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11-10   1190

사람을 통해 사람을 돌보다, 복지간병사업

자활후견기관의 평균 근속연수가 13개월이라 합니다. 그런데 저는 46개월을 넘어서는 걸 보니 조금 독종과에 속하나 봅니다. 처음 사회복지 도우미로 천안자활에 왔습니다. 그간 살아온 삶이 쉽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자활 판에 들어와보니 30년간을 살아온 나의 삶은 ‘온실 속’이었습니다.

처음 맡은 일은 천안시 공공근로사업을 위탁받은 푸드뱅크. 6명이 모여 처음에는 좋은 일 한다고 기뻐하시던 푸드뱅크 사업이었지만, 회의하는 도중에 말다툼하시고 휙 나가버리는 분, 남아서 엄청 심한 욕을 하시는 분, 말없이 안 나오시는 분, 나 몰래 일하다 말고 집에 가시는 분, 치사해서 못하겠다고 욕하시는 분…. 결국 캄캄한 구석에 가서 울고 말았습니다. 몇 번 눈물 빼고 나니 ‘별거 아닌 일’이 되더라구요. 그렇게 46개월이 지났습니다.

어느 정도 업무가 익숙해지고 8개월쯤 지나고 나서 병원 근처도 싫은 내게 복지간병사업이 떨어졌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교육준비를 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를 때는 무조건 찾아가서 얼굴 내밀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내성적이던 성격이었지만 수간호사와 친분도 만들고, 다투기도 하고, 병원과의 관계도 만들고, 어색해지기도 했다가 다시 능청맞게 어물쩡 화해도 합니다. 복지간병사업은 어차피 서로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금방 화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 아침 출근길에 핸드폰이 울립니다. 우리 간병사어머니였습니다.

“그냥 지가 하께유. 밤새 생각했는데 내가 기도가 부족했지유. 하는 데까지 해보고 다시 연락드려유. 어젠 미안했어유”

전날 저녁, 간병사가 지금 맡고 있는 환자를 더 이상 간병하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환자는 장결핵과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40대 여자 분으로, 작은 체구에 목소리도 작고 말도 없지만 눈이 맑습니다. 정신장애시설에서 생활하다가 결핵이 심해져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환자는 한번 밖으로 나가면 병실을 못 찾고, 간호사들이 병실에 들어오는 것조차 꺼려하여 무료간병과 유료간병을 겸하여 하루종일 간병사가 함께 있습니다. 다른 환자들을 생각해서 병실 문도 못 열게 합니다. 병원에 있는 결핵환자의 균은 치료중이라 전염되지 않는다고 교육을 받았지만, 예전 결핵병력을 가진 간병사는 못내 걱정이 되어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합니다. 이 환자의 간병을 위해 밤새 뒤척이며 고심을 했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고, 간병사의 상황도 이해가 되는지라 더 이상 강요할 수 없었습니다.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환자나 간병사나 모두 중요합니다. 부모님도 간병하기를 꺼려하고, 병원에서도 돌아보지 않는 이 환자를 우리마저도 포기하면 안 된다는 당위성이 앞서지만, 한편으로는 모두 하지 않으려 하는데 우리 간병사에게만 모든 것을 감당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 없는 처지에 나마저 이 사람 버리고 가면 자책감이 들 것 같다는 간병어머니의 마음이 저를 감동시킵니다.

복지간병사업은 좋은 일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자활사업 중의 꽃이라 생각합니다. 자활공동체와는 다른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사회적으로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국가의 재원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자들이 수급권자들을 돌보는 시스템입니다. 어차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분들이 또한 시장경제에서 살아갈 수 없는 환자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전국복지간병사업단에서는 지난 3년간 이 사업을 제도적인 일자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전국복지간병사 자활한마당을 통해 전국 삼천여명의 간병사들의 목소리를 하나 되게 하기 위해 힘을 모았습니다.

현재 천안 지역도 전국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복지간병사들의 수보다 간병대상 환자의 수가 많습니다. 앞으로도 복지간병사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들은 훨씬 많아질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복지서비스의 특성상 공급이 수요를 더욱 확산시키고, 질 높은 복지간병사들의 맹활약 덕분입니다. 또한 저소득 가구의 만성환자에 대한 간병은 가족 내에서 해결이 되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점점 늘어가는 홀로어르신의 간병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드러나는 계기가 되고 공공의료서비스에 대한 욕구들이 드러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원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리 복지간병사들이 돌보는 주된 환자들입니다. 그래서 간혹 원무과로부터 간호과로부터 질책을 듣기도 합니다. 돈이 없어서 중간정산이나 퇴원을 못하는 경우도 있고, 입원하면서도 없는 물품이 태반이니 간호사들 귀찮게 하는 일이 많고, 대부분 병을 키우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라 병도 깊고, 의료보호 환자여서 병원 측에서 반겨 맞이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환자들의 모습도 각양각색입니다. 세상이 불만투성이인 환자들도 있고, 처음 받아보는 무료간병서비스에 눈물을 흘리는 환자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고마워하다가도 무료서비스에 익숙해지면 혼자 할 수 있는 것들도 미루다가 심지어는 별별(?) 것들도 부탁합니다. 좀 얄미워지는 환자들도 있지요. 왕년에 유료간병인을 두어 본 환자들은 간병사의 진을 빠지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호자가 오지 않는 재영아저씨는 의료보호 환자는 아니지만 뇌졸중으로 오른편마비입니다. 입원하고 나서 얼마 안되어 보호자가 밤에 몰래 다녀간 후로 오지 않아 복지간병사들이 돌아가면서 짬짬이 간병을 해 드리고 있습니다. 보호자도 없고, 간호사들이 돌보기에는 힘이 딸리고, 간병사들의 수도 적어 충분한 간병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료보호 환자도 아니기에 간병사가 1:1로 간병하기에도 어렵습니다. 이미 내 몸을 내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할 때에는 자기 스스로 인간적인 모습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보호자 없이 입원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비참한 일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없는 설움이 의료비, 간병비로 인해 더욱 커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차상위계층에게도 의료급여와 교육급여가 실시된다면 최소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목숨을 끊는 일은 없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경호할아버지는 여동생과 형님이 있지만 이미 문병을 안 온지 여러 달 되었습니다. 처음 간병을 맡았을 때만 해도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결코 편해 보이지 않는, 어머니 자궁 속에 있었던 그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하반신과 집으로 돌아가도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퇴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자활사업의 예산문제는 한 회기가 끝나면 그 다음 회기 시작 때까지 두 달간의 공백이 생깁니다. 여전히 병원에는 환자들이 누워있는데 말입니다. 그 때문에 올해 초 한달 보름정도 환자 분들에게 간병을 해 드리지 못했는데 아마도 이 기간동안 물리치료를 받지 못해 하반신이 굳어버렸습니다. 할아버지의 아프다는 엄살(?)을 무시하고 복지간병사는 팔 다리의 때를 밀어드리고, 이발과 면도를 합니다. 말끔해진 얼굴로 이불 속에 폭 파묻혀 계신 할아버지를 보면, 이불 속의 다리가 굳어서 어찌 되었건 간에 너무 곱습니다. 볼 때마다 누구냐고 나에게 물으시는 할아버지의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어 드리며 늘 같은 소개를 합니다.

무료간병환자들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이며, 우리 부모님, 내 형제 자매의 모습입니다. 또한 우리 이웃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미 IMF를 겪으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으며, 이들의 모습은 또한 우리 미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병원입원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설움을 알 테지요. 이 사업이 정말 돈 없고 빽 없는 이 시대의 소외된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내 물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들이 병원이라는 공간에서만큼은 간병사가 없음으로 해서 소외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료간병 대상환자들에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복지간병사들이 가진 것 없는 환자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것 때문에 혹여 무시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자활운동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사회운동입니다. 경제적인 자활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자활도 중요합니다. 인증공동체의 숫자보다 함께 모여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향한 공동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활에서 활동가 역할을 할수록 어렵지만 저를 뿌듯하게 하는 우리 복지간병사들 덕분에 전 여기서 저의 존재가치를 찾습니다.

정경록 / 천안자활후견기관 간병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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