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2 2022-03-01   929

[기획3] 복지태도, 사회적 균열, 그리고 복지정치

김수완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들어가며: 복지태도의 일관성과 안정성, 그리고 복지정치

복지태도는 복지와 관련된 사회현상 및 사안에 대한 선호, 의견, 평가적 판단 등의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학술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복지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복지태도를 사회적 균열을 드러내보여주는 복지정치의 중요한 단면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지태도가 복지정치를 대변한다는 암묵적 전제에 대해 우선 다음의 본질적인 문제를 짚을 필요가 있다. 복지태도가 충분히 일관적이고 안정적인가라는 점이다. 복지태도는 종교나 이데올로기처럼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관과는 달리, 상황과 이슈에 의존적인 ‘상황적 가치관’으로서 본질적으로 안정적일 수는 없다(조남경, 2013). 즉 복지태도는 상황에 대응적이고, 이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저출산 고령화 상황에서 후세대에 대한 부담이 증가할 것이 명확해지는 상황에서는 젊은 세대의 조세부담에 대한 입장이 부정적이 될 수 있다. 또한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인식과 세금을 더 내는 것에 대한 태도 간에 일관성이 없게 나타날 수 있다. 이념이나 규범적인 차원에서 특정한 복지정책을 찬성하던 사람이라도, 복지정책의 확대로 인해 자신이 부담해야 할 세금이 늘어나게 되면 자기 이해와 관련된 속성에 따라 평가가 부정적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한편 최근 서구 복지국가에서도 정책 사안에 따른 사회계층별 태도의 일관성과 안정성 문제가 “복지국가 갈등의 재정의”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계급정치를 강조하는 접근이나 권력자원론 등 기존 복지국가 정치이론은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동질적으로 가정했다. 노동-자본 간의 단일한 갈등축을 중심으로, 노동자계급이 일관적으로 ‘사회보험과 재분배’ 등 복지를 지지한다고 설명해왔다. 반면, 복지국가의 정치에 대한 새로운 접근들은 탈산업화 자본주의 시대에 정당 지지 세력의 구성 변화에 주목한다. 또한 노동계급 내 외부자-내부자 간의 균열에 주목한다. 사회보험과 재분배, 사회적 투자에 대한 상이한 이해관계, 그에 따른 갈등의 분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한다. 예컨대 사민주의 정당의 새로운 지지층으로 고학력 여성 노동자층이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분배 이슈보다는 사회투자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변화하는 복지국가 상황에서 사회적 균열구조는 달라지고 있다. 서구 복지국가에서도 1980년대까지 재분배적 속성을 지닌 복지와 사회보험에 대한 선호는 복지 관대성에 대한 태도에서 합산가능한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복지국가 재편기에는 노동시장 내부자를 위한 사회보험은 외부자와 저임금 근로자에 대한 욕구기반 급여와 경쟁할 수 밖에 없게 되면서 사회보험과 재분배, 사회투자에 대한 복지태도의 분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서구 복지국가들의 최근 연구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복지태도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이 글에서는 증세에 대한 태도, 연금개혁 정치에서의 사회적 균열, 기본소득에 대한 복지태도 등을 다뤄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복지태도와 사회적 균열: 증세에 대한 태도

복지정치의 미시적 기반인 복지태도의 변화와 사회적 균열 양상을 실증적으로 확인하고자 한 기존의 복지태도 관련 연구들의 전반적인 분석결과는 우리나라의 복지태도에서 체계적이고 뚜렷한 균열구조가 가시화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계층에 따른 복지인식은 비일관성과 비계급성을 보이는 것으로 논의되어왔다.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에서 복지에 관한 한 계급의식이 선명하게 포착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하지만, 복지태도 자체가 아직 안정적이지 않은 문제일수도 있고, ‘무엇에 대한’에 대한 태도인가에 따라 드러나는 양상이 달라질 수 있는 여지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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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복지에 대한 모순적 입장과 계층적으로 유의미한 균열을 동시에 드러내는 사안은 바로 복지를 위한 ‘증세’에 대한 입장이다. 최근에 발표된 서울대 국가전략위원회(2022)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만 19세 이상 시민 2,15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복지 확대를 위해 추가 세금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어떤 세대도 긍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은 1/3을 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세대간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40대 이상은 추가 세금 지불 의사가 있다는 응답이 30% 전후로 나타난 반면, 20대는 19.1%, 30대는 24.6%으로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난 것이다. 

동 보고서에서는 ‘고소득자의 세금이 적은가’에 대해서도 세대별로 상이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40대와 50대는 60%가 넘는 비율로 그렇다고 응답하고 있는 반면, 20대는 39.1%, 30대는 48.4%로 상대적으로 적은 비율이 그렇다고 응답한 것이다. 

이론상 복지 확대에 찬성할 것으로 예측되는 하위계층에서 막상 다른 계층에 비해 유의한 수준으로 복지 지지가 높지 않은 경향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조세부담인식을 보면 계층에 따른 인식이 오히려 분명하고 일관적으로 나타남을 볼 수 있다. <그림 3-2>에 보면, 주관적으로 자신을 하층으로 인식하는 경우 고소득자의 세금이 적다고 응답한 경우가 59.3%로 가장 높고, 중층은 36.8%, 상층은 31.7%로 차이를 보인다. 저소득자의 세금이 많다는 인식에서도 마찬가지로 하층은 49.1%, 중층은 36.8%, 상층은 31.7%로 나타나고 있다. 요컨대 스스로 사회적 계층이 낮다고 인식할수록, 우리나라에서 고소득자의 세금은 적고, 저소득자의 세금은 많다는 인식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연금개혁에서의 사회적 균열과 복지정치다수의 국내 복지태도에 관한 논의들은 주로 서구 복지국가를 설명하는 이론적 관점을 차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정치 상황은 서구와 상당히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복지국가의 형성 과정이 같지 않다. 따라서 제도에 결부된 자기 이해가 서구 복지국가만큼 강하게 형성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계급 간 대립이나 노동자계급의 정치화가 복지국가의 형성과 발전을 견인해온 것으로 설명하는 주류적 복지정치 논의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개인들의 복지 태도가 지난 10년간의 복지정책을 견인했다고 보기보다는, 복지 제도화가 먼저 진전되면서 복지에 대한 정치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고, 비로소 각 개인의 복지태도가 형성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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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태도가 사회적 균열로, 사회적 균열이 복지정치로 표출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적 균열이 표출되고 대표되어 논의되는 정치적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연금개혁 과정은 우리나라 복지 정치를 선도하는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 연금이 복지에서 차지하는 높은 양적 및 질적 비중이나 연금개혁의 정치적 의제로서의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연금개혁과정에서 정치적 공간이 마련되고, 이에 따라 사회적 균열을 반영한 정치적 행위자들이 이해관계를 표출하며, 각 이해관계를 고려하고 절충하고 타협하는 방식으로 결정이 내려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지정치 과정에서 중요한 사회적 균열이 빠짐없이 공정하게 대표되었는지는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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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과 관련된 이해관계 집단은 크게 자본, 노동(내부자, 외부자), 현세대 노인, 미래 근로세대 등으로 구조화된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일반적인 복지태도와 마찬가지로, 연금개혁에서도 사회적 균열이 가장 명확히 드러나는 의제는 다른 것보다 ‘보험료 인상’이다. 보험료율을 현행대로 유지하는 것은 계급과 계층을 막론하고 현세대에는 유리하다. 그러나 현재의 보험료율을 유지할 경우, 연기금이 고갈되는 2060년대 시점에서 현재 9%의 3배 이상에 달하는 28~29%를 부담해야 할 것으로 장기 추계결과가 나타나는 바, 보험료율의 현행 유지는 미래세대에게 명백하게 불리하다. 

반면 장기적인 재정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해 지금부터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미래세대의 경우 부담분이 줄어들 수 있지만, 보험료율을 절반씩 부담하는 자본측과 노동측이 모두 부담을 추가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보험료를 모두 본인부담해야 하는 자영업자는 더욱 부담이 커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두 번에 걸친 국민연금 개혁과 적지 않은 연금개혁 논의과정에서 보험료율은 높아지지 않았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세대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정치적 세력화는 이루어지지 않다는 점이 적지 않은 요인일 수 있는 것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복지태도

최근 정치적으로 화두가 된 기본소득은 비기여(non-contributory) 무조건적(unconditional) 급여로서 비시장적인 속성을 강하게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노동시장 위험에 따른 복지선호에 대한 기존의 선행연구들이 보고하는 바는 대체로 동일하다. 저소득이거나 혹은 저학력일수록, 반복업무 종사자이거나 일에서 재량수준이 낮을수록, 업무의 외주가능성이 높을수록, (일반숙련보다) 특수숙련 종사자일수록, 외부자성(실업위험, 비정형고용)이 높을수록 비시장적인 공적 급여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노동시장 위험이 큰 집단일수록 공적 급여를 지지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선행연구 결과를 적용하면, 노동시장 위험이 높을수록 혹은 높을 것이라고 기대할수록 기본소득을 지지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실제 현실에서 기술혁명과 일자리 대체가 가시화될수록 객관적 이해관계가 점점 더 본소득 지지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일자리 대체와 복지확충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미비할수록 노동시장위험에 대한 우려가 커질 것이기에 기본소득에 대한 정치적 지지는 높아질 것이다. 이는 한국과 같이 고용과 복지가 불안한 나라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는 반면, 고용이 중시되고 사회서비스를 통한 일자리창출이 구조화된 북유럽 복지국가에서는 기본소득 논의가 유의미하게 확산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관한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사회적 균열에서 사회적 합의의 복지정치로

5년 전에 그랬듯이, 이번 21대 대선을 거치면서 제시된 공약들 덕분에 우리나라의 복지는 상당히 확대될 전망이다. 복지 확대를 ‘점수따기’로 인식하는 정치공학적 판단이 우리나라 정치권에도 작동하고 있다. 복지공약의 긴 리스트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반가운 현상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수준으로 충분히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마련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치열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점은 문제다. 

앞에서 증세에 대한 복지태도 현실이나 연금개혁의 사례에서도 언급했듯이,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와 같이 정치권이 피하고 싶은 ‘비난회피’의 의제는 자기이해적 사회적 균열에 충실한 방식으로는 답을 내기 어려운 난제다. 

그렇다면 사회적 균열에서 사회적 합의의 복지정치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이에 대해 세가지의 가능성을 제시해볼 수 있다. 

첫째, 점수따기가 아닌 비난회피의 사안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지게 될지 불확실한 상황, 예컨대 대선의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후보간의 경합 상황에서 의제를 공식화하고 탈정치화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 정국에서 후보들이 누가 당선되더라도 연금개혁은 추진하는 것으로 토론회에서 약속한 것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 이제 주요 정치 행위자들간에 탈정치화시키는 논의구조를 형성해낼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일 것이다. 

둘째, 누가 얼마나 얻을 것인가와 함께,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가를 함께 패키지로 논의해야 한다. 서구 복지국가, 특히 재정안정화 조치가 시급하고 중요한 의제로 부각된 대륙 유럽 국가들에서도 복지국가 개혁의 목표와 방향은 단순히 축소만이 아니었으며, 사실은 제반 조정과 확대를 포괄하는 복합적이고 다면적(multidimensional)인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지적된다. 이처럼 단순하지 않은 다차원적 개혁 국면 속에서는, 제도와 결부된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이해관계들을 서로 상쇄시키는 타협과 협상이 가능하다. 요컨대 자기이해적 관점에 가장 충실하게 복지정치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다차원적인 정책 의제를 설정함으로써 복합적인 이해관계 균열을 구조화하고 이를 통해 정책 연합과 사회적 합의의 여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셋째, 사람들의 복지태도는 반드시 자기이해로만 결정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에 더 나은 미래, 더 바람직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누가 무엇을 왜 얻어야 하는가’와 같은 가치 규범적 질문이 우리 사회 안에서 충분히 제기되어야 하며, 치열한 논의를 통해 성찰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복지국가가 외형적으로 확대할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복지국가 시민으로서의 성숙한 친복지태도를 형성해내고, 이를 토대로 지속가능한 복지국가의 선순환을 일궈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참고문헌

김태완, 이주미, 류진아, 강예은, 노법래, 소득분배 동향 변화 및 정책대응 방향 연구. 보건복지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준, 정동재(2018). 사회갈등지수와 갈등 비용 추정, 연구보고서 2018-09. 한국행정연구원.

통계청. 2021년 사회조사 결과. 2021.11. 17 보도자료

통계청. e-나라지표-국가지표체계(학생 1인당 사교육비)

통계청. e-나라지표(학력별 임금격차지수)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가구의 월평균 소득별 사교육 참여율).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소득분배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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