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9 2009-12-01   1922

[심층분석3] 건강보장의 정치경제학- 건강보험 통합에서 의료산업 선진화까지


건강보장의 정치경제학: 건강보험 통합에서 의료산업 선진화까지



이진석 (서울의대 의료관리학)

 


1. 건강보험 통합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그리고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2000년 7월 1일 마침내 건강보험이 단일 보험자로 통합되었다. 이로서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20여 년에 걸친 건강보험의 관리운영체계를 둘러싼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건강보험 통합의 의미는 기존에 수백 개로 나누어져 있던 조합을 하나로 합치는 관리운영체계의 변화에 국한되지 않는 것이었다. 지역과 직장에 따라 분할 관리되던 건강보장체계를 전국민을 포괄하는 단일 건강보장체계로 개편함으로써 사회 연대성을 극대화한 것이 건강보험 통합의 핵심적인 의미였다.
사회보험 방식으로 출발한 건강보험을 단일 국가보험 방식으로 전환한 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실험이었다. 이런 한국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실현되면서, 북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한 국영의료체계(National Health Service, NHS),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사회보험체계(Social Health Insurance, SHI), 미국의 민간의료보험체계(Private Health Insurance, PHI)로 구분되던 의료보장제도 유형에 국가보험체계(National Health Insurance, NHI)가 추가되었다. 일각에서는 건강보험 통합으로 완성된 국가보험체계의 성격을 ‘준 NHS’로 묘사하기도 한다. 또한 한국이 복지국가 초입에 들어섰다는 중요한 징표로도 건강보험 통합을 해석하기도 한다.
건강보험 통합을 이룬 과정 역시 중요한 운동적 의미를 갖고 있다. 건강보험은 진보적 시민사회운동과 개혁적 민주 정치세력이 연대해서 제도 개혁을 달성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1994년 ‘의료보험통합일원화 및 보험적용확대를 위한 범국민연대회의(약칭, 의보연대회의)’가 결성되었다. 의보연대회의는 노동, 농민, 시민, 보건의료 등 총 77개 단체와 6개 지역연대회의를 포괄하는 대규모 연대조직이었다. 1980년대 초반의 제1차 통합 논쟁 때와 마찬가지로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단체, 한국노총, 보수언론은 건강보험 통합을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의보연대회의는 당시 시민사회운동의 역량을 총 집중하다시피 하며, 건강보험 통합 운동을 지속해 왔다. 그리고 건강보험 통합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김대중 후보가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면서, 건강보험 통합은 급물살을 타며 현실화되기에 이르렀다.
건강보험 통합은 건강보험 30년 역사를 통틀어 가장 독보적인 제도적 성과 중의 하나로서 이로 인해 한국의 건강보장제도는 완결적인 제도적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시기에 이루어진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정책의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역대 정부 중에서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위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정부였다. 대선 공약으로 ‘건강보험 보장률 80% 달성’을 제시하였고, 집권 기간 중 공약을 달성하기 위한 보장성 강화 로드맵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일정 수준 이상의 본인부담금을 전액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본인부담 상한제 도입, 6세 미만 영유아 입원 본인부담금 면제, 식대 건강보험 적용, 중증질환자 본인부담 경감 등의 급여 확대 조치가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 급여비 지출 규모는 2002년 14조원 규모에서 2007년 25조원 규모로 급증하였다. 이 같은 보장성 강화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매년 보험료율이 평균 6% 가량 인상되었으며, 국고지원금은 2002년 3조원에서 2007년 3조 7천억원으로 증가하였다.
노무현 정부 기간 중에 중증환자의 치료비 부담은 크게 줄어들었다. 2004년 49.6%에 불과하던 암환자의 건강보험 보장률이 2007년 71.5%로 급격히 향상되었다. 그러나 일반 국민이 평균적으로 체감하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혜택은 미미하였다. 평균적인 건강보험 보장률은 2004년 61.3%에서 64.6%로 미미하게 향상되는데 그쳤다. 게다가 분모에 해당하는 전체 국민의료비가 급증하면서, 보장률 수치의 일부 향상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의료이용 중에 직접 부담하는 본인부담 액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이런 결과는 건강보험의 낭비적 지출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건강보험재정을 아무리 투입해도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늘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은 정부와 건강보험 측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4년 건강보험의 행위별 수가제를 DRG 포괄수가제로 개편하고자 했던 시도가 의료공급자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이래, 건강보험의 낭비적 지출 구조를 개선하는 시도는 사실상 실종되었다.
한국의 건강보험은 흔히 ‘진료비 할인제도’로 일컬어졌다. 노무현 정부 기간 동안에 건강보험을 ‘진료비 할인제도’로 일컫는 빈도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환자의 치료비 부담은 여전히 과중했고, 그 틈새를 민간의료보험이 파고들면서 시장 규모를 계속 확대해 나갔다. 특히, 보험업법 개정으로 2005년부터 생명보험사의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판매가 허용되면서 민간의료보험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상품은 이미 손해보험사에 의해 판매되고 있었다. 그러나 전체 보험시장에서 손해보험사가 차지하는 시장 비중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큰 관심사항으로 부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생명보험사의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상품 판매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이에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 측은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이 건강보험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 규제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역시 ‘민영의료보험법’ 제정을 요구하며,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급격한 시장 팽창을 경계하였다. 반면, 의료산업화 정책을 주도하던 경제부처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규제를 반대하였다.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둘러싼 논란은 2006년 국무총리 산하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의 결정으로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민간의료보험의 관할 부처인 금용당국은 의료산업선진화위원화의 결정사항을 현실화하는 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합리적 규제는 시행되지 않았으며, 정권이 바뀌면서 2006년의 결정사항은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되어 버렸다.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합리적 규제가 공전을 거듭하는 와중에 민간의료보험 시장은 날로 팽창했다. 2008년 기준으로 이미 성인 인구의 60% 이상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상태이며, 민간의료보험료로 지출하는 비용도 연간 10조원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늘어났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면서 건강보험은 이전 정부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현행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 의견을 내비쳤다. 게다가 대통령 인수위원회에서는 건강보험을 네덜란드 방식으로 민영화하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상영과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건강보험의 골간을 송두리째 뽑을 수 있는 이들 사안은 정책적 고려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만약, 2008년의 「식코」상영과 촛불시위가 없었더라면, 한국의 건강보험은 일대 혼란 상태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특히, 「식코」는 우연히 국내 상영 시기가 맞아떨어졌던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을 우려한 시민사회가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 건강보험 민영화 등은 이제 정책적 고려사항에서 제외된 듯 하며, 이명박 정부 집권 기간 중에 다시 거론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건강보험재정 확충과 보장성 강화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소극적 태도는 건강보험의 위상과 역할을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2008년 말, 정부는 건강보험 30년 역사를 통틀어 처음으로 건강보험료 인상을 동결하였다.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재정을 확충해서 보장성을 강화했던 이전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접근방식을 보인 것이다. 분모에 해당하는 국민의료비는 경제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급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의 소극적인 건강보험재정 확충은 국민이 사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용의 크기를 한층 늘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소극적인 건강보험재정 확충 정책은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국민 의존도를 높임으로써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경제적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향후 몇 년간 지속된다면, 이제 근근이 떼어낸 ‘진료비 할인제도’라는 오명을 건강보험이 다시 얻게 될 것이다.


2. ‘규제 완화’의 신화에 갇힌 의료공급체계 개편과 영리의료법인 허용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이 시행되면서, 의료기관의 양적 부족 문제가 부각되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기관 개설에 관련된 각종 규제가 완화되었다. 이런 규제 완화와 전국민의료보험 시행으로 인한 국민 의료이용량의 증가에 힘입어 1990년대 우리나라의 의료기관은 양적으로 크게 늘어났다. 그리고 1998년 즈음해서 한국의 단위 인구당 급성기 병상 수는 OECD 평균을 넘어섰다. 의료기관의 양적 공급에 대한 정책적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의료기관의 양적 공급, 그리고 의료공급체계 전반에 대한 정책적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의료기관의 양적 확대는 더욱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로 인한 부작용이 곳곳에서 표출되었다.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과 의료기관 간의 계층화가 심화되었다. 동네병의원의 경영 악화가 가시화되었고, 경영 수지를 보전하기 위한 각종 편법이 구조화되었다. 서비스 강도를 높이고, 각종 비급여 서비스를 양산하면서 진료간당 평균진료비가 지난 10여 년 사이에 2배 이상 급증하였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이런 의료공급체계 문제는 철저하게 비결정의 정치(Non-decision politics) 영역에 방치되어 있었다. 의료공급체계를 합리화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사실상 전무했다.
지난 10년 동안 의료공급체계 합리화에 대한 요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국민주치의제도 시행과 공공병원 확충 요구가 지속되었으며, 지역 병상 총량제의 필요성도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런 요구들은 ‘규제 완화’의 신화에 갇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규제 완화’는 모든 영역에 관철되는 핵심 가치인양 취급되었으며, 보건의료 영역 또한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무질서하고 비합리적인 의료공급체계에 질서와 합리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제가 필수불가결 했다. 그러나 ‘규제 완화’라는 강력한 지배 담론 앞에서 합리적 규제를 요구하는 주장은 설 자리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규제 완화’의 신화에 갇혀 의료공급체계의 합리적 개편을 방치한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보건의료정책의 가장 큰 패착 중의 하나이다. 이로 말미암아 의료공급체계 개편은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는 난제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의약분업을 거치면서 의료공급자들이 왜곡되게 정치세력화되면서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에 불거진 영리의료법인 허용 문제는 의료공급체계의 무질서와 비합리성을 극대화하는 뇌관과 같다. 영리의료법인 관련 논의의 발단은 2003년 정부의 동북아 중심병원 유치계획과 2004년 경제자유구역의 영리 외국병원 설립 계획이었다. 물론 이 당시의 주된 문제인식은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외국자본의 투자와 기업 유치를 촉진하기 위해 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할 외국인의 생활여건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초기의 문제인식은 의료서비스 산업 활성화로 진화하였다. 노무현 정부 기간 중에 영리의료법인 허용에 대한 논의가 만개했지만, 정책 결정은 유보되었다. 그러나 영리의료법인 허용을 둘러싼 논란이 가져온 파급효과는 만만치 않았다. “의료서비스를 통해 돈을 벌 수 있으며, 돈을 벌어야 한다”는 담론이 강하게 뿌리내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열어서는 안 되는, 혹은 매우 조심스럽게 열어야 하는 판도라의 상자를 활짝 열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무현 정부 기간 중에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 그리고 정부 내부의 견제와 조정으로 유보되었던 영리의료법인에 대한 정책 결정이 속도감 있게 이루어지고 있다. 정작 중요한 의료공급체계 개편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실종된 가운데, 영리의료법인 허용 주장만이 무성하다.


3. 마치며

‘개혁’에 대한 열망과 의지로 시작된 새천년의 첫 10년이 ‘개악’을 막아내기 위한 운동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보건의료 분야에서 이룬 제도 개혁의 성과는 적지 않다. 그러나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은 지난 10여 년에 걸쳐 이룬 보건의료 개혁의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 지를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 또한 중단 없는 보건의료 개혁운동의 필요성을 더욱 웅변하고 있다. 의료민영화 정책이라는 ‘개악’을 막아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국민건강권을 향한 대안적 보건의료 개혁운동이 기획되고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