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2 2022-12-01   1605

[동향2]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와 시민의 안전할 권리

이태호 4.16연대 상임집행위원장 /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10.29 이태원 참사로 온 나라가 큰 충격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슬픔에 빠져 있다. 참사의 사회적 파장이 깊고 넓다. 참사 당일 밤과 그 다음날까지 국민의 상당수가 그 곳에 있었을지도 모를 가족과 친지들의 안전을 간절히 기원하며 안부를 확인했고, 그들 중 일부는 믿기 힘든 비통한 소식을 접해야 했다. 국내에 가족이나 친지를 보낸 해외 각국에서도 같은 파장이 일었다. 각국 정부는 애도성명을 발표했다. 

국가는 없었다. 우연히 살아남았을 뿐

예방, 대비, 대응, 구조, 수습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의 예방을 위한 사전대책을 수립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당일 현장의 신고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대통령 경호나 인근 시위에 투입된 경찰력과는 현저히 비교되는 소수의 경찰만이 배치되었고 그나마도 대부분은 마약 단속을 위해 투입되었다. 그 결과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구조에 임한 극소수의 경찰, 소방관, 의료인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기 구조에 실패해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수습 과정은 또 하나의 재난이었다. 부상자에 대한 응급치료와 이송, 사망자 안치의 우선순위의 혼선으로 희생이 커졌다. 사망자 및 부상자 신원 확인과 연락, 피해자 가족에 대한 정보제공, 유류품의 관리 등에서 혼선과 부실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 사고를 버리라’고 주문한 대통령의 측근이기도 한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 직후 ‘주최측이 없는 행사에서 일어난 사고’라고 규정하고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파견해도 소용없었을 것’이라며 책임을 이태원 방문 시민들에게 전가하려 했다. 용산구청장은 행사가 아니라 ‘현상’이라고 우겼다. 참사 후 경찰이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참사 현장의 CCTV를 수거해 생존자들을 상대로 공공연한 용의자 색출에 나선 것이었다. 그 결과 생존자를 비롯한 피해 시민들에 대한 마녀사냥과 혐오가 끓어올랐고, 위로와 치유가 시급한 이들에게 2차, 3차 피해를 입혔다.

대통령은 서둘러 국가추모기간을 선포하고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다. 최근에 와서는 피해자에 대한 특별한 배보상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서둘러 철거된 합동분향소에는 위패도 영정도 없었다. 정부는 사망자 외에 과연 누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해서도 판단근거와 기준을 공식적으로 제시한 바 없다. 이 글을 쓰는 11월 23일 현재까지 대통령은 아직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다.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함께 추모하고 위로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집요하게 거부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들을 상대로 단 한차례의 공식적인 보고회도 가진 적이 없다. 

급기야 11월 23일 각자의 수소문을 통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법률상담에 응한 30여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그동안의 슬픔과 분노, 정부에 대한 원망과 항의를 쏟아냈다. 유가족들은 최소한의 조치로서 △ 진정한 사과, △성역없는, 엄격한, 철저한 책임규명,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및 책임규명,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의 마련 등 6개항을 요구했다.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의 절망스러운 패턴

10.29 이태원 참사는 그 발생부터 그 후 약 한 달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4.16세월호 참사와 그 후의 전개과정과 너무도 흡사한, 우리사회 재난참사 전개의 절망적인 특징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우선, 재난과 참사의 사회적 성격이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정의하려 했고,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 참사를 주최자 없는 행사에서 일어난 사고라고 규정하려 했지만, 대다수 시민들과 해외에 비쳐진 참사 발생의 사회적 구조적 성격이 너무도 현저해서 ‘사회적 참사’외에는 달리 지칭할 수 없다. 

둘째, 예방, 대비, 대응, 구조, 수습에서 국가기능의 총체적인 부재다. 국가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 이유라 할 수 있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책무를 인식하고 이행함에 있어 국가가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지하고 무능한지 여실히 드러난다. 

셋째, 정권의 책임 회피를 위한 국가공권력의 체계적 발동과 공작적 개입이다. 국가의 책무 불이행에 대한 정권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재난참사의 예방, 대비, 대응, 구조, 수습에서는 결코 발휘되지 않았던 컨트롤타워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국가공권력이 정권 안위를 위해 체계적으로 작동한다. 공권력의 정략적인 행사는 ‘외부세력’ 혹은 ‘반정부세력’을 차단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묘사된다. 공적 책임은 주로 국가기구의 말단 현장 세력에게 전가된다. 재난이나 참사에 실질적 책임이 있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불처벌 이슈가 지속적으로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넷째, 피해자 권리에 대한 전반적 침해와 2차 3차 가해다. 재난참사의 예방과 대응에 실패해 희생자와 부상자, 생존자, 이들의 가족과 친지, 현장 자원활동시민과 구조인력, 참사자와 지역주민 등에게 다양한 수준과 범위의 수많은 피해가 발생하는데 원인을 제공한 정부는 그 중 일부 개인들을 경제적 배보상의 수혜자, 즉 시혜의 대상으로 삼는다. 다른 피해자는 방치되거나 심지어 일부는 가해자로 지목된다. 그 후 ‘재난을 정치화2) 하는 세력이 ‘순수한’ 피해자들을 이용할 수 있다고 겁박하여 개인으로 고립시키고, 그 다음 단계로 피해당사자들을 분수에 넘는 보상을 요구하는 사익추구자로 매도함으로써 재난참사 피해자가 행사할 수 있는 진실, 정의, 치유, 회복 등에 관한 개별적 집단적 권리를 포기하도록 강요한다. 

재난 자본주의적 악순환의 고착 가능성 

다섯째, 신뢰적자, 각자도생, 특권강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가능성이다. 세월호 참사에 관한 진실, 책임, 치유, 회복 등이 온전히 진행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금 유사한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 이 경우 사회구성원들은 스스로를 ‘생존자’로 인식하기 쉽다. 구성원 상당수가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을 뿐 나를 지켜줄 국가는 없(었)다’라고 반복적으로 느끼게 되면, 사회구성원간의 연대와 국가의 책무이행을 통한 문제해결과 권리 실현 가능성 자체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심화되고 각자도생의 추구로 인한 사회적 위기와 위험이 더욱 증가할 수 있다. 대중의 불안과 공포를 자양분으로 삼아 사익을 극대화하는 소수의 특권적 질서가 고착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른바 ‘재난자본주의’의 악순환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서울 지하철이 멈추었을 때, ‘안전한 객실에서 대기해달라’는 안내방송에도 불구하고 모두 철로로 쏟아져나왔다. 만약 반대편에서 열차가 운행했다면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 다행히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는 사회적 각성과 연대가 일어났고, 피해자들이 단결하고 시민들이 연대하여 정권의 탄압, 회유, 분열공작과 혐오공격을 이겨내고 진실과 정의, 세월호 이후의 사회에 대한 희망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의 사회개혁 실패에 이어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더욱 심해지는 특권세력 위주의 정책 결정, 반복되는 산업현장의 중대재해와 10.29 이태원 참사와 같은 대형참사들, 정부의 무대책과 무책임, 이로 인해 확대되는 국민들의 불안과 불신이 우리사회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어내며 정치적 사회적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이 불안과 불신은 정권퇴진 구호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시혜를 베푸는 것과 권리를 보장하는 것의 차이

단언컨대,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시민과의 연대를 차단하여 정권과 국가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정략적 임기응변은 다른 정권의 시도와 마찬가지로 실패할 것이 틀림없다. 문제는 정권의 실패에서 그치지 않고 심화될 불안과 불신의 악순환이 초래할 거대한 사회적 비용이다.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속도를 올리고 있는 거짓 추모와 위로, 피해자 배제와 권리 침해, 책임회피와 본질호도 음모를 확실하게 좌절시키고 저지해야 한다. 반면, 피해자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고 정부가 잘못을 확실하고 온전하게 인정하고 그 책임을 다하도록 피해자와 시민들이 윤석열 정부와 정치권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윤석열 정부와 정치권이 이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일에 성공하도록 진심으로 도와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0.29 이태원 참사의 폐허 위에 고립된 피해자와 시민들의 연대를 복구하고, 진실, 정의, 치유, 회복, 배보상 등에 관한 피해자의 권리와 안전하게 살아갈 시민의 권리를 온전하게 확립해야 한다. 참사를 일으킨 정부의 책임을 반드시 묻고, 시민의 안전권과 피해자 권리에 관한 국가의 책무를 처벌가능하고 소환가능한 수준으로 실질화시킴으로써 위험사회에서 안전사회로 나아가는 전환점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의 권리와 시민의 안전권을 논의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권리담지자(피해자와 시민)의 ‘권리성’과 책무담지자(국가)의 ‘책무성’을 입법적, 사법적으로 명확히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하는 것과 수혜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하는 것 간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요구가 충족이 안되는 상태가 불만족이라면, 권리가 존중되지 않은 상태는 침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3)

국민의 안전권, 피해자의 권리, 그리고 생명안전기본법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본권으로서 안전하게 살 권리(안전권)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안전문제는 국가의 관리대상으로 여겨졌을 뿐 국민과 피해자의 인권문제로 인식되고 적용되지 않았다.4)

피해자의 권리가 구체적으로 열거되지 않았고, 피해자나 안전에 취약한 계층에 대한 지원 및 회복을 위한 제도적 보장책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했다. 안전사고에 대해 특별한 경우 특별법을 통해 예외적으로 시도한 4.16세월호 참사나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경우 외에는 객관적이고 독립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후속조치 및 재발방지대책 역시 제대로 수립되지 않았다. 설사, 후속 대책이 수립된다 해도 제대로 이행되는지 점검하는 체계도 없었다. 현행법에 대한 소극적 법적용 문제도 간과할 수 없지만, 현행 재난 및 주요 안전사고에 관한 주요 법령들만으로는 시민의 권리와 국가의 책무성을 명시하고 실제로 적용하는 데서 가지는 한계 또한 명확하다. 

4.16세월호 참사 이후 논의되어온 생명안전기본법의 제정5)시도는 이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법안의 주요내용은 ▲‘안전권’을 명시하고 안전권을 보장할 국가 책임을 명문화, ▲안전 약자에 대한 특별한 보호 및 피해자 지원의 원칙, ▲안전사고에 대한 독립적인 기구에 의한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조사 보장,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및 공동체 회복을 위한 시책,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관리 및 평가체계 도입 등이다. 생명안전기본법(안) 성안에는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연대,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사)김용균재단 등 3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활동을 하고 있는 ‘생명안전 시민넷’이 법안 제정 작업에 함께 참여했다6). 한편,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논의과정에서 제외된, 중대재해 발생 시 결재권을 행사한 공무원에 대한 처벌 특례조항 등을 포함시키는 등의 방향으로 공무원 불처벌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자는 주장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안전권의 확립과 피해자 권리의 체계적 법제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아직도 진행 중인 세월호 참사,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상규명과 피해지원, 새롭게 발생한 10.29 이태원 참사의 그것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직면한 위험이 복합적이고 우리사회가 처한 위기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불평등과 기후위기로 더욱 위태로워진 시민의 삶, 자연적 사회적 재난이나 위기에 취약한 사회적 약자층의 증가, 공동체 내에 만연한 사회공공성 실현과 안전한 일상에 대한 불안과 불신 등이 이미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사회적 정치적 결단과 전환이 절실하다.


1) 2014. 4. 23. 경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한 말

2) ‘재난의 정치화’라는 표현은 매우 엄격하게 제한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하며, 피해자와 그 조력자(피해자권리옹호단체)이 청원, 집회, 시위, 기타 투표 등 주권행사 등의 개별적 집단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가로막는 구실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 “법의 지배의 주요 요소인 책임성과 투명성에 대한 요구를 정부 자체를 약화시키려는 시도와 동일시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집회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불만족의 표현을 억압하는 접근방식의 전형적인 예인데, 이러한 접근은 달리 접근했더라면 인식된 문제점을 다루기 위한 연대와 협력을 장려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슈에 대한 입장의 극한적 대립을 초래한다.”_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 한국방문보고서, 2016 

3) ‘인권기반접근, The Human Rights Based Approach, United Nation Population Fund(UNFPA) 참조 http://www.unfpa.org/human-rights-based-approach#sthash.IxlTqgxg.dpuf

4) “현재 ‘안전’과 관련한 기본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 재해구호법 등 재난이 발생했을 때 기본법으로 작용하는 법률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행법은 정부와 지자체가 재난 상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의 관점에서, 국가나 지자체가 재난이 발생하면 어떤 체계를 갖추고 무엇을 추진해야 할 것인지를 다루고 있는 것에 그친다. … 재해구호법은 자연재해 이외의 참사에 있어서 피해자를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는 담지 못하고 있다” _ 오민애 변호사, “생명안전기본법, 꼭 제정해야”, 매일노동뉴스 2021. 03. 15.

5) 국회 생명안전포럼 소속 우원식 의원 대표발의, 2021.11.13.

6) “우원식 의원, 생명안전기본법 대표발의… ‘안전권’ 법률에 명문화한 최초 법안”, 미래한국 Weekly, 2020. 11. 14.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