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12-10   1513

[편집인의 글] 자간나트 마차

자간나트(Jagannath)라 불리는 마차가 있다. 이 마차는 엄청난 추진력을 가지고 있으며, 달릴 때 길 위에 부딪치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마차에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는 마차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지 못하면서 올라타고 함께 달려가야만 한다.

마차는 현대의 제도를 나타내는 표상이다. 인간들은 제도의 불확실성에 대해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하며, 사회적 생활을 완전히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들이 저지르는 ‘계획의 오류’, ‘편리함을 추구한 결과의 오류’는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인류의 이익을 위한 최상의 목표는 야기되는 위험들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더욱 커져가는 사회적 변동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변동으로 인한 부정적 결과들에 대처해야만 한다.

– Anthony Giddens

요즈음 우리 사회는 질주하는 자간나트 마차위에서 바라보는 풍경화 같다. 달리는 마차 위에서 가슴 졸이면서도, 정작 마차가 달리는 길의 상황이나 목적지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보다 안전한 좌석을 차지하거나 혹은 마차의 조종간을 잡으려는 치열한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 수적 우세를 기반으로 하는 집권야당(?)과 벼랑 끝에 서서 승부수를 구사하는 대통령 사이에서 언론은 언론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자신들의 입지와 이해득실에 충실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마차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국민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마차가 벼랑 밑으로 추락하지 않을지, 행여 마차의 바퀴가 빠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혹은 잡고 있는 손잡이가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사회복지란 마차를 누가 조종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달리는 마차에서 부여잡고 있는 손잡이를 조금 더 튼튼하게 수리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이념과 정치적 전략과는 무관하게 사람들의 생활 그 자체의 문제이다. 국민들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헤쳐나가기 어려운 이들에게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보장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늙고 병들어 일하기 어려운 때 연금이라는 공적제도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거나, 큰 질병으로 가계가 파탄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 국민연금, 건강보험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이다.

사회복지는 그저 국가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노력들과 그 노력의 결과물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한 개인적 책임과 타인에 대한 사회적 책임 모두가 중요하다는 것이며, 사회가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보호해주기를 원하는 만큼 건강한 공동체의 질서를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사회복지의 대상자이며, 동시에 주체로서 참여하는 것이 전제가 되는 것이다. 또한 중앙정부의 법률이나 제도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 역할과 지역주민 스스로의 노력이 합쳐져야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호에는 ‘지역사회복지운동’을 심층분석으로 하였다. 이인재는 지역사회복지운동에 있어서 선도조직(leading organization)과 협의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송원찬은 지역복지운동단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활동가들이 모여서 논의한 내용을 제시하면서, 수평적 연대와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윤혜란은 천안지역의 자발적 주민조직인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의 창립부터 5년간의 활동내용 및 그 성과를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서 지역사회 주민복지조직에 대한 논의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남일은 관악지역의 사례를 통해서 지역사회 조직화 및 주민운동은 교육시스템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논의하고 있다. 또한 주민교육은 단순히 조직화의 매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주민조직의 성장과 활동 역량의 강화에 있어서 핵심수단임을 강조한다. 박혜경은 지역사회 보건복지활동에 있어서 기존의 의료기관이나 보건소 등의 공적전달체계가 아닌 새로운 전달체계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자간나트 마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으며, 그 종착지가 어디인지 미리 알 수 없다. 또한 누군가가 마차를 조종해주기를 바라면서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다. 마차를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튼튼한 손잡이를 마련해야 하며, 불편한 자리일망정 서로를 위해서 조금씩 양보할 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타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이며, 공존을 위한 수평적 연대를 넓혀가는 일이기 때문인 것이다.

정홍원 /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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