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9 2009-12-01   2469

[심층분석8]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기초보장과 자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기초보장과 자활


   


문 진영
(서강대학교 사회복지학)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1조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전(全)국민의 최저생계의 보장과 더불어 자활을 조성할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1) 기초적인 생활의 보장과 (2) 자활의 조성이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로 굴러가는 제도인 셈인데, 이를 구현하는 구체적인 수단은 각각 보충급여와 자활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제도의 성패는 이 두 개의 수레바퀴가 어떻게 잘 조화를 이루어가며 굴러갈 것인가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기초적인 생활의 보장과 자활의 조성이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가 서로 잘 맞으면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지만, 잘 안 맞아서 삐걱대기 시작하면 제도의 방향을 잃고 그 수레에 태운 승객들의 안전도 보장하지 못한다.


사실 법의 목적 조항(제1조)에 기초생활의 보장과 더불어 자활의 조성을 명시한 것은, 자활사업이 단순히 다른 7종 급여의 한 종류인 자활급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전반에 걸쳐서 근간을 이루는 지원사업의 성격이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할 당시만 하더라도 자활사업은 사업의 규모나 프로그램의 내용 등에 있어서 매우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이라는 제도의 기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보조적인 기능에 머물렀고, 어찌보면 이는 현실적인 제도적 판단에 근거하고 있었다. 즉 두 개 수레바퀴의 불균형은 이미 내정되어 있었던 셈이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그리고 제도의 원리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또한 공공부조로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기능하는 한 자활의 조성이 기초생계의 보장만큼이나 큰 영역을 차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따라서 자활의 조성은 그야말로 기초적인 생활의 보장을 위한 보조적인 기능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었다는 표현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일부 자활관계 연구자들 중에서는 두 개의 수레바퀴 론(論)을 마치 물리적인 크기의 동등성으로 오인하여, 자활사업의 영역도 기초적인 생활의 보장이라는 사업영역만큼이나 독자적인 조직이나 예산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해석상의 오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조문의 모호성 내지는 이중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1조(목적)에서는 자활의 조성이라는 커다란 제도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에, 또 다른 조항(제9조 5항)에서는 자활사업을 근로능력수급장을 대상으로 하는 조건부 수급제도의 일환으로 축소하여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어 있다. 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수급자의 근로능력을 판별하여(work test) 근로능력과 여건이 허락하는 수급자는 자활에 필요한 사업에 참가할 것을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제공하는 조건부수급제도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 조건부 수급자가 자활지원계획에 따라서 자활사업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수급자 본인에 해당하는 생계급여의 일부 또는 전부를 중지할 수 있다(법 제30조)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법 조문에 대한 좁은 해석만을 가지고 하나의 방향만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자활사업의 위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법 제정 당시의 상황적 맥락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우리는 자활사업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시행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전의 생활보호사업에서도 ‘자활보호대상자’에게 자활보호를 실시하도록 되어 있었다. 예를 들자면 1996년부터 설치된 자활지원센터는 자활공동체 설립을 통해 취약계층의 소득활동을 지원하고, 자활의지를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해 온 바 있다. 하지만 자활인프라가 워낙 미비했을 뿐만 아니라, 생계급여에서 제외된 이들 자활보호대상자에게 자활사업에 참여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유명무실하게 운용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99년도부터 자활보호대상자에게도 동절기에 한하여 생계급여를 제공하게 됨에 따라서 이들의 근로의욕 저하의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하였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전국적으로 시행된 2000년 10월부터 이 논란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조건부 수급의 형태로 기능하는 자활사업은 두 가지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먼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가구는 일단 최저생계를 보장하기 때문에 가구원 중에서 근로능력이 있는 가구원의 경우에는 근로의욕을 유지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즉 이들 근로능력자로 하여금 빈곤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자활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제공하는 조건부 수급제도를 설계하였고, 이는 복지병을 방지하려고 영․미권에서 고안된 근로복지(workfare)형 속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처음 입안한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에서는 생계급여의 확대에 따른 ‘놀고먹는 복지’에 대한 논란을 피하고자 하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조건부 수급제도를 법안에 반영하였다. 결국 이러한 조건부 수급제도의 존재는 법 제정 과정에서 정부를 설득하고, 경총과 같은 우익집단의 복지병 공세를 회피하는 논리로 적극 활용되어 법제정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 결국 2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면서 자활사업을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었는데, 이과정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된 지접이 바로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근로 우선(Work First)’ vs ‘보장 우선(Security First)’]의 논쟁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근로능력자에게도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근로능력자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근로능력을 활용하게 하여야 하는데, 전자인 근로 우선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최저생계는 보장하되, 근로행위를 통한 보상의 형태로 보장하자”는 입장인 반면에, 후자인 ‘보장 우선’을 강조하는 입장은 “일단 소득인정액 이하의 가구는 보충급여제도를 통해서 최저생계를 보장하되, 이 중에서 근로능력 가구원에게는 근로를 조건으로 급여를 받는” 조건부 수급제도를 강조하였다. 이렇듯 전자와 후자 간에 대립이 첨예하게 지속되자 2003년 대통령정책실 빈부격차 차별시정 기획단의 주선으로 합의에 이르게 되는데, 그 합의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생략)

위의 합의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근로능력 수급자가 근로를 거부하지만 않으면 그가 속한 가구의 최저생계는 보장하되, 보장의 방식을 기존의 선(先)급여의 형태가 아니라 자활사업의 참여를 통해서 소득을 보장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결론적으로 현실화되지 못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자활사업의 참여를 통해서 기초적인 생계를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자활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이 합의내용은 소득을 발생시키는 자활사업 프로그램이 충분히 지속적으로 제공될 수 없으면 지켜질 수 없는 내용이었는데, 현재까지도 이러한 자활사업의 여건이 충분히 성숙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자활사업에 대한 우리의 과제는 일정부분 의욕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위의 합의내용이 현실화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발전되고 성숙한 자활사업의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여건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현실에서 개별급여로의 전환이나 독자적인 법의 제정은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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