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용 동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유명 이론가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오늘날 세계가 네트워크 자본주의라는 것을 실감한다. 정보기술 발전은 하루가 달리 개인과 세계의 접속을 증대시켜 주었고, 그 결과 우리는 출근하면서, 식사하면서, 일하면서, 그리고 대화하면서조차 정치·경제·사회·문화 정보들을 매 순간 손안에서 확인한다. 불과 몇 시간 전 해외순방 중인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였는지, 각국의 금융정책 수장들이 무슨 결정을 하였는지, 노래나 드라마, 축구 경기, 그리고 어느 아파트 주차장의 민폐 사건이 어떤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과도한 정보 시대에서 지식과 정보는 정부에 의해 독점되지 않는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각자 상호 연결된 노드들을 통해 역동적으로 자신이 속한 전문영역의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지식 권력 작동의 원천으로 사용한다.
거버넌스란 효율적인 지배구조 그리고 의사결정의 한 방법이다. 공공정책 분야에서 의사결정은 정부의 일방적 통치가 아니라 민간의 다양한 사회조직들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과거 공공부문이 맡던 역할이 상당 부분 정보 네트워크에 이양되었고, 의사결정은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숙의 과정에서 합의를 하는 구조에 맡겨진다. 이론상은 그렇다. 현실은 거버넌스 구조에서 시민의 참여가 보장되는지, 다양한 의견이 경청 되는지,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는지 의심스럽다. 여전히 정부와 기관은 제 권한을 하향식으로 발휘하면서, 무늬와 형식만 민주적 거버넌스라고 생색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나 또한 사회복지 전문가라는 이유로 수많은 위원회의 의사결정에 참여해 왔다. 대통령직속위원회를 비롯하여 정부 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그리고 각종 사회복지시설의 운영위원회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런데 위원회에 참가하면 할수록 시간낭비임을 확신하게 된다. 그 이유는 첫째, 법령과 정관 등에 명시된 심의, 조정, 또는 의결을 위한 충분한 논의가 없다. 이미 회의 자료에 보고 및 의결 사항이 정해져 있고 결국 위원들은 거수기 역할만 하는 경우가 파다하다. 코로나 이후에 진행된 서면심의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둘째, 위원들이 소신에 따른 의견을 자주 개진하면,위원회가 소집되지 않거나, 특정 위원이 배제되거나, 검토해야 하는 안건 자체가 삭제되기도 한다. 셋째, 절차적 정당성을 준수하기 위해 규정만 중요하고 정작 내용상의 정당성 기준은 고려되지 않기도 한다. 넷째,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인데, 위원회가 봉숭아 학당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참여한 위원들은 각 영역의 전문가 입장에서 서로 다른 발언을 펼쳐놓기만 한다. 정부는 이러한 진행을 의도한 듯이, 다양한 이해당사자라는 명분으로 위원회를 구성한다. 공익위원이라고 해도 딱히 공익을 대변하지 않는다. 공익이 얼마나 광범위한가? 결국 답은 정해져 있다. 민주적 의사결정이 효율적이 되기 위해서는 원론에 맞게 정책의 당사자들을 차별하지 않고 최대한 포함되어야 하고, 공동의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가 충분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 또한 어렵다면 협상 또는 경쟁을 통한 의사결정이라도 이루어져야 한다.
본 호에서는 국민연금, 건강보험, 기초생활보장,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등 주요 보건복지 정책의 거버넌스 문제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정목 한국노총 정책차장은 국민연금심의위원회가 재정계산, 급여, 보험료, 기금운용 사항 등 매우 중요한 정책결정을 심의가 아니라 사업보고 정도로 운영하고 있음을, 김준현 소장은 건강보험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어떻게 정부 정책을 관철하기 유리한 구조로 변질하여 운영되는지를, 그리고 남기철 교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중앙생활 보장위원회가 당사자 구성의 문제, 위원의 독립성 문제, 민주성, 공개성, 투명성을 모두 훼손하여 결국 어느 주요 정부 위원의 독주에 의해서 의결내용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경민 참여연대 팀장은 장기요양위원회의 위원 구성과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은 논의과정, 심의로 한정된 위원회의 권한 문제 등을 지적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결국 아무리 지식정보의 네트워크 사회가 도래했다 하더라도, 시민사회를 관리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바뀌지 않은 듯하다. 각 제도 거버넌스의 합목적성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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