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11-10   485

[편집인의 글] 11월의 단상

가을인가 싶더니 겨울이 왔다. 사람들의 따뜻한 온정이 더욱 그리워진다. 겨울의 문턱에서 지나온 날들을 곱씹어 본다. 지난 봄 우리는 희망을 보았다. 그러나 희망의 꽃망울은 새로운 봄을 기다리는지 쉽게 터뜨리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다. 악취로 진동하는 정치권, 가난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린 사람들, 그들의 죽음을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라고 해도 누구 하나 죄의식 없이 살아가는 세상, 정말 무섭고 두렵다. 언제부터 반도의 땅이 투기의 땅이 되었는지, 모두가 부동산투기 중독증에 집단 감염이 되었지만 치료할 수 있는 백신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어릴 때부터 보았던 교훈과 사훈의 단골 문구는 정직과 성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간판에 불과하다는 것을 한참 후에 알았고 지금은 그러한 간판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삭막한 세상에서 사람들의 가슴판에 새겨진 성실과 정직은 점점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연일 죽어가는 사람들의 뉴스를 접하면서 참으로 죄 많은 세상에서 내가 살고 있음을 더욱 생생하게 느낀다. 돈을 받들고 사는 세상에서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겨울을 맞이하면서 눈꽃 속을 어께동무하며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그러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

금번호에서는 신빈곤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지금까지 계속되는 빈곤층의 생계형 자살은 가난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경제성장의 그늘은 죽음의 그림자가 되어 이곳 저곳을 배회하고 있다. 농촌의 현실은 어떠한가? 근래 보기 드문 흉작과 농산물 개방으로 농민을 절망으로 몰아가고 있다. 끊임없이 창출된 빈곤의 악순환적 고리를 단절할 수 있는 이렇다 할만한 제도적 대책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누구라도 가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빈곤가정의 문제에서 아이들과 동반자살한 모정을 떠올린다. 이미 시장논리에 익숙한 의료시스템은 질병에 노출된 빈민들에게 보호장치가 되지 못하고 있다. 변변한 일자리 하나 가져보지도 못하거나 이를 위한 직업훈련의 기회도 접하지 못하여 아예 배제된 사람들이다. 외환위기 이후 근로능력을 가진 빈곤층의 규모가 늘고 있다. 특히 여성과 중고령자는 장기실업자가 되어 안정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빈곤이 수렁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을 살리는 정책을 수없이 요구하고 목청을 높이지만 내년의 사회복지예산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죽음의 행렬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는 경제회복만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묘약인양 떠들고 있다. 그러나 이제 국민들은 지난날의 경제성장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모두 알고 있다. 더 이상 국민을 기만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 새봄 희망으로 출발한 올 한해가 절망으로 마감되어서는 안 된다. 봄에 씨 뿌릴 것을 소망하면서 한겨울을 이겨내야 할 것이다.

이재완 / 공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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