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7 2007-11-01   1389

[동향2] 정부 국민연금기금운용체계 개정안의 문제점과 올바른 개혁 방향


오 건 호 (민주노동당 정책전문위원)


국민연금기금운용체계 개정안을 담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지난 10월 11일 입법예고되었다.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혁 문제는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사각지대 문제와 함께 핵심 3대 의제 중 하나이다. 정부에겐, 지난 7월 국민연금법과 기초노령연금이 마무리되었으므로, 기금운용체계 개혁이 국민연금의 마지막 과제를 해결하는 수순이지만, 가입자에겐 이제라도 자신의 연금권리를 지켜내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 될 것이다.
나는 국민연금 의제를 다루면서 급여율과 보험료율을 다루는 제도개혁 보다 기금운용체계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예를 들어, 국민들이 촉각을 세우는 급여율, 보험료율 문제는 결국 가입자들이 내고 받는 ‘가입자 세대간’의 문제로서 5년주기로 계속 변화할 사안이다. 반면에 기금운용체계 의제는 누가 운용권을 가지고, 무엇을 위해 운용하느냐의 문제로 가입자와 가입자 외부세력(국가, 자본) 간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사안이다. 게다가 지배구조의 특성 상 한번 기금운용체계에서 제외되면 이후 가입자들이 기금운용권리를 회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기금운용체계 의제는 지난 수년간 가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해 왔다. 시민단체에선 참여연대가 이것의 중요성에 주목했지만, 학자들의 문제제기 수준을 넘지 못했고, 노동계를 비롯한 가입자단체 역시 이것을 공론화하는데 무기력했다. 이렇게 국민들이 수면 위에서 국민연금 재정안정화와 사각지대 개혁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이는 동안, 경제부처와 보건복지부가 수면 아래서 기금운용권을 둘러싼 치열한 다툼을 벌여왔고, 마침내 그 결과가 입법예고된 것이다.
이 글은 국민연금기금 운용권을 둘러싼 다툼에서 가입자들의 주인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씌여졌다. 현행 국민연금기금 운용체계의 문제점을 살펴본 후, 정부 개정안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이어 올바른 개혁방향을 살펴볼 것이다.


1. 현행 국민연금기금 운용체계의 문제점


1) 가입자 대표성 문제


현행 기금운용체계가 지닌 문제점은 심각한 수준이다. 첫째, 가입자 대표성이 적절치 않다. 현재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21인 위원 중 가입자 대표가 12인으로 과반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실질적 대표성 면에서 한계가 크다. 농어촌지역 가입자대표로 금융기관인 농업협동중앙회, 수산업협동중앙회가, 도시지역가입자대표로 특수전문가집단인 공익회계사협회가 참가하고 있다. 다른 도시지역가입자 대표인 음식업중앙회는 업무 성격 상 정부(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표 1> 현행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구성 (21인)

둘째, 가입자 위원들의 전문성에도 문제가 있다. 국민연금기금 운용의 중요성에 비한다면 참석한 가입자위원 중에서 안건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위원들이 많지 않다. 근본적으로 국민연금기금운용에 관한 전문성 부족으로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진지한 관심을 가진 노동계, 일부 시민단체 위원들 역시 전문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가 기금운용체계 개정안에서 가입자를 배제하려는 중요한 이유가 가입자의 전문성 부재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입자단체들이 뼈아프게 생각해야 할 문제다.

셋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비상설화도 바꿔어야 할 과제다. 위원회는 부여된 막중한 사회경제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분기별 회의체로 운영되며, 그것도 2시간 남짓 소요되는 새벽 조찬회의이다. 이러한 회의체계에서 내실있는 기운용계획안 심의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 결과 운용위원회에 가입자대표가 과반수로 참여하고 있지만 실제는 정부의 의도에 따라 회의 운영이 좌지우지된다고 볼 수 있다.

넷째, 위원회의 독립성도 확보되어 있지 못하다. 국민연금기금 규모가 커짐에 따라 기금운용체계의 독립성이 더욱 중요하게 부상하고 있지만 현실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과거 공공자금 강제 예탁을 실시한 적이 있고, 기금운용위원회 운영의 부실화로 보건복지부가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고 있서 ‘정부로부터 독립성’이 강조되어 왔지만, 이제는 시장으로부터 독립성도 주목되어야 한다. 기금운용위원회가 지금은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지만, 자산배분전략이 사실상 수익성을 기준으로 정해지고 있어, 점차 민간 기관투자기관과 유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 정부 개정안의 문제점: 가입자의 연금주권 박탈


정부 개정안의 문제점은 가입자의 연금주권 박탈로 요약된다. 개정안은 기금운용체계의 독립화와 상설화를 목표로 내걸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연금가입자를 배제하는 급진적 전환을 꾀하고 있다. 결국 정부 개정안이 이야기하는 독립화란 가입자단체로부터 독립이며, 상설화란 향후 가입자단체에 대한 구조적인 배제를 의미한다. 

첫째, 개정안은 기금운용체계 구성에서 가입자를 사실상 배제하여 가입자의 연금주권을 박탈하고 있다. 개정안의 핵심은 위원회 구성을 가입자중심에서 ‘민간중심’으로 전면 개편하는 것이다. 개정안은 위원회 구성을 현재 21명에서 7명(위원장, 민간위원 5인, 공사 사장)으로 줄이면서 가입자대표를 아예 배제하고 있다. 단지 가입자단체들은 11명으로 구성되는 위원 추천위원회에 3명이 형식적으로 배정될 뿐이다.

이제 가입자단체들은 위원회 자리도 빼앗기고, 추천위원회에서도 소수에 불과한 관전자로 밀려났으며, 향후 상시적인 감시감독을 위한 아무런 역할도 부여받지 못하는 처지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국민연금제도에서 지금까지 존중되어 온 연금관리원칙을 근본적으로 허무는 일이다. 참여정부는 임기 말기에 이토록 위험한 방안을 꺼내들만큼 국민연금 가입자를 가볍게 보고 있다.

둘째, 개정안은 현행 보건복지부 산하 회의체로 운영되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독립화, 상설화하고, 기금운용 실행조직도 현행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분리해 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위원회의 독립화와 상설화는 명분은 그럴 듯 하지만, 실제는 금융시장화 전략을 위한 정부와 시장의 공조작품에 불과하다. 정부 개정안에 따르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정부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정부가 위원회 위원 추천위원회를 장악하기 때문이다(11인 추천위원회 중 정부위원 5인, 공익위원 3인 등 8인이 정부측 영향력 하에 있게 됨).
중장기적으로는 국민연금기금 운용을 둘러싼 다툼은 기금운용위원회 민간위원(금융․자산운용 분야 민간전문가 7인) 구성을 두고 정부와 시장세력이 경쟁하는 모습으로 전개될 것이다. 지금까지 노무현정부가 자산운용시장 육성을 위해서 금융자본과 협력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개정안은 정부의 금융부양정책과 금융시장의 이해과 조응하는 것이다.


3. 올바른 개혁 방향


이에 국민연금기금운용체계의 올바른 개혁을 위한 몇가지 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가입자 과반수원칙. 우리나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가입자대표의 과반수 참여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강한 상황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래야만 천문학적인 기금운용 계획 및 결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가입자위원 대표성 강화. 가입자의 대표성을 실질적으로 반영하도록 위원 추천단체가 개선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농어민가입자 위원의 추천권을 금융기관인 농협, 수협이 아니라 농어민을 대표하는 대중조직이 가져야 한다. 도시지역가입자 대표의 경우도 현재 참가하는 협회조직의 독립성, 대표성 등의 문제를 감안하면 당분간 시민단체 몫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가능하다.

셋째, 위원 자격요건 확대. 정부 개정안의 위원 자격요건도 지나치게 ‘금융․투자분야 전문가’로 한
정되어 있다. 만약 이 요건이 강행된다면, 가입자단체들은 이를 만족하는 전문가를 추천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의 대표성, 공공성을 감안하여 자격요건이 완화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기금의 공공성에 관심을 두는 사회정책분야 전문가 혹은 공공기관 또는 비영리단체 등에서 활동한 전문가들도 포함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가입자 위원 전문성 확보. 가입자대표가 안고 있는 비전문성 문제도 개선되어야 한다. 우선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가입자대표의 직접 참여를 허용하되, 반드시 가입자 추천 전문가 1인을 포함하도록 해야 한다. 이어 가입자 위원 및 관련단체 실무간부들의 기금관련 역량을 제고하기 위한 훈련프로그램도 필요하다(예를 들어, 가입자 추천 장학제도를 통한 가입자 대표 기금운용 전문가 양성).

다섯째, 기금운용체계 독립화 방향.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정부, 시장 모두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운용위원회에 국가인권위원회처럼 정부로부터 독립된 법적 위상을 부여하고, 시장세력이 아니라 가입자가 기금운용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다만, 아직 가입자가 기금운용계획안을 직접 마련하고 평가할만큼 기금운용역량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현행 보건복지부 소속에 준거를 둔 채 점진적으로 독립적 체계를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 가능할 것이다.

여섯째. 기금운용체계 상설화 추진. 기금운용체계의 상설화는 필요하다. 위원회는 투자정책국, 성과분석국, 준법감시국 등이 중심이 되고, 감사위원회와 징계위원회 등도 설치되어야 한다. 상설화된 위원회 산하에 기금운용 실무조직은 공사로 분리될 필요가 있다.


4. 맺으며: 가입자단체의 연금주권운동 필요한 때


국민연금기금의 주인은 가입자이며, 이들만이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전략을 심의할 수 있고,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있다. 이제 가입자의 국민연금기금 운용주권을 빼앗는 개정안에 대항하는 가입자의 연금주권운동이 필요한 때이다.

노무현정부는 임기 말년에 무리하게 국민연금기금 운용체계를 개악해선 안된다. 현행 개정안을 백지화하고, 연금가입자단체와 함께 새로운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 정부 개정안이 백지 상태에서 재논의되지 않는다면, 가입자단체들은 기존 국민연금 관련기구에서 더 이상 들러리 역할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국민연금기금 주권 찾기 운동이 태동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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