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4 2004-11-10   572

[편집인의 글] 지방, 권력, 그리고 복지

단순무식 횡설수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 – 판결이라는 말이 제대로 쓰인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 이 법리적으로 합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이야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우선, 내가 이 논쟁의 한 끄트머리에라도 낄 수 있는 주변머리가 없기 때문이고, 다음은 그러한 논쟁이 어디 소용될 만한 곳을 찾지도 못하겠기에 그렇다. 그래서 경국대전이니 관습헌법이니 하는 말들에 대해 너나없이 한마디씩 보태는 것에 나도 낄 생각은 없다. 나는 오히려 이 소동이 가져 올 영향을 경계한다. 나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바로 그 판결 이상의 다른 의미가 부여되고, 그 판결이 갖는 정치적 영향이 해석, 예측되는 과정에서 또 그 의미가 확대되고, 재생산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서울은 역시 서울”이라는 편협한 생각, 서울은 다른 지방과 구별되는 곳이고, 그래서 서울과 관련된 정책은 우리 국토의 다른 지역에 관련된 정책과는 다른 차원의 논리를 통해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천박한 생각이 우리들 사이에 “관습”처럼 더욱 강하게 내재화될까봐 두렵다. 정치인, 학자, 거기에 언론이 똘똘 뭉쳐 자칫 빼앗길 뻔 했던 그 알량한 기득권을 다시 찾았다는 착각 속의 기쁨에, 그 독점적 혜택의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할 궁리에 몰두할까봐 두렵다.

서울사람?지방사람?

서울중심의 지역관은 우리들 스스로를 철저히 분절시켜왔다. 서울과 지방, 서울 사람과 서울 사람 아닌 사람, 서울말씨와 사투리… 이러한 분절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가? 서울도 대한민국의 한 지방이요, 지역이다. 서울사람은 누구인가? 서울에 사는 사람? 지금은 다른 곳에 살지만, 서울에서 난 사람? 부모님이 서울사람인 사람? 도대체 실체도 모호하거니와 그걸 따져본들 별무소용인 단어와 개념들이 버젓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사실, 서울이라는 말은 애초에 땅이름도 아니지 않은가? 고구려의 서울은 평양이고, 고려의 서울은 개성이며, 조선의 서울은 한양이다.

나는 몇 년전 대구의 어떤 자원활동가와 이야기하는 중에 내게 “중앙에서는… 중앙에서는…” 하길래,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한동안 의아했던 적이 있었다. 지역활동을 하는 활동가 조차도 서울과 다른 지역을 구분하고, 심지어 서울을 “중앙”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 너무도 놀라웠다. 얼마나 무서운 상징폭력인가? 뭐, 서울을 특별시라고 부르는 바에야 나의 이런 푸념도 부질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울, 서울사람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권력처럼 여겨져 왔다. 다음세대재단의 방대욱선생이 88년도에 부산에서 서울로 유학오던 첫날, 서울역 매표소에서 역무원과 벌였다는 실랑이는 웃기기도 하거니와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한 더벅머리가 – 약간 긴장되어 있고, 적의감을 감추지 않는다 – 예의 큰 가방과 이불보따리를 들고 역무원에게 버럭 화를 내며 소리 지른다.

“주리 주이소.” 역무원이 묻는다.

“주리가 뭐에요?”

더벅머리. “내가 방금 500원냈다 아입니까. 그라모, 100원 내주야지. 그기 주리지 뭡니까.”

역무원. “지하철값 500원인데요.”

더벅머리. “…”

400원하던 부산 지하철만 생각하고는 거스름돈을 주지 않는 역무원을 향해 누가 봐도 지나치게 격앙된 표정과 큰 소리로 “주리 주이소”를 외치던 더벅머리는 그 역무원이 자기가 시골사람이라서 우습게 보고 거스름돈을 주지 않는 것으로 지레 짐작했던 것이다.

함께 잘 사는 것, 그것이 복지다!

신행정수도특별법은 600년 도읍을 충청도로 옮겨 가자는게 목적이 아니지 않은가. 서울이 서울에 있든, 충청도에 있든 내 알 바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사람이 지금보다는 좀 더 고루고루 잘살자는 것이다. 우리 조국의 어떤 특정한 지역만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이 관습화되어 있는 구조, 그리고 그 관습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문화를 깨보자는 것이다. 서울사람만 잘살고, 다른 지방 사람은 못살면 그게 무슨 좋은 나라인가. 다른 지방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혜택을 덜 받는 것을 조건으로 내가 잘 살면 그게 무슨 잘 사는 것인가. 잘 살되, 함께 잘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그게 복지다.

한동우 / 강남대학교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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