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너무 나쁘게 보지 마십시오. 우리도 남한 사람들이 낸 세금 덕분에 이 땅에 올 수 있었고, 남한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이렇게… 정착금도 받고, 좋은 집도 얻고, 밥걱정 안하고 살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린 정말이지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피해주지 않고 열심히 살아서 꼭 성공하고, 그래서 통일에 보답하고 싶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이지 쉽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지원이 없다면 우리는 아마도 이 나라에 들어올 수도 없고, 남의 나라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얼마 전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과 관련한 세미나에서 이들에게 지원하는 정착금 및 지원제도를 놓고 여러 가지 관점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을 때, 한 북한이탈주민이 일어나서 이렇게 말하며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사실 우리가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식량난으로 북한을 탈출해 제3국을 거쳐 남한에 들어온 북한사람’ 정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하면 아마도 어릴 적 받은 반공교육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는 이승복 어린이의 절규, 빨간 얼굴에 뿔 달린 괴물, 가끔 언론을 통해 북한이 90년대 중반에 얼마나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렸는지에 관한 기사와, 끔찍하게 마른 북한 사람의 모습, 최근 스포츠 경기에 참가한 북한 응원단의 ‘당’을 위한 일관된 충성심,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에 나온 북한측 가족들의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으로..’라는 정형화된 멘트에 담긴 북한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폐쇄성과 경직성이 어떠할 것이라는 짐작 정도일 것입니다. 이러한 단편적인 모습들이 섞여 ‘북한’과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이미지와 편견의 대부분을 형성하고 있지 않나요.
“고조.. 여기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잘 모릅네다. 식량난 하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었다는 것 정도지. 하지만 실제 살아보지 않고는 정말 몰라요. 고조 살기 위해서는 나무껍질이랑 산나물 캐서 옥수수 가루 넣어 멀겋게 끓인 죽 먹고, 그것도 없으면 산에 돌아다니며 썩은 과일을 정신없이 먹고… 그러다가 뱃속이 뒤집어져서 한동안 아무 것도 못 먹고, 이걸 반복하다 죽는 사람이 지네 많아요..”
“제3국을 다니다가 한국으로 들어올 때 비행기를 타면, 난생 처음 보는 음식(기내식)이 나와요. 저도 그걸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몰라서 음식이 나온 뒤 한참 다른 사람 먹는 걸 쳐다봤죠. 제가 아는 사람은 기내식하고 같이 나온 커피를 보고 어떻게 먹는가 몰라서 커피를 밥에 부어 먹었다고 해요. 여기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 들으면 그냥 웃고 말지만 우리들은… 그 누구보다 진지했던 겁니다. 그게 ‘문화의 차이’라는 거고. 남한생활 하면서 이런 걸 수시로 당할 때마다 정말 창피하고 마음 아프죠.”
“여기 사람들은 우리들이 말을 시작하면 ‘중국에서 왔어요? 북한사람이에요?’하고 금방 알아요. 그래, 나도 처음에는 북한에서 왔다고 다 말했지. 그러니까 대번에 날 이상한 사람으로 보며 피하데요. 그래서 다음에 그렇게 물어본 사람한테는 중국에서 왔다고 했지. 그러니까 날 무시하면서 월급도 잘 안주거나 적게 주고 그래요.”
저는 북한이탈주민들의 남한사회 정착과정을 돕는 사람으로 일한 지 3년째 되어갑니다. 그 동안 수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그분들의 삶의 상처들을 들어야 했고, 타인에게 배타적인 남한사람들의 냉대와 무시를 분노하며 비판하는 것도 한 몸에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알게된 것은 북한이탈주민 누구하나 예외 없이 모두 극단적인 상황을 넘어 이곳까지 와서 남북한의 이질적인 문화와 생활수준의 차이로 남한에서의 정착과정이 힘겨워했고, 이 때문에 실수하거나 남한 사람들로부터 피해를 입은 경우가 참 많다는 것입니다.
제3국에서, 하나원에서, 지역에 거주지를 배정 받은 이후에도 ‘죽을 각오를 하고 여기까지 온 정신으로 정말 열심히 살겠다’고 수없이 다짐해보지만 북한이탈주민에게 남한에서의 삶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그저 말이 통하고 문화가 비슷하다고 쉽게 생각했던 것과 달리 넘어야 할 산이 너무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이해하기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았던 경험이 거의 없고, 때문에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 재산을 축적하는 방법(은행과 통장에 대한 기본 이해부터 시작해야 합니다)이나, 자신에게 적합한 직업을 스스로 선택하고 자격증 따고 경력 쌓는 등의 단계도 막연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북한과 다른 학제를 가진 남한에서 남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려면 ‘a,b,c,d’부터 다시 배워야 하며, 제3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중단된 학업을 메우기 위해 검정고시도 준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남한사람에게 속임이나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북한 사투리가 티 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합니다. 게다가 노동운동이니, 보수니 진보니, 여성운동이니… 북한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다양한 사고방식이 혼재된 남한의 다양한 관점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남한사람들의 삶 전체가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다름’인 것입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남한생활을 경험하면서 성공과 실패의 반복을 통해 남한과 북한의 같지만 다른, 그리고 다르지만 같은 점들을 체득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 사회의 경제, 교육, 문화, 그리고 상식이 통하는 부분에서까지 일방적인 변화와 적응을 요구받는 소수자(minority)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분명 소수자이기 이전에 우리의 형제자매입니다. 앞으로 남북한이 통일을 하든 하지 않든, 그러한 담론과 상관없이 이들은 우리의 친척이자 친구이지 결코 남이 아닙니다. 과거의 뼈아픈 전쟁의 상처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이탈주민의 남한사회 적응을 위한, 그리고 더 나아가 남북한 ‘삶의 통일’을 위한 열쇠는 남한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노력은 소수자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과정임과 동시에, 다름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다수자의 몫인 것입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주민이 나의 친구, 직장 동료, 옆집 식구가 됩니다. 지금부터 역사적 상처로 인해 너무나 달라져버린 서로의 모습을 이해하고 받아주며, 서로의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며 함께 성공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진실한 공동체 운동이 시작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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