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4 2004-12-10   3183

[포커스 1] 사회권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그러나 실망스러운 결정-헌법재판소 2004. 10. 28. 2002헌마328 「2002년도 국민기초생활보장최저생계비 위헌확인」기각 결정에 부쳐

일관된, 그러나 실망스러운 결정

지난 10월 21일 헌재가 신행정수도이전특별조치법에 대하여 위헌 결정을 내린 후 헌재의 존재가치와 기능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일었다. 이에 가려 많은 이들이 주목하지 않았지만 헌재는 지난 10월 28일 또 하나의 ‘실망스러운’ 결정을 내렸다. 신행정수도 위헌 결정이 예측가능성과 상식을 벗어난 법리 전개로 뭇 사람들을 당혹케 한 것이었다면, 10월 28일의 결정은 지난 10년간 헌재가 보여준 태도에 비추어 지극히 당연하고 예측가능한 결정이었기에 사람들을 더욱 실망케 한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사회권에 관한 헌재의 태도의 추이

1994년에 당시 생활보호법에 따라 복지부장관이 정한 1994년 생계보호기준이 다른 법령의 급여를 포함하여도 최저생계비의 50% 남짓에 불과하여 헌법 제34조 제1항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다.1) 이 청구에 대하여 헌재는 3년 여 만에 기각결정을 내렸다(헌법재판소 1997. 5. 29. 94헌마33). 이 결정에서 헌재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중심으로 한 사회권에 관한 자신의 소극적 견해를 소상히 밝혔는데, 당시 헌법학계나 시민단체에서의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 법리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관한 이후의 거의 모든 사건에서 반복되었고 이번 10월 28일의 결정에서도 한치의 다름없이 재확인되었다.

1997년 결정을 계기로 정부는 열악한 현실을 더 이상 덮어 둘 수 없는 도덕적인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기왕의 공공부조상의 시혜적인 권리를 헌법상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터잡은 급부청구권으로 실정법화하는 입법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였고, IMF 구제금융 때의 대량 실업과 빈곤문제가 사회화되면서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계의 보장’을 제도화하는 것에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결국 이런 노력으로 2000년 10월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생활보장법’이라 한다)이 시행되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수급권자’ 개념을 규정하여 헙법상 사회보장수급권을 실질적으로 확인하고, 최저생계비의 급여 수준으로 ‘국민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의 유지’를 선언하여 이전의 생활보호법에 비하여 진일보한 법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법 시행 이후에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보건복지부장관은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으로서 최저생계비를 공표하여야 하고, 이때 국민의 소득·지출수준과 수급권자의 생활실태,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여야 함에도(기초생활보장법 제6조) 2002년도 기초생활보장법상의 최저생계비를 고시함에 있어 장애로 인한 추가지출비용을 반영한 별도의 최저생계비를 결정하지 않은 채 가구별 인원수만을 기준으로 최저생계비를 결정하였다. 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자로서 정신지체 1급 장애자가 2명 있는 장애가구를 이루어 사는 청구인들이 위 최저생계비 고시가 생활능력 없는 장애인 가구의 구성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및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2002년 5월경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고,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주선회 재판관)는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위 최저생계비 고시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이다.

10월 28일의 결정에서는 최저생계비 수준이 턱없이 낮다는 점보다는 장애가구의 추가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점이 주된 논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관한 자신의 일관된 법리를 재확인하였는데, 이하에서는 주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대한 헌재 입장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행복추구권에 대하여도 기각한 법리를 함께 분석해 보겠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대한 헌재의 인식과 그 문제점

헌재 결정의 요지

아래는 헌법 공부를 한 사람이면 그 대강을 외울 정도로 익숙한 문장이다. 지난 10여년간 헌법 제34조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침해 여부가 문제된 사건에서 헌재가 어김없이 되풀이해온 법리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회권에 대한 헌재의 인식은 완강한 것인데, 헌재가 위 법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사회권 분야에서 전향적인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헌재 홈페이지에 게시된 결정의 요지를 조금 길더라도 꼼꼼히 읽어 볼 필요가 있다(밑줄은 필자 강조).

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생활능력 없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헌법의 규정은 입법부와 행정부에 대하여는 국민소득, 국가의 재정능력과 정책 등을 고려하여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대한으로 모든 국민이 물질적인 최저생활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에 맞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행위의 지침 즉 행위규범으로서 작용하지만, 헌법재판에 있어서는 다른 국가기관 즉 입법부나 행정부가 국민으로 하여금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도록 하기 위하여 객관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할 의무를 다하였는지의 여부를 기준으로 국가기관의 행위의 합헌성을 심사하여야 한다는 통제규범으로 작용한다.

나.“인간다운 생활”이란 그 자체가 추상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그 나라의 문화의 발달, 역사적ㆍ사회적ㆍ경제적 여건에 따라 어느 정도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이고, “최소한도의 조치” 역시 국민의 사회의식의 변화, 사회경제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가변적인 것이므로, 국가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생계급여의 수준을 구체적으로 결정함에 있어서는 국민 전체의 소득수준과 생활수준, 국가의 재정규모와 정책, 국민 각 계층의 상충하는 갖가지 이해관계 등 복잡 다양한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하므로,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의 최저생활보장의 구체적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입법부 또는 입법에 의하여 다시 위임을 받은 행정부 등 해당기관의 광범위한 재량에 맡겨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그러므로, 국가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헌법적 의무를 다하였는지의 여부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된 경우에는, 국가가 최저생활보장에 관한 입법을 전혀 하지 아니하였다든가 그 내용이 현저히 불합리하여 헌법상 용인될 수 있는 재량의 범위를 명백히 일탈한 경우에 한하여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 있다.“

헌재가 가진 생각의 핵심은 ①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관한 헌법 규정은 입법ㆍ행정부에게는 가능한 ‘최대한’의 조치를 요구하지만 헌재에게는 ‘최소한’의 의무를 다했는지를 판단하는 통제규범으로 작용할 뿐이고 ②헌재는 입법부와 행정부에 부여된 광범위한 재량을 존중하여 이를 명백히 일탈한 경우가 아니면 위헌으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언뜻 권력분립에 따라 입법부ㆍ행정부의 권한과 재량을 최대한 존중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읽으면 큰 문제가 없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커다란 논리적, 실천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자유권과 사회권에 관한 헌재의 이분법적 사고의 문제

우리나라 헌법은 제헌헌법에서부터 각종 사회권을 규정한 이래 ‘사회권’ 조항들을 헌법에 규정해왔다.2) 헌법에 사회권 조항을 규정하지 않고 ‘사회국가조항’과 같이 국가의 목표규정 형식을 취한 헌법례도 있는 것에 비추면, 사회권을 일찍이 독자적인 헌법상 권리로 인정하여 온 우리의 헌법 규정은 실제야 어떻든 꽤 선진적인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정통성 없는 군부독재정권들은 정치적 선전을 위한 방편으로 이 규정들을 장식물로 전락시켜왔으며 사법부도 사회권을 권리로써 인정하는데 주저하여 왔다.

그간 사회권은 물질적, 시설적 급부 등 특정한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국가의 적극적인 활동을 내용으로 하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국가에 대한 방어권으로 이해되는 자유권적 기본권과는 구조적으로 다르고, 또한 재정투자와 직접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실현의 조건과 방법에 있어서도 자유권적 기본권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점 때문에 그동안 우리 헌법학계에서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독일의 이론을 중심으로 학설이 나뉘어 왔었다.3)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하여 추상적 권리설 또는 불완전한 구체적 권리설의 입장인 듯한 설시를 하였으나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개 ‘최소한의 물질적 생활’에 필요한 권리 이상에 대해서는 헌법상 권리로서 인정하려 하지 않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의 추상성을 강조하며 입법부의 광범위한 재량권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왔다.4)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추상적 권리인가 구체적 권리인가의 논란은 입법이 없을 경우에 문제되므로 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된 지금에는 큰 논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기초생활보장법은 최저생계비의 기준으로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수준을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기초생활보장법상의 기준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 하는 데에 달려 있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의 성격을 선험적으로 정하는 데에 있지 않다. 그런데, 헌재의 이번 결정은 그런 진전을 보여주지 못한채 예전의 추상적 권리설을 연상시키는 그늘에서 여전히 맴돌고 있다. ‘인간다운 생활’의 추상성만을 강조하며 ‘입법ㆍ행정부의 광범위한 재량’만을 되뇌이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답보는 헌재가 기본적으로 자유권과 사회권을 이분법적으로 대립ㆍ대비시키는 고전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양자를 대립시키는 사고는 냉전 시기 이념대립의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나, 지난 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양자의 상호보완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양자의 경계가 불분명해져가는 추세에 있다. 지난 IMF 구제금융 이후 독자적 생존능력이 없는 자에게 자유권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드러난 시점에서, 헌재는 사회권이 추상적이고 국가의 정책에 의하여 비로소 실현될 수 밖에 없는 권리라는 소극적 인식을 이제는 탈피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헌재의 논리적 문제점

헌법규정이 입법부, 행정부에게는 ‘최대한의 의무’를 부과함에 반하여, 헌재에게는 ‘최소한의 의무’를 다했는지만을 심사할 것을 요구한다는 헌재의 논리는 논리적으로 비약이다.

헌법이나 헌법재판소법 어디에서도 왜 헌재가 사회권에 관하여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심사하여야 하는지 근거를 찾을 수 없다. 헌재의 말대로라면 헌법과 그에 따른 기초생활보장법이 입법부ㆍ행정부에게 ‘최대한으로 모든 국민이 물질적인 최저생활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에 맞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의무를 부과하였으므로, 입법부와 행정부가 그 수준에 맞는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였다면 이는 위헌이 된다. 그런데 국가기관의 행위에 대한 유일한 헌법적 판단기관인 헌재는 이를 위헌으로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위헌이지만 위헌이 아닌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입법부ㆍ행정부에게 완전한 면책특권을 부여한 것이다. 법이란 만인에게 같은 기준으로 공평하게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다. 헌재가 근거 없이 입법부ㆍ행정부와 헌재에게 다른 척도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매우 자의적이다.

무제한의 재량 허용과 그 결과

헌재는 나아가 인간다운 생활은 추상적ㆍ상대적 개념이고, ‘최소한의 조치’는 가변적이므로 사회권의 영역에서는 정책기관에게 폭넓은 재량권이 주어질 수 밖에 없으므로 국가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헌법적 의무를 다하였는지 여부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된 경우에 첫째, 전혀 입법이 없든가 둘째, 내용이 현저히 불합리하여 헌법상 용인될 수 있는 재량의 범위를 명백히 일탈한 경우에만 위헌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위에서 본 ‘최소한’의 통제규범 법리와 결합하여 사회권을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말았다. 사회권의 개념이 추상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여도, 그로부터 입법부 등에 대한 통제심사권을 포기하여야 할 논리적 필연성은 없다. 오히려, 입법부와 행정부는 입법 및 집행 과정에서 헌법적 권리인 사회권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상황에 맞는 기준을 정립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에서 입법부ㆍ행정부의 ‘광범위한 재량’은 제한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을까? 사실상 헌법상 권리보다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이 헌법적 관점에서 타당한 것일까?

실제 헌재의 결정례를 살펴보면 이런 우려는 분명해진다. 최저생계비의 50%도 안되는 94년 생활보호기준에 대하여도 재량권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인정한 이래, 지난 10여 년간 헌법 제34조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문제된 경우에 헌재가 특정 법령이나 공권력 행사가 인간적인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판단한 경우는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아예 입법이 없는 경우가 아닌 한 모든 사회부조 정책은 나름의 ‘정책적ㆍ재정적’ 판단이 개입되어 있으므로 헌재 재판관들이 보기에는 다 재량의 범위 내에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헌재의 태도는 헌법수호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방기한 위헌적 해석론이다. 이런 헌재의 방패막이 속에서 정부가 국민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기초생활보장 등 사회복지 예산을 짤 수 있게 된다면, 국민이 정부의 복지정책 및 그 예산에 대하여 헌법상 이의를 할 수 있는 방안은 처음부터 봉쇄되고 말기 때문이다.

소결론 – 헌재는 ‘인간다운 생활’에 대한 헌법적 기준을 정립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헌재도 인정하고 있듯이 자본주의경제의 발달과정에 있어서 빈곤은 더 이상 개인적인 물질적 결핍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사회 전체의 문제이고, 경제의 성장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빈곤문제는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5)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있어서 현시기 가장 큰 과제는 헌법과 기초생활보장법상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이 무엇인가 그 헌법적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다. 헌재는 최저생계비 수준을 정함에 있어 국민 전체의 소득수준과 생활수준, 국가의 재정규모와 정책, 국민 각 계층의 상충하는 갖가지 이해관계 등 복잡 다양한 요소를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 그 고려요소를 구체적으로 위헌심사에 적용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의 GDP(국내총생산) 규모는 세계 11위 수준이며 외환보유액도 1665억 가량으로 세계 4위이며 교역 규모 세계 12위를 자랑한다6). 한편 우리나라 전체가구 중 가처분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절대빈곤 가구 비중은 지난 1996년 5.92%에서 2000년 11.47%(164만여 가구)로 2배 가까이 증가했고, 소득불평등의 정도는 지난 96년 0.298에서 2000년에는 0.358로 급등하여 2000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16개국 중 멕시코(0.494), 미국(0.368)에 이어 3번째로 높아 소득 불평등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7) 이처럼 우리나라는 소득불평등이 매우 크며 절대빈곤층의 비율이 매우 광범위하다.

2002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GDP는 596조 3,800억원이며 예산은 109조 6,300억원 가량인데, 이중 보건복지 예산은 7조 7,243억원으로 GDP 대비 1.3%에 불과하고 예산 대비 7.0%에 불과하다8). 한편 같은해 기초생활보장예산은 3조 3832억원으로서 보건복지 예산 중 43%를 차지하였다9). 이처럼 복지예산의 확보 없이는 기초생활보장의 예산확보도 가능하지 않을 것인데, 우리나라의 복지예산 수준은 1998년 기준 OECD 국가들중 최하위권이고 GDP 1만불일 때의 다른 나라의 복지지출과 비교하여도 꼴찌 수준에 해당한다.10)

이처럼 매우 비정상적이고 국제기준에 못미치는 복지 상황에서 헌재는 우리의 제반 사정에 맞는 ‘인간다운 생활’의 최소 기준을 설정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헌재는 이 점을 심각히 고민하지 않는다. 헌법수호기관으로서 사회권의 개념을 구체화하고 기준을 정립하여 사회권이 명실상부한 기본권으로서의 위치를 찾게 하는 것이 헌법수호기관으로서의 사명일진대, 헌재는 사회권에 대한 기준을 정립하는 것을 처음부터 포기한 채 ‘통제규범’,‘광범위한 재량’ 운운하면서 스스로 헌법 제34조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있는 점은 가장 큰 문제점이다.

구체적 판단 과정에서 드러난 헌재의 자의성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침해 여부의 판단 기준

헌재는 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생계급여 외에 다른 법령에 의거하여 국가가 최저생활보장을 위하여 지급하는 각종 급여나 각종 부담의 감면 등을 총괄한 수준으로 판단하여 인간다운 생할을 할 권리 침해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면서, 장애인가구의 생계급여액수를 산정할 때 장애인 가구의 소득액 중에서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장애수당, 장애아동부양수당 및 보호수당, 만성질환 등의 치료요양재활로 인하여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지출하는 의료비를 공제하여 산정한다는 점, 장애인가구는 비장애인가구와 비교하여 각종 법령 및 정부시책에 따른 각종 급여 및 부담감면으로 인하여 최저생계비의 비목에 포함되는 보건의료비, 교통통신비, 교육비, 교양오락비, 비소비지출비를 추가적으로 보전 받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보건복지부장관이 2002년도 최저생계비를 고시함에 있어서 장애인가구의 추가지출비용을 반영한 최저생계비를 별도로 정하지 아니한 채 가구별 인원수를 기준으로 한 최저생계비만을 결정 공표함으로써 장애인가구의 추가지출비용이 반영되지 않은 최저생계비에 따라 장애인가구의 생계급여 액수가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 부분에서도 우리는 헌재가 너무 안일하게 판단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첫째, 기초생활보장법상의 급여 외에 다른 급여 및 감면으로 추가 비용이 보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최저생계비의 존재 이유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최저생계비란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하여 반드시 지급되어야 할 기준을 정한 것이므로, 장애로 인하여 발생하는 추가비용은 다른 확실한 보상이 없는 한 그들의 생존을 위하여 반드시 최저생계비에 포함시켜 지급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장애인에게는 비장애인에 비하여 한달 15만 7900원의 추가비용이 평균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은 이미 보건복지부의 조사결과에서도 드러났다.

둘째, 헌재가 든 각종 수당의 지급, 급여 및 부담 감면을 통하여 장애 가구의 추가비용이 현실적으로 충분히 보전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런 판단은 면밀한 실제 조사가 필요한 것이지만, 주로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사실회보에 의존하는 헌재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시민단체들의 의견에 의하면 장애수당은 수급자 중 중증 장애인에게만 월 5만원(2002년 기준, 2004년 월6만원)이 지급되고 장애아동부양수당은 2003년에야 수급자 1급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신설되었고, 장애인보호수당은 장애인복지법에 이름만 있을 뿐 지급되어 본 적도 없다. 또한 각종 감면은 소비를 할 수 있는 장애인에게만 해당되는 혜택이며, 소비능력이 없는 수급자들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다. 그리고, 그리고 이러한 장애가구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2001년 기준 최저생계비 지원대상 70만 7331가구 중 장애인 가구는 14.2%인 10만 721가구에 이른다.

셋째, 보건복지부도 현재의 일률적 기준이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2005년도 최저생계비 산정에는 장애인, 노인 가구 등의 특성을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 스스로 문제를 인정한 사안에 대하여 헌재는 전혀 언급도 없이 정당화를 하였다. 이런 판단이 위에서 본 헌재의 ‘최소심사기준’론에서 당연히 도출되는 결론임은 위에서 본 바와 같다.

행복추구권의 문제

사회권과 관련하여 행복추구권의 문제도 잠깐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 사건에서 헌재는 특별한 이유 설시 없이 이 사건 기준이 청구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그 이유는 행복추구권을 보는 헌재의 시각에 있다.

헌재는 일관되게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은 국민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필요한 급부를 국가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활동을 국가권력의 간섭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포괄적인 의미의 자유권이라고 보고 있다(헌법재판소 1995.7.21. 93헌가14 등). 이런 견해에 의하면 사회권과 관련한 문제에 있어서는 행복추구권이 문제될 소지가 아예 없으므로, 헌재는 판단할 필요도 없이 기각 결정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헌재의 판단에는 행복추구권이 포괄적인 권리로서 남용가능성이 있다는 점 외에 자유권과 사회권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헌재는 왜 사회권 영역에 대한 청구에서 청구인들이 행복추구권을 주장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헌재가 스스로 헌법 제34조 등 사회권 조항을 무력화시켜 왔기 때문이다. 헌재가 행복추구권의 남용을 막고 싶다면, 그 방법은 헌재 스스로 헌법 제34조의 진정한 의미를 부활시키는 방법 밖에는 없을 터이다.

우리나라는 매우 훌륭한 사회권 보장의 헌법 체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실질적 보장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헌재가 지난 생계보호기준 사건에서 첫단추를 잘못 끼운 이래 소극적인 결정을 반복하고 있는데에도 책임이 크다 할 것이다. 헌재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제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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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5세 이상으로 2,600만원 이하의 재산을 소유한 자로서 부양의무자가 없고, 부양능력이 없는 최저 빈곤층 노인들에게 구 생활보호법상의 생계급여 65,000원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는 복지부장관의 생계보호기준은 당시 도시 기준의 최저생계비인 180,000여 원보다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2) 헌법 제34조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1962년 제3공화국 헌법에서 처음 명시적으로 규정되기 시작했고, 1980년 헌법에서는 ‘국가의 사회보장 사회복지 증진 노력의무’가’ 규정되었다.

3) 학설상 ①단지 국가가 추구해야 하는 목표 내지 지침을 규정하는 것일 뿐 국가를 구속하지 못한다는 프로그램규정설 ②헌법적 권리이기는 하나 구체적인 입법이 없는 한 헌법 규정만으로는 구체적 권리로서 주장될 수 없다는 추상적 권리설 ③헌법규정 자체에서 구체적 내용을 가진 권리가 인정되므로, 입법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개개인은 소송을 통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구체적 권리설 ④불완전한 구체적 권리설 등이 주장되었다.(권영성, 『헌법학원론』 1999. 554면)

4) “헌법 제34조 제1항 소정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최소한의 물질적인 생활의 유지에 필요한 급부 이상을 요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권리를 직접 발생케 한다고는 볼 수 없고 이러한 구체적 권리는 국가가 재정형편 등 여러가지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감안하여 법률을 통하여 구체화할 때에 비로소 인정되는 법률적 차원의 권리로서 입법자에게 광범위한 입법재량권이 인정된다(헌법재판소 1998.2.27. 97헌가10, 국가유공자예우등에관한법률 제9조 위헌제청 등).

5) 헌법재판소 1997.5.29. 94헌마33, 1994년생계보호기준위헌확인.

6) 조선일보. 2004. 10. 1. 자.

7)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취약계층 보호정책의 방향과 과제」 2003. 10. 8). 한편 재정경제부의 통계에 따르면 도시 근로자 최하위 20%(1분위)와 최상위 20%(5분위)간의 월소득(가처분소득 기준) 격차는 99년 317만1000원에서 2004년 439만원으로 121만9000원이 늘어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재정경제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제출자료. 2004. 10. 15).

8) 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 세입세출예산서」, 참여연대 정책자료집 『복지재정분권화 이대로 좋은가』2004.5.10.에서 재인용)

9) 김미곤. 『보건복지포럼 통권 제57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3.1.

10)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 ꡔ한국의 복지지출추계: 1990~2001ꡕ, 2003.

송상교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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