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2 2022-11-01   605

[복지칼럼] 의료민영화의 새장, 건강정보민영화

정형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윤석열 정부의 정책기조는 근본적으로 긴축과 민영화다. 국정연설에서 ‘취약계층과 사회적 약자’ 보호를 언명했지만, 보편적 공공서비스는 줄이겠다는 걸 ‘건전재정’으로 표현했다. 잔여적이고 시혜적인 사회정책이 가진 심정적 차별감은 둘째치더라도, 사회정책 전반의 긴축기조에서 취약계층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단적으로 감염병 대응을 위한 공공의료예산의 대부분이 없어졌는데, 취약계층만을 위한 감염병 대응이 가능할까?

여기에 이전 정부도 지키지 못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안(문재인 케어)을 후퇴시키고, 주요 공공병원설립예산과 의료취약지 지원예산 등은 모조리 삭감했다. 의료취약지에는 취약계층이 없고, 취약계층은 건강보험의 보장범위가 줄어들어도 피해를 보지 않을까?

거기에 더해 이런 공백은 모조리 민간사업으로 채우려 한다. 바로 민영화다. 전력, 철도, 공항, 국유지 등을 직접 팔겠다는 민영화 기조에 더해 의료민영화 논란도 날로 커지고 있다. 정부는 만성질환관리와 같은 일차의료영역을 민간사업자 인증으로 해결하려 한다. ‘건강관리서비스’라는 그럴싸한 이름의 실상은 민간보험사와 테크기업들이 참여하는 영리 사업이다. 여기에 기존 공공병원을 위탁하고, 민간병원에 정책수가를 배정해 공공의료사업을 하게끔 하려 한다. 물론 정부는 ‘의료민영화’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의료민영화’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의료민영화가 없는 건 아니다.

이런 민영화 기조 속에서 최근 매우 내밀한 시민의 건강정보까지 팔아넘기려는 시도가 확대되고 있다. 우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과 건강보험공단이 가지고 있는 전국민건강정보를 민간기업에 제공한다는 발표이다. 특히 심평원이 가지고 있는 MRI, CT 같은 영상의료정보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제공의 이유는 얼핏 그럴듯해 보인다. 이런 데이터를 가지고 판독프로그램 등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의료기술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인데,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더라도 이런 실험적인 개발은 공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한 심전도 판독기술도 막대한 자금으로 아직도 개발 중인데, 이런 복잡한 판독프로그램은 개별 기업에 데이터를 공개한다고 해서 될 리 만무하다. 그리고 데이터 공개 이전에 기술발전단계에 따른 엑스레이 수준의 단순영상판독 프로그램의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합리적 의문이 제기될 논쟁의 장도 필요하지 않다. 올해 국정감사를 통해 그동안 심평원이 보낸 의료정보는 민간보험사가 상품개발을 하는 데에만 썼음이 드러났다. 애초에 의학발전이나 만성질환대응 등 공적 연구 목적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보험손해율 감소와 대상범위설계 등을 통한 사적기업의 수익성증대에 이용된 것이다. 지난해부터 올해 4월까지 5개월간에도 무려 685만 건의 개인건강정보가 민간보험사에 넘어갔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유일한 방패막이는 이들 건강정보를 ‘가명’으로 넘긴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가명정보라도 개인건강정보는 개인식별이 가장 유리한 정보들이라는 점이다. 특히 민간보험사가 가지고 있는 여타 개인정보와 결합이 되는 순간, 이들 정보는 모두 개개인 식별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주요 선진국에서도 민감정보의 가명화는 강력한 공적통제와 공공이용에만 한정된다. 이처럼 위험천만한 개인의 내밀한 건강정보, 의료정보를 우리는 단 한번도 민간기업에 넘겨도 된다고 동의하지 않았다.

이 문제가 이렇게 엉망친창 된 데에는, 이런 과정을 ‘데이터3법’, ‘가명처리 가이드라인’ 등으로 국민들의 동의도 없이 두리뭉실하게 처리해온 국회와 정치권의 책임도 크다. 이제 민영화기조가 명확한 정권이 들어서서 ‘공공데이터’라는 언어로 각종 정보를 마구잡이식으로 민간의 수익성을 위해 공급하려 시도 중이다. 이를 막아 보고자 하나 그간 이뤄진 규제 완화로 속수무책이다.

우리는 건강보험제도를 이용하기 위해 심평원에 적정 진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지 국가가 임의로 내 진료정보, 건강정보를 민간에 넘기는 걸 동의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방식의 정보 민영화에 근본적으로 저항해야 한다.

우선 개개인의 건강정보를 민간기업과 정부가 훔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정치권이나 일부 전문가들이 떠들어댄 익명화나 가명화가 얼마나 안전한지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우리 각자가 내 정보의 판매와 가공을 동의하지 않았다는 걸 밝히는 것이 우선이고, 어떻게 개인이 정보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정보주권’ 논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상적인 정부와 국회라면 국민동의범위에서부터 데이터3법을 전면 재논의해야 한다. 개인정보까지 민영화 세력의 놀잇감이 되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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