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8 2008-12-03   1750

[특집] 우리사회 노동 히어로가 말한다!

우리사회 노동 히어로가 말한다!
– 청소년, 여성, 고령, 이주, 장애노동자  50일간
우리사회 다양한 노동 히어로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IMF 이후 비정규직 및 저임금 일자리의 비중 증가로 소득불평등과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취약한 사회안전망으로 인해 취약계층의 노동ㆍ인권실태는 악화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와 <오마이뉴스>는 지난 9, 10월 총 5회에 걸쳐서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노동을 말할 수 있는 <우리 사회 노동히어로가 말한다> FGI(Focus Group Interview)를 마련하고,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취약계층인 청소년, 여성, 40ㆍ50대 중년, 고령자, 이주노동자, 장애노동자 당사자들이 말하는 노동실태와, 정부정책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짚어보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기간 : 2008년 9월 5일~ 10월 10일, 총 5 회 장소 :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주최 :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 오마이뉴스


① 일한 만큼 받고 싶어요! – 청소년 노동이야기청소년 알바 문제는 청소년 고유의 인권문제이자 노동권의 문제입니다. 알바생은 노동자이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저임금, 임금체불, 장시간 노동 등 사업주의 온갖 부당노동행위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로부터 알바생의 부당한 ‘노동실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들어보았습니다. ② 똑같이 일해도 절반도 안 돼 – 여성노동자 이야기우리나라 여성노동자는 3명 중 2명이 비정규직이며, 저임금과 고용불안, 차별대우에 시달라고 있습니다. 산업구조 변화로 유통, 서비스산업 일자리가 크게 증가하면서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파견, 용역, 외주 등 간접고용형태의 고용계약으로 근로조건은 매우 열악한 상황입니다.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근로실태와 여성노동자들이 느끼는 간접고용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③ 여기가 내 일터 – 이주노동자 이야기2007년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수는 약 41만 명이며, 이중 50% 정도가 미등록 상태입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라는 이름아래 임금체불, 산재미적용 등 사업주의 부당노동행위와 정부의 무차별적 단속과 추방으로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느끼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실태에 대해 들어보고, 불법체류자를 양산하고 있는 정부정책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논의해 보았습니다.

④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고령노동자 이야기 우리나라 인구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급속히 증가하고 있으나 일자리 부족으로 상당수가 빈곤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고령노동자들의 고용실태와 정부 고령정책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논의해보았습니다.

⑤  나도 할 수 있다니까 – 장애노동자 이야기2005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15세 이상 장애인 중 경제활동인구는 44%이고, 실업률은 23%에 달합니다. 많은 장애인이 노동능력과 노동의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취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근로 장애인의 75%가 최저임금의 절반 이하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고 있는 등 장애인의 근로조건은 매우 열악한 상태입니다. 장애인이 느끼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실태에 대해 들어보고, 실효성 없는 정부의 장애인고용촉진정책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논의해보았습니다.



[노동히어로FGI ①] 일당 2만원, 식대는 기한 지난 삼각김밥 노동부에 신고했더니 “거기 원래 그래요”


일하는 청소년들이 말한다 “우린 노조가 필요해”  
“2006년 시급이 1500원이었다. 그 동네에서 심한 곳은 시급이 1000원이었고 많이 주는 데가 2000원 정도였다. 한 달에 그렇게 10만원 받는데 업주는 알바생들이 그만둘까봐 6만원만 주고 나머지 4만원은 나중에 준다.(은지, 19)”

 “노동부 관료들도 자기네 딸이나 아들이 일하는 곳을 대충 관리감독할까? 청소년 노동자들이 자기 자식들이라면 업주가 그렇게 행동할까? (도라, 19)”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소년이 해야 할 일’을 ‘학업’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청소년의 비율은 전체 청소년 중 80%를 넘는다. 하지만 ‘일하는 청소년’의 수도 만만치 않다.

 보건복지가족부 아동청소년정책실(옛 국가청소년위원회)가 펴낸 <2007 청소년백서>에 따르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하고 있는 청소년 수는 총 21만명이나 된다. 세상은 이들을 노동자가 아닌 ‘알바생’으로 부른다. 이들은 나이가 어리단 이유로 최저임금 3770원(시급)도 못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과장의 성희롱… 사장은 “너네가 잘못했다”

 실제로 지난 6월 노동부에 따르면 2008년 1월 청소년 다수 고용사업장 474개소를 대상으로 노동법 준수 실태를 점검한 결과 64.8%인 307개 업체가 노동법을 위반했다. 이처럼 업주들은 이들이 최저임금제도 등 노동관련 법규도 잘 모를 뿐더러 ‘나이’로 군림하면 쉽게 부릴 수 있단 이유로 즐겨 찾는다.

 5일 오후 6시 서울 종로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의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우리 시대 노동 히어로가 말한다> 첫번째 FGI(Focus Group Interview, 표적그룹 인터뷰)에서 만난 청소년 노동자 7명(나라·밀군·또또·은지·지혜·도라·따이루…가명)의 경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도라(19·여)는 그룹홈에서 생활하고 있다. 입주자들의 자립과 사회적인 통합이 그룹홈의 최종목적인 만큼, 도라도 ‘쩐’ 모으기를 위해선 알바에 나서야 했다.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 때까지 하던 운동을 그만두고 숙식을 한 번에 해결하기 위해 택했던 주유소 아르바이트. 그러나 2003년 그해 첫 알바는 아픈 기억만 남겼다.

 도라는 당시 최저임금(시간당 3480원)보다 낮은 2800원을 받으면서 일했다. 3개월이 지나면 100원씩 시급이 올랐다. 도라는 그 곳에서 10개월 정도 일을 하고 그만뒀다. 주유하다 튄 기름이 신발에 스며들어 발톱을 까맣게 죽이기도 했고, 코 안이 시꺼멓게 변하기도 하는 등 건강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성희롱이었다.

 “주유소 과장님이 저랑 여자선배를 성희롱했다. 자기 무릎 위에다 앉히고 뒤에서 껴안는 거다. 허리보다 좀 위쪽을…. 사장님한테 말했다. 그러니깐 사장님이 ‘너네가 잘못한 것이다, 주유소 이미지 망가지니깐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고 말하는 거다. 그 이후에 주유소 내에서 왕따를 당했다. 궂은일은 다 해야 했고. 주유소 직원들이 대부분 다 남자니깐 한통속이 된 거다. 그래서 싸우고 나왔다.”

 도라가 가장 최근에 한 편의점 알바 처우도 만만치 않다. 도라는 편의점에서 매주 5일 동안 7시간씩 일했다. 그렇게 일해야 하루 2만원이 채워졌다. 시급은 역시 최저임금 3770원보다 낮은 3000원. 편의점에서 제공하는 ‘식대’는 ‘폐기처분’이라고 찍힌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 한 개였다.
 “점장은 그에 대해서 죄책감이 전혀 없다. 그 부분을 따지니깐 ‘너 살빼야 하잖아’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다.”

 김치 많이 퍼서 욕 먹고, 결산 안 맞아서 돈 떼이고…
 다른 친구들의 경험도 ‘도라’와 비슷했다. ‘따이루'(16·남)는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나이랑 가정 상황 때문에 법을 따지지 않는 곳에서 일해야 했다”고 했다. 현재 근로기준법상 15세 미만 청소년을 고용하는 경우, 업주는 반드시 노동부장관이 발급한 취직인허증을 비치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따이루가 선택한 곳은 ‘신림동 OOO’.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시급은 3000원 정도이고 여러 가지 따지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첫 시급은 2500원이었고 근무시간도 일정치 않았다. 따이루는 “일이 좀 널널해질 때까지” 일을 해야만 했다.  

 저임금뿐만 아니라 이들은 인간적인 모멸도 겪어야 했다. ‘은지'(19·여)는 처음 알바를 했던 김밥집에서 셀프 서비스로 나오는 김치나 단무지를 많이 푼다고 주인한테 욕을 들어야 했다.
 ‘밀군'(18·남)은 도둑 취급을 받기도 했다. 중 3 때 처음으로 일한 주유소에서 도둑 취급을 받으면서 월급 중 50만원을 빼앗겼다. 그러나 근로계약서나 친권자 취업동의서를 작성하지 않은 그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주유소에선 그날 결산이 안 맞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주유소에서 100만원이 비었으니 우리 급여로 메우라고 했다. 그리고 월급에서 20만원을 먼저 예치한다고 했다. 그 달 월급 70만원 중 들어온 돈은 20만원 밖에 안 됐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관둘 테니 예치금이라도 돌려달라고 한 뒤에 그만뒀다. 한 달 일해서 40만원 들고 나온 것이다.”

 “노동부 감독? 로또 맞는 게 빠르다”

 대개 청소년들에게 최저임금 이하의 저임금을 주고 있는 사업장은 청소년을 고용하는 사업주가 지켜야 할 기본 노동법, 예를 들면 친권자 또는 후견인의 취업동의서나 근로계약서 작성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지킨다고 해서 청소년 노동자에게 ‘좋은’ 업소는 아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지혜(18·여)는 동의서 및 계약서 작성이 “지극히 절차적인 과정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근로계약서를 내놓고 귀찮게 형식적으로 하는 것처럼, ‘나 부르는 대로 써, 쭉 읽어봐’ 이런 식이다. 성희롱 대비 비디오도 ‘띡’ 틀어주고 나가버린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가 제일 괜찮은 알바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 슬프다.”

 아이들은 저임금 구조, 인격적인 모독, 부당해고, 임금체불 등 청소년들이 당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긴 이야기를 풀었다. “청소년들도 근로기준법을 잘 모르고 고용주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성질대로 하면 ‘어린 게 기어오른다’는 식으로 청소년을 무시한다” “청소년 노동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 수가 적다”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특히 노동부의 관리·감독에 대해서는 그동안 쌓여왔던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최근 최저임금미만 사업장을 신고했던 따이루는 “상황을 다 알 수 있는데도 노동청이나 경찰·학교 어디에서도 관리 감독하러 오지 않았다, 청소년 노동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도라도 “노동부 직원이 일하는 곳에 와서 근로법 준수 사항 여부를 감독하러 나오는 것은 로또 맞을 확률”이라고 일갈했다. 도라는 자기가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 겪은 노동부의 황당한 일처리도 들려줬다.

 “성남 OOOO이 있다. 그 곳에서도 청소년들을 많이 쓴다. 그 때가 2002년 정도 되는데 그곳에서 시급 1700~1800원 줬다. 애들이 분해서 노동부에 신고했다. 그런데 전화를 받는 사람이 ‘거기 또 그래요? 거기 원래 그래요’ 그러고 뚝 끊더라. 알고 있으면 그 전에 관리 감독 나오는 게 정상 아닌가?”  

 “착한 어른들은 한계 있어… 청소년 노조가 나와야”
 산전수전 많은 일들을 겪었기 때문인지 아이들은 각기 나름대로 청소년 노동문제에 대한 생각과 해결 방안들을 고민하고 있었다.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부와의 협업, ▲청소년 관련 근로기준법 관리·감독 및 홍보 강화, ▲학교 내 청소년 노동 교육 실시 등 다양했다. 이와 관련해 아이들은 학교와 청소년 스스로의 노력을 강조했다. 나머지는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 제대로만 지켜야 할 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도라는 “노동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학교에서 성교육을 하듯 체계적으로 교육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또(19·남) 역시 “노동부에서 청소년의 노동 권리 등에 대해 만든 홍보책자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자료들을 학교에 적극 배포하고 알리려는 활동을 해야 한다”며 학교의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했다.

 따이루는 자본주의사회 내 노동관계를 정확히 직시하며 청소년 노동조합의 건설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업주들이 우리에게 아무리 가족처럼 대해준다고 해도 업주들은 돈을 쥐고 있는 것이고 우리는 돈을 받아야 한다, ‘인간적 관계’라는 가리개 뒤에 이뤄지는 폭력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냐. 현실적으로 이 문제를 개인적인 방법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청소년노동조합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이 문제는 어른들이 바꿔줄 수 없다, 착한 어른들이 아무리 나와도 한계가 있다.”  
2008.09.08  ⓒ 2008 OhmyNews, 이경태 기자


[노동히어로 FGI ②] 무턱대고 ‘아줌마’ 호칭에 성추행도 예사, 여자라서 겪는 모욕·수치심 만만치 않다
여성노동자 3명 중 2명이 비정규직인 사회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은 단식 94일차가 되는 12일 오전 병원에 실려갔다. 벌써 두 번째다. 다행히 단식은 중단하기로 했지만 해결점은 보이지 않는다. 어느 새 투쟁한 지 1117일이 되었다. 기륭전자만이 아니다. 이랜드 노동조합의 ‘스머프’들은 투쟁 이후 두 번째 추석을 맞게 됐다. 투쟁한 지 12일로 448일 됐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랜드그룹은 홈에버를 삼성홈플러스에 넘기고 책임을 회피했다. KTX 여승무원들도 있다. 이들의 투쟁은 어느새 926일차를 맞이했다.

모두 손꼽히는 장기투쟁 사업장이다. 모두 ‘여성’들이다. 어느 순간부터 언론에 등장하는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에는 항상 여성들이 주인공이었다. 우리나라 노동자 중 54%가 비정규직인 현실. ‘일하는 여성’ 3명 중 2명이 비정규직인 현실이 낳은 ‘아픔’이다. 하지만 이들을 옭아매고 있는 것은 ‘비정규직’이라는 굴레만이 아니다. 여성이라서 겪어야 하는 모욕과 수치심 역시 만만치 않다.
11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가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우리 시대 노동 히어로가 말한다> 두번째 FGI(Focus Group Interview, 표적그룹 인터뷰)에서 이들,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비정규직에게 사회가 안기는 모멸감

지하철 차량기지 건물청소를 5년간 한 이덕순(52·현 전국여성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씨는 가계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에 청소일을 택했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터라 마땅히 다른 일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청소일은 생각 외로 사람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는 일이었다.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사무실을 청소하고 나오는데 과장급 직원이 불러서 ‘책상을 안 닦았으니 닦아라’고 했다. 책상을 닦으면서 책상 위에 쌓여있던 책을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옮긴 뒤 그냥 놓아둔 채 나왔는데 그 직원이 손으로 책상을 탁탁 치면서 책을 다시 원위치 해 놓으라는 것이다. 입도 열지 않고 손짓으로만….”

이씨는 그 순간 직업에 귀천(貴賤)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귀천은 회사의 대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회사는 정규직에게는 ‘승차권’을 주지만 청소하는 ‘비정규직’에겐 승차권을 주지 않았다. 당연히 상여금도 단 한 푼도 없었다.

이씨는 “우리에게도 승차권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가 거절했다, 하지만 일하러 가는데 내 돈 내고 역사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화나지 않겠느냐”라며 “그래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개찰구 밑으로 기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호텔에서 룸메이드로 일했던 허장휘 전국여성노조 서울지부장의 경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허 지부장은 “룸메이드가 호텔의 꽃이라고 교육을 받지만 사실 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가씨도 있는데 룸메이드는 무조건 ‘아줌마’라고 부른다. 존댓말도 쓰지 않는다. 그런데 회식 자리는 데리고 다닌다. 그런 자리에서 성추행을 하는 것이다. 동료 중 한 명은 정직원 두 명이랑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데 성추행을 당했다. 몸을 등 쪽에서부터 훑으며 ‘우리 데이트나 갈까’ 그렇게 꼬시는 것이다. 고객들도 마찬가지다. 룸메이드 앞에서 일부러 자기 벗은 몸을 보여준다는가…. 일하면서 모멸감을 많이 느낄 수밖에 없다.”

이랜드에서 계산원으로 일한 정미화(47)씨는 “일할 때 울고 싶은 적이 많았다”라고 했다.
회사에서는 모니터링제를 만들어 정씨가 고객이랑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하는지, 기분을 나쁘게 했는지 일일이 감시했다. 그리고 지적을 받게 되면 휴일에 ‘친절교육’을 받게 만들었다. 지하에서 30명씩 모여 몇 시간동안 인사만 수십번씩 해야만 했다. 교육을 받으러 휴일에 나오는 것에 대한 수당은 없었다.  인간 취급 못받아도 쉽게 못 때려치는 이유 역시 고용에 대한 불안도 높았다. 이들은 하나 같이 어렵게 일을 구했다.  정씨는 결혼 이전 무역회사에서 일하며 인정을 받았지만 결혼 이후 직장을 구하려고 하니 비정규직, 임시고용직만이 남아 있었다. 허씨의 경우는 더욱 암담했다.

허씨는 “36살이 넘은 것이 죄지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라며 당시의 절박감을 토로했다. 허씨는 이혼 이후 딸 두 명을 책임지겠다는 생각에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고 했다. 7개월 간 하루에 세 탕씩 일을 나가기도 했다. 그러다 지하철에서 터진 코피가 멎지 않는 일까지 생겼다. 허씨는 당시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힘겹게 일을 구하고 나니 험한 일을 당해도, 인간 취급을 못 받아도 쉽게 못 때려치는 것 아니겠느냐.”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3년째 청소를 하고 있는 박갑순(56)씨도 하루에 세번 이상 좌변기를 박박 닦았다. 집에서는 1주일에 한번 할까말까한 일이었다.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지만 식대도 없다. 각자 쌀을 가지고 와 밥을 해먹으며 끼니를 때우는 정도다. 그렇게 일을 해도 마음 한편에 고용에 대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S대가 깨끗하기론 전국 1위 대학교다. 총장도 마음에 들어한다고 알고 있다. 그래도 벌써 10년이나 계약 중이라 올해 재계약이 되지 않을까봐 조마조마했다. 원청과 용역업체가 바뀌면 해고자도 나올 수 있으니까….”

 “법·제도가 권리 찾아주지 않아”… 중요한 건 ‘투쟁’  고용불안은 처우개선을 위한 노력에도 걸림돌이 되곤 한다. 만약 부당한 처우를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면 그날 이후로 그는 해고 1순위가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팔레스호텔 룸메이드로 3년째 일하다가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으로 ‘미운털’이 박혀 지난 5월 중순 대표격으로 해고된 최명숙(55)씨였다.

최씨는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룸메이드로 일할 때 사측의 용역전환 시도에 맞서 승리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들어간 팔레스호텔에서 최씨의 눈에 부당한 사례들이 여기저기에 눈에 띄었다. 이후 최씨는 1년 뒤 룸메이드들을 모두 데리고 여성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성과는 있었다. 사측과 교섭이 잘 이뤄져 좋은 결과를 이뤘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 뒤 호텔은 다른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나머지는 고용승계가 이뤄졌지만 최씨는 ‘노조 결성의 대표격’으로 해고당했다.

그러나 최씨는 여전히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최씨는 “룸메이드도 전문직이나 다름없다. 단지 사회가 전문직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이라며 “비정규직도 정규직이 하는 일의 양이나 질에 있어서 떨어지지 않는데 차별을 받는다는 것이, 그리고 그 문제점을 모르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최씨와 마찬가지로 이들 모두 투쟁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최근 부당해고를 당했다가 승리한 성신여대 여성 청소부들이 좋은 사례다. 특히 이들은 모두 정부가 공언하는 여성 비정규직 대책 마련에 대해 불신감을 드러냈다.

홈에버 월드컵 매장에서 계산원으로 일했던 장은미(40)씨는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이 만들어달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고, 우리 삶의 애환을 모르는 정치인들이 만들었다”라며 “법은 있는 사람들 위주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씨는 “법이나 제도가 좋아진다고 해서 우리 사정이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실 육아수당, 출산휴가와 같은 법을 현실에서 얼마나 적용받나”라고 반문했다.

“다 빛 좋은 개살구고, 그림의 떡이다. 지금도 합법적인 ‘구멍’을 찾아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용역업체들도 있다. 우리는 지하철에서 일하면서 노조를 통해 기존에 없던 연차수당을 임금으로 받아내는 등 우리의 권리를 얻어냈다. 사실 나는 이제 다 살았다. 하지만 젊은 여성들이 제대로 인정받고 일하는 세상을 위해서 계속 투쟁하며 살 생각이다. ”
 
 2008.09.16  ⓒ 2008 OhmyNews 이경태 기자



[노동히어로 FGI ③] “손 다쳤어? 한 손으로 일하든지 나가” <미수다>엔 안 나오는 어글리 코리아
이주노동자들이 증언하는 ‘죽음으로 내모는 코리안드림’
 현재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주 노동자의 수는 약 54만명(법무부 6월 통계). 이 중 절반 이상이 ‘미등록 체류자’이다.

20만명이 넘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소식은 간간이 뉴스를 타고 전해진다.  출입국 보호실에 수감돼 있던 이주노동자가 보호실 창문을 통해 건물 밖으로 투신하거나, 단속반을 피해 황급히 건물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는 소식이 많다.

저임금, 임금체불, 산재미등록 등 사업주들의 부당 노동행위가 고발되기도 하지만, 이주노동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2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현실이 바뀐 것은 아니다.

3박4일 일하고 하루치 수당… “싫으면 나가”

이명박 정부가 지난 25일 발표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질서 확립방안’을 살펴보면 현실은 이주노동자들에게 더 팍팍해질지도 모른다.

노동부는 기업들이 그동안 사측이 관행적으로 부담하던 숙식비를 이주노동자에게 분담토록 했다. 또 최저임금 감액 적용(10%)이 가능한 수습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더 늘리고, 잦은 임금체불과 퇴직금 미지급 때문에 사업자들에게 ‘의무’ 가입토록 했던 체불임금 보증보험과 출국만기보험도 ‘임의 가입’으로 바꿀 방침이다.

26일 참여연대 3층 중회의실.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가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우리 시대 노동 히어로가 말한다> 세번째 FGI(Focus Group Interview, 표적그룹 인터뷰)에 참여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그동안 그들이 겪은 현실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임금체불, 산재미적용 등은 FGI에 참여한 모두가 경험한 이야기였다. 네팔 출신의 깨다르(33)씨는 한국에 온 지 7년이 넘었다. 그 7년 간 깨다르씨가 경험한 한국의 공장은 무자비한 곳이었다. 다른 한국인 노동자들이 노는 날에도 그는 일해야 했고, 공장장이 지시한 일을 제 시간에 끝마치지 못하면 폭언을 들어야 했다. “2년 정도 일한 공장에서 물건을 나르다가 왼팔을 다쳤다. 염증이 생겨서 일을 못하는 상태인데 사장이 ‘이제 일 못하니깐 집에 가라’고 하더라. 산재 처리라도 해달라고 하니 ‘비자 있어?’라고 되물었다. 집에 가란 이야기였다. 나중에는 ‘한쪽 손으로라도 일하라’고 그랬다.”

1997년에 입국한 티벳 출신의 텐진(32)씨는 사장이 수출납기일을 맞춰야 된다고 사정해 가죽재단기계 앞에서 3박4일 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른 직원들은 없었다. 공장에 그 혼자만 남아 기계를 돌렸는데도 돌아온 것은 야간수당 하루치가 붙은 것 뿐이었다.

“너무하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그러면 하루 쉬겠다고 말했더니 사장이 ‘니가 뭘 했다고 하루 더 쉬냐, 나가라’고 말했다. 그 때 정말 많이 울었다.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일했으면 ‘고맙다’고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임금이 적은 것은 둘째치고 이주노동자를 사람답게 보지 않는 것들이 가슴에 많이 남아있다. 이주노동자도 사람이다.”

9년 전 어머니 치료비를 벌기 위해 한국에 온 마붑(32)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마붑씨는 귀가 안 들려 야간근무 대신 근무 시간을 바꿔줄 것을 요구했지만 사장은 “경찰한테 신고하겠다”며 협박했다. 마붑씨는 그 때 ‘이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를 일하는 기계라고 생각한다’고 느꼈다고 했다.
인사 안 했다는 이유로 한국 노동자들에 집단 폭행
 사업장에서 폭행까지 당한 경우도 있었다.
텐진씨는 의정부의 한 공장에서 과장한테 인사를 제대로 안 했다는 이유로 폭행당했다. 한번 맞서보려 했지만 ‘외국인 새끼가 때린다’는 과장의 외침에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모두 몰려나와 그를 두들겨 팼다.

고발도 못했다. 자신이 추방되는 것까지 무릅쓰고 언론사와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지만, 동료 이주노동자들이 그를 말렸다. 아직 월급을 받지 못한 게 있는데 자신이 신고를 하면 나머지 이주노동자들이 밀린 돈을 받지 못하고 공장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텐진씨는 사장의 중재로 합의를 하려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폭행보다 더한 모멸감이었다. 과장은 텐진을 무릎 꿇린 후 그의 목을 발로 눌러 얼굴을 땅바닥에 비볐다.
“결국 그 공장은 그동안 일한 3일치 임금과 약값만 받고 나왔지만, 과장을 죽여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6개월 간 그 사람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살기도 했다. 이제는 괜찮지만 (그런 일은) 정말 아프다.”
경찰이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단속 대상일 뿐이다.
깨다르씨는 최근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동대문의 한 모텔에서 1박을 했다가 도둑에게 지갑을 털렸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 모텔 투숙객 상당수가 도둑에게 당한 상태였다. 그러나 수사 나온 경찰관은 그들에게 피해 상황 등은 물어보지 않고 “외국인 등록증은 있느냐”고 먼저 물었다. 그 중 1명이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것을 안 경찰은 다짜고짜 이들에게 “강제출국시킬지도 모르니깐 빨리 가라”고 몰아냈다.

이들은 대개 이런 일을 겪고 모국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대한 증오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텐진씨는 이런 점을 우려하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나는 내 자식한테 내가 겪은 일을 분명히 들려줄 것이다. 적어도 내가 한국에서 이렇게 살아왔다는 이야기는 해주고 싶다. 다른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직접 겪은 당사자가 모국에서 한국인을 봤을 때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현행 고용허가제로는 문제해결 못한다”
 이런 이주노동자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이들은 현행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수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고, 균등대우의 원칙을 보장받을 수 있게 하지만 사실상 ▲사업장 이동 제한 ▲이주노동자 정주화 방지 원칙(체류기간 3년, 1년마다 재계약) 등으로 인해 그 원칙이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마붑씨는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에 5천명의 노동자가 들어온다면 현지에서는 5만명 이상이 신청한 것이라 보면 된다”며 “들어오려면 1천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저임금 정도를 주는 회사에서 3년 이상 일해서 그 비용 이상을 벌 수는 없다”며 “게다가 사업장을 합법적으로 3번 옮길 수 있지만 노동부가 적극적으로 알선에 나서지 않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깨다르씨도 “노동부가 회사들을 알려주지만, 근무환경·급여수준 등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친구는 노동부에서 알려주는 회사를 찾아갔지만 노동 조건이 맞지 않아 1달이 넘도록 일터를 찾지 못했다”며 “여기를 가봐라, 저기를 가봐라 하는 식의 안내만으로 제대로 된 일터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텐진씨는 “고용허가제라고 만들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이주노동자들은 그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고용허가제가 종이로 돼 있지만 이주노동자들의 글로 돼 있지 않다”며 “고용허가제가 나쁘다, 좋다 하기 전에 그런 것이라도 하나 있지 않은 이상 이주노동자들은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고용허가제는 고용인만 있지 노동자란 단어가 없다, 말부터 바꿔야 한다”며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은 이주노동자들이 그 법을 만드는 테이블에 앉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언제 한국에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했나. 아니다. 부모와 가족을 위해 돈 벌려고 온 사람들이다. 단지 이들은 그동안 잘 몰라서 당하는대로 살았다. 하지만 (부조리한 현실을) 피부로 느낀 사람들, 이주노동자 노조 등이 그에 대해 정부와 함께 논한다면 방법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공장일 대신 MMTV(Migrant Worker Television)에서 미디어운동을 하고 있는 마붑씨는 “이주노동자들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을 바꾸는 운동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마붑씨는 “<미녀들의 수다> <러브인아시아> 등을 보면 외국인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시각은 호의 아니면 동정 밖에 없지만 실제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며 “이주노동자들도 이 사회에서 살고 있는 만큼 미국산 쇠고기 문제도 관심 있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강조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이곳에 살고 있는 이상, 노조도 필요하고, 미디어도 필요하고, 국회의원까지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면 그 사람이 필요한 기본바탕이 있어야 한다.”  

2008.09.30 ⓒ 2008 OhmyNews 이경태 기자  


[노동히어로 FGI ④] “우리가 참 초라한 세대가 됐다”

취약한 사회안전망에 갈 곳 잃은 노인세대
  “사실 일자리가 없어요. 완전 고령사회가 되고 나면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야겠어요?”
각자가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딱히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답답함은 2일 저녁 참여연대 3층 중회의실에 모인 모든 이의 것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네 번째 노동취약계층 FGI(Focus Group Interview)의 주인공 ‘고령노동자’를 위한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약 20년 내에 한국은 ‘고령화 사회'(65세 이상의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에서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를 차지하는 비율이 14% 이상)로 진입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일본의 경우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기까지 36년이 걸렸는데 우리는 일본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 속도에 비해 우리나라는 IMF 이후 평균 55.2세라는 조기 정년제와 명예퇴직이 보편화되고 있다. 수입이 중단된 그들에게 본격화된 지 고작 20여년 밖에 되지 않는 국민연금 등 부실한 사회안전망은 그들의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 과거와 같이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면 된다’는 논리는 이상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난 1일 서울시는 통계청의 장래인구 추계 결과 서울 시내에서 20년 후 65세 이상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청·장년(15~64세) 인구가 3.2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부담스런 미래’를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55세 이상 고령노동자들을 위한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들에게 열린 일자리는 아파트 경비직이나 주차 안내 등 극히 일부 직종뿐이다. 그래서일까 이날 모인 이들 대부분의 직업도 ‘아파트 경비’였다.

수입도 없고 국민연금도 부족… “우리가 참 초라한 세대가 됐다”

 과거 조선소 등에서 용접을 했던 김호연(60)씨는 퇴직 이후 아파트 경비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기술이 있었지만 나이가 든 그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고, 재취업을 위한 노동청의 교육 역시 그에게 별반 도움이 되지 못했다.

김씨는 “공무원들이 사진이나 찍고 해서 몇 명 교육했다는 보고서 올리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중식이나 얻어먹었지”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김씨는 “기술만 있고 힘만 있으면 취업이 됐던” 과거를 그리워했다.

“예전에 공단에서 사람을 뽑는다 하면, 시급에 상여금, 4대 보험 가입 조건에 통근버스까지 붙여서 광고가 떴는데 요새는 안 그렇다. 그저 월 얼마 주겠다는 내용만 있다. 경기가 안 좋고 노동임금이 비싸다 보니 일을 주는 곳이 없다. 우리 전에 선배들 같은 경우는 자식한테 가면 됐지만 이제는 시대가 그렇지 않다 보니깐…. 우리가 참 초라한 세대가 됐다.”

역시 현재 아파트 경비원을 하고 있는 김택육(61)씨는 국민연금만으로 지금의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김씨는 정년퇴직한 55세 때 조기연금을 탔다. 퇴직 후 막막했는데 조기 연금을 타면 그나마 구직까지 좀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조기연금은 이후 김씨의 발목을 붙잡았다. 5년 먼저 탄 연금은 이후 본 연금에서 25%가 깎인 금액으로 지급됐다. 김씨는 같이 퇴직한 동료보다 반절이나 적은 액수에 깜짝 놀랐다.
“그동안 부은 연금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에 놀랐다. 조기연금으로 인해서 국민연금이 이렇게 깎일 줄 알았다면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에서 이에 대해서 홍보가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아파트 경비’… 그러나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험난한 구직과정을 거쳐 찾아낸 ‘아파트 경비’도 만만치 않았다. 백화점 보안근무, 아파트 경비 등 총 8년 동안 경비직을 경험한 황재화(64)씨는 “실제로 우리가 받아야 할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부조리를 이들 역시 퇴직 이후 제2의 직장에서 경험하고 있었다.

“용역업체인 경우에 아파트 경비들의 수입은 형편없다. 휴일도 없이 24시간 격일제로 근무를 해도 자치관리인 아파트에서 일하는 이는 200만원을 넘게 받고 용역관리인 아파트에서 일하는 이는 98만원밖에 못 받는 경우도 있다. “

황씨와 같은 일이 가능한 이유는 아파트 경비직이 ‘감시적·단속적 노동자'(이하 감단직)이기 때문이다. 감단직은 최저임금법의 기준도 받지 않는다. 감단직은 최저임금의 80%만 받도록 되어있다. 경비원, 검침원 등과 같은 감시적 노동자와 아파트 건물의 전기·냉난방 기술직 등 단속적 노동자들은 다른 일반 노동자처럼 노동의 강도가 세지 않거나 업무가 연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그래서 경비들은 24시간 맞교대를 하면서 일요일 등 휴일에도 일을 한다. 명절도 마찬가지다. 거기다가 연장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도 없다. ‘악덕 용역업체’는 여기다가 ‘휴게시간'(3~8시간)을 넣었다. 휴게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치지 않으면서 실제 지급해야 할 월급에서 제하는 것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맛본 부조리함과 인간적인 모멸감

 용역업체는 이 휴게시간을 다른 식으로도 악용했다. 황씨는 “휴게시간에 근무지를 이탈하지 못하게 하면서 경비들이 졸거나, 신문을 보는 등 딴 짓을 하면 이를 불성실로 트집 잡아서 계약 만료 전에 쫓아낸다”고 말했다.

“일부러 계약기간을 짧게 해서 4대 보험이라던가, 퇴직금·연차 등을 안 주려고 하는 거다. 1년이 지나면 명의를 바꾸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계약 당시 맺었던 고용승계를 합법적으로 피해나가는 거다.”

아파트 경비만 10년을 한 오구환(60)씨도 ‘용역업체’ 이야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용역은 있어서는 안 될 업체다”고 말했다. 오씨는 경비직을 하면서 현장에서 경비들을 관리·감독하는 반장, 주임까지 경험해봤다. 주임을 맡았을 때 그는 업체로부터 멀쩡한 이를 자르기 위한 지시를 받았다.

“그 사람이 시말서를 쓰게 만들라고 하더라. 속으로 끙끙 앓았다. 시키는 것을 하지 않으면 잘리는 식이다. 자리 이동시키고, 눈치 주고 자진해서 그만두게끔 만드는 이들이다.”

용역업체의 ‘착취’ 외에도 인간적인 모멸감도 함께 경험했다. 감단직 업무와는 상관없는 화단정리, 음식물쓰레기통 세척, 제설작업뿐만 아니라 전단 돌리기, 장 본 것 들어다 주기 등도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아파트 주민들은 ‘경비’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황씨는 “아파트 주민 한 사람이 자식과 같이 가다가, 아이에게 ‘너 말 안 들으면 저 경비 아저씨처럼 된다’고 말했다”며 “경비를 사람으로 안 보는 것”이라며 혀를 찼다. 그래도 지금 이들이 할 수 있는 노동은 ‘아파트 경비’였다. 이 시대 고령노동자에게 허락된 일은 너무나 적었다.

김호연씨는 “우리 같은 나이에 힘 그리 크게 들이지 않아도 되는 단순라인작업도 할 수 있을 듯한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고, 최근 직장에서 퇴직하고 구직활동 중인 곽형탁(61)씨는 “찾아간 자리마다 젊은이들이 다 있었다”며 “나라에서 좀 (우리를) 배려해주면 좋을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황씨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요소요소 투입이 되면 좋지만 현재 우리 상황에 맞게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나, 이력서 들고 가면 읽지도 않고 안 된다는 말부터 나온다”며 입을 굳게 닫았다.
2008.10.07 ⓒ 2008 OhmyNews 이경태 기자


[노동히어로⑤] 입사 첫날 출근 못한 까닭은 ‘잡상인 출입금지’

장애인노동자 저임금 당연시… 취업문조차 닫혀  “대학까지 나왔는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집에 있어야 하다니, 내 존재감과 정체성을 잃어 버리며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김아무개·30·골형성부전증)

“출근 첫날. 양복을 차려입고 출근했다. 그런데 경비 아저씨가 막아섰다. 당시 휴지나 고무장갑 등을 팔러오는 장애인들이 많았는데 나를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설명해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회사 동료가 사무실에서 나올 때까지 30분이 넘도록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강현욱·55·뇌병변장애)

10일 저녁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가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우리시대 노동히어로가 말한다> 마지막 FGI(Focus Group Interview)에 모인 이들은 모두가 비장애인과 함께, 그리고 차별 없이 일하기를 갈망했다. 노동하고 싶어 했다.

장애인과 직장 다니느니 수십억 내는 사회

장애인들이 ‘불편한’ 몸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능력과 경력에 상관없이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를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해 17년 전에 50인 이상의 사업장일 경우 전체 근로인원 중 2%를 장애인으로 고용하게 돼 있는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17년째 그 2%는 달성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올 국정감사 중 주목할 만한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난 4일 한나라당 박준선 의원의 요구로 노동부가 제출한 상시 근로자 1천명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한 ‘2007 민간부문 장애인 의무고용 현황’에 따르면 삼성전자·LG전자·우리은행·신한은행 등 대기업들은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고 차라리 수십억 원의 부담금을 내는 쪽을 택했다. 이런 기업들의 수는 대상 사업체의 78%로 10곳 가운데 8곳이었다.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한국노동연구원 등 12개 공공기관은 지난 4년간 단 한 명의 장애인도 채용하지 않았다. 사회는 수십억 원의 돈까지 스스로 부담하면서까지 장애인들을 직장 동료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현재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오영철(37)씨는 “일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오씨는 당장 몸으로 노동을 할 수 없어 공부를 다시 해 대학교까지 졸업했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똑같았다. 의식이 그나마 열려 있을 것 같은 장애인복지관에 두 번 정도 이력서를 냈지만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오씨는 “계속 머리를 사용하는 것이 노동 시장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 같아”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강현욱씨도 “백방으로 이력서를 넣어도 전부 다 떨어진다, (취직이 된다면) 운이 좋은 거다”라고 잘라 말했다. 강씨의 첫 직장은 “사진을 스캔으로 밀어 시디로 굽는” 일이었다. 일당은 2만5천원. 그의 말대로 백방으로 이력서를 넣어 얻은 첫 직장이었다.

강씨는 “(일반 기업들이) 기존 직원들이 싫어하는 허드렛일을 싼 임금에 부리기 위해 장애인들을 고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장애인들이 취직을 할 수 있는 사업장의 조건 중 하나’로 규정했다.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장애인용 화장실이 없는 경우에도 장애인들의 취직이 제한받기는 마찬가지다. “이 모든 필요조건이 충족됐을 때도 비장애인과 다른 면접이 진행된다. 예전 직장에서는 비장애인은 서류 전형 1번, 면접 1번에 합격이 됐는데 나는 면접을 3번 봤다. 내 이력서 사항에 ‘한 치의 거짓도 없는지’ 여러가지 테스트를 하더라.”

질행성 시각 질환을 앓고 있는 고재혁(31)씨는 24살 때 집안 사정으로 대학교를 휴학하고 사회에 처음 뛰어들었다. 그리고 2년 사이에 10여 가지가 넘는 ‘알바’를 경험했다.

“능력이 좋아서 여러 가지 일을 한 것이 아니다. 그만큼 실직을 여러 번 한 것이다. 업주가 가만히 지켜보면 겉으론 멀쩡한데 간단한 홀서빙을 해도 손님이 지목하는 것을 제대로 못잡아내는 것이다. 눈여겨보면 내 행동이 이상하단 것을 알게 된다. 알게 되면 곧 ‘그만 두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전에는 내가 시각장애인이란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세상에 대해 알게 됐다.”
장애인복지관에도 채용 안돼… 대졸 학력에 일당 2만4천원 허드렛일정작 취직에 성공한 이후에도 장애인들이 겪는 차별과 열패감은 계속됐다.
강씨는 프로젝트를 입안하고 기획한 상태에서 상사로부터 자신의 부하 직원에게 대신 프로젝트를 발표하도록 준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사장이 프리젠테이션 발표 하루 전날 불렀다. 사장이 내게 ‘이건 중요한 문제다, 은행의 높은 임원들이 보는 것인데 모 대리에게 내일 발표를 시키도록 해라’고 말했다. 일은 내가 다했는데…. 이런 분위기는 항상 경험하던 것이다. 내가 일은 다했지만 일선엔 안 내세운다. 장애인을 흡사 안 좋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뇌병변장애를 앓고 있는 김희찬(36)씨는 “회사가 장애인을 능력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의무 고용으로 받는 지원금으로 판단한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면접 때도 그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묻는다”고 했다.

 “회사에 나와 같은 분이 한 분 더 있었다. 그런데 비장애인 중 여직원 한 명이 우리 둘을 불러 장애인 등급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을 늘리기 위한 조치였다. ‘그렇다면 회사에서 등급을 바꾼 뒤 내 삶을 책임질 수 있냐’며 항의했다. 그런데 그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 속상했다. 우리를 그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돈에 껴서 판단하고 있다.”

회사가 고용한 장애인에 대한 적정한 업무영역을 모르거나 아예 본인 의사와 상관없는 업무를 배정하기도 했다. 골형성부전증을 앓고 있는 김아무개(30)씨는 사무직을 지원했지만 출근한 당일 업무내용이 달라져 있었다. 고객상담역이었다. 김씨는 “평생 전화기와 컴퓨터와는 떨어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며 씁쓸해 했다.

“나도 내 적성에 맞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애인들한테는 주는 일이 다 비슷하다. 비장애인 경우에는 인사팀과의 상당을 통해서 업무를 바꿔주기도 하지 않나? 그렇지만 장애인은 아무리 자신이 원하더라도 갈 수 없다. 장애인의 적성과 능력을 보는 시스템은 없다. 나는 국가의 보조를 받는 장애인이 아닌 한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세금을 내고 싶다.”
“일은 내가 했는데, 발표는 비장애인이”


 이들은 장애인 노동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급한 것으로 사회 인식의 변화를 꼽았다. 장애인을 외계인처럼 생각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바꾸지 않고서는 노동 환경의 변화, 제대로 된 법 집행은 꿈 꿀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강씨는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시행령이 각 지자체로 하달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전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돼야 법도 제대로 간다”고 지적했다.

특히 강씨는 “옛날 ‘왜 우리집에 저런 애가 나왔을까’ 하는 인식이 차별을 낳고 편견을 낳는 것”이라며 “교육과정과 일상생활 속에서 장애인을 분리시키는 배제책과 장애인은 항상 보호받고 동정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의 변화 없이 장애인의 노동환경 변화는 힘들다”고 말했다.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인 이상호(42·소아마비)씨는 “외국의 경우에도 장애인 노동자 문제가 해결되면 여성 노동자 문제 등 다른 취약 노동계층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있었다”며 “장애인 노동자 문제를 전체 노동자 시장 안에서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동안 진보진영 내에서도 장애인 문제에 대해 별개의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범노동계, 그리고 진보 시민사회단체 내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부끄럽게도 공공기관, 장애인 복지기관에서조차 장애인 의무고용을 지키지 않는 상태다. 이는 장애인의 목소리가 비장애인을 통해 나오기 때문이다.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이 잔혹한 분리와 배제의 카테고리는 변화하기 힘들다. 생각해봐라. 여성가족부 장관을 남자가 하면 누가 이해하겠나.”
2008.10.15 ⓒ 2008 OhmyNews 이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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