이러한 원래의 취지와 의도보다는 금융기관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더욱 강조되는 추세에 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지역화폐운동이라든지 지역내 소자본 대부기금 등을 활용한 빈곤퇴치사업 등이 사회운동차원에서 전개되고 있기도 하다.

협동조합의 7대 운영원칙 (국제협동조합연맹, ICA)

원칙
내용
자발적이고 개방된 조합원제도

협동조합은 자발적인 조직으로서, 협동조합을 이용할 수 있고 조합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성, 사회적 신분,

인종, 정파, 및 종교의 차별을 두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다.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운영

조합원은 협동조합의 정책수립과 의사결정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조합원은 협동조합의 자본조달에 공평하게 기여하며 자본을 민주적으로 관리한다.
자율과 독립

협동조합은 조합원에 의해 관리되는 자율적이고 자조적인 조직이다. 협동조합이 다른 조직과 약정을 맺거나 외부로부터

자본을 조달하고자 할 때에는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와 협동조합의 자율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교육, 훈련 및 정보제공

협동조합은 조합원, 임원, 경영자, 직원들에게 교육과 훈련을 실시하여야 한다. 협동조합은 일반 대중에게

협동의 본질과 장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

협동조합간 협동

협동조합은 지역 및 전국단위, 그리고 인접국간 및 국제적으로 함께 일함으로써 조합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봉사하고 협동조합운동을 강화한다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의사에 따라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한동우 /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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