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2 2022-12-01   5725

[기획1] 한국인의 복지태도: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에 대한 일고(一考)

김신영 한양사이버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교수

일반적으로 사회구성원들의 복지의식이란 특정사회의 사회복지체제, 더 나아가서는 사회구성원의 복지를 추구하는 국가정책 일반 또는 궁극적 복지책임주체에 대한 가치지향이나 태도를 말한다. 사회과학적 개념으로서 복지의식이 가지는 특징은 첫째, 복지의식은 사회구성원들에게 공유되는 집단적 의식이며, 둘째, 복지의식은 사회적으로 학습되고, 셋째,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복지의식이란 사회구성 및 운영원리에 대한 전반적 가치,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이념적 성향, 사회 내 불평등에 대한 태도, 복지책임의 주체, 복지실천의지, 복지비용과 조세문제, 소득재분배 등을 포함하는 개념적으로 일정 상이한 하위구성영역들을 포괄하는 개념인것이다. 복지의식의 다양한 측면 가운데, 이 글에서는 한국인의 복지의식을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에 대한 태도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이 글은 본인이 과거에 발표하였던 학술 논문을 재구성한 것임을 미리 밝혀 두며, 기고문의 성격상 여기에서는 학술적 성격의 개념어 사용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하였다. 2011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을 계기로 한국사회에 등장한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에 대한 논쟁은 비단 학계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소위 ‘진보’와 ‘보수’ 양쪽 정치 진영은 복지정책의 범위와 재원 등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여 왔으며 이러한 논쟁의 귀착점은 결국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에 대한 추상적 이념이나 윤리적 관점 또는 ‘공짜점심, 재벌급식’ 등의 슬로건으로 나타나는 선동적 관점으로 빠져들게 되는 상황을 우리는 목격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필자가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보편주의 또는 선별주의는 어떠한 상(象, image)으로 다가오고 있을까? 둘째, 만약 한국인에게 보편주의 또는 선별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상(象, image)이 존재한다면 한국인들은 보편주의 또는 선별주의 등의 단어가 가리키는 정확한 대상, 즉 실체(實體)에 대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한국인의 보편주의 또는 선별주의에 대한 지지 정도, 그리고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무엇인가? 이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순서를 따른다. 먼저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에 대한 정의, 그리고 개인의 복지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 대해 간략히 살펴본 후, 필자가 직접 수행하였던 2019 복지패널 조사자료의 분석결과를 토대로 몇 가지 주요한 발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에 대한 개념적 정리는 학계의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개념 정의를 따른다. 시민들 간의 차별을 제도화하지 않으며 빈자를 포함한 욕구가 있는 사람을 다른 시민으로부터 분리하지 않음을 통해 사회정책의 수급자격을 사회적 시민권으로부터 도출시키고자 하는 보편주의의 정의는 현실 속에서 사회정책 설계의 구체적 원리라기보다는 일종의 선언 또는 정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보편주의가 사회복지 급여를 사회적 권리 차원에서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데 반해, 선별주의는 개인의 욕구에 기초한 복지급여를 강조한다. 이 때 개인의 욕구는 정부의 소득 및 자산에 대한 조사에 기초하게 된다. 선별주의에 대한 선호는 복지급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예컨대 저소득가구 및 개인) 보다 많은 자원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이는 복지에 대한 수요를 줄임과 동시에 공공지출의 팽창을 억제할 수 있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개인의 복지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크게 자기 이해 요인, 자신의 계급 또는 계층 요인, 그리고 지지하는 사회적 규범과 가치 요인 등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먼저 자기이해 요인은 인간본성에 대한 전제를 경제적 인간관에 두고 있으며 이에 따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 존재이며 따라서 복지제도에 대한 태도 역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전략에 기초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다음으로 개인의 복지태도가 자신의 속한 계급이나 계층적 지위에 따라 달라진다는 주장에 따르면 복지제도란 시장경제의 작동에 의해 파생된 계급 또는 계층적 불평등을 완화 시키기 위한 국가의 정치적 개입이며 따라서 제도의 결과와 그것에 대한 태도 역시 계급과 계층별로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음에 주목한다. 마지막으로 복지태도에 대한 사회적 규범과 가치의 영향에 주목하는 입장에 따르면, 사회화 과정에서 학습된 평등주의와 사회적 연대의식이 국가의 역할이나 불평등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치며 또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도움을 집단적 이해관계 또는 도덕적 의무로 받아들이는 일종의 계몽된 이타주의적 경향에 주목한다. 

최근 신제도주의적 관점에서 제도로부터 발생한 복지지위와 복지태도 간의 관계에 주목한 연구들에 따르면 급속도로 확대된 국가복지제도들은 기존의 계급분류의 경계에 종속되지 않는 경향을 띠는 새로운 이해 집단들을 창출하였으며(대표적으로 연금수급노인, 장애인, 여성, 저소득층, 실업자, 및 공공부문 종사자등) 이와 같은 사회집단들은 적어도 국가복지의 영역에서 경제적 계급과는 일정 무관한 공통의 이해관계와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된다. 즉 복지제도의 발달과 더불어 양적으로 증가하게 되는 복지수급자, 복지납세자, 그리고 복지서비스 제공자 집단들은 사회집단으로서 복지지위를 공유하게 되고 이것이 복지태도 결정에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개인의 복지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가 공동으로 조사한 한국복지패널 2019년 14차년도 조사자료를 분석하였다. 종속변수는 응답자의 보편주의 복지정책에 대한 태도이며 조사 문항 가운데 사회서비스 대상을 묻는 질문을 통해 측정되었다. 다양한 독립변수들이 선형회귀분석 모형에 투입되었으며 이들 독립변수들은 사전 문헌 검토를 통해 몇 개의 큰 범주들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응답자의 사회인구학적 특성 범주에는 ‘성별’, ‘연령’, 그리고 ‘교육수준’이 포함되었다. 둘째, 응답자의 계층적 특성과 복지지위 범주는 ‘장애판정 여부’와 ‘저소득층 여부’, 그리고 ‘가처분 소득 수준’이 포함되었다. 셋째, 응답자의 정치적 태도와 관련된 변수들로 구성된 범주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 ‘정치에 대한 일반적 관심 정도’, 그리고 ‘한국정치 상황에 대한 만족도’가 포함되었다. 넷째, 세금과 관련된 응답자 태도에 대한 범주의 변수는 ‘복지를 위한 증세’, ‘조세 형평성’, ‘고소득층 세금수준’, ‘중산층 세금 수준’, 그리고 ‘저소득층 세금 수준’ 등에 관한 문항들이 활용되었다. 마지막으로 모형에 투입된 변수들은 무상복지에 대한 태도 변수들이다. 

위계적 회귀분석을 통해 총 5개의 모형을 분석하였으며 기존 연구들에서 복지태도와 연관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변수들이 모형에 순차적으로 투입되었음을 고려할 때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성별, 교육 수준 등의 인구사회학적 변수들이 종속변수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교육수준 변수는 소위 ‘사회화 가설’에서 복지태도에 주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알려졌고, 이번 분석의 결론은 다소 놀랍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경제적 지위 관련 변수들이 응답자들의 복지태도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결과 역시 의외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복지를 위한 증세, 무상보육 및 무상교육, 정치적 지향 등의 변수가 종속변수에 미치는 효과의 크기나 방향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특히 무상보육 및 무상교육에 대한 태도는 어찌 보편주의 vs 선별주의 구분과 액면 및 구성타당도 측면에서 공유하는 측면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분석 결과만을 놓고 보면, 기존 연구들에서 한국인의 복지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되어 온 많은 변수들이 이 연구의 종속변수인 ‘보편주의 vs 선별주의 복지태도’에는 영향을 미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통계적으로 유의한 효과는 ‘정치적 지향’이나 ‘무상보육 및 무상교육’등과 같은 정치·사회적 의식 관련 변수들에서 주로 나타났다. 특히, 응답자의 ‘경제적 지위’나‘교육 수준’ 등과 같은 기존 복지태도 연구들에서 강건한(robust) 효과를 보여 온 변수들이 유의미한 효과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점은 분명 사후적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장애판정 여부’ 변수의 일관되게 유의한 효과는 장애판정 집단들이 스스로 표출한 자신들에 대한 선별적 지원에 대한 욕구가 드러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해석으로 판단된다. 

사회정책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 가운데 보편주의 vs 선별주의 논쟁은 전국 단위 선거 때마다 주요 이슈로 등장하였으며 보수와 진보 진영은 각자의 패러다임과 논리를 통해 논쟁에 임해왔고 따라서 한국인들에게 보편주의 또는 선별주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각인되어온 개념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보편주의 vs 선별주의의 구분은 한국인의 복지태도의 주요한 구성 요인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라는 전제에 이 연구는 기반하고 있다. 분석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그러나, 기존 연구들에서 한국인의 복지태도를 유의하게 설명 및 예측하고 있는 변수들의 상당수가 보편주의 vs 선별주의 복지태도를 설명해 내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측정상의 오류를 포함한 여러 가지 원인에 대한 추정이 가능하다. 연구자가 제기하고자 하는 하나의 가능성은 한국인이 보이는 ‘보편주의 vs 선별주의’ 구분은 학습 또는 경험된 논리나 의식의 차원이 아닌 정치적 구호나 수사(修辭)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사회정책 영역에서 보편주의 vs 선별주의의 명확한 구분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의미 자체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이미 논의된 바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사회보험은 외형적으로 보편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현실은 보편주의의 현실 적용의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으며, 자산조사를 통해 급여를 제공하는 공적부조의 경우 보편주의적 급여로의 전환에 대한 현실적 논의는 존재하지 않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에서의 보편주의 vs 선별주의 논쟁은 무상급식, 무상보육, 그리고 기초연금과 같은 자산조사를 통해 저소득층이 아닌 고소득층을 걸러내는 사회정책들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발생하는 논란의 지점은 고소득층을 제외하고 자원을 할당하는 것과 소득수준에 따른 차등적 급여 지급을 보편주의적 제도로 이해할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요약하자면, 한국에서의 보편주의와 선별주의 논쟁은 강단 학자들 중심의 이념형적 차원과 현실 정치인들의 현실 정치투쟁의 장(場)을 제외한 실제 사회정책이나 제도 구현의 영역에서는 의미 있는 진전을 거두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분석결과는 정치사회적 의식을 제외한 인구사회학적 변수 또는 경제적 지위 관련 변수들이 ‘보편주의 vs 선별주의’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를 효과적으로 설명해 내고 있지 못함을 보여준다. 앞서 이러한 결과가 발생한 원인에 대한 논의를 제시하였으나 이 외에도 종속변수 측정의 문제나 조사연구 시 소득파악의 어려움 등 역시 분석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복지태도로서 보편주이나 선별주의는 현실에서 대응하는 정책이나 제도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념형에 가까우며, 오히려 정치적 수사나 구호로서 소모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보편주의 또는 선별주의가 사회정책 구성의 개념적 원리로서 실제 제도나 정책의 생산에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면 그것을 실제 조사에서 제대로 측정해 낼 수 있는 측정도구의 개발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보편주의 또는 선별주의가 순수 이념형적 도구에 불과하거나 정치적 구호에 그친다면 복지태도로서 보편주이나 선별주의 개념이 실증 분석의 영역에서 얼마나 유효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는 개념은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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