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4 2004-11-10   956

[심층분석: 시민운동과 사회복지 2] 한국의 노동운동과 복지정치(welfare politics)1)

노동운동과 복지정치

노동운동이 복지국가 성장에 영향을 미쳐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복지국가와 노동운동과의 관계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 발전을 위한 동력으로 작동하는 쌍방적 관계를 갖는다. 다시 말하면, 복지국가의 성장을 위한 동력으로서 노동운동 혹은 복지국가 위기를 돌파하는 동력으로서 노동운동이라는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 또한, 반대로 노동운동 발전을 위한 동력으로서 복지국가라는 관계가 성립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역설적 관계는 서구 복지선진국가에서 주목되는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노동시장에 대한 복지국가의 영향력, 즉, 공공부문 노동시장과 여성노동시장의 팽창은 노동운동진영에 대한 복지국가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증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2).

이와 같은 노동운동과 복지국가간의 관계는 해당 국가의 복지체제(welfare regime)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를 축으로 하는 사회민주주의체제에서 노동운동은 복지정책에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으며, 현재도 그 영향은 큰 차이없이 지속되고 있다. 반면에 보수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운동이 국가를 부정하는 것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이유로 반사회주의자법, 권위주의적 지배체제, 파시즘 등이 득세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노동운동의 복지국가에 대한 영향력은 미약하였다(blocked). 자유주의체제에서 노동운동의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며, 그 영향도 국가복지 보다는 단체교섭을 통한 기업복지에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난다.(Esping-Andersen,1992).

상대적으로 복지국가의 전통이 일천하고, 강력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경험한 한국에서 노동운동의 복지국가에 대한 영향은 1990년대 들어서 목격된다. 1990년대 초반 한국노총은 노동자의 이익을 실현함과 동시에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주택, 의료, 교육 등 생활의 전 영역에서 투쟁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김연명, 1998). 민주노총은 1995년 출범과 함께 선언한 사회개혁투쟁의 일환으로 사회적 임금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사회보장투쟁에 새로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 복지국가에 대한 노동운동의 영향력을 미치는 시발점으로 볼 수 있다3). 특히, 1990년대 중후반부터 민주노총은 그동안의 전투적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반성과 함께 사회개혁투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사회개혁투쟁, 사회구조의 개혁 등을 전면에 내세우게 되면서 본격적인 노동운동의 복지정치를 전개한다. 이 같은 노동운동의 복지정치는 1997년 IMF 경제위기와 1998년 노사정위원회가 출범, 그리고 최근 들어,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라는 중요한 지형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노동운동 진영으로 하여금 새로운 복지정치의 전략을 수립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변화된 지형과 노동운동의 복지정치

그 동안 한국에서 사회복지 성장 추세와 내용 면에서 볼 때, 결코 오늘 날 복지선진국가와 비교하여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성장이 압축적이었던 그 만큼 사회복지부문도 압축적 성장을 거듭해 오고 있다. 이 같은 성장추세는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집중되고 있으며, 그 원인과 배경은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지만, 최소한 한국에서 복지성장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존재했거나 그 합의를 강제하는 외적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그 동안 복지성장을 가능케 했던 ‘합의’는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도전을 받고 있으며, 이에 따라 향후 한국에서 복지성장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동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는 그 동력을 노동운동의 적극적인 복지정치의 참여에서 찾고자 한다. 그 동안 한국의 노동운동은 임단투를 중심으로 하는 시장임금과 개별기업차원의 기업복지 성장에 집중해 온 경험을 갖고 있으며, 이는 노동운동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의 근거가 되곤 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노동운동의 경험은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율과 기업별 노사관계 속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서 이해되어져 한다고 본다4). 오히려 노사관계의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도 노동운동이 국가를 상대로 사회임금투쟁, 사회개혁투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경이로운 현상인 것이다. 노동운동이 사회복지 성장에 강력한 영향을 발휘한 역사적 경험은 사민주의체제 복지국가에서 손쉽게 목격된다. 그렇다고 해서 사민주의체제의 복지국가를 그 전형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우리의 노동운동의 현실이 너무도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이다5). 이하에서는 최근 한국의 복지정치를 둘러싸고 변화된 지형 속에서 복지성장을 위한 노동운동의 역할에 대하여 논의하겠다.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

지난 총선에서 노동운동은 그 동안의 최대의 과제였던 노동의 정치세력화에 성공하였다. 비록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없는 소수정당이긴 하지만, 노동운동의 원내진출 자체가 향후 한국의 복지정치에서 상당한 파장과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가복지가 근본적으로 법과 제도라는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향후 노동운동의 복지정치는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정치 세력화 이전에 복지정치를 담당하는 데 있어서 질곡으로 작용해 왔던 많은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넓어진 제도적 공간에서 임금노동자뿐만 아니라 비정규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 국가복지성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 있어 교두보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운동은 밑으로부터 요구를 수렴하고, 그 결과를 정치세력과의 정책연계하여 관철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정책연계와 협의는 민주노동운동 진영이 대기업의 정규 노동자 중심의 복지정치 한계를 벗어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노동운동의 정책 참여 강화

노동운동이 정책 참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노사정위원회의 출범부터라 할 수 있다6). 특히, 사회협약 중 사회보험제도 관련 위원회의 노사대표의 참여하는 사항이 포함되면서, 노동의 정책참여는 본격화 되었다. 노동의 대표가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여 노동자의 입장과 견해를 대변함으로써 국가 정책에 반영하고, 한편으로 정부는 정책의 실효성과 민주성을 높이데 기여할 수 있다. 현재 노동이 참여하는 각종 정부위원회는 약 60여개에 이르고 있으며, 위원회의 기능은 ‘의결권’을 행사하는 위원회부터 ‘자문’기구와 같은 형식적 위원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몇몇 위원회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위원회가 정부정책에 대한 ‘심의’ 기능에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심의기능에 한정된 역할마저도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7). 또한 노동 대표로 참가한 경우에 전문성이 다소 떨어지는 경우가 발견되기도 한다.

향후 한국에서 복지정치는 과거와 같이 정부의 일방적 형태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노사정 3자의 사회적 대화에 기반한 복지정치로서 전개될 것이므로 각종 위원회에서 노동대표의 참여는 그 중요성이 더해 갈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각종 위원회의 기능강화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노동운동 내부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의 사회보장에 대한 인식제고

1990년대 중반부터 사회개혁투쟁, 사회구조의 개혁, 사회보장투쟁 등으로 이어져 온 노동운동의 비제도적 복지정치, 그리고 노사정위원회의 사회협약과 같은 제도적 복지정치를 거치면서 노동운동의 역할이 증대되어 왔다. 그러나 이 같은 노동운동의 복지정치가 위로부터의 전개되어 왔다는 한계가 최근에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예컨대, 국민연금의 확대와 최근의 ‘파동’에서 일반 국민들은 사실상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상이 그것이다. 물론, 전 국민을 임금노동자 그것도 조합원으로 등치시킬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동운동의 상층부의 인식과 일반 조합원간의 사회보장에 대한 인식의 괴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8).

노동운동진영에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발표하는 성명서, 건의문, 입법청원은 노동자와 농어민, 자영업자등 비임금노동자 등을 아우르는 ‘연대주의 사회복지전략’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노동운동이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일반 노동자의 사회보장에 관한 의식은 이에 훨씬 못 미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연대주의 사회복지전략을 외면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향후 노동운동의 복지정치 참여에 상당한 걸림돌이9) 될 수 있음으로, 차제에 밑으로부터의 복지정치를 가동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10).

<참고문헌>

김유선(1998). [노동조합운동의 현황과 과제], 한국노동연구원

(2003). [사회보장투쟁과 노동운동], 정책보고서 2003-1

김태현(2002). “민주노총 사회개혁투쟁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 민주노총, [2기 사회보장학교 자료집]

노사정위원회(2003). [노사정위워회 5년 전개과정과 활동성과].

노사정위원회(2004).[노사정위원회 합의사항 이행현황: 2003년 4/4분기 현재]

김연명(1998). “한국의 노동운동과 사회보장전략-정치적 ‘연대’ 형성의 조건과 과제”, 한국사회복지학회, 34. 23~44

Esping-Andersen(1992). “The Emerging Realignment between Labour Movements and Welfare States”, Marino Regini(ed), The Future of Labour Movements, SAGE

Shalev,M.(1983). The Social Democratic Model and Beyond, comparative social research 6. Esping-Andersen(1992)에서 재인용.

Martin Rhodes(2001). The Political Economy of Social Pacts: ‘Competitive Corporatism’ and European Welfare Reform, Paul Pierson(ed), The New Politics of the Welfare State,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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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 원고는 비판과대안을위한사회복지학회의 2004 추계학술대회의 발표문을 요약한 것임.

2)이와 관련해서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지만, 복지국가의 노동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커져감에 따라 복지국가의 노동운동 진영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진다는 의미는 다음과 같이 설명이 가능하다. 공공부문의 팽창은 고용주로서 복지국가의 역할을 부여하게 되고, 교섭주체로서 복지국가의 역할이 요구되는 데, 이때 노동운동에 대하여 긍정적, 부정적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대개의 경우 고용주로서 복지국가가 고용한 노동력이 비정규직에 집중되는 측면을 감안할 때, 노동운동에 대한 복지국가의 영향력이 긍정적인 영향만을 미친다고 볼 수 없다.

3) 물론, 해방공간에서 좌파진영의 사회보장 요구와 그 이후 한국노총이 결성되면서 간헐적으로 사회보장에 대한 요구투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장의 수준이나 영향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개혁차원에서 복지를 요구했다는 면에서 1990년 후반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전개한 사회보장투쟁에 무게중심을 둘 수밖에 없다.

4) 사실, 노동운동을 통하여 복지선지국가에 도달한 상당수의 국가에서 초기 노동운동은 시장임금과 기업복지 부문에 전력한 후 국가를 상대로 하는 국가복지 투쟁에 나서게 된다.

5) Shalev(1983)는 복지후진국에서 스웨덴 수준의 노동계급의 힘이 있다면, 그 국가 역시 스웨덴 형 복지국가주의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추론하는 것을 swedocentric fallacy로 부른다.

6) 물론 1960년대부터 한국노총에서 몇몇 위원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지만, 당시의 참여는 매우 형식적이고, 일종의 구색 맞추기의 참여로서 현재와 같은 정책협의, 조정 기능을 수행하지는 못하였다.

7) 예컨대, 서면회의 대체, 촉박한 회의일정 등으로 인하여 회의 안건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를 말함.

8) 소득파악과 관련하여 유리지갑론, 혹은 임금근로자 ‘봉’론은 지나치게 과장된 논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임금근로자들이 동의하고 있으며, 이것이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상당한 불신의 근거가 되고 있다.

9) 꼭 이와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지만, 한국노총이 의료보험통합에 반대한 경우를 보면, 이 보다 더한 경우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10) 민주노총에서 조합원 및 단위노조 간부를 대상으로 운영해 왔던 사회보장학교와 같은 프로그램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류만희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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