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2 2022-10-01   855

[복지칼럼] “우리들의 죽음”

황영민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

“2022년 8월 21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어머니와 두 딸이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8년 전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또 다른 수원 ‘세 모녀’의 죽음으로, 다시 한번 우리 복지 제도의 작동방식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위기 정보를 확대하여 ‘복지 사각지대’1) 를 발굴하겠다고 하고, 지난 9월 1일에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 체계 개선 전담팀(TF)」를 발족했다. 

그러나 ‘발굴’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복지부 관계자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발굴 대상자들은 이미 과거에 공적 서비스의 지원을 받은 경험이 있는데 탈락 또는 지원이 중단되거나 부양의무자 기준 등 제도적 장벽으로 인해 제도권으로 편입되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참여연대 2022. 8. 24. 논평)이기에, “‘발굴’이라는 우문을 넘어 빈곤을 만드는 구조를 질문할 때”(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외 2022. 8. 24. 공동성명)라는 외침이 있지만, ‘우문’이 계속되고 있기에 ‘근본적인 개선’도 요원하다. 복지제도 전반에 대한 고민이 부재한 상태에서, 안타깝지만 또 다른 ‘세 모녀’의 참극(혹은 그와 유사한 일들)은 시기가 문제일 뿐 다시 발생할 것이다.

‘세 모녀’ 사건들이 유달리 주목받은 이유는 ‘동거가족 전체’가 국가와 사회 공동체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단절, 고립되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된 통계조차 내지 못한다는 ‘고독사’는 너무 자주 벌어지기에 이제 뉴스에도 일일이 보도되지 않을 뿐이고, 그런데도 그 쓸쓸한 죽음의 이면에는 ‘실업, 질병’ 등 개인의 문제로만 치환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다. ‘발달장애인 가족’의 비극은 또 어떠한가. 올해 2월 수원과 시흥에서, 5월 서울과 인천에서, 8월 대구에서, 부모가 발달장애인 자녀를 살해하거나 함께 투신하는 등의 비극적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고, (자녀를 살해한 부모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생활고에 잘못된 선택을 했다’라는 그네들의 절규에 그 마음이 어떠할지를 생각하면 먹먹해진다. 실상 ‘수원 세 모녀’ 사건 이전에도 공동체의 손길을 느끼지 못한 채 삶을 포기한 수많은 이들의 ‘죽음’이 우리 곁에 있었다. 

각자의 죽음에는 당사자가 아니라면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연이 있을 것이다. 어떤 부분까지 개인의 문제로 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지만, 그 근저에 경제적 고통, 빈부격차, 질병 등등 촘촘한 복지제도와 사회경제적 구조 개선을 통해 우리가 해결 또는 보완해야 할 사회적 문제가 있음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인터넷에 보건복지부를 검색하면 “힘이 되는 평생 친구, 보건복지부”라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슬로건은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였다. 그러나 그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 새로운 국민의 나라는 무엇인지 아직 답을 듣지 못했다. 32년 전 정태춘이 노래한 “우리들의 죽음”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2).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 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나라는 오지 않았고, 더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조차 없지만, 대통령에, 장관에 책임을 묻기에 앞서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나부터 고민인 요즘이다. 


1) 흔히 쓰는 표현이지만 ‘사각지대’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사각지대’는 “관심이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구역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데(표준국어대사전),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면 그것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 아닐까.

2) “1990년 3월 서울 마포구 한 연립주택 지하에서 불이 났다. 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고 집 안에는 세 살, 다섯 살 아이들이 있었다. 가사도우미와 경비원 일을 하는 엄마와 아빠는 어린아이들이 걱정돼 문을 잠그고 나갔고, 집 안에 있던 다섯 살 혜영이는 방바닥에 엎드린 채, 세 살 영철이는 옷더미 속에 코를 박은 채 숨졌다”(매일노동뉴스 참조). 그리고 정태춘은 그 안타까운 사고를 “우리들의 죽음”이라는 노래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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